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이태원 참사 애도 억압하지 말라’ 무소속 민형배가 생각하는 추모의 의미

[기사 전문]

-이태원 참사 집회에서 ‘관재’라는 표현을 썼는데…

'관재'는 '벼슬 관'에 재난이잖아요. 정부 책임을 강조하는 거죠. 정부가 제대로 대응했으면, 국가가 제대로 대응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참사이고 일어나지 않을 재난이었다.

또 이것은 굉장히 사회적인 성격의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어떤 기업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쓰는 표현이죠. 그러니까 ‘행정 대참사’ 이렇게... ‘관재, 즉 행정 대참사’ 이렇게 쓰고 있는 겁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무엇의 부재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번에 더욱 결정적으로 관재라고 얘기하는 건 여러 차례 징후가 있었고 직접적인 신고까지 있었는데, 대응을 안 한 거예요. 핵심은 그거죠.


여러 가지 징후가 있었고 신고가 있었잖아요. 벌써 서너 시간 전에 “이건 사고 난다”. 심지어 그때 압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냥 방관한 거죠. 유족들이 다 그 얘기를 하잖아요. “15명 내지 20명만 인파에 대비했어도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정부 대응은 이를 참사라고 보지 않았어요. 그냥 사고라고 했어요. 근데 그냥 사고는 주체가 없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공감이 없어요. 정서적 접근이 없어요.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고가 났는데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이나, 그 사고에 대한 애도나, 그 사고에 대한 슬픔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이거는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거예요. 관재도 아니고 사회적 대참사도 아니고… 그래서 애도도 그렇게 가는 거예요. 애도 못하게 한 거잖아요. 제 표현으로 얘기하자면 분노를 분산시킨 거예요. 애도를 억압한 거예요.

왜냐하면 애도, 추모한다는 것은 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누구의 책임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이상민 장관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망발을 하는 거예요. “알았어도 막지 못했다” “경찰이 거기 있었어도 막지 못했다”.

-애도를 막았다고 하지만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이 분향소를 방문했다.

정부가 그렇게 애도하려면 원인 규명부터 해야 해요. 진상부터 알아야 해요.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를 알아야 애도할지 말지 결정이 되는 거예요. 근데 누가 죽었는지를 얘기하지 않잖아요.

그건 뭐냐면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학습효과가 있는 거예요. ‘유족들이 모여서 분노가 집적되고 폭발하면 이게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사전에 철저하게... 이를테면 애도를 진압한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추모제 한 번도 안 했잖아요. 합동 장례식도 안 치렀잖아요. 그리고 대통령은 매일같이 가서 흉내를 낸 거예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쇼한 거죠. 애도 쇼, 추모 쇼를 한 거죠.

근데 누구한테 도대체 추모를 한 거예요? 거기 위패가 없었잖아요. 영정이 없었잖아요. 죽은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왜 죽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애도가 됩니까?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생각은?

저는 희생자 명단 공개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요. 그리고 정말 죄송한 표현인데, 이건 정말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억지인데요. 모든 유족이 다 명단을 공개했어요. 장례 현장에 가보셨어요? 거기 명단 없던가요? 다 있었죠.

가령 이런 거잖아요. 내가 애도를 하려면 내 친구가 죽었는지, 내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희생자 가족이 알리는 거예요, 결국은… 그거를 대신하기 위해서, 희생자 가족들이 ‘우리 아이가 이렇게 죽었어’라고 알리기가 그러니까 보통 그런 참사가 나면 공개하는 거예요. 사회적인 애도가 가능하게, 정부가 애도할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장례식장에 가 보면, 제가 한 여섯 군데쯤 가봤는데요. 모두 다 공개돼있어요. 그런데 정부만 ‘명단 공개를 하느냐, 마느냐’ 그러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 얘기(명단공개 논란)를 듣고 이게 논란이 될 일인가?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이미 (공개)됐는데… 다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이걸 대하느냐 하는 것만 남았는데.

그중에는 “나는 내 아이의 죽음을, 혹은 내 가족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아. 얼굴이 드러나는 게 싫어” 이런 분들이 계실 수 있죠. 이런 분들은 공개 안 하면 되죠.

그리고 지난번에 어디 무슨 언론에서 이렇게 명단을 공개했잖아요. 그게 공개인가요? 누군지도 알 수 없는데 그냥 이름만 이렇게 했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렇게 공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누군지 알아야죠.

김춘수 시인의 시 중에 <꽃>이라는 시가 있잖아요. 그거 아시잖아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분을 호명했을 때, 그분을 알았을 때 그게 비로소 우리의 이웃이 되고 우리 사회적 구성원이 되는 거지. 누군지 모르게 해라?

-희생자 명단을 제대로 공개한다는 건 어느 범위까지?

그러니까 사전에 유족들하고 그런 것에 대해 논의를 할 기회가 있었어야죠. 그런데 그거를 주선 자체를 행안부가 막았잖아요. 이런 사회적인 참사에는 그 사회가 가진 기본적인 룰이 있죠. 그 룰을 가지고 유족들이 일단 만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장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각각 개인적으로 치르실까요”(물어야 해요) 당연히 연락해서... 경황이 없겠지만 유족 중에 대표자들이 한 분씩이라도 모이든지, 아니면 유족들이 아니더라도 대리인이라도 와서 “이걸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냐?”고 하는 게 시민과 주권자들에 대한 예의죠.


그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리고, 사실 인륜을 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 그 후로부터 엉터리 접근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접근을 잘못한 거죠, 처음부터.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죽음, 우리 가족의 죽음에 “국가는 어디 있었냐?”고 묻는 거예요.

-결국 국가의 대응 방식이 집회로 이어졌다고 보는지?

거기 촛불집회는 원래 이것 때문에 있었던 게 아닌데. 그 전부터 윤석열정부의 문제 때문에 그 문제를 지적하는 그런 집회였는데, 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 이 참사가 났고, 이 참사가 나자 추모행사를 한번 한 거죠. 그때 추모집회에 많은 분이 나왔었죠.

그때는 크게 보면 저는 세 가지 정도였다고 봐요. 일단은 진상을 몰라요. 왜 죽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그래서 진상을 밝혀라, 그다음에 진상이 밝혀지면... 그러기 전부터도 정부는 해야 하지만, 사과를 해야 하는 거예요. 희생자들에게, 희생자 유족들에게...

그런데 그 사죄는 처벌과 연관돼요. 책임과 연관돼요. “정부가 제 역할을 했으면, 국가가 그 곁에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못 막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 희생의 책임은, 이 참사의 책임은 저희입니다”라고 그렇게 사죄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비가 적게 와도 걱정,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었습니다.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입니다. 그게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세에요.


-촛불집회 맞은편에서 태극기집회가 있었다고…

그 추모집회 다음에 전국 집회할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하고 갔었는데... 저는 거기 안 가보는 게 더 이상해요. 수십명, 수백명도 아니고 수천명도 아니고 수만명, 수십만명이 모여서 뭔가 외치는데 정치인이 거기를 안 가보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저희가 거기 갈 때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어떤 기자가 “집회에 갈 거냐?”고 물어본 거예요.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당연히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정치적인 셈을 해서 앞뒤를 따져서 가보자고 한 게 아니죠.

그런데 가서 행진하면서 보니까 저쪽에는 정치인들이 안 왔다고 그래요. 아주 앰프를 고성능으로 해서… 아마 그 측정해보면 데시벨이 엄청 높았을 거예요. 나는 그런 집회가 어떻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진행되는지 모르겠던데, 그 규정을 저는 어겼을 것 같아요.

거기에 정치인이 없었다면 그런 집회에 참여할만한 정치인들이 없는 거고. 그것은 정치인들이 판단해볼 때 그런 집회가 정치인이 가볼만한 집회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없었겠죠.

-<일요시사> 구독자에게 한마디

<일요시사>의 독자 여러분,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주권자 시민입니다.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어떻게 이 사안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정부도 하는 행동이 달라지고 정치인들도 하는 행동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을 판단하게 됩니다. 과거를 심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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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정인균
기획: 강운지
촬영: 김희구
편집: 배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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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