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막가는 동물보호단체 ‘케어’ 활동가 두 얼굴

무단침입에 주먹질 대책 없는 ‘완장질’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동물권 보호단체 ‘케어’ 소속의 한 활동가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개 농장 인근에서 농장주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는다. 일흔을 앞둔 노인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파열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활동가의 불법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나 알고 있다. 개 농장 철폐 활동 현장에서 충돌과 갈등은 흔한 일이다. 생존과 생계, 합법과 불법이 뒤엉킨 ‘투쟁’이 반복된다. 동물권 보호 활동가는 자진해 투쟁의 최일선으로 향한다. 개 농장의 비도덕·불법성을 고발하겠다는 목표다. 

때린 적 
없다더니…

다만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 불법을 동원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동물권보호단체 ‘케어’에는 이 사실을 경시한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지난 5월, 충청북도 음성군의 한 개 농장에 경찰이 출동했다. 당시 현장에는 한 노인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농장주였다. 결국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갈비뼈 네 대 골절과 고막 파열을 진단받았다. 특히 고막은 영구 손상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요시사>는 수소문 끝에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개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노인은 지인들과 산에서 나무를 하던 중, 농장 주변을 배회하는 활동가 일행을 발견했다. 그는 얼마 전 누군가의 신고로 지자체 행정 지도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들’이 다시 온 것을 직감한 노인은 급히 산 아래로 향했다.


한참 실랑이가 벌어졌다. 노인은 찍은 사진을 모두 지우라고 요구했고, 활동가는 이를 거부했다. 노인은 그냥 현장을 떠나려는 활동가 A씨를 붙잡고 늘어졌다. 결국 실랑이가 몸싸움으로 번졌다.

일흔을 앞둔 노인은 키가 16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왜소했다. 반면 중년에 불과한 A씨는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노인은 넘어졌고, A씨는 그 위에 올라타 그를 짓눌렀다. 마을 주민이 이들을 말리러 왔을 때, 노인은 A씨 아래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주민이 A씨를 제지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그는 주민에게 “노인을 제압하지 않으면 나를 폭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동은 경찰이 오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병원으로 이송된 노인은 꼬박 한 달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반면 A씨는 목 뒤쪽의 찰과상 이외에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이윽고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처음에는 “노인을 때린 적 없다. 몸을 눌러 제압하기만 했다”더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주먹으로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A씨는 ‘폭행 과정에서 발까지 사용했다’는 노인 측 주장을 끝까지 부인했다.

현장 나가 개 농장주 때려 중상해 
다른 지역서도 사정당국 조사 대상

경찰은 두 달간의 조사 끝에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그런데 A씨뿐만 아니라 농장주도 ‘상해 혐의 기소 의견’으로 함께 검찰에 송치됐다. 양쪽 모두 경찰에 상해진단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갈비뼈 골절과 고막 파열 소견이 담긴 ‘전치 4주’ 진단서를, A씨는 찰과상이 적힌 ‘전치 2주’짜리 진단서를 냈다.

노인 측은 A씨와 같은 상해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눈치다. 노인 측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경찰 측 판단이 아쉽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대한민국 법에서는 사람 몸에 손만 대도 ‘폭행’이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제지하는 과정이 폭행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상해 혐의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검찰이 상해(죄)로 기소하지 않도록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노인이 속한 대한육견협회 관계자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협회 관계자는 “체격이나 나이를 보면 쌍방이라 보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사실상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차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폭행당하고 있었다. 몸이 깔려 숨도 잘 못 쉬고 있었다”며 “이때 노인이 매달리면서 A씨에게 상처를 입힌 거라면, 그건 정당방위 등으로 참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다만 두 사람의 혐의는 같아도, 처벌 수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전치 2주 정도면 경우에 따라 선고 유예도 가능해보인다”며 “처벌 수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A씨에 대해서는 “전치 4주는 중상해로 볼 수도 있다. 합의가 없다면 제법 크게 처벌받을 수 있다”며 “기존에 폭력 전과가 있었다면 집행유예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치 2주
전치 4주

사건 발생 후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와 관련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 측은 민사소송도 예고했다. 협회 관계자는 “(노인이) 퇴원 후에도 회복이 더뎌 한동안 일을 못했다”며 “수백만원에 달하는 병원비, 그리고 대신 일한 인부 고용비 등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A씨는 자신을 ‘와치독’의 기획자로 소개한다. 와치독은 케어 산하 개 농장 철폐조직으로, 지난해 조직됐다. 2019년 불법 안락사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박소연 케어 전 대표도 이 곳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개 농장 수를 개 농장 금지법 제정의 걸림돌로 지목한다. 개 농장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이들에 대한 보상안 마련이 어려워 관련법 제정이 지지부진하다는 논리다. 이에 이들은 개 구출·구조보다도 개 농장 철폐에 활동 초점을 맞춘다.

A씨는 SNS 게시글에 “내 이름 석 자가 있는 명함을 주면 저항하지 말고(농장을) 자진 철거하라”고 적었다. 해당 게시글은 후원 독려용이었다. 그는 케어 외부에서 별도로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케어가 구조하고, ○○(보호소 명)이 보호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동물보호단체는 일반적으로 불법 개 농장 적발 및 철폐를 목표로 활동한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개 농장은 불법 운영 시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농장이 음성군청으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 사육에 관한 제재는 아니었다.

위법 사항은 콘크리트 매설, 컨테이너 사용 등 농장 시설물에 한정됐다. 더군다나 A씨가 다시 농장을 찾은 지난 5월에는 그마저도 시정된 상황이었다.


당시 농장에서 불법 도살 등 ‘긴급 상황’은 없었던 셈이다. 이를 고려하면 A씨의 과격한 행동은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구조자가
사람 잡네

또 A씨는 이곳 이외에서도 여러 불법행위를 자행하다 고발당한 상태다. 제보에 따르면 A씨는 강원도 강릉·양구 등지에서 공동 건조물 무단침입·수색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양구 사건은 조만간 검찰 처분이 결정될 예정이고, 강릉 사건도 경찰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관계자는 “(와치독은)개 농장을 발견하면 온갖 사유를 들어 국민신문고로 신고한다. 그러면 이를 접한 지자체는 각종 부서를 동원해 ‘이 잡듯이’ 뒤질 수밖에 없다”며 “‘어쨌든 하나라도 걸려보라’는 식이다. 명확한 불법 사항을 발견하지 못해도, 일단 신고부터 한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사건에 대한 케어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케어 관계자와의 첫 통화는 지난 5월이었다. 사실관계 상호 확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케어 측은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케어 관계자는 당시 통화에서 “농장주 상태는 모르겠고 우리 활동가가 다쳤다. 직접 보진 못하고 사진만 받아봤는데 목에 상처가 있더라”며 “(우리 활동가가)그쪽을 폭행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런 게 기삿거리나 되냐. 그쪽에서 맞았든, 우리 활동가가 다쳤든 수많은 동물이 잔인한 고통에서 죽어나가는데 그런 건 왜 기사화하지 않느냐”며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다. 이런 게 이슈 되는 것 자체를 못 견디겠다”고 날을 세웠다.

‘추가 입장이 있다면 연락 달라’고 요청했지만, 케어 측은 석 달 동안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이달 초, 케어 측에 재차 연락을 취했다. 관계자는 “당사자(A씨)한테 직접 확인해보라”며 “취재에 응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불법 엄단한다던 본인이 사고?
노인 갈비뼈 부러지고 고막 파열

이에 <일요시사>는 관계자를 통해 A씨에게 연락처와 간단한 질의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후로 어떠한 연락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케어의 ‘과격 활동’이 되레 개 농장 철폐에 방해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 식용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괜시리 개 식용 업계를 자극해 ‘협상’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합의안 마련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이 같은 케어의 행보는 협상 명분을 떨어트릴 우려가 크다.

합의에 나선 단체 모두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동물보호단체와 개 식용 업계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모았다. 일명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조직한 것이다. 개 식용 폐지 여부를 논의하고, 폐지 시한·농장주 지원 방안 등에 관한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다. 

담당 정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참여 단체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참여 단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동물보호단체의 대표 격인 몇몇 단체가 논의에 참여 중이었다. 하지만 케어는 논의기구에 속해 있지 않았다.

‘개 농장 즉각 폐지’가 목표인 케어의 활동 기조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조직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모양새다.

과격 활동
또다른 논란

퇴원 후에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던 노인은 이달에 들어서야 겨우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노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한 업계 관계자는 “어르신이 치매 있는 부인을 데리고 운영하는 농장”이라며 “가방끈도 짧고, 나이도 많으신데 이제 와 다른 일을 배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분들 농장은 국가적으로 자연 소멸을 기다리거나, 명확한 대안을 마련해주고 건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 식용 논란 언제 결판날까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초 올해 상반기 합의안 도출 예정이었던 기구의 협상 상황이 공전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본 기구는 지난 6월 활동 종료 시한을 앞두고 ‘활동 무기한 연장’을 발표했다.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한 달 반이 지났지만, 기구 내외에서는 ‘오히려 합의가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 식용 업계 측 집행부 교체가 변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교체된 집행부는 기존 집행부가 합의했던 사안에도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이달 회의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전면 재논의가 불가피해졌다.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논의 종료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논의가 또 해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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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