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키워준’ 카카오의 배신 ①비굴한 창업주 구하기

정권에 무릎 꼬리 내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궁지에 몰린 쥐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고양이를 물거나 납작 엎드려 죽은 척을 하거나. 순응을 택한 쥐는 고양이의 눈을 피해 살길을 찾으려 든다. 깊게 몸을 수그리고 살살 눈치를 보면서 때를 기다린다. 고양이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앞발을 휘두른다. 쥐는 바닥에 늘어진다.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퇴로가 차단된 상태서 ‘가둬놓고 패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무너진 하늘 틈으로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은 상태다. 문재인정부와는 ‘밀월 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독했던 터라 윤석열정부의 태도에 더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꽃길 끝나고
가시밭길로

결국 카카오는 꼬리를 내리고 무릎을 꿇었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십분 활용해 정부의 방향에 발 맞추기로 한 것. 현재 최대 화두인 윤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에 카카오가 힘을 더하는 방식으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카카오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카카오가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이 뉴스 검색 결과서 뉴스 제휴 언론사 기사만 노출되도록 기본값을 변경했다. 다음은 지난달 22일 “지난 5월부터 전체 언론사와 뉴스 제휴 언론사를 구분해 검색 결과를 제공한 6개월 간의 실험을 바탕으로 검색 결과의 기본값을 전체 언론사에서 뉴스 제휴 언론사로 변경한다”고 공지했다. 

다음에 따르면 뉴스 제휴 언론사의 기사 소비량은 전체 언론사 대비 22%p 많았다. 뉴스 제휴 언론사의 기사가 전체 언론사보다 높은 검색 소비량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기본값 변경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설정 변경을 통해 전체 언론사 기사를 볼 수 있도록 기본값 조정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음의 발표 이후 뉴스 제휴를 하고 있지 않은 언론사를 비롯해 언론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다음과 뉴스 제휴를 맺고 있는 언론사는 대부분 대형·주류 언론으로 분류된다. 다음이 뉴스 제휴 언론사의 우선 검색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중소 언론사를 배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이하 인신협)는 지난달 24일 ‘국민의 다양한 뉴스선택권을 원천 봉쇄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악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놨다. 인신협은 “100개 남짓한 다음 CP(콘텐츠 제휴)사 가운데 제평위(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곳은 단 8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CP사들은 포털사이트가 자체 계약을 통해 입점한 매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P사라는 타이틀이 해당 언론사의 뉴스 품질을 담보하는 것도 결코 아니며 언론사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며 “올해 들어 포털은 기사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평위 활동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뉴스 품질 심사기구의 가동도 중단하면서 이제는 국민의 다양한 뉴스 선택권을 사실상 원천 봉쇄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뉴스 검색 시스템 바꿔
정부 언론 길들이기 발 맞춰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카카오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뉴스 검열 쿠데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카카오가 정권의 입맛에 맞춰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다음이 뉴스 검색 기본값을 전체 언론사에서 CP사로 변경한 것은 카카오 사주 구하기, 정권의 입맛 맞추기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유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인터넷신문 검열(심의) 주장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인 인터넷 언론 등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속내의 반영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판적 인터넷 언론의 언로를 차단, 통제하는 현 정권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검색 사이트 카카오의 이 같은 행태는 권력과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한국 검색서비스 사업자의 추악한 민낯의 단면”이라고 일갈했다.  


윤정부는 최근 언론에 대해 강경일변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민 KBS 사장 등이 계속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서 이 전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하자 이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KBS는 박 사장의 행보에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카카오가 뉴스 검색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CP사만
알 권리?

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의장을 들고 있다. 카카오에 대한 검찰의 전 방위적 수사에서 창업자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뉴스 검색 시스템 변화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이미 카카오는 강도 높은 검찰 수사로 누더기가 된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토스하고 검찰이 스파이크를 때리는 방식으로 두들겨 맞는 사이 핵심 관계자는 구속까지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달 13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배 대표는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 기업지배권 경쟁 과정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 고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정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이런 혐의로 배 대표와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강모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이모씨 등의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 가운데 배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배 대표 등의 법률대리인은 “합법적인 장내 주식 매수였고 시세조종을 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사업 강제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양벌 규정에 따라 배 대표와 함께 카카오 법인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만일 카카오 법인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은행 대주주 지위를 박탈당한다.

검찰 수사
막아보려?

카카오뱅크 지분 27.17% 중 10%만 남기고 모두 매각도 해야 한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의 핵심 계열사인 만큼 대주주 지위가 박탈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게다가 검찰의 칼끝이 정조준하고 있는 곳은 김 전 의장이다. 김 전 의장은 지난달 15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김 전 의장을 비롯해 홍은택 카카오 대표, 이진수·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등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다. 카카오그룹 핵심 경영진 대부분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셈이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그룹의 일부 사무실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에 김 전 의장의 자택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날 카카오는 다음의 뉴스 검색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가 몸을 바짝 낮춰 ‘항복’ 의사를 표했지만 검찰은 전선을 확대했다. 검찰은 당시 압수수색 과정서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바람픽쳐스를 200억원에 사들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인수 당시 바람픽쳐스가 3년간 매출을 내지 못한 자본잠식 상태 이른바 ‘깡통회사’였다는 점이다. 검찰은 바람픽쳐스 인수 과정서 불법 리베이트가 있었는지, 김 전 의장이 관여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플랫폼 관련 고발 건도 있다. 카카오가 2018년 구축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이 발행한 가상자산(암호화폐) ‘클레이’(KLAY)와 관련해 횡령·배임 혐의로 김 전 의장 등이 고발된 상태다. 아직 본격적인 수사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카카오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면 해당 고발 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범수 구속 가능성에 벌벌
경영쇄신 카드 좌초 가능성↑

일단 김 전 의장은 ‘경영쇄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카카오는 내부 경영쇄신위원회와 외부 독립조직으로 설립된 준법과신뢰위원회(준법신뢰위)를 구성하고 비상경영에 준하는 대수술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전 의장이 직접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았다. 

준법신뢰위는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최근 1기 위원 명단을 최종 확정했다. 연내 공식 출범한 뒤 ‘직접 제재 권한’ 등을 통해 카카오 관계사의 준법·윤리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전 의장의 구속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카카오에 대한 수사 전선을 넓히고 있는 상황서 김 전 의장이 법망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김 전 의장이 구속될 경우 경영쇄신은 좌초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 입장서 김 전 의장의 구속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경영쇄신이 ‘겉핥기’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카카오는 창립 이래 제대로 된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사방팔방서 가해지는 ‘사법 리스크’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카카오 내부는 처음 겪는 전방위적 압박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다. 바깥의 공격을 방어해야 할 내부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김정호 카카오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이 카카오 내부 상황에 대해 ‘작심발언’을 이어 가면서 파열음이 나오는 중이다. 김 총괄은 김 전 의장이 카카오 쇄신을 위해 지난 9월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인물이라 그 파장은 더 큰 상태다. 

내부 시끌
폭망 기류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등에 업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국민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메신저가 가져다준 전례 없는 메리트는 카카오의 사업 확장에 큰 발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국민 대신 정부를 택했다. 국민기업이 국민 밉상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