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깊이 잠든 한국을 깨우다’ 노벨문학상 한강

[일요시사 취재1팀]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 순간 한국문학 앞에 놓여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노벨문학상은 외국 작가의 전유물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국민을 놀라게 한 기분 좋은 충격이기도 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벼락처럼 찾아온 소식이 ‘깊이 잠들어 있던 한국’을 깨웠다.

지난 10일 오후 8시경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로 쏟아졌다. 특정 작가의 집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수상을 기대하며 작가의 이력을 보도하는 기사도 없었다. 마츠 말름 한림원 사무총장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 나온 ‘Han Kang’이라는 단어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맨부커상
세계적 명성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으로 한강의 작품세계를 언급했다.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세계 각국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후보를 좁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명가량의 최종 후보 가운데 그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식이며, 후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매년 해외 도박사이트서 수상자를 점치지만 번번이 틀리곤 한다. 심지어 수상자조차 발표 10여분 전에야 소식을 알 수 있는 정도다.

실제 한강은 한림원 발표 전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미국 유력 언론 <뉴욕타임스>서도 한강의 수상을 ‘놀라운 일(Surprise)’라고 보도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깜짝’ 수상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와 그의 작품을 논평한 기자회견을 보면 30여년 동안 작가가 우직하게 그려온 작품세계가 보인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으로 한강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 <채식주의자>부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에 드러나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노벨위원회가 추구하는 그것과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민간인 학살’ 등 한국서 일어난 폭력적인 역사를 소설에 담아내면서 그 안에 인간의 본성을 녹였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인간의 폭력성이 만들어내는 비극, 이타심이 주는 위로. 한강이 30년의 문학 인생 동안 천착한 주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그린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한강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한림원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할 때 두 작품을 비중 있게 다뤘다.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와 함께 한강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 총에 사망한 열여섯 살 소년 동호와 그 주변 인물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인물의 면면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현대사 비극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한강은 2014년 <소년이 온다> 출간 당시 소설을 집필하는 내내 ‘압도적인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열두세 살 무렵 아버지가 건넨 사진첩을 보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참혹하게 변한 시신, 그리고 그들을 위해 헌혈을 하려 병원 앞에 모인 시민들.

한강은 그 모습을 양립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꼈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또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서는 광경은 한강에게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그는 <소년이 온다>에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담았다.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이 자란 도시 광주서 1980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는다”며 “소설은 희생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 ‘증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해간다”고 <소년이 온다>에 대해 논평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경하, 인선,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 등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경하가 인선이 기르던 앵무새의 죽음과 맞물려 환영을 보는 마지막 부분은 폭발적인 흡인력을 자랑한다. 폭설이 내리는 제주서 인선의 집에 고립된 경하가 정심의 과거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부분은 ‘고통스러운 애도’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한강은 간담회서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정의했다. 그러면서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나의 삶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됐다.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메디치상은 페미나상, 공쿠르,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의 하나로 한국 작가 작품이 이 상을 받은 건 한강이 처음이었다. 

인간 폭력성
집요한 탐구

한림원은 “(<작별하지 않는다>는)1940년대 후반 한국 제주서 벌어진 학살 사건의 그림자를 들춘다”며 “압축적이고 정확한 이미지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집단 망각에 빠진 상태를 드러내려고 끈질기게 시도한다”고 논평했다. 또 “악몽 같은 이미지, 진실을 말하려는 증언 문학 사이를 독창적으로 오간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소개됐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생기는 주변 인물과의 마찰을 다뤘다. 인간의 폭력적 본성을 집요하게 탐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 비영연방 작가의 번역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 소설”이라며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논평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쓰는 것은 인간에 대해 내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었다”며 “가능한한 그 질문 속에 오래 있으려 했다. 그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최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독자에게도 인사를 남겼다. 

맨부커상, 메디치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난 한강은 이번 수상으로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1970년 11월 광주서 태어난 한강은 서울 풍문여고,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으로 당선돼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강의 부친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한승원, 오빠인 한동림도 등단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문인 집안서 자란 한강은 어린 시절부터 책과 밀접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노벨위원회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서도 “어릴 때부터 번역서뿐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자랐다”며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출판업계
대박났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았다. 당초 그의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는 합동 기자회견을 조율했지만 작가가 끝내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강의 부친 한승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밝혔다. 

대신 한강은 출판사 창비를 통해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는 짤막한 서면 소감을 전했다. 

공식 반응 없이 두문불출하던 한강은 최근 한 시상식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포니정 재단은 지난달 19일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바 있다. 

이날 시상식서 한강은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을 발표하기에 앞서 양해를 구한 뒤 노벨상 관련 소감을 말했다. 그는 “노벨위원회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다”며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수상 당일 밤 조용히 자축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강은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밝힌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에서는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일로 꼽았다. 한강은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며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독자와 주변 관계자, 지인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극구 고사
포니정 시상식에 등장

한강은 “지난 30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한강은 “나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고 했지만 국내는 ‘한강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들썩이고 있다. 특히 출판업계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원서’로 읽으려는 독자들의 쇄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한강 작품의 주문량을 맞추느라 인쇄업체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실제 서점가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 6일 만에 한강 작가의 책이 누적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시장점유율을 90% 가까이 차지하는 서점 3곳에서 각각 36만부, 43만2000부, 24만부를 판매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해 전 작품이 고르게 팔려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출판업계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서 시작된 독서 열풍이 정착되길 바라고 있다. 한국 성인 가운데 절반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극악의 독서율이 개선됐으면 하는 기대감도 보인다. 유통업계도 노벨문학상 특수에 기대 ‘한강 마케팅’에 올라타는 모양새다. 기획전, 낭독회, 작품해설 등 다양한 루트로 한강의 작품을 경험할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다. 

정치권도 말을 얹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강의 수상 당일 “대한민국 문학 사상 위대한 업적이자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라며 “작가님께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SNS에 글을 올려 “한강 작가님을 그분의 책이 아니라 오래전 EBS 오디오북 진행자로서 처음 접했었다. 조용하면서도 꾹꾹 눌러 말하는 목소리가 참 좋아서 아직도 가끔 듣는다”면서 “오늘 기분 좋게 한강 작가님이 진행하는 EBS 오디오북 파일을 들어야겠다. 이런 날도 오는군요”라고 축하를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굴곡진 현대사를 문학으로 치유한 노벨문학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면서 “고단한 삶을 견디고 계실 국민들께 큰 위로가 되길 기원한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다. 수년 전부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상하고 기대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지금일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한강의 수상이 문학계에 미친 파급력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한·중·일 3국 중 한국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어 문학적인 면에서 ‘아시아의 변방’ 취급을 받던 일도 과거가 됐다. 한국을 넘어 세계의 한강이 된 작가가 해낸 일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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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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