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상박’ 영풍-고려아연 신경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3.21 10:53:50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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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락 말락’ 불안한 75년 동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3세대에 걸쳐 동업 관계를 이어온 영풍과 고려아연 사이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이 제시한 주총 일부 안건에 대해 영풍 측이 반대하고 나서면서다. 두 집안의 대리인은 정관 변경과 배당금 증액 여부 등을 두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환경법 위반과 인명사고를 초래한 영풍이 고려아연에 주주권익 훼손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꼬았다.

고 장병희·최기호 영풍그룹 공동창업주서 3세대로 이어진 75년간의 동업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영풍그룹은 장씨와 최씨 양가가 역할을 분담해 왔다. 장씨 일가는 장형진 고문을 중심으로 영풍과 영풍전자 등 전자 부문을, 최씨 일가는 최윤범 회장을 중심으로 고려아연 등 비철금속 부문을 맡아왔다. 다만, 지분 측면에선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3대 혈맹
집안싸움

당초 업계에선 두 회사가 정기주주총회서 정면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그만큼 경영적 측면서 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다만, 지분 측면에선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25%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의 지분 절반 이상을 장씨 일가 측이 보유해 왔다. 장씨 일가인 영풍은 계열사에 지급된 배당금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확대했다.

최씨 일가인 고려아연은 한화그룹과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 등을 우군으로 확보하며 지분을 늘려 나갔다. 이를 통해 서로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영풍은 지난달 20일 공시를 통해 고려아연의 정기주주총회 안건 중 정관 변경의 건과 배당 결의의 건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요청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주총서 “‘표준정관’ 반영을 이유로 기존 정관의 제17조(신주인수권) 및 제17조의 2(일반공모증자 등)의 조항을 변경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의 바람대로 정관이 개정되면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게 된다. 현행 정관은 ‘경영상 필요 시 외국의 합작법인’에게만 제3자 신주발행을 허용함으로써 상법보다 엄격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고려아연 측이 제시한 정관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에 대해 영풍은 주주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영풍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고려아연의 의도대로 정관이 변경돼 아무런 제한 없이 제3자 배당 방식의 유상증자가 이뤄질 경우, 기존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치가 희석돼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친다”며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유지’라는 지극히 사적인 편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주주 입장에선 고려아연 안건대로 정관 개정이 이뤄지고 최 회장 측이 지배력 확대를 위해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증자를 단행할 경우, 희석 효과가 관건이다. 액면가로 400억원의 신주인수권은 약 800만주. 최근 시가에 비춰볼 때 약 3조6000억원(800만주×약 45만원)의 증자 효과로 추산된다.

정관 개정을 두고 영풍 측이 반대하자 고려아연 측은 “영풍도 2019년에 같은 내용의 정관 변경을 실시했다”며 “영풍이 지나치게 경영 간섭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영풍이 밝힌 정관 변경 목적은 ‘관계 법령 내용 반영 개정 및 조문 정리’로 고려아연이 밝힌 정관 변경 목적과 동일하다”며 “(영풍이)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날을 세웠다.

배당금 증액 요구한 영풍···지분 박빙
무제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반대’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정관을 변경한 것은 맞지만 당시 정관을 변경한 것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내용을 세분화하기 위해서였다”며 “문제가 되는 ‘신주발행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하는 정관’은 영풍 정관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1주당 5000원의 결산 배당을 주총 의안으로 상정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두 집안은 주총 안건서 배당안과 정관 변경안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주총에 주당 5000원을 결산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신주 발행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하는 현 정관을 삭제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다만, 액면 총액 400억원이라는 신주발행 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 이를 두고 영풍 측은 배당금이 너무 적다며 주당 1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주장한다.

앞서 지난해 8월 반기 배당금 1주당 1만원을 포함해도 현금 배당금은 1주당 1만5000원이다. 이는 전기(1주당 2만원) 대비 5000원 줄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이익잉여금 등 배당 여력이 충분한 만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배당이 이뤄지도록 결산 배당으로 1주당 1만원을 배당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배당 성향을 두고 “배당 성향이 높아진 것은 최근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아 수익성이 나빠진 데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배당 대상 주식 수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라며 “시가배당률은 감소세”라고 말했다.

배당 성향은 배당금을 해당 연도 당기순이익으로 나눠서 구하며, 시가배당률은 주당 배당금을 현 주가로 나눠 구한다. 영풍 측 설명처럼 실적 부진으로 당기순이익이 줄면 배당금이 그대로여도 배당 성향이 좋아진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 고려아연은 주주가치 제고를 꾸준히 추구해 왔으며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주주환원 정책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배당 두고
정면충돌

고려아연은 “시가배당률은 당일 주가 변동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는 자료로 특정 기업의 주주환원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다”라며 “고려아연은 현재 7조4000억원의 이익잉여금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배당 여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풍은 4조원 가까운 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2022년 연간 배당금은 170억원대, 배당 성향은 고작 5%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양가의 갈등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 주목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속한 영풍그룹은 공동창업주인 고 장병희·최기호 회장이 1949년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모태다. 2세대에서는 공동창업주 자녀인 장형진 영풍 고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을 주축으로 영풍·전자 계열은 장씨 집안, 고려아연은 최씨 집안이 각각 담당해 왔다.

크게 지분구조상 장씨 일가가 그룹을 소유하되 경영은 최씨 일가가 맡는 식이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모두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영풍빌딩을 본사로 쓴다. 


그러면서도 두 집안은 상호 지분을 가지며 견제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이자 영풍그룹 지주사인 영풍은 장씨 집안 지분율이 50%를 넘지만, 최씨 집안 지분도 13% 이상이다. 이런 이유로, 고려아연은 영풍의 관계회사로 분류된다.

통상 투자자가 유의미한 수준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을 온전히 행사하는 데 제약이 따를 경우, 이를 관계회사로 분류한다.

2022년 최창걸 명예회장의 아들 최윤범 회장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뒤 양가는 고려아연을 둘러싼 지분경쟁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고려아연 이사회가 ‘한화H2에너지 USA’를 대상으로 제3자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두 가문 간 갈등이 본격화됐고, 1년 넘는 공방전이 시작됐다.

당시 한화H2에너지 USA는 4717억여원을 투자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취득했다. 미국서 동문 수학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최 회장 간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 회장 일가는 한화에 이어 LG화학, 현대차그룹 등을 상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해 우군으로 확보했다.

한 지붕
두 가족

결국 최 회장이 2022년 한화로부터 투자받은 것을 시작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두고 양가의 신경전이 첨예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장 고문은 최 회장 주도로 새로운 주주(한화에너지)를 끌어들이는 걸 반대했다. 이사회 참석마저 거부함으로써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지분 확보 경쟁은 6%가 넘는 대규모 자사주를 최 회장이 의도한 대로 일시에 처분한 일이다. 고려아연은 이미 2차전지 소재사업 분야에 진출하면서 LG화학과 전구체 합작 사업을 진행해 왔고, 지분 맞교환 방식의 자사주 매각 또한 경영 전략상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장씨 일가 입장에서 보면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의결권이 없던 중립 지대의 대규모 자사주가 한순간에 최 회장에게 우호적인 여러 업체로 한꺼번에 넘겨진 셈이다.

최씨 가문의 고려아연 지분율이 순식간에 20%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장씨 가문도 이에 질세라 계열사를 동원해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최씨 가문도 지분경쟁에 밀리지 않았다. 영풍-고려아연 그룹 계열사 가운데 최씨 가문 측이 경영을 지배하고 있는 영풍정밀이 여유 자금을 동원해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매수했다. 

최씨 가문서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린 건 현대차 해외법인(HMG Global LLC)을 대상으로 또다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성공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고려아연의 소유권은 1974년 설립 이래 줄곧 장씨 가문에 속해 있다가 최씨 가문에 ‘소유와 경영’ 모두 장악당한 것이다.

현재 특수관계인·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 최 회장 일가와 장 고문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각각 33%, 32%다.

LG화학·현대차그룹 우군 확보
불안한 장씨가···지배구조 흔들

일각에선 장씨 가문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있다. 장씨 가문이 경영하는 영풍은 이미 고려아연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경영 성과가 좋지 않다. 동업자 관계이자 계열 자회사인 고려아연이 내실을 다지는 동안, 영풍은 ‘환경오염 문제’조차 대처하지 못해 환경 당국으로부터 조업 중단 제재를 받는 굴욕을 겪었다.

제련소 내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이 독성 물질 유출 등으로 인해 사망한 사고에 이어 석포제련소 냉각탑 청소에 투입된 하청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 피해 대책위원회 등에서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석포제련소 폐쇄 및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영풍 경영진의 인권 의식 부재가 낳은 결과”라며 “고려아연이 주주 권익을 훼손한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최근 14년 동안 양사의 영업실적만 비교해도 영풍은 고려아연과 경쟁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영업실적을 누적 기준으로 합산해서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누적 매출액 규모만 보면 고려아연이 영풍에 비해 2.2배 정도지만, 누적 영업이익 규모는 18.4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최씨 일가는 최근 2년 동안에 고려아연 지분율을 대폭 끌어올려 마침내 장씨 일가의 지분율을 넘어섰다.

영풍의 계열사가 고려아연이라는 틀이 무색할 만큼,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 지배주주’의 위치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초박빙 지분
주주 입장은?

한편, 올해 주총을 앞두고 장 고문 측은 정관 변경 안건과 기말 배당금 지급안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기 위해 분주했다. 주주 입장에선 양가 누구라도 경영 능력이 더 뛰어난 자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안정적으로 고려아연을 키워 주길 바랄 뿐이다. 오히려 지분율 차이가 초박빙인 상태서 서로를 갉아먹는 사태가 지속될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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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