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흔드는 범야권 노림수

개헌이냐 탄핵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탄핵’이란 단어에 여의도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의원 개개인의 의견이라며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공식 석상서도 제법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마음먹는 대로 대통령을 쉽게 끌어내릴 수는 없는 법. ‘윤석열 탄핵론’에 군불을 지피는 이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지난달 22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식 석상서 ‘탄핵’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바로 다음 날이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왜 탄핵됐나”라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그럼 특검 거부권을 행사하는 자는 더 큰 범인인가”라고 직격했다.

불붙은
탄핵론

이날 정 최고위원은 회의서 박 전 대통령의 헌재 탄핵 심판 결정문을 한 자씩 읽어내려갔다. 그는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문을 읽어보고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며 “특검법 거부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거부권으로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탄핵 열차’에 시동이 걸렸다는 평이 나온다. 여기에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인 ‘VIP 격노설’까지 불거지면서 화력이 더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정당들은 지난달 25일, 서울 도심에 모여 특검법 재의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이날 집회에는 시민단체와 민주당을 비롯한 ▲정의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야 7당이 자리했다.


개혁신당은 특별법 재의결에는 뜻을 함께했지만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몇몇 발언자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공격 수위를 올렸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키운 건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라며 “거부권의 사적 남용은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소리 높였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도 탄핵소추 의결에 관한 헌법 제65조를 설명하며 “윤 대통령이 직분을 남용해 수사외압을 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 탄핵의 사유”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이 사건 은폐를 위해 수사에 개입하거나 외압을 행했을 거라는 주장만 난무하던 중 수사의 변곡점이 생겼다. 수사를 통해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8월2일 개인 전화번호로 연달아 세 차례 전화 통화를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야권은 해당 통화로 인해 경찰에 이첩된 자료가 도로 회수되는 등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VIP 격노설의 핵심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녹취록과 전·현직 국방부 장관인 신원식-이종섭의 통화 기록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통화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실과 여러 고위 관계자가 소통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구심이 커졌다.

윤 격노설부터 수사 외압까지
차곡차곡 쌓이는 탄핵 마일리지


VIP 격노설이 진실 공방으로 번지면서 민주당의 공세는 강해졌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탄핵만 답이다’라는 문장의 앞 글자를 딴 6행시를 지어 공개적으로 탄핵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통화 사실이 윤 대통령의 운명을 어떻게 가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수사외압 의혹 사건서 대통령의 격노설이 안개 속 의심이었다면, 대통령이 직접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다는 진실의 문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를 탄핵으로 이끈 건 태블릿PC였다. 이번에 밝혀진 용산 대통령실의 통화 사실이 제2의 태블릿PC가 될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으로 일찌감치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역시 공세 수위를 바짝 올렸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한 방송을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쌓이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며 “어느 쪽이 먼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탄핵과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투트랙을 실제 성취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수사가 진행될수록 탄핵 요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집권 3년차도 되지 않아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시기가 오버랩된다. 국정운영이 서서히 마비되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3%p 하락한 21%로 집계됐다. 이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다. 반면 부정 평가는 전주 대비 3%p 늘어난 7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30~40%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임기 4년차 후반부에 들어 32%로 하락했으며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는 12%까지 떨어진 뒤 탄핵됐다.

또다시
2016?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어느 쪽도 아니다’는 4%, ‘모름·응답 거절’은 6%였다. 해당 조사는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1.1%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김정숙 여사 특검법과 석유 매장으로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것 같은데 30%대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20%가 유지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미 하락세가 시작된 마당에 10%대로 주저앉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하면 ‘심리적 탄핵’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때는 각 부처와 여당 등이 의욕을 잃고 국정운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지난 4·10 총선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포함해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개원 초반부터 단합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192석 범야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끈끈한 결속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워크숍에 참석해 “우리가 108석이라 소수정당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큰 숫자”라며 “우리는 여당 아닌가. 뒤에는 대통령이 계시고 옆에는 정부 모든 기구가 함께하기 때문에 강력한 정당이라는 생각을 하고 용기나 힘을 잃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 역시 워크숍에 참석해 “이제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고 저도 여러분과 한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다”며 직접 당을 격려했다. 정부여당이 단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8석의 이탈표가 발생하면 100석인 탄핵 저지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초선 의원이 합류한 국민의힘 내에서 당분간은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 아직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당론을 따르려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용산발 리스크와 각종 특검법으로 악재가 겹쳐 단일대오가 무너질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는 없다.

지난 국회에서는 18표의 이탈표가 관건이었지만 이번에는 고작 8표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8석을 지키기 위해 당 대표와 지도부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낮은 지지율은 회복하고 결속력이 약한 당은 사기를 북돋우면 된다. 하지만 좁은 인재풀로 인한 ‘회전문 인사’ ‘구인난 여론’ 등은 국정운영의 실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4월12일 국민의힘이 총선서 참패하자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주요 대통령실 인사가 국정 쇄신을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열댓명에 달하는 후보군이 ‘차기 국무총리 기용설’ 등의 제목을 달고 보도됐지만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오히려 비선 라인 의혹이 불거졌다.


미끼를
위한 미끼

지난달 25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의 3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른바 박근혜정부 시절 ‘문고리 3인방’의 중 한 명이 용산으로 합류하면서 여권조차 고개를 갸웃한 탓이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인사 배경에 역량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수석대변인 역시 “대통령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당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그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결과를 놓고 평가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해당 인사를 두고 야권은 반발에 나섰다. 민주당은 “국정 농단 시즌2를 자인한 꼴”이라며 윤 대통령이 탄핵을 대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개혁신당은 “혹시 이번에는 기밀문서를 최순실이 아닌 여사님께 가져다드리는 역할이냐”며 “사람이 없으면, 공개채용을 하라”고 꼬집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번 인사를 두고 “용산이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대통령실은 자리를 내줘도 다들 고개를 ‘도리도리’하는 모양”이라며 “정권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초기 증상 같다. 같은 배를 탔다가 가라앉을까 봐 하나둘 발을 빼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은 재적 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65조에 따르면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 위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탄핵은 단어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무게감을 준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극성에 일각서 주장하는 개헌 요구가 오히려 묻히고 있다. 더 나아가 “차라리 이승만 대통령처럼 하야하시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역시나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범야권에선 금방이라도 끓어 넘칠 듯 탄핵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탄핵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하나같이 “가능성이 낮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국민의 분노를 원동력 삼아 탄핵 여론에 군불을 땔 수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민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탄핵을 밀어붙이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혁신당 조 대표는 JTBC <오대영 라이브>서 “현재로서는 탄핵 사유와 관련해 (증거가)부족한 점이 있다”면서도 “채 상병 건에 대해 공수처 수사와 특검이 발동돼 증거가 수집되면 헌법이 요구하고 있는 대통령 탄핵 사유의 요건을 충족할 날이 올 것”이라고 시사했다.

계속 거부권 행사하면…
지지율 10%대 하락하면…

범야권, 특히 혁신당은 탄핵과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를 포함한 개헌 논의를 투트랙으로 가져가고 있다. 4년 중임제를 통해 윤 대통령의 임기를 1년 앞당기면 2026년에 지방선거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게 돼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야권의 탄핵 카드는 4년 중임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통해 실질적인 탄핵을 노렸다는 것이다. 야권이 탄핵과 개헌 카드를 들고 협상에 나선다면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임기를 1년 단축하는 명예로운 방식을 택할 것이란 설명에서다.

차기 대선주자를 노리는 이들에게 있어 개헌 논의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여권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서 이 대표를 언급하며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탄핵 바람 잡기에 앞장섰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병에 걸려도 아주 단단히 걸린 모양”이라며 “길거리로 나서 반정부 투쟁과 선동에만 몰두하며 이재명식 ‘조직 보스 정치’에 빠져 있다”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이상민 전 의원 역시 자신의 SNS에 단축 개헌론에 대해 “이 대표의 형사재판 진행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대선 이후로 미뤄보겠다는 시커먼 속셈”이라고 직언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를 벗어나야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소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30%대는 결코 높은 숫자는 아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안정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신평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바닥을 쳤고 서서히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커먼 속셈
반등의 기회

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정숙 여사 특검법이 국민의힘 당론으로 정해지지 않더라도 점차 화력이 더해질 것”이라며 “특검법을 주장한 김민전 의원은 비대위의 수석 대변인이다. 당직자인 만큼 황우여 비대위원장하고 소통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 비대위원장 체제서 당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점도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내다봤다

다만 ‘동해 석유 매장이 지지율 반등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을 근거로 들며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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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