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째…’ 공매도 금지 부작용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1.16 09:05:23
  • 호수 14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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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달라진 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공매도가 금지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이 기간에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잔고가 5조원 밑으로 내려갔지만, 상위 종목의 리스트는 큰 변동이 없다. 정부가 당초 목표했던 시장 안정화에는 접근하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빚투’로 주식 투자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전략이다. 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다. 즉, 향후 주가가 내려가면 해당 주식을 싼값에 사 결제일 안에 주식대여자(보유자)에게 돌려주는 방법으로 시세차익을 챙긴다. 

질서 교란
불공정 악용

공매도는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질서를 교란시키고 불공정 거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문제도 있다. 공매도 문제가 드러난 것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국내서 560억원 규모의 불법 공매도를 했던 것이 밝혀졌다.

이들 금융회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식을 미리 빌려놓지 않은 상태서 공매도 주문을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국내서 악의적 무차입 공매도로 적발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금융 당국은 국내 공매도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이런 내용의 불법 공매도 조사 결과를 지난해 10월15일에 발표했다. 금감원은 2022년 6월 공매도 조사 전담 조직을 설치한 뒤 집중 조사를 벌여왔다. 무차입 공매도는 결제 불이행 위험이 커져서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서 금지하고 있다.


이들 글로벌 투자은행은 미리 빌려둔 주식 수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에 있는 투자은행 A사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00억원어치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이렇게 거래한 종목은 모두 101개다. A사는 공매도를 위해 부서 간 주식을 빌려주는 체계였는데, 이런 대차 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해두지 않아 보유한 주식이 중복적으로 계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A사는 이를 알면서도 사후 차입으로 대응했다.

홍콩 투자은행 B사도 비슷한 경우였다. B사는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9개 종목을 상대로 16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차입 가능 수량을 확인한 뒤, 실제 차입은 최종적으로 체결된 공매도 수량만큼만 사후에 진행했다.

이들 금융회사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A사와 B사는 고객과 맺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당사자가 주식 등 기초자산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을 상호 교환하는 약정) 매도 계약의 위험을 분산하는 과정서 공매도를 했는데, 이때 주식을 미리 여유 있게 빌려놓지 않고 총수익스와프 계약이 체결된 수량만큼만 사후 차입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했다.

변치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
목표 ‘시장 안정화’ 접근 못해

다만 종목별 총거래량 중에서 무차입 공매도 수량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 시세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도 바로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6일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코스피·코스닥 등 한국 주식시장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는 개인투자자(개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이 중에서도 글로벌 투자은행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공매도 금지의 결정적 사유로 작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금융 당국은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투자자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5일 오후 임시 금융위원회를 개최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안을 의결했다.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은 한국 주식시장 역사에서 2008년 세계금융위기, 2011년 유럽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 이후 네 번째다.

지금까지는 코스피200,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동 브리핑서 공매도 거래 조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방안과 무차입 공매도 방지 방안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계기로 10여개 글로벌 투자은행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했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주가 하락 원인 중 하나인 외국인·기관의 공매도를 들어 금지를 요구해왔다.

5만여명 이상의 개인투자자들이 국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을 내기도 했다.

“심각한 병폐”
윤 대통령 인식

금융 당국 내에서는 윤석열정부 공약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해 공매도를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는 점, 공매도와 주식시장의 과열 현상을 진정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금지에 신중한 분위기가 강했지만, 내년 상반기 총선을 앞둔 상황임을 고려해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통령실은 “자산시장 내 불법 공매도와 공매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는 반드시 뿌리뽑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불법 공매도 관련)공약 이행에 있어 한 치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이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고,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 결정 역시 이런 인식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해 11월5일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주식시장 공매도 제한 여부 등을 논의했다.

이날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당은 정부에게 그간 공매도와 관련해 지적돼왔던 여러 제도적 문제점들을 개선해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며 “시중서 나오는 모든 문제를 가감 없이 전달했고 정부가 당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줄 것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앞서 여당 의원들은 공매도 한시 금지 필요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우리 투자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서 손실과 손해를 입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불법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Short(공매도)의 문제를 Long하게 끌어서는 안 된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11월5일…
현 상황은?

윤상현 의원은 SNS에 “한국 주식시장이 ‘글로벌 공매도 맛집’이라는 오명을 쓰도록 좌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공매도가 금지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현재 상황은 어떨까? 공매도 금지 두 달 만에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잔고가 5조원 밑으로 내려왔지만, 상위 종목의 리스트는 여전히 큰 변동이 없다. 1위 에코프로비엠의 공매도가 많이 늘어난 반면, 에코프로는 줄어드는 모습이다.

지난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스닥의 공매도 잔고는 4조9916억원으로, 5조원이 깨졌다. 코스닥 공매도 잔고가 5조원 밑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5월16일 이후 8개월여 만이다.

지난해 11월6일 시행된 전격적인 공매도 금지가 분기점이 됐다. 공매도 금지 직전 6조251억원이던 잔고는 시행 후 5조7827억원으로 내려오면서 6조원대가 깨졌고, 금지 39일 만에 4조원대로 후퇴했다. 지난해 11월2일과 비교하면 1조335억원이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공매도 상위 5개 종목인 ▲에코프로비엠 ▲에모프로 ▲엘앤에프 ▲HLB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금지 조치가 이뤄졌던 2개월 전과 변함이 없다. 다만, 최상위 에코프로비엠의 공매도 잔고는 시장 전체와 상반된 흐름이다.

공매도 금지 시행 직전인 지난해 11월3일 에코프로비엠의 공매도 잔고는 1조1611억원으로 코스닥 시장서 1위였다. 이후 공매도 금지 조치에도 이달 3일에는 1조3842억원으로 오히려 잔고가 늘었다. 시장조성자·유동성 공급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공매도가 잔고를 2200억원 넘게 늘렸다.

이마저도 지난해 12월 초 1조8051억원까지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줄어든 수준이다.

6조251억→4조원대 후퇴
상위 5개 종목은 그대로

이와 달리, 이코프로의 공매도는 같은 기간 2000억원 넘게 줄었다. 지난해 11월3일 1조1443억원이던 공매도 잔고가 이달 3일에는 9392억원으로 2051억원 축소됐다. 지난해 12월21일에는 1조원 아래로 내려온 뒤 감소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6%를 넘던 공매도 비중이 5%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이 밖에 929억원까지 올라갔던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공매도 잔고가 536억원으로 크게 꺾였고, 주성엔지니어링도 공매도 금지 전 681억원서 338억원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수치만 보면 공매도 전면 금지가 증시 상승에 유효했다고 불 수 있다. 다만 공매도 금지로 국내 증시 이탈이 우려됐던 외인과 기관은 이 기간 매수 우위였으며, 개인은 매도 우위였다. 지난 한 달 기준으로도 외인과 기관은 각각 2조원, 4조원이 넘는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개인은 7조원을 순매도했다.

공매도가 금지되면 99%의 공매도 비중을 차지하는 외인과 기관의 자본이 빠져나가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빚투(빚내서 투자)’도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지난해 9월 약 20조원까지 치솟았다가 감소세를 보이면서 11월 16조원대까지 떨어졌지만, 12월 들어 보름 만에 17조원을 넘었다. 금융 당국이 공매도를 금지한 배경 중 하나인 시장 안정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는 “공매도 금지로 증시가 상승했다”는 질문에 “아니요”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매도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개인투자자들과 시장 변동성 축소를 위해 공매도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금융 당국 등의 온도 차가 여전하다.

공매도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 당국이 공매도를 금지할 때 증권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유동성 공급자나 시장 조성자의 공매도는 허용했으며, 공매도 대차상환 기한과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대주담보비율(개인 120%, 외인·기관 105%)을 손보지 않은 점도 지적받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상환기간을 90일로 통일하는 등 개선방안을 내놨으나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6월까지만
한시적 금지

정의정 한국 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개인의 공매도 비중은 1% 내외에 불과하고 공매도 시장은 사실상 외인과 기관이 독점하는 체제인데 우대하고 혜택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금융 당국이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던 제도개선에 나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현실서 악용될 여지가 많아 한시적 금지 후 모든 측면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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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