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 쥔 이재명 풀어야 할 용산 방정식

‘시간을 편으로’ 급할 게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2기’가 순조롭게 출범했다. 192석을 등에 업은 채 용산을 향해 거칠게 노를 저을 일만 남았다. 상대는 이미 한 번 겪어봤다. 대권주자로 쑥 발돋움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앞으로 어떤 관계도를 그려나갈지 이목이 쏠린다.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기 속 8·18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그 끝을 알렸다. 이재명 신임 당 대표는 85.40%라는 압도적인 지지 속 연임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굳혔다. 그동안은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신중을 가했지만 이제는 두려울 게 없다. 몸풀기에 돌입한 이 대표가 여의도 1선서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대화가
필요해

당이 재정비를 마치는 대로 이 대표는 그동안 밀려 있던 업무를 처리할 예정이다. 당의 선두서 메시지를 내고 정부여당을 압박하며 쌓여 있는 현안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도 영수회담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드러냈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당 대표 후보 방송 토론회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만, 그중에도 절박한 과제가 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을 다시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답했다.


악화된 경제 상황과 꽉 막힌 정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다음 날인 7일에는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다시 한번 운을 띄웠다. 박 원내대표는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하며 “현재 위기는 윤석열정부 혼자의 힘으로는 돌파가 어렵다. 여야가 ‘톱다운 방식(하향식)’의 논의를 통해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꽉 막힌 정국서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야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냐는 의미에서다.

여권에서는 영수회담 제안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대통령 망신주기’가 목적이었냐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이 대표는 대통령 집무실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를 말리며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서 왔다”며 상의 주머니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이후 이 대표는 A4용지 10장 분량의 글을 18분 동안 읽어 내려가며 윤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여당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두고 “기삿거리가 될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한 퍼포먼스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미 (이 대표에 대한)신뢰가 깎였다. 만약 이번에 영수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또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니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불안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소통을 미루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 대표의 영수회담 요청을 두고 용산이 딜레마에 빠졌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뒷받침하지 않는 상황서 ‘불통 정치’라는 꼬리표까지 달 수 없으니,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도전장인 셈이다.


영수회담 띄워도 미지근한 반응
윤과 미묘한 ‘한 카드’ 어떻게?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손에 쥔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영수회담과 마찬가지로 여권 당 대표는 무시한 채 곧바로 대통령 옆에 서려는 의도가 뻔하다는 지적이다.

회담 후 손에 넣을 실익도 문제다. 영수회담 직후 대통령실은 “소통과 협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고 호평한 반면 민주당은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평가절하했다. 또다시 ‘하나 마나 한 빈손 회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면 윤 대통령에게 뼈아픈 실점이 된다.

2차 영수회담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서 이 대표가 얼마나 빠르게 만남을 약속받고 안건을 상정하는지가 성공의 지표로 떠오른다. 지금처럼 22대 국회가 꽉 막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서 이 대표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그것만으로도 대권주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인 한 대표를 민주당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야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잠재적 우리 편’일지 아닐지 지켜보는 분위기 같다”며 “(한 대표는)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과 윈윈 전략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대표가 ‘윤석열’ ‘한동훈’ 두 장의 카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게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22대 국회는 개원식도 하지 못했을 만큼 최악이라는 평을 받는다. 개원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특별법을 비롯한 각종 쟁점 현안이 몰아쳤다. 여기에 밤을 꼬박 새우는 필리버스터가 몇 날 며칠 이어지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어렵사리 법안을 상정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이를 반대하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애태우는
밀당 전략

지난 13일에는 정부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하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하면서 여야가 다시 한번 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5만원 지원법은 이 대표가 지난 4·10 총선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인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25만원 지원법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부가 1인당 25만서 3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최소 12조8000억원서 최대 17조9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규모 국채 발행이 물가와 금리를 상승시켜 오히려 민생의 어려움을 가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법안 공포 후 3개월 안에 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고 규정하고 지원금 지급 대상과 액수, 지급 시기까지도 규정하고 있다”며 “재정 상황과 지급 효과 등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데 그런 재량을 박탈하고 입법부가 행정의 세부 영역까지 강제하며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당대회서 이 대표는 ‘먹사니즘’에 방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이 25만원 지원법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서 이 대표가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한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25만원 지원법이)‘표퓰리즘’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분명 있겠지만 돈을 준다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시기가 민주당 전당대회 직전이다. 이 대표가 매번 강조하는 ‘민생’이라는 키워드가 오히려 돋보이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여야가 비쟁점 법안 처리에 합의롤 보겠다고 밝히면서 마침내 숨통이 트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양당이 각 상임위원회서 쟁점 요소가 없는 합의 법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날 국회에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비롯한 간호법 제정안과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등 3건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빨간불?
주황불?

그럼에도 곳곳에 깔린 뇌관을 피할 수 없다. 오는 20일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서 윤 대통령을 겨냥한 ‘마약 수사외압 의혹 청문회’가 열린다. 운영위원회는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과 국민권익위원회 간부 사망 사건 등에 대한 질의를 벼르고 있다.


국회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전부터 ‘N차 청문회’를 진행하며 이진숙 신임 방통위원장에 대한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거칠어진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건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대표인 만큼 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때와 다소 힘을 빼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이른바 ‘밀당 전략’을 사용할 것이란 관측도 제시된다. 정부여당과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서 어떤 식으로 화합을 조율하고 메시지를 내는지에 따라 이 대표의 리더십이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2주간 중단됐던 전국 법원의 재판이 다시 시작되면서다. 멈춰있던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시계가 다시 흐르는 만큼 ‘방탄 국회’ 논란이 불거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이 대표를 피의자로 보고 “협상 테이블에 함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던 지금 시점서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힌다면 이 대표는 다시 한번 휘청일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 대표의 재판을 재개했다.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성남 FC 불법 후원금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3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관련 재판은 지난 13일 재개돼 주 1∼2회씩 진행된다.

이 중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일은 이미 정해진 만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초읽기에 들어섰다.

‘사법 리스크 암초’ 마주한 민주당
명심 경쟁 뒤로하고 중도층 챙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은 다음 달 6일로 예정돼있다.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재판 역시 다음 달 30일 결심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결심공판을 마친 뒤 한 달 이내에 선고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르면 10월 중에는 유·무죄가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지만 그만큼 무뎌지기도 했다. 불체포특권 표결 등 법원의 문제가 국회로 넘어올 때마다 당에 분열이 일고 갈등이 터졌다.

그러나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곤 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당이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상황에서는 적어도 당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법원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 차례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피의자의 상황과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던 바 있다.

이번 전당대회서 ‘명심’은 충분히 확인했으니 이제는 ‘중도층’으로 국면전환을 할 때다. 전당대회 경선 과정서 이 대표가 종합부동산세 재검토와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 역시 중도층을 염두에 둔 ‘우클릭’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1대 국회서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연금개혁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협치’ ‘화합’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강경 노선만 보인다는 평이다. 토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정쟁만 남았다. 탄핵과 윤석열정부 조기종식을 암시하는 현수막이 즐비한 국회처럼 여야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서 이 대표는 한 대표와 용산을 상대로 정치력을 키우면서도 중도층을 포섭해 당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막중한 책임감을 도맡은 셈이다.

산적한
과제들

이 대표 앞에 새롭게 놓인 과제 중 대부분은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하는 문제들이다. 구체적인 틀조차 잡히지 않은 영수회담 성공 여부가 이재명 2기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시되는 이유다. 새로운 지도부로 출범한 이 대표가 용산을 상대로 포용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용산 역시 이에 화답할지 지켜봐야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꽉 막힌 정치에 갈증을 느끼던 국민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 것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회전’ 여야정 협의체

여야가 비쟁점 민생 법안 처리에는 뜻을 모았지만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8월 초 여야는 정부와 함께 민생 정책을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위해 실무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약 3주가 지났지만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오히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 갈등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협의체 구성 전제는 대통령의 국정기조 전환”이라며 영수회담을 제안한 반면 국민의힘은 “아무런 조건과 단서 조항 없이 구성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실은 여야정 협의체든 영수회담이든 국회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합을 맞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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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