[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6·3 지방선거를 86일 앞둔 지난 9일,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공식 선언했다. 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오세훈 시장의 ‘후보 등록 보이콧’이라는 초강수와 바닥을 치는 당 지지율 위기감 속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당 대표가 끝내 침묵을 지킨 ‘반쪽짜리 선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번 결의가 보수 재건의 신호탄이 될지 선거용 ‘위장 결별’에 그칠지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3시간여의 격론 끝에 소속 의원 전원 명의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핵심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와 윤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 반대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낭독한 결의문에는 “잘못된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께 큰 혼란과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다”며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일체의 주장에 명확히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결의는 지방선거 참패 위기감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텃밭인 대구·경북(TK)을 제외하고는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가 급감했고, 급기야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의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공천 신청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의총 직후 오 시장은 “당 노선 정상화에 나선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선거에 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당내 중진들 사이에서도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절윤 선언의 진정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시선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당의 간판인 장동혁 대표의 태도다. 장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별다른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결의문 낭독 역시 송 원내대표에게 맡겼다. “의원들의 총의를 존중한다”는 짧은 입장만 남겼을 뿐, 자신의 육성으로 ‘윤석열과의 결별’을 언급하지 않았다.
장 대표는 불과 지난달만 해도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선거를 앞둔 의원들의 압박에 못 이겨 이름만 빌려준 ‘강제적 합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당 밖의 시선은 더욱 싸늘하다. 윤리위 제명 처분을 받은 한동훈 전 대표는 10일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결의문의 한계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한 전 대표는 “시기가 많이 늦은 만큼 국민들은 진정성을 볼 것”이라며 “윤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데 어떻게 정치적으로 복귀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부분의 ‘윤 어게인’ 세력조차 복귀 자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며 “복귀 반대라는 말로는 본질을 가릴 수 있다. 선명하게 계엄 옹호·탄핵 반대·부정선거 음모론에 반대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결의문이 겨냥한 대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라는 비판인 셈이다.
장 대표가 결의문 낭독을 거부하고 송 원내대표가 대신 읽은 것에 대해선 “(의원들이) 장 대표에게 읽으라고 요구했지만 본인이 듣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자신에 대한 제명과 친한(친 한동훈)계 인사들에 대한 징계 문제가 결의문에서 빠진 것도 문제 삼았다.
한 전 대표는 “법원에서까지 반헌법적이라고 철퇴 맞은 숙청 정치를 중단할 것인지, 책임자들을 교체할 것인지를 국민이 지켜볼 것”이라며 “비정상적 숙청을 그대로 이어가면 국민은 속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번 결의문에는 친한계 인사들에 대한 징계 철회나 당내 인적 쇄신안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송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최고위 의결이나 당 대표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 포함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선 더욱 냉소가 가득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용 쇼”라며 평가절하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국민의힘에 요구한 것은 급조된 결의문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반성문”이라며 “허울뿐인 결의문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의문은 윤석열과 계엄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선거용 위장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반성 없는 결의문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책임 없는 사과는 공허한 호흡일 뿐”이라고 거듭 일침을 가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 계엄 사과는 이번에도 반쪽짜리”라며 “지방선거라는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결국 국민의힘이 내놓은 절윤 카드가 지방선거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에 그칠지, 아니면 실제 당의 체질을 바꾸는 쇄신의 출발점이 될지는 장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중론이다.
선언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당내 계파 갈등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이 결별 선언을 얼마나 신뢰할지도 이번 선거의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후속 조치다. 당의 체질을 바꾸는 실질적 전환의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 장동혁 대표와 지도부가 어떤 행동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선언은 했으니 이제 증명할 차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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