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이즈미디어 기술 유출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11 10:59:28
  • 호수 1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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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냥꾼 먹잇감 되더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아이폰과 갤럭시 등에 카메라 모듈 검사장비를 납품하는 이즈미디어가 핵심 기술 유출 의혹에 휩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인석 이즈미디어 전 대표도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달 28일 남부지법에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 상장폐지된 이후 지속되는 풍파를 겪어온 이즈미디어 내부는 ‘사실상 자포자기한 분위기’라는 후문이다.

지난 2017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이즈미디어’는 초소형 카메라 모듈(CCM) 검사장비 분야서 위상을 떨쳤다. 2020년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매출과 수익이 감소했으나,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친구인 랜디 저커버그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래버보드
설계·제작

결과적으로 이즈미디어의 상장폐지는 임직원들이 벌인 전형적인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의 부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춘)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로 이즈미디어 임직원 7명을 재판에 넘겼다. 해당 사건은 2023년 1월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적발해 서울중앙지검에 이첩한 사건이다.

재판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며 일부 피고인은 구속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인 중 A씨는 카메라 모듈 검사장비에 들어가는 이미지 그래버보드 기술(이미지 센서로부터 받은 디지털 신호를 디지털 영상신호로 바꿔주는 부품, 이하 그래버)를 설계하고 제작한 이즈미디어의 영업이사로 근무했다. 삼성은 물론, 애플 제품과도 호환되는 그래버는 이즈미디어만 보유한 기술이다.

2022년 이즈미디어가 경영난을 겪게 되자 A씨는 중국 업체 B사로 이직하기로 결심한 뒤, 핵심 엔지니어 등 6명을 설득해 함께 퇴사했다. 이들이 2022년 말 이직한 B사는 중국 업체가 국내에 설립한 자회사다. 퇴사 당시 이즈미디어는 A씨 등에게 핵심 기술 관련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이직을 앞두고 그래버 개발에 필요한 부품 리스트 파일 등을 B사와 카카오톡으로 공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해당 제품의 소스코드 파일 등을 개인 외장하드에 저장한 뒤 들고 나간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이렇게 빼돌린 기술로 B사의 사무실서 테스트용 제품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은 이즈미디어 근무 당시에도 그래버 부품 목록 등의 영업비밀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즈미디어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그래버는 2022년 12월14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로부터 첨단기술·제품 확인 인증을 취득했다. 이는 카메라 모듈의 최신 인터페이스 규격과 PC의 연결, 카메라 모듈의 소비전류 정밀 측정, 이미지 센서 입출력 핀 불량 검사 등을 수행하는 핵심 기술이다.

주로 스마트폰의 고사양 카메라 모듈 테스트를 위한 기술로 스마트폰 수요 증가에 따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애플 Mac OS와도 호환이 가능하다. 주요 고객사는 애플, 삼성전자, LG이노텍, LG전자, 메타(페이스북) 등으로 알려졌다.

갤럭시, 아이폰 등 카메라 부속 제조
중국 기업에 정보 빼돌린 임원 구속


이즈미디어의 이번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즈미디어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아직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 회사에서 답변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2022년 3월 이즈미디어는 감사보고서가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의견거절을 받으면서 상장폐지에 이르렀다. 당시 감사인이었던 한영회계법인은 ▲티피에이패션과의 골프의류 매입거래 ▲주요 경영진의 대여금 ▲NFT플랫폼 관련 신규사업투자 등의 회계처리 적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봤다.

거래정지 직전 당시에도 주가는 추락했다. 2022년 1월3일 종가기준 1만5950원이었던 주가는 1월24일 기준 2705원으로 83.04% 폭락했다. 최대주주인 티피에이리테일의 채권자이자 담보권자인 케이엔제이인베스트대부가 반대매매를 실행했고 2021년 초, 인수 당시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던 투자조합들까지 투자금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상폐의 후폭풍은 핵심 기술 유출만이 아니었다. 최근 김인석 전 이즈미디어 대표이사가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M&A 사기 혐의로 추가 피소됐다. 김 전 대표가 인수한 상장기업들의 추가 횡령, 배임, 주가조작, 특경 사기 등 고소가 예상된다. 

앞서 김 전 대표는 이즈미디어서 발생한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달 28일 남부지법에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이즈미디어는 그를 비롯한 3인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발생 금액은 64억5200만원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에도 34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업계에선 김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2차전지와 수소연료전지 등에 투자할 것이라던 KIB플러그에너지(KIB PE)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과거 랜디 저커버그를 영입했던 이즈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주가를 띄우기 위한 호재성 재료 발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영업비밀
빼돌려…

또 김 전 대표의 M&A 사기 혐의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해 7월 KIB PE의 인수자금 확보를 위해 주가상승을 빌미로 고소인으로부터 15억원을 투자받았으나, 주식을 교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소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가 투자금으로 자신의 부채를 상환하는 등의 사기행위를 저질렀다고 고소인들은 주장했다.

그는 고소인에게 KIB PE 인수자금으로 15억원을 지원하면 1주당 602원에 인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당시 주가는 최고가 1230원을 기록할 정도로 주가가 상승한 시기였다. 고소인은 주변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김 전 대표에게 15억원을 이체했으나 현재까지도 돈과 주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KIB PE 경영진 일부가 이미 투기거래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도 ‘먹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행동주의 펀드는 김 전 대표의 아내 박수진이 지분 58.08%를 보유한 최대출자자이며, 윤석준이 사내이사다. KIB PE는 행동주의펀드로 자이글 주가 급등 당시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KIB PE는 2022년말 자이글의 지분 5%를 보유하며 주주행동주의를 선포했다. 이후 자이글과 KIB PE는 2차전지 신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에 자이글의 주가는 급등했다. 지난해 초 5000원대였던 자이글은 상한기를 연이어 기록하며 시총이 몇 배나 커졌다.

그러다 KIB PE는 돌연 차익실현에 나섰다. KIB PE 등은 3개월여 만에 6배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KIB PE의 현재 자이글 지분율은 보고 의무가 사라진 3%대 수준이다. KIB PE는 자이글의 2차전지 사업에 대해 출자하지도 않았다. 이른바 ‘자이글 먹튀 사태’와 마찬가지로 KIB PE와 이즈미디어가 기업사냥꾼의 투기장으로 훼손된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업계에선 이즈미디어 상장폐지의 원인이 김인석 등 기업사냥꾼들의 작품이라고 바라봤다. 2002년 설립된 이즈미디어는 2017년 코스닥 상장 이후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에 2021년 1월 홍성철 창업주는 TPA리테일 측으로부터 235억원을 받고 돌연 지분을 판 뒤 회사를 떠났다.

‘페북 누나’ 
수상한 등판

2021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체질개선에 나선 이즈미디어는 이사회 의장 자리에 명주성 TPA리테일 미국법인장을 앉히고, 김기태·김인석 공동대표가 회사를 이끌었다. 새 주인이 된 TPA리테일은 2021년 3월30일 열린 정기주총서 18개 사업을 정관에 넣었다. 

당시 김 전 대표는 이즈미디어의 사업 부문을 크게 ▲하드웨어(CCM) ▲유통(브랜드OEM, 미디어마케팅, 홈쇼핑 등) ▲소프트웨어(블록체인·메타버스·대체불가토큰(NFT)) 등으로 제시했다. 정기주총서 선임된 ‘어벤져스급’ 이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랜디 저커버그 전 페이스북 최고 마케팅책임자, 이원준 전 롯데그룹 부회장, 오성목 전 KT 사장,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하금열 전 SBS 사장, 문성훈 전 위츠모빌리티 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사외이사 중 단연 주목을 받은 사람은 랜디 저커버그였다. 2021년 당시 이즈미디어는 랜디 저커버그를 앞세워 미래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펴겠다는 마케팅을 벌여 주가가 4만4000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랜디 저커버그는 사외이사 선임 후 이사회에 일체 불참했고 석 달 뒤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


TPA리테일은 지난 2021년 11월, 이즈미디어 운영자금 60억원 조달을 위해 보유하던 주식 중 91만3062주를 담보로 케이엔제이인베스트대부로부터 대출받았다. 문제는 대출 당시 담보권 실행 조건이 붙었고 하필 그 조건이 들어맞았다는 점이다.

당시 TPA리테일은 이즈미디어 주가가 1만1830원 밑으로 떨어지면 담보권이 실행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당시 이즈미디어의 주가는 1만9000원이었으나 직후부터 떨어졌다.

김인석 전 대표 횡령·배임 혐의
박수진 대표 자이글 먹튀 장본인?

급기야 2022년 2월 말 주가가 담보권 실행 조건 하한선 아래로 떨어졌고 채권자 측이 TPA리테일 측 담보 주식에 대한 반대매매를 행사했다. 이어진 반대매매 탓에 TPA리테일의 지분은 감소했고 결국 2022년 4월 최대주주가 채권자인 케이엔제이인베스트대부로 바뀌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본업이었던 초소형 카메라 모듈(CCM) 검사장비 사업의 매출이 호조를 나타내면서 2022년 말 기준 매출이 2021년 말보다 12.9%, 2020년 말과 비교해 무려 129.68% 늘었다.

다만 2020년과 2021년 회계결산 결과 자기자본의 절반을 넘는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 발생하며 관리종목 지정 우려가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감사보고서에 대해서는 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통보하면서 2022년 3월23일 거래를 끝으로 이즈미디어의 주권 거래는 중단됐다. 

한편 2021년 11월10일 돌연 공동대표서 사임한 김인석은 명주성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겼다가 반년여 만인 2022년 5월23일 다시 경영 전면에 복귀했다. 주권 거래마저 정지된 상황서 사업 지속을 위해선 자금 마련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즈미디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초이홀딩스 등이 참여하기로 했던 150억원 규모 유상증자와 그린박스가 참여하기로 했던 12억원 규모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22년 5월24일이 최종납입일이었던 300억원 규모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발행 결정도 철회했다. 기존 회사 측은 CB 발행을 통해 시설자금 150억원과 운영자금 50억원, 기타자금 1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당시 업계에선 새로운 제3자 배정 대상자로 떠오른 이즈네트웍스가 이즈미디어 경영 정상화를 위한 구원투수라고 전망했다. 

기존 유상증자와 CB 발행 철회를 알린 2022년 5월23일 이즈미디어는 제3자 배정 증자를 통해 65억원의 자금을 조달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주 270만8333주가 2400원에 발행했다.

어쩌다…
상폐까지

이즈미디어는 제3자 배정 대상자인 이즈네트웍스에 대해 “경영정상화 및 자금조달 및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 경영상 목적 달성 및 필요자금의 신속한 조달을 위해 투자자의 의향 및 납입 능력, 시기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며 “금번 유상증자의 납입 결과에 따라 당사의 최대주주는 케이엔제이인베스트대부서 이즈네트웍스로 변경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설된 이즈네트웍스는 김인석의 아내인 박수진 대표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산 1억원 규모 회사로 드러났다. 자이글 주가 급등 당시 먹튀 논란에 휩싸였던 행동주의 펀드 최대 출자자가 이즈미디어의 구원자인 것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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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