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 ‘페이지룸8’이 서울 북촌에서 옥인동으로 이전했다. 페이지룸8은 재개관을 기념해 작가 임지현의 개인전 ‘face to face’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과 식물 등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소재로 다각적인 시선의 변화를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페이지룸8’은 중진 작가의 작품 1점을 가지고 그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개인전 형식의 프로젝트인 ‘이 작품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92년생 작가 임지현이 주인공. 그가 개인전 ‘face to face’를 통해 관람객과 만난다.
직관적 태도
임지현은 최근작에 작가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개입시켰다. 그 결과 추상적인 형상과 강렬한 색채가 발현됐다. 식물을 관찰하고 확대하면서 발견한 대상의 새로운 구도와 형상은 회화 장르로 변환됐다.
이는 캔버스를 표피 삼아 문지르거나 비비는 등 직관적인 행위와 태도로 연결됐다. 작품은 제목과 작가의 개념을 엿볼 수 있는 언어 형태로 전달된다. 현시점에 드러난 임지현의 작품 속 이미지는 작가만의 연대별 작품과 수많은 연구작을 통해 완성됐다.
박정원 페이지룸8 디렉터는 “임지현의 이미지는 대상을 재현하거나 관찰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오히려 직면하는 대상을 시각적으로 해체하고 분절함으로써 다른 개체를 얻거나 변환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식물과 같은 자연물에 대한 생물학적 특징과 존재론적 가치 등 관념으로 귀결될 만한 요소에 닿지 않게 하려는 작가만의 노력이 보인다”며 “그의 그림에 있는 식물이나 꽃을 소재로 한 형상은 꽃처럼 보이지만 꽃이 아니며, 식물을 그렸지만 식물이 아닌 그림”이라고 부연했다.
지난달에 완성한 작품 ‘Facing Each Other’는 지난해 초에 그린 ‘Tentacle 1, 2’, 지난해 6~7월 제작한 ‘Freckle’과 동일한 120호 크기다. 세 작품은 각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구심점이 된다.
작가의 작품 1점만 가지고
작품세계 조망하는 시리즈
‘Tentacle 1, 2’는 난초꽃을 소재 삼아 그린 초기작으로 캔버스 테두리를 별개의 재료와 색을 사용해 프레임으로 만들었다. 미디엄을 갈아낸 요철을 붉은색 물감으로 문지른 부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앗빛의 매끈하고 뾰족한 입체감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Freckle’은 다발적으로 흩어진 흐릿하고 선명한 점이 눈에 띠는 작품이다. 이 점들은 임지현이 표면을 갈아내면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아크릴 물감 입자가 문지르는 과정에서 우연히 섞이며 점처럼 남은 흔적이다. 작가는 캔버스 표면의 톤을 서서히 그러데이션 처리하고 매끈하게 거친 부분을 다듬었다.

‘Facing Each Other’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임지현이 추구하는 개념적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와 작품이 각자 자의식을 가진 듯 마주하는 모습을 상상케 한다. 단순화된 형상과 달리 실제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그 표피의 실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푸른 회색 톤의 배경과 곱게 이어지는 색채의 연결 지점은 입체감과 음영을 만든다. 미세한 광택과 얇고 붉게 긁힌 자국, 점무늬가 각각 다른 시점에 완성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고한 표면을 가진다.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작가가 설정한 캔버스 가장자리 프레임이 전면에 있지 않고 옆면의 반 정도 위치로 밀려나 걸쳐져 있다. 형상이 앞서 있는 구조다. 이 작품은 캔버스를 갈고 닦고 다시 반복해서 칠하는 물리적인 과정으로 침잠시킨 후에 작가와 관람객 앞에 선 독립적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시각적 해체
페이지룸8 관계자는 “일련의 근작이 시각적 파편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최근작에서 보이는 주요 특징을 통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이 작품’을 선정해 제기될 수 있는 담론을 거둬보기로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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