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막가는’ 이사님 실체

개, 사람, 단체…거슬리면 손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상해로 실형 선고, 타 동물권 단체를 네 차례 고소했지만 모두 무혐의, CCTV 속 개 폭행 의혹까지. 동물권 단체 ‘케어’ 이사 A씨의 민낯이다. 그는 지난달 법정 구속되기 전까지 케어 내부의 각종 ‘중책’을 도맡았다. 개 농장 철폐 조직 ‘와치독’을 기획해 활동을 주도했고, 기부금 모집 자격을 박탈당한 케어의 후원금 ‘꼼수 수령’을 도왔다. 이 때문에 케어는 그의 흠결을 알고도 감추기 바빴다.

“개 농장주, 전기톱 들고 나와 목 조르는 폭력까지. 꽉 졸린 목에는 상처가 선명합니다. 살인미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케어는 지난해 5월의 어느 날을 이같이 기록했다. 현장서 케어 소속 활동가인 A 이사가 위협·폭행당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칠순 노인을…

지난달 13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형사1단독 재판부는 A 이사에게 징역 8월을, 개 농장주 B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초, 충북 음성군 소재의 B씨 소유 개 농장 인근서 쌍방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사건 발생 직후 케어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와치독(케어 산하 개농장 철폐 조직) 후원 독려문에서 A 이사를 일방적인 피해자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A 이사가 전치 1주, B씨가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더군다나 아직 중년인 A씨와 달리 B씨는 칠순을 앞둔 노인이다.

<일요시사>는 해당 사건에 관한 사정기관 수사기록 일부와 1심 판결문을 입수했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B씨는 인근 야산서 벌목 작업을 마치고 농장에 돌아오던 길에 A 이사 일행을 발견했다. 당시 이들은 농장 주변을 배회하며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다.


앞서 와치독이 지자체에 B씨 농장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개 농장이 사라지지 않자, 재차 방문한 것이다. A 이사 일행은 “사진을 지우라”는 B씨 요구를 무시한 채 자리를 뜨려 했다. B씨가 A 이사를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시작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 이사는 쓰러진 B씨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B씨는 현장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이 확보한 진단서에 따르면 B씨는 갈비뼈와 척추 골절, 고막 파열 등의 부상을 입었다. 심지어 고막 영구 손상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건 직후 A 이사는 목과 허리, 골반 등의 통증을 호소했다. 양측은 서로를 고소했고, 1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합의하지 않았다.

“살인미수 당했다” 주장했는데…
법원은 A 이사에 1심 실형 선고

A 이사는 수사 초반 폭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B씨를 진찰한 의사들은 경찰에 “상해가 단순한 신체 제한·압박보단 폭행에 의한 것일 개연성이 크다”는 소견을 전했다. 결국 A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고, 1심 첫 공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 이사에 관해 “피해자 상해 정도가 중하다.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으며,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범정(범죄가 이뤄진 정황)도 불량하므로 실형에 처한다”고 밝혔다.

B씨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 가한 상해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워 벌금형에 처한다”면서도 “범행의 발단을 제공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적었다. 케어가 언급했던 ‘전기톱 위협’은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A 이사는 항소했다. B씨 측은 항소 대신 A 이사에 대한 민사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는 지난 5월부터 해당 사건에 관한 케어 측 입장을 수차례 문의해왔다. 하지만 케어는 지난해 5월 첫 통화에서 “농장주 상태는 모르겠고 우리 활동가가 다쳤다” “이런 게 기삿거리나 되나. 수많은 동물이 잔인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데 그런 건 왜 기사화하지 않나” 등의 답변을 낸 이후로 줄곧 추가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케어 측은 1심 선고 이후에도 과거 올린 게시물의 사실관계를 정정하지 않았다. 글과 함께 올렸던 영상은 비공개 처리됐지만, 글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신 케어는 지난달 25일 올린 게시물에서 A 이사 사건을 언급했다. 게시물이 올라온 건 이미 A 이사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후의 시점이다.

하지만 케어는 “(A 이사가)개 농장주와의 실랑이로 재판을 받게 됐다”고만 적었다. A 이사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계속 감추는 모양새다.

케어 내부 사정에 밝은 동물권 활동가들은 “케어는 A 이사를 ‘손절’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A 이사는 케어의 ‘돈줄’에 엮인 핵심 인사”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A 이사는 와치독 활동 전반에 등장한다. 조직 내 4명뿐인 ‘기획자’이자, 구속 직전까지 전반적인 단원 교육과 현장 활동 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와치독은 강경한 활동 방침(1413호 <단독>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보호소 비참한 현실)을 내세워 상당한 후원금을 모았다. 2019년 ‘무분별 안락사 폭로’ 뒤 후원금 모집에 고전하던 케어는 2021년 와치독 활동을 개시하면서 반등했다. 당해 하반기에 결성된 와치독은 불과 반년 만에 케어의 총수입 20%(전년 대비) 상승을 견인했다.

핵심 돈줄 관리한 핵심 인물 
줄고소 등 그동안 행적 입길

아울러 A 이사는 케어의 ‘꼼수 모금’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해 2월 서울시는 케어의 기부금품법 위반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서울시는 케어에 기부금품 모집등록 말소 처분 사전 통지를 내렸다. 

케어는 즉각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당분간 후원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당시 케어는 A 이사가 따로 운영하는 동물 보호소의 후원계좌를 공개하고 후원자들에게 ‘우회 후원’을 요구했다. 케어의 홈페이지와 SNS에는 ‘케어가 구조하고 ○○○(해당 보호소명)이 보호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일종의 꼼수를 통해 지자체 행정처분을 무력화한 셈이다. 서울시는 우회 모금 행위의 위법성을 따져보고, 그 결과에 따라 케어에 추가 처분을 내릴지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일요시사>는 케어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던 도중 A 이사의 부적절한 과거 행적 두 가지를 접했다. 제보에 따르면 A이사는 과거에 개를 폭행한 전력이 있고, 다른 동물권 단체를 마치 개 농장처럼 ‘줄고소’하려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일요시사>는 A 이사가 개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입수했다. CCTV 화면에 기록된 사건 시점은 2020년 5월23일이다.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은 애견카페로 추정되는 장소를 담고 있다. 

A 이사는 영상 초반 방 한가운데 서 있다가 개들이 서로 뒤엉키자 그쪽으로 향한다. A 이사가 CCTV 사각지대에 걸쳐 급격히 하반신을 움직이자, A 이사 앞에 있던 대형견이 방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불과 10초 뒤, A 이사는 해당 대형견의 목과 가슴 사이를 발로 가격한다.

또 A 이사는 지난해 1월 타 동물권 단체 한 곳을 ▲절도 ▲주거침입 ▲명예훼손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해당 단체활동가들이 자신의 보호소를 드나들며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모두 무혐의 종결 처리했다.

또 다른 의혹

고소당한 단체는 A 이사가 앙심을 품고 무고를 남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해당 단체는 2021년까지 A 이사의 보호소에 위탁업무를 맡겼다가, 자체 보호소가 건립되면서 거래를 끊었다. A 이사의 줄고소는 거래관계가 끊긴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뤄졌다.

<일요시사>는 현재 구속 중인 A 이사를 대신해 그의 법률대리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별다른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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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