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이 사망’ 1년의 기록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06 11:49:17
  • 호수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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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말리는 증거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30일. 정확하게 10개월하고도 24일이 지났다. 유림이가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심장이 멈춘 뒤 흐른 시간이다. 유림이의 부모인 강승철, 윤선영씨의 시간도 그때 멈췄다. 유림이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혀진 피고인의 재판이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부는 제주도에서 평범하게 살았다. 엄마 윤선영씨는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육아휴직을 했다. 아빠 강승철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윗집에 작은 고모와 사촌이 살았고도보 5분 거리에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외삼촌이 있었던 점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 고모네 가족이 모여서 살았다. 

일란성 쌍둥이
첫째로 태어나

모든 가족의 평범한 삶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3월12일 제주대학교병원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13개월 영아 유림이의 가족이다. 강씨는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윤씨는 유림이가 떠난 이후 수년간 다녀왔던 회사를 그만뒀다.

부부는 유림이가 있는 천왕사 납골당에 찾아가 생전 유림이가 좋아했던 인형을 끌어안거나, 밤늦게까지 생전 유림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유림이는 2021년 2월17일 일란성쌍둥이 중 첫째로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일란성 쌍둥이지만 몸무게는 3㎏으로 건강했다. 당시 주위에서 ‘안전하다’고 추천한 병원이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였다. 그리고 13개월 뒤 같은 장소서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해 3월11일 유림이는 코로나19에 걸려 음압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1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라 면역력이 약했다. 

집과 가까웠던 제주한라병원에는 음압병동이 없었다. 유림이는 곧바로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됐다. 

유림이는 ‘42병동(코로나 병동)’에 입원했다. 유림이 담당 의사는 유림이가 받아야 할 치료는 끝났고 입원해서 상태를 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적이었던 의사의 말과는 달랐다. 유림이는 오후 6시경 호흡 곤란을 일으켰고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약물 오남용 의혹…13개월 영아 사망
재판 핵심은 ‘과연 살 수 있었겠느냐’

강씨는 “의사가 아이는 코로나에 걸려도 회복 속도가 빨라서 중환자실로 가도 잘 회복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제주도에서는 제주대학교병원 의료진이 최고다. 믿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 밤새 기도하며 지새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이 강씨에게 유림이를 보러 중환자실로 급하게 오라고 한 것은 다음 날 오후 5시50분쯤이다. 부부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은 유림이를 둘러싸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부부는 CCTV로 유림이를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림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부가 유림이를 다시 안았을 때, 유림이의 몸은 차가웠다. 부부는 아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었지만, 마음은 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처음부터 유림이가 의료사고를 겪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의료진이 유림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CCTV를 통해 봤으니까. 그런데 유림이를 화장했던 지난해 3월13일 유림이 엄마가 42병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유림이가 42병동에 입원한 뒤, 간호사가 유림이를 보살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선 유림이는 코로나 증상으로 발열이 나는 상태였는데도 42병동은 더웠다. 유림이 발열이 잡히지 않아도 의사는 괜찮다고 했고, 유림이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가 없었다. 

호흡 곤란이 온 유림이를 치료하는 과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이고 응급 상황이었다. 빠른 처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유림이 콧구멍에 산소줄을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처치하는 중간에 산소 주입기 병은 터져서 물이 새어 나왔다.

호흡 곤란이 온 상황에, 유림이가 기도 삽관을 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30분을 넘어섰다. 기도 삽관의 소요시간은 정확하지 않지만 보통 10초에서 10분이다. 1시간30분은 너무 긴 시간이다.

기도 삽관
1시간30분

부부는 먼저 유림이의 의무기록지와 42병동 병상의 CCTV를 확인했다. 둘째가 깨어있을 때는 둘째에게 집중했다. 둘째가 잠든 시간에는 유림이의 부모로 움직였다.

지난해 3월17일에는 병원에 방문했다. 유림이가 입원했을 당시 근무 중이었던 간호사가 동행했다. 간호사는 유림이 병상이 어디였는지 알려줬지만, 부부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42병동서 만난 다른 간호사에게 유림이에 대해 물어도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의무기록지에도 문제가 되는 내용은 없었다. 

다음 날 제주대학병원 측에서 전화가 왔다. “사실대로 모든 내용을 알려주겠으니 방문해달라. 먼저 투약의 오류가 있었으나 사망과 인과관계는 없다”는 내용의 통화였다. 유림이 사망에 관해 사과하진 않았다. 

면담은 지난해 4월1일에 진행됐다. 병원 관계자 8명이 모인 면담이었고, 이들 중 진료 처장, 사무국장, 간호 부장, 간호 과장, 담당 교수는 도의적 사과를 했다. 이 밖에 ▲네블라이저용 에피네프린 5㎎이 정맥주사로 잘못 투약됨 ▲투약이 잘못된 것을 간호사가 알고 있었지만, 의사는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 관계자는 “오늘 병원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추가적인 보고가 있으면 필요 시 그에 따른 자료나 설명을 드리겠다. 혹시 또 오늘과 같은 자리가 필요하면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병원 면담에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 너무 부실해서 사고 경위서, 보고서, 투약 기록지를 포함한 일부 의무기록 사본을 요청하고 끝났다. 이후 먼저 연락이 없어 두 번이나 먼저 연락했고. 그때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4월24일에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병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족에게 너무 큰 상처와 심려를 끼쳐드린 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이후 11월부터는 병원이 3차례 연락해 ‘직접 찾아뵙고 진정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시간을 내주길 바란다’ ‘신임 병원장 취임 전이라 위치, 규모 등은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림이를 추모하기 위한 식수 진행 여부에 의견을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기준치
50배 약물

이 같은 병원 입장에 대해 유가족은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법무법인 다산은 “기소된 간호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터뷰 이후 어떠한 질의응답 요청마저 지난 9개월 동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런 와중에 병원은 지난해 10월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의료기록을 삭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으며 ‘추모 식수’를 진행하자는 구실로 화해하려는 병원의 태도가 몹시 불쾌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5월2일에는 병원 소속 임직원에게 ‘사망 원인에 대한 다툼의 여지는 극히 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과 함께 제주대학교병원의 운영에 있어 ▲42병동의 열악한 현실 ▲간호사들의 업무과중 ▲영유아 확진자 폭증에도 성인 환자 경험만 있는 간호사 투입 ▲피해자가 소아병동이나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현재까지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향후에도 귀원의 공식적인 사과 표명 및 피해자 측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의 의사가 전제되지 않은 무의미한 연락은 더 이상 삼가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4월14일 병원 측 관계자는 “민사든 형사든 진행하는 것은 모두 다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고 이에 부부는 민·형사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유림이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기치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제주대학교병원 간호사 3명이 전원 구속됐다. 제주지방법원 영장전담 재판부는 지난해 10월25일 열린 영장심사서 도주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며 간호사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부모 “입원했던 병동부터 문제 있어”
병원 “사망 인과관계는 재판서 결정”

이들은 지난해 3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유림이에게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투여했고, 이를 병원에 알리지 않은 채 의무기록을 삭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은 간호사 3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에 더해 유기치사 혐의까지 적용했다. 

간호사들이 과다 투여 사실을 즉시 보고하지 않아 유림이가 치료를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고 본 것이다.

강귀봉 제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은 “의료인으로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가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했다고 판단했다.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해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재판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민사소송 첫 기일은 다음 달 15일에 잡혀있으나, 형사소송의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할 수 있다. 구속된 3명의 형사소송 절차가 끝나는 시점에서 원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부부는 탄원서 제출과 탄원서 연명부 작성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에피네프린 과다투약 후 생존한 사례 등 유림이의 소생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찾는 것이다. 유림이는 코로나 감염 후 사망했기 때문에 코로나 장례절차에 따라 중환자실 입관 뒤 바로 다음 날 화장됐다.

결국 부검조차 이뤄지지 못했고, 당시 제주도 방역당국도 유림이를 ‘입원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다.

강씨는 “지난해 5월4일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했고, 국민청원이 종료되는 시점에 2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현재 탄원서 연명부는 홍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만3000명의 동의를 받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제출된 탄원서는 270건”이라고 진행 상황을 알렸다.

모든 사람들이 부부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강씨는 “보호자의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코로나 때문에 고생한 피고인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격려하고 응원해줘서 힘을 받았다”며 “초면임에도 공판일에 맞춰서 제주법원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다. 앞으로 구속된 피고인 3명의 재판이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참고자료를 모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속된 3명을 제외한 보완 수사 요청으로 경찰로 되돌아간 8명에 대해서도 어떤 처벌이 이뤄지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정맥주사로 
잘못 투약?

아울러 “특히 구속된 피고인 중 1명은 유림이 사고 후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임신도 했다. 변호사 중 일부는 일부러 감형을 위한 계획 임신 아니냐고 의심도 했다.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피고인의 판결이 끝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주대학병원 관계자는 “유림이 사망의 인과관계는 재판서 증명되는 것이다. 재판 결과를 따르겠다. 현재 병원은 보호자와 계속 접촉하고 있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이 구속된 것”이라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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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