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사는데…’ 거야 각개전투, 왜?

머릿수는 많은데 비실비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야6당이 손을 잡으면 21석까지 가능하지만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찢어진 ‘이낙연-이준석 빅텐트’가 트라우마로 남은 탓일까? 톱니바퀴를 억지로 맞추다간 오히려 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향해 교섭단체 완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총선을 치르기 전부터 요구해 왔지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야기가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야6당끼리도 머리를 맞대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딱 8석이 모자란 혁신당만 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모양새다.

틀어진
시나리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열풍이 불었다. 두 당은 ‘윤석열 심판론’을 놓고 함께 싸우자며 우애를 다졌다. 혁신당의 발목을 잡던 교섭단체 조건을 현행 20석서 10석으로 완화하는 데 민주당도 동의하는 듯했다.

혁신당은 제3의 교섭단체가 만들어지면 개혁 과제 실현이 더 용이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민주당을 설득하고 있다. 양당 교섭단체 체제로는 극단적인 대결과 파행이 거듭되지만 제3교섭단체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게 되면 지금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점에서다.

군소정당 차원서도 교섭단체를 꾸리는 게 이득이다. 20석 미만인 비교섭단체는 정보위원회 활동이 불가능할뿐더러 상임위원회에 간사를 둘 수 없다. 본회의나 상임위, 또는 국정감사 같은 중요 일정 논의에서 배제되는 설움도 있다.


당시 12~15석을 예상하던 혁신당은 총선 기간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들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총선이 끝난 후 혁신당은 민주당을 제외한 야6당끼리 손을 잡는 밑그림을 그렸다. 12석을 확보한 혁신당을 포함해 ▲개혁신당 3석 ▲진보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사회민주당 1석 ▲새진보연합 1석이 뭉치면 총 21석으로 공동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

윤정부 심판을 외치던 진보 진영의 군소정당이 전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순풍이 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막상 총선이 끝나자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일부 당선인이 합류를 보류하거나 선을 긋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다.

여기에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민주당마저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서 혁신당 내에서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돌풍을 타고 여의도에 진입한 혁신당 조국 대표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총선이 끝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혁신당은 민주당을 향해 다시 한번 요구사항을 전했다.

‘목마른 혁신당’ 삽 들고 나섰지만…
살살 선 긋는 민주당에 ‘도돌이표’


조 대표는 “총선 기간에 당시 민주당 김민석 상황실장이 원내 교섭단체 의석수 기준을 낮추겠다고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홍익표 의원도 ‘의석수 기준을 낮추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며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김민석 의원이 말했던 것을 되돌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원내 교섭단체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급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고 특정 당 사람을 빼 올 생각도 없다”며 “정공법에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혁신당의 요구에도 민주당이 선을 그으면서 교섭단체 논의가 답보 상태에 빠졌다.

김민석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총선 당시 정책 발표까지 담당하던 상황실장으로서 지난 3월27일 제기된 국민의힘 측의 정치개혁안 발표에 대응하는 차원서 정치 관련 정책 발표를 했다”며 “주요 공약 발표 후 당 연구원서 취합한 자료에 나온 교섭단체 요건 완화도 논의 및 검토 과제로 제기한 바 있다. 숫자 등에 대한 구체적 문제는 차후 검토사항임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개혁 정책을 발표하던 당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이는 이전부터 당이 논의해 왔던 안건일 뿐, 혁신당을 염두에 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장기적 논의사항이라는 것과 구체적으로 10석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 혁신당도 이를 유념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동안 교섭단체를 꾸리기 위해 혁신당만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은 아니다. 새로운미래와 진보당 등도 저마다 의견을 피력하며 교섭단체에만 주도권이 주어지는 국회 생태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 대변인은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통화서 “거대 양당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는 조건서 지금 규정은 너무 엄격하다. 운영위원회에는 원내 모든 정당이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20석 이상이라는 규정은 대폭 완화될 필요가 있다”며 “진보당에서는 ‘5석 이상 개정안’ 등 다양한 제기 방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동상이몽

지난 6월 야6당 원내대표가 공동 교섭단체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지 이목이 쏠렸다. 이날 마련된 자리에는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새로운미래 김종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자리했다.

새로운미래 김 의원은 “교섭단체 제도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게 맞다”며 힘을 실었다. 이어 “교섭단체는 정당은 아니라서 정치적이거나 정책적인 견해를 같이하거나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는데 국회 운영에 관해서는 민주적인 운영에 대한 목소리를 같이 내는 게 교섭단체의 취지”라며 먼저 나서서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적극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을 두고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개혁신당이 혁신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진보당 등과 손을 잡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왔다.


역시나 혁신당은 이날 자리가 마무리된 후 언론 공지를 통해 “야6당 공동 교섭단체 추진 관련해 논의한 바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알렸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동 교섭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논의 없이 무작정 상대방과 손을 잡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개혁신당도 “공동 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 향후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으로 추진과 관련해선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야6당이 곧바로 합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의 방향성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총선을 앞두고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빅텐트를 쳤지만 결국 갈라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야당으로 묶이지만 정치 스펙트럼 선에서 놓고 봤을 때 끝과 끝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군소정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솔직히 공동 교섭단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한 가지 걸리는 건 국민의힘과 가장 근접하게 위치한 개혁신당”이라며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개혁신당과 함께 가야 하는데 서로 불편해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비전이 같아야 잡음이 없고 또 각 당의 지지자분들도 이해해주실 텐데 (개혁신당과 손을 잡는 건)쉽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교섭단체 조건에 대한 진전이 없다. 민주당이 해법을 쥐고 있는데 아마 그쪽(민주당)도 고심이 깊을 것”이라며 “그래도 거대 양당의 충돌을 제3자가 막아주는 상황이 조금 더 희망적이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유 있는
급발진


새로운미래 관계자 역시 “김 의원은 윤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비명(비 이재명)계로 알려졌다. 반면 혁신당이 이 대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서로(김 의원과 조 대표)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김 의원 역시 교섭단체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어디까지나 정책 부문서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지, 혁신당과의 깊은 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야6당은 공동 교섭단체에 뜻을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걱정을 안고 있다. 특히 개혁신당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 8일 조 대표가 개혁신당 허은하 대표를 예방했지만 양쪽 모두 “공동 교섭단체 구성 관련해 적극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구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등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30일 혁신당은 교섭단체 의석수를 10석으로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민심 그대로 정치혁신 4법’을 발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서 “10석이던 국회 교섭단체 의석수를 20석으로 올린 것은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이라며 “국회가 낡은 정치체제를 대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곧 22대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10석이란 숫자가 도출된 이유는 각 3석을 확보한 진보당과 개혁신당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둘 중 한쪽이라도 뜻을 함께하지 않으면 교섭단체 조건인 20석을 넘지 못하는 만큼 12석인 자당의 힘으로 교섭단체를 꾸리겠다는 설명이다.

만일 이보다 높은 15석으로 합의를 보더라도 3석만 확보하면 된다. 야6당이 뭉치기 어려운 상황서 의석수를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혁신당은 최근까지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 설득을 시도했다. 이들 모두 교섭단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은 서로 협의하고 논의해야 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우 의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서 교섭단체 완화에 관한 질문에 “다수의 교섭단체 생성이 꽉 막힌 정국서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군소정당이)양당을 잘 설득하고 순기능을 이야기해서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군소정당에 공을 넘겼다.

교섭단체 캐스팅보트 진보·개혁신당
“달라도 너무 달라” 빅텐트 뻔한 결말

누구 하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던 시점서 국회 국민청원이 해법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달 29일 ‘국회 교섭단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촉구에 관한 청원’이 소관 상임위 회부 요건인 5만명 동의를 충족하면서다.

앞서 조 대표는 청원 링크를 SNS에 게시하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혁신당 의원들 역시 일제히 SNS에 같은 내용을 공유하며 청원 동의를 격려했다.

지난 19일 해당 청원은 심사 요건을 충족해 국회 운영위원회로 자동 회부됐다. 공이 국회로 넘어오자 조 대표는 “이제 민주당이 응답할 차례”라며 “옳은 주장이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없으니 하기 싫다는 건 이기주의 발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길게 보면 어떤 선택이 승리의 길인지 명확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혁신당이 교섭단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회 내 각종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서라지만 일각에서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야6당 중 혁신당이 (교섭단체 구성에)제일 열심히 하고 있다. 12석의 혁신당은 1~2석을 가진 정당보다 교섭단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20점을 맞은 학생과 98점을 맞은 학생 중 어느 쪽이 100점을 위해 더 노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교섭단체가 되면 국회서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이런저런 제약도 풀리지만 조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법원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 국회에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함께한 비례혁신당 의원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둥지를 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 대표에게는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든 논의는 과반 의석인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주도권을 쥔 민주당은 “야6당의 합의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교섭단체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고 의회 운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조 대표를 이 대표의 라이벌로 보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지금 상황서 혁신당은 아군이 아니라 우군”이라며 “현실적으로 야6당, 21석이 뭉치기는 어렵다. 20석을 10석으로 완화해 혁신당이 독자적 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게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추석 전후를 눈여겨보라고 귀띔했다.

한발 후퇴?
도움닫기?

이 관계자는 “TF처럼 느슨한 형태의 교섭단체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야6당이 손잡고 간병인 부담 완화나 간호법 같은 민생법안을 추석 전까지 빠르게 통과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대에 부담을 느끼는 당이 있는 만큼 정책 지향성을 배제하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핵심 의제를 관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임 당 대표의 회담이 한차례 미뤄지면서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다. 제3정당의 공간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민생 의제를 두고 존재감 확보를 위해 추석 전후로 교섭단체 등록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조 회동 무슨 말 오갔나?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만남을 가졌다.

이 대표는 “두 당의 관계는 협력적 경쟁 관계이자 경쟁적 협력관계”라며 “우당으로서 최종적 정권교체를 이뤄내자”고 강조했다.

조 대표 역시 정권교체를 힘주어 말하며 “이 대표가 선봉에 서서 3가지 과제의 해결사 역할을 해달라”고 화답했다.

이날 이 대표는 교섭단체 문제에 공감하며 기본과 원칙을 위해 힘을 모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난 18일 전당대회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정치라는 게 현실이어서 제 개인적인 뜻대로만 움직이는 건 아닌데 노력해보겠다”고 말해 민주당 내 의견을 통합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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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