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도시 침수 전문가’ 신민철 자인테크 대표

“물폭탄에 잠겨도 어디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집중 호우’ 대신 ‘극한 호우’라는 표현이 기상 용어로 등장하고 있다. 시간당 72㎜ 이상 내리는 비를 뜻한다.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짧은 시간에 폭우가 쏟아지는 일이 늘었다. 지역이 초토화하는 수준의 수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광주·전남에 600㎜의 비가 내렸다. 연간 강수량의 절반에 달하는 비로 사망·실종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주택이 침수되고 농경지가 유실되는 등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도 나타났다. 같은 날 충남 서산에는 1시간에 100㎜가 넘는 ‘물폭탄’이 떨어졌다. 강우 빈도로 따지면 200년에 한 번 올 만한 폭우였다.

이상 기후
극한 호우

지난 4일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 기준으로 지난달부터 1시간에 100㎜ 이상의 비가 쏟아진 관측소는 경남 산청, 경기 포천, 충남 서산, 전남 무안 등 6곳에 이른다. 특히 지난 3일 전남 무안공항에는 1시간 동안 142.1㎜의 비가 내렸다. 극한 호우를 넘어 ‘괴물 폭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극한 호우의 원인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지금보다 더한 수준의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름마다 연례행사처럼 수해로 이어졌던 집중 호우, 태풍보다 더 세고 강력한 비가 전국을 할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현상이 전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이미 영향권에 들어왔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하수 시스템이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극한 호우 발생 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본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왜 빗물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는지, 왜 싱크홀이 생기는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싱황이다.


100년에 한 번 내릴 비에
전국 물난리로 손해 막심

신민철 자인테크 대표는 “물을 공급하는 상수 시스템은 현대화돼있는 반면 하수 시스템은 데이터조차 부족한 상태”라며 “도시가 침수되면 허둥대기만 하고 싱크홀이 발생하면 애꿎은 주변 상황만 이야기할 뿐이다. 결국 도시 침수나 싱크홀과 같은 재난이 반복돼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수의 양을 측정하는 것은 침수를 예측하거나 싱크홀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자인테크는 유량계를 만드는 업체로 2020년 환경부가 발주한 ‘상하수도 혁신기술 개발사업’ 컨소시엄에 주관사로 참여했다. 하수관로에 흐르는 물의 수위와 유속을 통해 도시 침수를 예측할 수 있는 유량계를 개발해 2023년 8월 환경부 ‘우수성과 20선’으로 선정됐고, 2023년 9월 행정안전부가 수여하는 ‘재난 안전 연구개발’ 관련 상을 타기도 했다.

신 대표는 지난 4일 <일요시사>와 만나 현재의 하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지자체별로 하수관로를 설치할 때 인구 유입과 강우 빈도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수준을 넘어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100년에 한 번 내릴 비가 왔다면 그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하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물을 공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기에 모든 국가는 상수 문제부터 파고들었다. 하수 문제는 상대적으로 외면한 셈이다. 실제 유량계를 사가는 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호주 같은 선진국이다. 한국도 GDP가 3만5000달러, 4만달러에 달하는 만큼 이제 하수 시스템 정비에 돌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땅 꺼지고
물 넘치고

무엇보다 하수관로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정집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 오수와 빗물 등이 하수관로를 통해 하천이나 강으로 나간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를 걸러내고 약품으로 처리하는 등 하수를 정화하는 작업을 거친다. 많은 비가 내릴 때는 침수를 막기 위해 빗물 펌프장 등이 가동되기도 한다.


신 대표는 하수관로의 상태를 수위만으로 측정하는 현 상황을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수위와 ‘유속’을 동시에 확인해 정확한 유량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수관로를 도로에 비유하면 수위는 차량의 수, 유속은 차량의 속도다. 차량이 많더라도 속도가 있다면 도로는 막히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 차량이 정체해 있다면 차량의 속도는 떨어지고 도로는 막히게 된다. 이는 수위만으로 침수를 예측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신 대표는 “물의 수위가 하수관로 끝까지 차올랐다고 해도 유속이 정상이라면 침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유속이 떨어질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유량이 정체되면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 오염된 하수에 도시가 침수되는 것이다.

신 대표는 2023년 7월 세종시 대평동에서 일어난 도시 침수를 예로 들었다. 당시 자인테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7월13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내린 폭우로 유량 정체 현상이 발생했다. 강우로 만수위에 이르렀는데 유속이 0에 가까운 상태가 14일 오후 12시경부터 다음 날 오후 8시경까지 약 30시간 동안 계속된 것이다. 그는 “결국 해당 하수관로에서 20㎞ 떨어진 오성 지하도로에서 침수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번 극한 호우처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릴 때는 도시 침수 시점을 잘 예측해야 한다. 수위만 가지고 대피 경보를 발령하면 까딱하다간 ‘양치기 소년’으로 몰릴 수 있다. 수해 피해를 막으려면 하수관로의 통수 능력을 측정해 빅데이터화하고 이를 이용해 신속 개선이 필요한 취약 하수관로의 개선을 실행해야 한다. 즉, 무작위로 아무 곳이나 하수관로 개선사업을 하면 효과가 없다”고 조언했다.

또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일 때 침입수와 강우 시 유입수의 양을 측정해 하수관로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침입수는 하수관로의 깨진 틈 사이로 흘러든 지하수를, 유입수는 빗물을 가리킨다. 침입수가 늘어나면 싱크홀이 나타날 수 있고 유입수의 증가는 도시 침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측정해서
빅데이터로

신 대표는 “상수도는 수도요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사용량을 철저하게 체크한다. 그에 반해 하수는 어디에서 얼마만큼 배출되는지 확인이 안 된다. 일반인의 생활 방식으로 예상해 보면 오전 5~6시부터 하수 배출량이 늘었다가 낮 시간대에 줄고 퇴근 시간쯤에 다시 많아질 것이다. 그러다 새벽 1~5시경에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고 보면 이 시간대를 최소 하수량으로 잡고 그 등락에 따라 침입수, 유입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배출량이 가장 적은 시간대의 평균 하수량을 모니터링하면 해당 지역의 최소 발생 하수량을 유추할 수 있고 이를 초과하는 하수의 양을 침입수로 판단할 수 있다. 신 대표는 “그건 하수관로에 금이 갔거나 노후화돼 외부에서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지표는 세금과 직결되는 문제다. 예를 들면 하수관로를 적절한 시기에 보수해 10만큼의 하수량만 처리하면 될 것을 50만큼 처리해야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제대로 유지, 보수만 잘 하면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기 위해선 일단 하수관로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장치가 바로 유량계”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입수도 마찬가지다. 모든 지자체가 처음 하수관로를 설치할 때 그 당시의 강우 빈도에 따라 30년, 50년, 100년, 혹은 200년 이런 식으로 용량을 설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기후가 변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수관로도 낙후됐다. 이 상황에서 싱크홀이 발생하고 도시 침수가 일어났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하수관로를 바꾸는 작업을 하는 건 비용 낭비이며 효과도 없는, 걷기도 전에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비 완료된 상수도와 달리
하수 시스템은 후진국 수준

신 대표는 더디지만 분명하게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에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한 연구 용역은 ‘하수관로 시스템 종합 솔루션’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자인테크)가 유량계 기술 개발을 진행했고 고려대가 악취 센서, 세라믹 기술원이 수질 센서를 연구했다. 정부가 선진국으로 가는 방향을 선제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도 발맞췄다. 서울시는 지난 2022년부터 1년 동안 서울시 광진구 소재의 군자배수군구 내 5개 지점에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운영하는 ‘테스트 베드 서울’ 사업을 진행했다. 하수관로 내 유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측정된 데이터를 사물인터넷을 이용, 분석해 빗물과 지하수의 유입량을 산정하는 내용이다.

신 대표는 “예를 들어 강남은 비가 올 때마다 물에 잠기는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역이다.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얼마만큼의 비가 왔을 때 얼마의 하수가 주변에서 유입되고, 얼마의 하수가 빠져나가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유량 정보를 이용해 문제가 되는 하수관로를 교체하든가, 용량을 늘리든가, 빗물 펌프장을 짓든가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게 그다음 순서”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우리가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기술 개발을 할 때까지 하수 유량계는 국산화가 안 돼 있었다. 현재 설치돼 있는 대부분의 유량계가 수입품이다. 그러나 수입품의 경우 심야의 최소 유량을 측정하지 못하거나 퇴적물로 인한 오차가 컸다. 재난 안전 측면에서 하수 유량 정보가 필요하다는 환경부의 예측으로 하수관로 유량계의 연구개발이 진행됐고, 그 결과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국산 제품이 개발됐다. 최근 미국, 호주,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수입품
국산화 작업

신 대표는 “국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홍수 등의 수해를 막는 ‘치수’ 사업은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다. 관리는 제대로 된 데이터에서 나온다. 앞으로 이상 기후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고 물난리는 이제 더 이상 여름에만 일어나는 재해가 아닐 수 있다. 하수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은 국가적 사업이 될 것이다. 그 시발점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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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