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상장 철회 ‘파두 사태’ 후폭풍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3.28 08:56:54
  • 호수 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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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기업가치 매출은 5900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이 파두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해 파두 기업공개(IPO) 과정서 NH투자증권이 실적 급감 가능성을 알고도 고의로 기업가치를 부풀려 산정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두(FADU) 사태 후폭풍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파두 사태의 여파로 IPO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올해 IPO 상장을 철회한 회사는 삼프로TV, 세무회계 플랫폼 ‘삼쩜삼’ 운영사인 자비스앤빌런즈, 코루파마, 옵토레인, 하이센스바이오, 피노바이오, 노르마, 크리에이츠 등이다.

IPO 철회
기업 속출

지난해 8월 파두는 1조원을 웃도는 기업가치를 평가받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이후 같은 해 2분기 매출이 5900만원, 3분기는 3억2000만원에 그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앞서 파두가 증권신고서를 통해 밝힌 2023년 연간 매출액 자체 추정치인 1202억원에 한참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금감원이 상장 주관사 NH투자증권에 대한 고강도 조사에 나선 배경이다. 파두를 주관한 NH투자증권 ECM부서가 조사 대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파두 상장에 관련한 직원에 대해선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주관한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압수수색 대상서 빠졌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파두 관련 금감원 조사에 성실히 임했으며, 이번 특사경(특별사법경찰) 압수수색에도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4일, 파두 주주들은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뻥튀기 상장’ 의혹으로 번진 파두 사태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파두는 ‘기술특례상장’ 선례를 남기지 못하고 부작용만 낳은 형국이다. 파두는 2015년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 출신 이지효 대표와 SK텔레콤 융합기술원서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했던 남이현 대표가 세운 스타트업이다. 

주력 제품은 데이터센터서 데이터 처리속도를 높이고 안정적인 전송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SSD(Solid State Drive·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다. SSD 컨트롤러는 SSD에 탑재되는 시스템반도체를 의미한다. SSD 내에서 읽기, 쓰기, 수명 관리 등을 처리한다. 혁신기술을 자랑하던 파두는 지난해 2월, 120억원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이뤄냈다.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한 2022년 564억원을 벌어들였다. 이어 지난해 7월 파두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공동 주관사로 IPO서 총 625만주를 공모했다. 주당 공모 희망가액은 2만6000~3만10000원으로 상장 후 예상 기준시가 총액은 약 1조2495억~1조4897억원으로 측정됐다. 

NH투자증권 압수수색 나선 금감원
얼어붙은 IPO 시장···바이오 직격탄

이지효 파두 대표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서 열린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서 “PMIC, 네트워크 반도체, CXL 관련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상장을 통해 확보된 자금은 내년부터 양산을 위한 운용자금으로 사용하고,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도 아낌없이 투자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7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첫날부터 공모가를 밑돌았다. 당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파두는 공모가(3만1000원) 대비 15.2% 하락한 2만6300원에 시초가를 형성한 뒤 장 초반 2만5000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소폭 반등하기도 했으나 결국 공모가보다 11% 낮은 2만7600원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1조3263억원으로 코스닥 시장 44위에 머물렀다. 

당시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파두의 주가는 회사의 기업가치 대비 공모가가 11% 비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뻥튀기 상장’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다. 파두는 상장 3개월이 지나서도 사상 최저가를 나타냈다.

지난해 12월9일 파두 주가는 전날보다 1만400원(29.97%) 내린 2만4300원에 장을 마쳤다. 파두 시가총액은 전날 1조6890억원대서 1조1830억원대로 하루 만에 5000억원 규모가 증발했다.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은 지난해 3분기 실적이 공시된 이후 불거졌다. 파두는 3분기 매출 3억2100만원, 영업손실 148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2분기엔 5900만원에 그쳤다. 파두는 금융당국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올해 연간 매출액 자체 추정치로 1202억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누적 매출액은 180억원에 불과한 상태였다.

파두 사태에 관해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이들은 상장 전 제시되지 않은 2분기 매출 공백에 대해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주관사가 모를 수 없다고 봤다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달라진 
분위기

법무법인 한누리는 지난 13일, 파두의 상장과 공모가 산정 과정에 관여한 이들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증권관련집단소송법에 따른 집단소송 소장과 소송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7월 파두의 기업공개(IPO) 주식 공모에 참여했다가 주가 급락으로 손해를 본 주주들이 원고로 참여했다.

증권관련집단소송은 증권의 매매 등 과정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대표 당사자가 수행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판결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효력이 미친다. 청구 금액은 1억원과 지연손해금으로 책정했다. 한누리는 추후 총원 구성원들이 특정되는 대로 전체 총원의 손해액으로 확장할 방침이다.

파두가 상장했던 방식인 기술특례상장 제도에도 제동이 걸렸다. IPO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재무정보 투명성 강화에 나서면서 상장 심사와 절차가 깐깐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상장 철회 이유에 대해 파두 사태를 직접 언급했다.

이전부터 주식 상장 절차를 밟고 있던 일부 기업들은 파두 사태 이후 심사 서류 보완 제출 요구 등으로 일정을 연기했다고 한다. 결국 주식 상장을 자진 철회하는 일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적 부풀리기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바이오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실제 일부 바이오기업들은 상장 철회 이유가 파두 사태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거래소 상장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한 곳은 삼프로TV, 자비스앤빌런즈, 코루파마, 옵토레인, 하이센스바이오, 피노바이오, 노르마, 크리에이츠 등이다. 이 가운데 양자 보안 전문기업 노르마와 IT기업 자비스앤빌런즈를 제외하면 4곳이 모두 바이오기업이다.


흑역사 
남기고···

피노바이오는 지난해 5월 상장 예심을 신청한 지 9개월 만에 심사 철회를 결정했다. 코루파마, 옵토레인, 하이센스바이오 등도 약 6~7개월 동안 심사받던 곳들이다. 자진 철회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거래소의 심사를 넘지 못했다는 의미다.

통상 거래소는 심사 보완을 이유로 추가 서류 요청 등을 보내며 우회적으로 미승인 의사를 보낸다. 심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승인 확률도 낮아지는 셈이다.

이들 기업 외에도 이엔셀, 노브메타파마 등 바이오기업과 씨어스테크놀로지 등 헬스케어 기업 등도 6개월 넘게 예비심사가 진행 중이다. 심사 규정상 회신 기일인 45영업일을 넘은 지 오래다.

IB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기업의 실적 부풀리기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는데 파두 사태 이후 더 엄격한 실적 전망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제는 임상 2상 단계까지 완료돼 유의미한 결과를 얻거나 기술 수출 등 현금흐름이 발생해야 심사 통과를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파두 사태를 기점으로 IPO 기업의 증권신고서를 더욱 꼼꼼히 살피고 있다. 신약 개발사 디앤디파마텍은 지난 1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으나 지난달 초 금감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았다. 통상 증권신고서 정정이 자진 정정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금감원이 공식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는 경우는 1년에 많아야 1~2건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디앤디파마텍이 제시한 실적 전망치에 대한 의문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앤디파마텍은 2026년 매출 600억원, 영업이익 336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2026년에 주요 신약후보물질의 임상 2상 완료 및 기술이전이 이뤄질 것을 전제로 한 추정치다. 디앤디파마텍은 이달 내에 정정 신고서를 제출하고 다시 공모 절차를 재개할 계획이다.

“시작은 좋았는데…”
불똥 튄 기술특례상장 

파두 사태 여파로 IPO 시장은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파두 상장 직전에만 해도 간혹 나오던 ‘따상(예상 시초가 상한가+거래시 또 한 번 상한가)’이 실종됐고 장외주식시장도 냉랭하다. 제2의 파두 사태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IPO 담당 관계자는 “파두 사태 이후 IPO 시장이 얼어붙은 것은 사실이며 금감원도 이와 관련된 증권사에 대해 1차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뻥튀기 상장’ 사례로 글로벌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이 지목되기도 했다.

IPO 관계자는 “최근의 사례로는 예상 공모가가 너무 높은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에이피알이 있다”고 말했다. 에이피알은 현재 주가가 25만원 정도로 공모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상장을 앞두고 장외시장서 한때 70만원을 호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품이라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장외시장서 에이피알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장중 최고가가 46만7500원인 주식을 70만원에 사들였다. 이들은 에이피알이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을 찍을 것이란 막연한 이야기를 믿었다. 대중에게는 ‘김희선 미용기기’로, 증권가에서는 높은 매출 성장률로 기대가 컸던 에이피알이다.

하지만, 실체를 열어 보니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 대비 27% 상승한 수준에 그쳤다.

일각에선 비인가 업체가 비상장주식 거래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상장주식과 기업공개 정보를 망라한 웹사이트 ‘38커뮤니케이션’엔 비상장주식 매매 게시판이 있다. 인가 업체는 금융 규제 샌드박스 안에 있는 비상장거래 플랫폼인 서울거래비상장과 증권플러스비상장, 장외시장인 KOTC 시장이 전부다.

인가 없이 주식거래를 중개하는 자는 자본시장법 제11조(무인가 영업행위 금지)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여된다.

제2 파두 경고
단타 매매 주시

한편,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초단타 매매 관련 증권사 3곳과 상장지수펀드(ETF) LP(펀드출자자)의 공매도 관련 증권사 6곳에 대한 현장점검도 진행한다. 지난 13일, 금감원이 개인투자자와 진행한 토론회서 참석자들이 증권사가 직접전용주문(DMA)을 통한 고빈도 매매로 시세조종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당시 참석자들은 LP 역시 공매도 호가를 낮은 가격에 내놓고 주가를 교란한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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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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