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 문건 위조’ 대통령실 거짓말 논란

눈치 보고 섣부른 판단 엎어진 외교 자업자득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통령실을 향한 비판이 거세다.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 수출 논란이 단초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뒤틀리면서 외교 갈등까지 자초했다. 최근 미국 정보당국이 작성한 도·감청 문건에 대해 ‘위조’라는 주장도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정작 당사자인 미국 정부가 문건이 진본이라고 시인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결단을 외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 가고 있으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평가다. 외교 문제에 자충수를 두고 정작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문건과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 수출 문제가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의 대처다. ‘노코멘트’라며 침묵만 지키고 있다.

조작됐다고?
문건은 진본

미 정보당국이 도·감청을 통해 작성한 문건 내용은 지난달 1일, 김성한 전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방식을 논의한 게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무기 제공을 압박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당시 김 전 실장은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탄약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폴란드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하자”고 이 전 비서관에게 말한 것으로 돼있다. 우크라이나에 155mm 포탄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폴란드로 수출해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대화가 있기 사흘 전인 2월27일 작성된 또 다른 미국 기밀 문건에는 한국산 155mm 포탄을 운송(delivery)하는 방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있다. 해당 문건의 제목은 ‘대한민국 155mm 포탄 33만발 운송 일정’으로 돼있다.


문서에는 시행명령(EXORD) 10일(D+10) 이후부터 45일(D+45)까지 매일 항공편으로 4700여발씩을 수송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항공편으로 포탄을 수송하려는 것은 김 전 실장의 대화록에 나온 것처럼 미국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밀문서에는 이스라엘에 보관 중인 미군 전시비축 포탄 8만8000발을 더해 시행명령 1개월 내에 18만3000발을 목적지에 전달한다는 계획도 포함돼있다. 시행명령 후 27일 이후, 37일 이후에는 경남 진해항에서 수송선 한 척씩을 출항시켜 시행명령 72일 이후까지 모든 포탄 운송을 끝낸다는 일정도 언급됐다.

해당 문건에는 한국 포탄의 운송 목적지는 독일 노르덴함항으로 표시돼있다. 노르덴함항은 독일 브레멘 북부의 항구로 베스터강 하구에 조성된 군사 병참항구다.

미 육군에 따르면 노르덴함항은 2차 대전 때부터 유럽 주둔 미 육군이 사용해온 사설 항구로 설명돼있다. 21전구지원사령부 산하 16여단의 지휘를 받는 곳으로, 강 건너편 브레멘하벤항과 함께 미군의 무기를 유럽으로 반입 또는 반출하는 전략항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보당국 ‘우크라 우회 지원’ 내용 파악
잡힌 문건 유출 당사자 “모두 위조·조작”

독일에 위치한 항구지만 미군이 실질적으로 점유 중인 군사항인 셈이다. 두 문건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한국산 155mm 포탄의 구체적인 물량을 할당해 한국에 지원 요청을 했고, 한국은 이를 거절하기 어려워 폴란드로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국가안보실 등 도감청 의혹 정황에 대해 ‘위조된 정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지만 도감청으로 드러난 정보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BS는 지난 9일, 국가안보실이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걸 고심했다는 내용의 기밀문건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문건에는 기밀 표시와 함께 자세한 수송 계획이 표로 작성돼있다.

한국서 생산한 155mm 포탄 33만발을 수송하는 계획을 명시한 문건으로 추정된다. 전체 기한은 72일, 항공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열흘째에 4700여발, 41일째에는 15만3000발을 전달한다고 적혀 있다. 중간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보관하고 있는 전쟁물자를 뜻하는 WRSA-I라는 약어와 함께 추가되는 물량도 표시돼있다.

최고 기밀 문건으로 분류된 다른 문건에는 김성한 전 실장이 155mm 포탄 33만발을 폴란드에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내용이 언급된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방침과 대조적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미국 출장에 나서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났을 당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평가에 한미 양국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포탄 33만발
수송 계획

김 차장은 이날 오전 한미 국방장관이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양국이 정보 동맹이니까 정보 영역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긴밀하게 함께 정보 활동을 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신뢰를 굳건히 하고 양국이 함께 협력하는 시스템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대변인실 명의의 언론 공지에서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앞서 도감청 의혹 외신 보도서 함께 언급된 프랑스와 이스라엘 등이 ‘허위 정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공지에서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 운용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용산 이전’으로 인한 보안 문제를 지적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대해선 “허위 네거티브 의혹으로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며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 침해 행위’”라고 성토했다.

대통령실은 최근까지도 연일 유출된 문건이 조작됐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1600억원이 넘는 포탄 수십만발이 실제 폴란드에 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국내 최대 포탄 제조업체 풍산은 앞으로 2년간 1647억원 상당의 대구경 탄약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공급한다고 공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폴란드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한 업체다. K9 자주포는 지금까지 10개 나라에 수출됐지만, 포탄을 같이 보내는 건 폴란드가 처음이다.

원칙·방침
또 뒤집기

155mm 포탄은 포신 직경만 같으면 자주포뿐만 아니라 견인포에도 사용할 수 있다. 155mm 포탄은 탄두와 신관, 장약 등이 한 세트인데, 풍산은 고폭탄 탄두만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55mm 고폭탄 탄두는 1발에 40만원 정도다. 계약금액이 약 1600억원인 걸 감안하면 40만발 이상을 폴란드로 보내는 것으로 문건에 적힌 33만발보다 많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에 K9과 함께 패키지로 수출하기로 한 포탄이 5~10만발이다. 포탄 최종 사용자는 폴란드로 특정됐다. 다만 폴란드가 해당 포탄을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제3국으로 재수출하려면 우리 정부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더 있다.

미국 주방위군 소속 현역군인이 해당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 유출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된 것이다. 한국의 김성한 전 실장 등 외교안보 부문 고위공직자들의 대화 내용을 미국이 신호정보(시긴트)로 파악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미 현역군인이 유출한 ‘진본’이라는 방증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중진 윤상현 의원은 지난 14일 SNS에 쓴 글에서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 국방부 기밀문건의 유출 용의자가 체포되며 수사가 본격화됐다. 21세의 미국 현역군인”이라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이 미 국방부 보고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고,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유감을 표명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미국 정부와 언론이 문건 유출을 사실이라고 결론짓고 유출 경위를 밝히고 있는데도, 국가안보실 1차장은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는 발언으로 조기 진화에 나섰다”고 김태효 1차장과 대통령실의 대응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문건의 위조 여부’가 아닌 ‘동맹에 대한 불법감청 여부’”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건 진위 여부’로 본말이 전도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폴란드 포탄 수출 일정 드러나
‘한술 더 떠’ 무기 지원 가능성 시사

윤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켜 주고 원상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며 “전쟁 당사국과 우리나라와의 다양한 관계, 전황 등을 고려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6·25전쟁 때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던 점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방위와 재건을 도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실도 당시 “(민간인 학살 등)전제가 있는 답변”이라며 “(무기 지원 불가라는)정부 입장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러 조건이 붙어 있어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현재로서는 입장 변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기에는 충분하다. 전문가 대부분도 조건부라도 무기 지원 여지를 남긴 것이 입장에 변화를 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개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기자들과 전화 회의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질문에 “물론 무기 공급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상당히 비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이것(무기 지원 시사)은 이 일환”이라고 반발했다.

러시아를
어찌할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 역시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의 적을 열렬히 도와주겠다는 새로운 자들이 나타났다”며 “한국 국민들이 북한의 러시아 최신 무기를 보면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quid pro quo)”며 보복을 경고했다. 러시아의 반응이 나온 직후 대통령실은 “러시아 반응은 가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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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