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단풍 명소로 급부상하며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67호 ‘반계리 은행나무’ 인근에 4층 규모 건물이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원주시와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반계리 은행나무가 있는 문막읍 반계리 1495-1 일원 9479㎡는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있다. 이 보호구역 바깥 경계로부터 반경 500m 범위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한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국가지정 문화유산의 주변 경관과 공간적 맥락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하는 완충지대로, 이 안에선 건축물의 신축 등 개발 행위와 건축물의 높이, 용도, 색채 등이 지자체 조례 등에 관련 기준에 따라 제한된다.
그런데 이날 <일요시사> 취재 결과, 반계리 은행나무와 약 50m 떨어진 보존지역 내 토지에 상업용 건축물 2건에 대한 허가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토지주들은 지난해 6월 연면적 391㎡ 규모의 지상 4층 규모, 지난 2023년 6월엔 연면적 204㎡, 지상 1층 규모의 1종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의 건축허가를 각각 받았다.
당시 원주시는 건축을 허가하면서 매장 문화재가 출토되거나 은행나무 생육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공사 중지를 한 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소식은 올해 단풍철을 맞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확산됐다.
누리꾼들 다수는 “건물을 올리면 경관이 퇴색될 것” “광장 조성한다고 앞에 있던 오래된 집들 다 밀었는데 다시 뭘 만든다니 이해가 안된다” “30m는 너무 가깝다. 한 200m쯤이면 좋을 듯” “관광객이 오는 시기는 가을 2주 정도 뿐이고 주변도 허허벌판인데 카페나 식당을 차린다고?”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편의시설을 만들어 관광객 체류시간을 늘리는 게 지자체 입장에서도 좋을 수 있다” “법적 문제가 없다면 토지주의 재산권도 무시할 수 없다” “관광객들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나무를 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어울리게 건축하느냐가 관건일 듯” 등 찬성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날 원주시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건축허가지 2곳 모두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개인의 재산권 행사에 해당하는 사안이라, 언제 착공할지 등 향후 계획에 대해선 별도로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기록돼있다”며 “이와 별개로 도시계획과, 시 역사박물관 등 관련 부서의 검토 의견을 취합한 뒤 인허가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도시계획과 담당자는 “도시계획 조례 제30조를 근거로 통과된 사안”이라며 “반계리 은행나무 인근은 자연녹지지역으로 분류돼있는데, 허가된 건축물들은 해당 구역에서 건축이 가능한 시설로 규정돼있다”고 말했다.
현행 원주시 도시계획 조례상 자연녹지지역에선 4층 이하 건축물에 한해 제2종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 등)이 허용된다. 논란이 된 두 건물은 제1종에 해당하지만, 올해 2월 개정 이전에는 제1·2종 모두 허용됐던 만큼 허가 당시 기준으로는 적법하다는 게 원주시의 입장이다.
시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문화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역에 대해선 통상 국가유산청이나 도에서 별도 고시를 낸다”며 “반계리 은행나무는 보존지역 내 건축 행위를 원주시 도시계획 조례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처리하도록 규정돼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시에서 건물 높이나 건축 양식에 제한을 두고 있다면 그 기준을 따라야 한다”며 “원주 향교 인근에 있는 명륜1동 행정복지센터도 강원도 고시로 ‘현상변경 허용 기준’이 별도로 정해져 있어, 한옥 형태로 지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근 주민들은 반계리 은행나무 가까이에 건물이 들어서면 자연 경관이 훼손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토지주들 역시 주변 여론을 살피며 공사 시기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지난 1964년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고목으로, 높이 약 26m, 줄기 둘레 14m, 최대 가지 폭은 40m 안팎에 이른다. 추정 무게는 147톤, 수령은 약 1318년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에는 나이가 800~1000년으로 추정됐으나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3D 스캔 기술을 활용해 정밀 분석한 결과 최소 1317년, 최대 1332년으로 측정돼 통일신라 시대부터 자라온 나무로 평가된다.
다양한 설화도 전해진다.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 가문의 한 사람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곳을 지나던 한 스님이 물을 마신 뒤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라 지금의 나무가 됐다는 전승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속에 흰 뱀이 산다고 믿어 함부로 손대지 않았고, 가을에 단풍이 한꺼번에 들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여기는 등 신성한 나무로 여겨왔다.
가지가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어 있어 수형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원주시와 각종 관광 안내 자료 등에선 “국내에 보호되고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나무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수나무(숫은행나무)라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에 가을이면 황금빛 단풍만 즐기면 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원래 인근 주민과 일부 사진 동호인들만 아는 ‘숨은 명소’에 가까웠다. 그러나 원주시가 지난 2021년 ‘문막 반계리 은행나무 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관광 자원화가 본격화됐다.
시는 도시계획시설(경관광장) 확장을 위한 주민 열람과 보상 공고를 거쳐, 총사업비 85억원을 들여 광장과 잔디밭, 야외무대, 산책로를 조성하고 진입로·주차장(135대 수용)을 새로 닦아 원주시를 대표하는 가을 관광명소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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