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갤러리 페이지룸8(에잇)서 문정·이승현·황예랑 작가의 3인전 ‘여기에만 있는’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지금의 시점을 뚫고 여기라는 시공간에 살고 있는 작가 개인이 나름의 방식대로 지정한 작업 프로토콜을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문정·이승현·황예랑 세 작가는 내면 환기를 위해 가지는 휴지기에 규정되지 않은 행위와 생각을 시각화해 나아갔다. 작업의 방향성에 관한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자칫 한 곳으로 치중될 수 있는 주의력을 의식적으로 분산시켜 작가 스스로 작업 과정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고 있다.
쉬어가는
문정은 ‘비가 온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업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보여줬다. 지난해 하반기에 완성한 첫 번째 연필 드로잉서 주로 선적인 요소를 추출해 드로잉과 콜라주 등으로 재조합을 했다. 같은 시리즈 안에서 작품의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섬세하게 형상을 만드는 등 작업의 수행적 면모가 강해졌다.
특히 ‘비가 온다 no.8’은 작가가 먹지를 종이에 대고 문지른 후 얇고 긴 선의 형태로 잘라 그 유닛으로 흰 선과 작은 점이 있어야 할 자리를 남겨두고 일일이 붙여 완성한 것이다. 13점의 ‘비가 온다’ 작품은 예고된 비가 다시 소강되는 현상을 절제된 형상과 명도를 달리해 추상적이고 직감적으로 표현했다.
이승현은 ‘본다’라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각의 생리적, 심리적 기작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최근 시리즈 ‘무명의 순간’은 시각이 현상적으로 발현되는 현실 세계와 인식에 다다르지 못한 차원이 다른 미지의 세계가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존재하는 작업이다.
한 눈에 형상을 인식하는 것을 어렵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비가 온다’ 시리즈
‘화면 조정’ 시리즈
반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화면 조정’ 시리즈는 1960~1990년대 방송국서 아날로그 TV 송출 시 사용했던 도형을 화면의 중심에 끌어온 작품이다. 국가별로 다양한 화면 조정 이미지는 화면의 왜곡을 보정하기 위해 특정한 패턴과 컬러로 구성된다.
이승현은 제한된 컬러칩 안에서 최상의 색을 취하고 매일 작가만의 드로잉을 채우는 과정을 거쳤다. 그동안 거시적인 관점이 역으로 전환되면서 작가 개인의 화풍과 색채가 칸마다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황예랑은 삶과 죽음이라는 넓으면서 얇은 시간의 부피와 경계 지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 황예랑의 작품에는 자연과 동물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가 포착한 장면서 인간과 많은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환경, 그 이면에 사라진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다.
황예랑은 손을 움직이는 스컬피 작업을 통해 생각의 잔해를 상쇄시킨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스컬피라는 재료로 구현해낼 수 있는 섬세한 질감과 그림 속 형상이 입체화되는 과정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동물이 초상의 주체가 되는 스컬피 작업 5점을 선보인다.
여기에 작가의 긴 시선이 느껴지는 꽃과 개미가 있는 풍경, 인간과 나비가 혼재된 모습의 신작을 선보인다.
페이지
박정원 페이지룸8 디렉터는 “이번 전시는 문정·이승현·황예랑 세 작가의 행보에 있어서 ‘쉬어가는 페이지’다. 기존에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시도와 작업환경, 관념에 대한 일종의 환기를 바라는 숨은 의도가 포함돼있다”며 “다만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작가의 시간이 작품으로 노출된다는 점이 작가의 온전한 흥미와 놓지 못한 부담이 되지 않았을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형상과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가 열리기까지 긴 시간 작업하는 동안 미래의 현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기분 좋은 몰입과 영감이 함께 했기를 바라본다”며 “‘여기에만 있는’ 전시는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13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문정은?]
▲학력
오를레앙 보자르 Ecole Superieure d'Art et de Design d'Orleans 졸업(2016)
▲개인전
‘고요한 눈동자’ 페이지룸8(2022)
[이승현은?]
▲학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과 졸업(2007)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졸업(2004)
▲개인전
‘무명의 순간_스르르’ 페이지룸8(2022)
‘Beyond’ 스페이스 소(2019)
‘반상변이’ 갤러리 조선(2014) 외 다수
[황예랑은?]
▲학력
세종대학교 회화과 한국화 전공 졸업(2016)
세종대학교 회화학과 한국화 대학원 수료(2018)
▲개인전
‘죽어서도 나는 새’ 탈영역 우정국(2018)
‘해바라기와 오줌통’ 스페이스 시옷(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