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하다 하다 똥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북한의 도발 방식이 다각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미사일 도발에 이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나 싶더니 최근에는 오물을 투척했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잦아진 북한의 도발, 그 노림수는 무엇일까?

80여년의 세월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차근차근 지워냈다. ‘한민족’ ‘동포’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과거보다 유대감은 옅어졌고 소속감은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분단 79년
다른 나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14번에 걸쳐 통일 시기에 대해 물었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모든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통일은) 10년 후쯤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2011년 김정일 전 노동당 총비서 사망, 2013년 12월 장성택 전 정치국위원의 숙청 발표 때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응답이 다른 조사에 비해 높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경향은 10년 넘게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점은 연령별 양극화였다. 2022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통일 시기를 10년 후쯤으로 답했다.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가 19%,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가 19%로 나타났다. 의견을 유보한 비율은 5%였다. 


큰 틀에서는 이전 조사와 비슷했지만 18~29세, 30대 등 젊은 층에서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비율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각각 29%, 30%의 수치를 기록했다. 젊은 층 3명 가운데 1명은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70대 이상에서는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이 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은 층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손꼽힌다. 그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진보 성향의 정부는 대화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했고 보수 성향이 짙은 정부일수록 강경 대응 방식을 취했다.

북한 역시 대화 상대의 성향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대북정책을 고수했다. 이 과정서 한국이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사일·GPS·오물 다양한 도발
정부, 군사합의 효력 전면 정지 

반면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체제를 공고히 다지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형태의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미, 한일관계에 공들이는 것에 비해 중국, 북한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29일까지 거름과 쓰레기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이 우리나라 쪽으로 날아왔다. 이른바 ‘오물 풍선’으로 이날 북한이 살포한 풍선은 260여개로 집계됐다. 오물 풍선은 지난 1~2일 사이에도 날아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에 따르면 1일 밤 8시경부터 다음 날 오후 2시30분 기준 전국서 720여개의 오물 풍선이 식별됐다. 

오물 풍선은 항공기 운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일 오전 제1활주로와 제2활주로 사이 상공서 오물 풍선이 두 차례 확인돼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전날에도 제3활주로와 제4활주로 사이에 낙하한 오물 풍선을 수거하느라 일정 시간 동안 항공기가 이착륙하지 못했다.

결항된 항공편은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북한은 오물 풍선에 이어 탄도미사일을 대거 발사하는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합참은 “오늘 오전 6시14분께 북한 평양 순안 일대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추정 비행체 10여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험발사 명목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쏜 것은 이례적이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은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 태세하에 북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듭된 공세
강경한 대응

북한은 지난달 17일에도 300㎞를 날아간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도 자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과 옹진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3일까지 누적 1500건에 육박했다.

발신지가 북한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연평·인천·강화·파주의 과기정통부 전파감시시스템에 유입됐다가 중단되길 반복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932건으로 집계됐는데 주말 새 550건이 늘어 1482건으로 나타났다.

GPS 전파 혼신 신고 건수를 대상별로 분류하면 항공기 507건, 선박 975건 등이다.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북한의 GPS 교란 전파가 산과 같은 지형지물을 넘기 힘들어 수도권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다각화된 도발에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4일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시켰다. 오물 풍선 사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 등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8월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서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미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윤정부도 같은 달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 GPS 교란 등의 도발을 거듭하자 전면 정지로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규탄
국제기구에

지난 3일 대통령실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서 의결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안을 재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북한의 GPS 교란 공격에 대해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최근 북한의 GPS 교란과 관련해 정부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의하에 유관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국제기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해사기구(IMO) 등 3곳이다. 정부는 2016년 3월 북한이 GPS 교란 전파를 발사했을 때에도 이들 기구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각 기구는 비판 성명을 채택하거나 교란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미국도 반응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역겨운 전술”이라고 규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것은 분명히 역겨운 전술”이라며 “무책임하고 유치하니 북한은 이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우리는 어떤 형태의 비행 물체든 불안정을 초래하고 도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한국, 일본과 긴밀한 대응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윤정부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로 맞서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윤정부의 강경 대응에 따른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 “오물 풍선을 보낸 북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정말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여 정권이 처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나쁜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내부 상황 안 좋아
외부로 눈 돌렸나?

반면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국민의힘은 “북한은 올해만 6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100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재산 상의 피해를 초래했다”며 “북한의 몰상식하고 치졸한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향후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윤정부의 대응에 모두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상황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이다. 양쪽 모두 국면전환을 위한 일종의 ‘노림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의 경우 정찰위성 발사 실패, 경제난 등을 겪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밤 군사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1호기 발사 때와 달리 비행 과정서 폭발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합참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날 밤 10시44분경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서 서해 남쪽 방향으로 발사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항적 1개를 포착했다. 해당 발사체는 밤 10시46분경 북한측 해상서 다수의 파편으로 탐지됐다. 비행 과정 중 폭발, 실패가 추정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쏜 것은 지난해 11월21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당시 북한은 3번의 시도 끝에 1호기를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는 정찰 등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호기 발사가 북한에 중요했던 이유다. 이번 실패로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정찰위성 추가 발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차단해야 할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와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짜고 치는 쇼?

내부 상황만 놓고 보면 윤정부도 녹록지 않다. 윤정부는 4‧10 총선서 패한 이후 거듭된 이슈로 수세에 몰리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초반 박스권에 갇혀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상병 특검, 의료개혁, 김건희 여사 사건 등 곤혹스러운 이슈들이 산재한 상황이다. 

문제는 북한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과거와는 달리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정국이 요동치고 북한 내부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도가 높아졌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며칠만 ‘반짝’ 이슈화됐다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 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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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