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와 문화 마케팅

“커피 아닌 문화를 판다”

‘빅테크 기업은 기술을 팔지만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다’는 이 슬로건은 미국 외식 문화를 대표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오늘날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서게 한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스타벅스는 이 같은 문화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인들이 스타벅스 매장서 큰 고민 없이 메뉴를 즐기는 모습은 한 번 인식된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크고 오래 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서 스타벅스의 문화 마케팅의 효과를 케이스 스터디하는 이유기도 하다.

문화 마케팅이 최근 국내 외식업계도 유행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광복 78주년을 맞아 지난달 15일부터 한국의 전통 요소를 디자인 소재로 활용한 광복절 MD를 선보였다. 

스타벅스는 광복절 의미를 되새기고 전통공예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자개공예 전문가와 손잡고 이번 상품을 기획했다. 해당 상품은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담아 자개를 활용한 디자인의 광복절 MD 2종(자개 코스터, 자개함)과 텀블러로 구성됐다. 광복절 기념 MD 상품 출시와 더불어 스타벅스는 올해도 우리나라 독립문화유산 보호 활동을 이어간다.

전통 요소

스타벅스는 지난 삼일절 백범 김구 선생이 친필로 적은 휘호 ‘유지필성’(有志必成,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한 데 이어, 이번 광복절에도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을 감동시킨다)을 기증했다.

이처럼 스타벅스는 2013년부터 10년 동안 광복절, 삼일절 MD 상품을 한정 판매하고 판매수익금 일부를 독립문화유산 보호 및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기금으로 후원하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앞으로도 스타벅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관심을 제고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문화 마케팅을 선도해온 브랜드는 BBQ 치킨이다. 윤홍근 제네시스 그룹 회장은 2006년 <BBQ 원칙의 승리>라는 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 책은 올리브유로 치킨 혁명을 이뤄낸 BBQ의 경영철학과 사업전략이 담겨있다. 

<BBQ 원칙의 승리>에는 올리브유로 치킨을 만들어 BBQ를 국내 최대·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성장시킨 윤 회장의 친환경·친인간적 경영철학과 사업전략이 담겨있다. 어렵게 지나온 청춘, 경영에 뜻을 두게 된 일화, 올리브 명품 치킨을 만들기 위한 노력, 제너시스의 탄생과 성장 과정 등 오늘날 BBQ가 있기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담겼다. 

이 책은 그 후 BBQ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미국 등 전 세계로 진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 애호가 마음 사로잡아
외식업계서 지자체로 확산 추세

BBQ는 지난달 17일 광복절을 맞아 ‘경성 피스톨’로 이름을 떨친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김상옥, 겨레를 깨우다’ 특별전시회를 후원하고 개최하기도 했다. 

외식문화기업을 표방하는 김병갑 훌랄라 그룹 회장은 최근 인생시집 <불꽃인생>을 출간하고, 지난 8일 서울 강남 교보문고 G문학파트서 북콘서트를 개최했다. 시집의 판매 수익금 전액을 월드비전에 기부하기로 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열린 북콘서트에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1000여명의 독자가 찾아와 시집을 구매했다. 그중 많은 독자가 김 회장에게 직접 사인을 받고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 사인을 받으려는 500여명이 긴 줄을 서자 북콘서트를 모르고 교보문고를 방문했던 사람들도 김 회장의 인생시집을 구매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김 회장의 <불꽃인생> 시집은 해당 부문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초판부터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경영인의 애환과 인생 역정이 담긴 시집이 독자들에게 심금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학 평론가들은 평가했다. 또, 100편의 시 곳곳에 19세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30편이 수록돼있어 짧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고흐의 강렬한 작품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김 회장은 “시집은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담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호응해주실 줄은 미처 몰랐다”며 “제 또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겪은 역경과 애환, 후회, 사랑과 미움이 고스란히 스며 있고, 현재와 미래의 희망을 담았다”고 시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읽는다면 이번 추석에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정을 나누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의 문화 마케팅은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지역 특산품 판매를 촉진하고 소상공인 경제를 활성화해 지역산업을 성장시키려는 목적이다. 특히 소상공인 축제로 유명한 대구치맥페스티벌이 최근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로 11회째인 ‘2023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일대와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등지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축제에는 ‘치맥의 성지 대구서, 다시 새롭게!’라는 슬로건 아래 교촌치킨, 치맥킹 등 80여개 치킨 업체가 참여했으며 오비맥주 카스와 한맥이 공식 맥주 파트너로 함께해 총 223개의 부스가 마련됐다. 

지역 축제

축제를 즐긴 한 시민은 “대구는 유독 치킨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기업이 많은 데다 대구 경북 지역은 양계농가와 육가공업체도 많아서 매년 열리는 축제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여름철 대표적인 국내 행사로 부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이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문화 마케팅은 향후 더욱 확산돼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고객들은 단순히 맛과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에서 벗어나 브랜드 이미지를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미국식 외식문화를 전 세계로 퍼뜨렸듯이 K-푸드, K-프랜차이즈 문화를 글로벌화하기 위한 전략이 되는 문화 마케팅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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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맞잡은 손은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뭔지 모를 것을 지키기 위해 둥글게 둘러선 채였다. 썩고 있는 고인 물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물 튀는 소리를 감추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수면이 잠잠해졌다. 물은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한국과 관계지역의 미술사 연구를 위해 1989년 9월1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1960년 8월15일 고미술품 애호가였던 전형필·최순우·진홍섭·황수영·김원룡 선생이 모여 만든 고고미술동인회가 전신이다. 2020년 60주년에 이어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창립 63년 미술사 연구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간 논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는 최근 표절 제보 건에 최종 심의 결과와 제재 조치를 내놨다. 제보자가 문제를 제기한 지 9개월 만이다. 이 과정서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모 교수는 2012년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서 ‘Sabangbul during the Chos˘on dynasty: regional development of Buddhist images and rituals 조선시대의 사방불: 불교 이미지와 의례의 지역적 발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박사학위 논문의 챕터 4~5장을 정리해 한국미술사학회에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발표 당시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경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중 같은 주제의 논문을 보게 됐다. 김 교수의 20년 지기인 재미교포 박모 박사가 <미술사학연구>에 발표한 ‘Picturing the Divine Agents of Food Bestowal: The Seven Buddhas in the Sweet-Dew Painting of the Chos˘on Period, 1392-1910’ 학술논문이다. <미술사학연구>는 한국미술사학회서 발행하는 학술지다. 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2020년 <미술사학연구> 307호에 실렸다. 박 박사는 학술논문에 관해 201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Shaping the Economy of Salvation: The Gamno Paintings of the Joseon Period(1392-1910)’의 챕터 4장을 일부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가 한국미술사학회에 투고한 학술논문은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논문상은 <미술사학연구>에 게재된 신진 학자의 직전 해 논문 중 선정된다. 심사위원 3명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쳐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고 이사회 논의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구조다. 김 교수는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중 4장(The Esoterization of Sabangbul: The Five Tathagatas and the Sisik Rite in Kamno-t’aeng, 사방불의 밀교화: 감로탱에서의 오여래와 시식의례)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주제와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학술논문뿐만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에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창립 이후 첫 표절 시비 휘말려 9개월 만에 결론 ‘경미한 정도’ 김 교수는 “제 논문과 같은 내용을 유사 단어로 대체하고 문장과 구조를 바꿔 문단 사이에 삽입하는 등 표절에 걸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와의 친분이 동료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만나고 같이 외국 여행을 가는 등 15년 이상 교류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특히 박 박사가 소아스 런던대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인 2016~2018년에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교류했다고 덧붙였다. 대화 내용은 감로탱, 밀교, 의례집 등 두 사람의 논문 주제였다. 하지만 2018년 6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심사를 통과한 이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겼다. 이후 박 박사는 김 교수의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당시에는 박 박사가 내 논문을 표절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년간 아낌없이 도움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이용한 뒤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상한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김 교수가 박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12일 한국미술사학회에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박 박사가 자신의 논문과 동일한 주제, 소재, 방법론을 따르면서 주석이나 참고문헌 등에 인용 표기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어 ▲핵심 단어를 유사 단어로 대체 ▲같은 내용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패러프레이징) ▲단락의 순서를 바꾸거나 중간에 다른 내용 끼워넣기 등의 방식으로 표절 검사를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의 표절 행태는 대학과 학계를 상대로 한 고의적이면서 전면적인 사기 행위로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연구윤리위원회를 꾸려 김 교수의 박사논문과 박 박사의 학술논문을 두고 심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표절 제보 건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에 의거 제5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사’항에 해당할 수 있으나 ‘경미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 제기 전 알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 제5조 사항은 ‘그밖에 각 학문분야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 등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제5조 다항에 명시하고 있는 ‘표절’ 대신 이른바 ‘기타’에 해당하는 조항을 적용한 셈이다. 제5조 다항은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 내용·결과, 분석된 데이터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정확한 출처 표시 없이 도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거나 이미 출판된 내용을 자신의 다른 논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두 논문의 소재 및 주제 간의 유관성은 존재함이 인정되나’ ‘기존 논문(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각주 및 인용의 미비는 확인됨’ ‘인용이 충분치 못했음이 인정됨’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제5조 다항서 정의하는 표절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일반적’ ‘보편적’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학계의 일반적 허용 범위를 벗어나거나 도용을 의심케 할 수위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음’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박 박사가 학술논문에 활용한 문헌이나 분석 방법 등이 미술사학계 연구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김 교수와 박 박사의 논문을 두고 비교한 외국의 한 교수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이정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서면 인터뷰서 “2020년 출간된 관련자(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표절 의혹 제기자(김 교수)의 논문 챕터 4와 그 주제, 소재, 결론이 아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표절 아닌 기타 적용 이어 “문제는 이 논고와 연관성 있는 제기자의 논문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인용 표기도 없고 참고문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학술논문서 가장 중요한 ‘독자적 연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박 박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라며 “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소재, 주제가 같고 전개 방식과 흐름이 같으며 결론도 같은데 어떠한 인용 표시도 없는 것이 한국학계에 통용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재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구윤리위원회는 김 교수의 요청을 기각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심의 결과가 나온 5월 이후 박 박사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일에야 연구윤리규정 제12조(판정 및 제제조치) 나항 3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본회 홈페이지와 학술지에 해당 사실과 조치를 게시’한다는 내용이다. 올해의 논문상에 대한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박사의 지도교수를 비롯해 동료평가를 진행한 심사위원, 전·현직 이사회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사학계 관계자는 “김 교수의 논문이 10년 전에 나왔고 지도교수나 심사위원, 이사회서 몰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학술논문이)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상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일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연구윤리위원회 구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중이다. 위원회 구성은 물론 위원장 호선에 이르기까지 ‘깜깜이’로 이뤄졌기 때문.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장모 교수는 물론 이사진은 연구윤리위원회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일반적으로 연구윤리규정에는 ‘기피·제척·회피’ 조항이 포함된다. 제보자나 피조사자가 연구윤리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기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혹은 피조사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도 심의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윤리위원장 “규정에 없어 공개 안 했다” 김 교수는 연구윤리위원을 알려 달라고 한국미술사학회에 요청했지만 “알아서 잘 구성했다”는 장 회장의 말만 들어야 했다.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학연, 지연 등을 전부 배제하고 위원을 선별했다”면서 “연구윤리규정에 연구윤리위원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없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윤리위원들은)연구윤리위원을 맡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 일부는 이른바 ‘보안각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연구윤리위원장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가 언급한 인사는 극구 “아니다“라면서 “학회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재청 유관단체서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해당 인사는 “오랫동안 학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박 박사를 알지 못하고 본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박 박사의 올해의 논문상 수상 경위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및 심의 결과가 나온 과정 등을 담은 <일요시사>의 서면 질의에 “학회도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규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고 답변을 전해왔다. 김 교수는 올해의 논문상 수상 취소,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에게 전달되는 소식지에 박 박사의 연구윤리 위반 내용 기재 등의 조치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솜방망이’ 조치를 취한 이상 서울대를 비롯해 외부 편집위원, 해외 미술학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는 이번 사건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의 지도교수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서울대 이모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침묵을 깨라”고 일갈했다. 또, 장 회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한국미술사학회 차원에서 공정한 결론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미술사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술사를 공부할 당시 해외 논문을 그대로 베낀 국내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내용을 공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외국은 난리 국내만 조용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두 차례 통화서 “다른 데(학회)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왜 우리 학회만 취재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게 기사 쓸 거리가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자신은 한국미술사학회와 어떤 고리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학회장이 찾아왔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표절은 있지만 표절 시비는 없었던”(미술사학계 관계자) 한국미술사학회는 이제야 연구윤리규정을 뒤적이면서 해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63년 만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