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도 모르는’ 아이들 문해력 이대로 좋은가

양극화 심해지고 
비판력 사라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흘간 무운을 빌었는데 금일 또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최근 불거진 문해력 논란을 관통하는 우스갯소리다. ‘사흘’을 넘어 ‘심심한 사과’로 이어지는 문해력 논란이 뜨겁다. 한국의 실질적 문맹률 논쟁부터 세대 간 갈등, 공교육의 실패와 양극화 등 불똥이 곳곳으로 튀고 있다. 단순히 혹자의 무지라며 비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발단은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카페가 SNS에 올린 공지글이다. 이 카페는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을 두고 “예약 과정 중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고 적었다.

곳곳 불똥
일파만파

문제는 꽤 많은 SNS 이용자가 ‘심심한’의 뜻을 잘못 받아들이면서 발생했다. 본래 의도한 뜻인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대신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이해한 것이다.

이에 일부 이용자는 해당 공지에 “심심한 사과라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앞으로 공지글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올리는 게 어떨까” 등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간간히 알려졌던 문해력 논란 사례가 함께 급부상했다. 예컨대 ‘금일’로 표기된 서류 마감일을 ‘금요일’로 잘못 알아 인사담당자와 갈등을 빚은 취업준비생의 일화, ‘고지식하다’를 ‘높은 지식(high+Knowledge)’으로 알았다는 등의 일화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대표를 향해 “무운(武運)을 빈다”고 한 발언을 “운이 없기(無運)를 빈다”고 잘못 해석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외에도 사흘을 4일로 오인하는 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된 사례다. 

일각에서는 예견된 비극이라는 평이 나온다. 몇 년간 국민의 평균적인 문해력이 떨어지는 추세가 꾸준히 보였다는 의미다.

지난달 23일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17년 조사 결과, 전체 성인의 22%인 960만명이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실상 문맹인’이라고 보고했다. 실질 문맹이란 글을 읽고 쓸 줄은 알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명 문해력의 문제다.

최근 교육현장 일선에서도 비슷한 하소연이 전해진다. 학교와 학원 교사들은 학생들의 낮은 문해력에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교과서나 교재를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이다. 

한 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수업 내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에 적힌 단어를 설명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다. 학생마다 다르긴 하지만 수업 진행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많은 학생의 어휘력‧문해력이 떨어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성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전반적인 읽기 소양 수준 역시 전반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말 펴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비교적 크게 하락했다.


한국 학생들은 읽기·수학·과학 등 세 가지 영역 평균 점수가 2009년에 비해 모두 하락했다. 이 중 읽기 영역의 성취 낙폭이 가장 컸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문장이나 짧은 단락의 의미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축자적 의미 표상’의 정답률이 두드러지게 낮았다. 이 때문에 기초적 읽기 능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성취가 낮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심심한 사과’ 심심한 게 뭐냐? ‘발칵’
교과서·교재 내용 이해 못 하는 학생들

읽기 능력이 떨어진 원인으로는 단연 독서율 감소가 꼽힌다. 국내 독서율은 매년 내림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320명을 상대로 시행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나타났다.

2019년에 시행된 이전 조사에 비해 각각 8.2%포인트, 3권 줄어든 수치다. 초·중·고교 학생의 경우에는 연간 종합독서율은 91.4%, 연간 종합독서량은 34.4권이다. 이 역시 2019년과 비교하면 독서율은 0.7%포인트, 독서량은 6.6권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 문해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거나 젊은 층의 문해력이 기성세대보다 낮은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근거가 되는 지표는 2013년 OECD가 실시한 국제 성인 역량조사(PIAAC)다.

해당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16~64세)의 문해력은 중상위권이었다. 16~24세 청년층은 최상위권, 45∼54세는 하위권, 55∼65세는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실질문맹률 관련 지표 해석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실질문맹률을 지적하는 이들이 사용한 근거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실질문맹률 75%는)21년 전 조사를 이용한 침소봉대”라며 “지금은 실질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흔히 인용되는 ‘실질문맹률 75%’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인적자원지표’다. 이는 문해력 단계를 1~5단계로 나눠 1단계는 문해력에 취약한 수준, 2단계는 단순 작업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새로운 직업 등을 학습하는데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 등으로 분류했다. 

2001년 진행한 조사에서는 1단계가 38.0%, 2단계가 37.8%로 집계됐다. 이 둘을 합하면 약 75%가 된다.


올라갔나
떨어졌나

하지만 최근의 문해능력 조사에서는 수치상으로 큰 변화가 있다는 게 신 교수 설명이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2020년 성인문해능력조사’를 살펴보면 1단계 비율은 4.5%, 2단계 비율은 4.2%로 집계됐다.

신 교수는 “1~2단계를 실질문맹률이란 기준으로 하더라도 2020년 조사에선 8.7%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 설명했다.

상반된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세대 간 갈등도 확전 양상을 보인다. 한쪽에서는 유튜브 시대에 독서나 한자 교육 부족이 낳은 어휘력의 빈곤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선 반지성주의, 반엘리트주의적 흐름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문해력 부족 자체뿐 아니라 이를 바로잡는 지적에 대해 ‘잘난체하는 꼰대’로 여기는 태도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이들은 ‘일상 표현을 배제하고, 굳이 어려운 단어를 선택하는 행태가 문제’라는 주장을 편다. 상식-비상식의 대립이 세대 갈등으로 치환되는 흐름이다.

이와 관련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의 올바른 지적조차 꼰대 문화로 치부하며 ‘내가 주류다’라는 식으로 세몰이하는 네티즌이야말로 ‘젊은 꼰대’의 전형”이라고 일침을 던졌다.


이외에도 ‘본질적 문제는 종전의 문해력 정의에서 찾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선 기존의 활자 인식 능력을 넘어 온라인정보해석 능력이 요구된다. 일명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낙제점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바꿔 말하면 디지털 기기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온라인정보를 바르게 해석하거나 취합한 정보를 활용해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외려 떨어진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
다른 곳에

한국 학생의 디지털 문해력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지난해 5월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학생(만 15세)이 온라인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문제를 맞히는 ‘정답률’은 25.6%에 그쳤다. 미국 69.0%, OECD 평균 47.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득수준에 따라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벌어지고, 또 이로 인해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악순환이 전망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 중고교생 1만3141명을 조사한 결과, 부모 경제력에 따라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는 지난달 28일 ‘Z세대 서울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학교 환경의 관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정보 활용, 미디어 비판 등에 대한 개인 능력은 가정 경제 수준에 따라 최대 9.1%포인트까지 격차를 보였다.

이를테면 ‘인터넷정보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문항에 가정환경이 ‘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81.5%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중’ ‘하’라고 응답한 학생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75.7%, 72.4%에 그쳤다. 

온라인플랫폼 및 자료학습 활용, 인터넷정보 사실 구분 여부 등 다른 문항에서도 경제 수준에 따라 3∼9%포인트씩 차이가 났다. 보고서는 “가정환경에 따른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며 “취약계층 학생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 없는 게 무운?
잘못 해석 촌극도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학습 능력 격차와 성인이 된 후 소득격차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디지털 활용 능력 차이가 향후 직업 선택의 폭까지 좌우할 수 있다”며 “디지털 교육 기반이 열악한 지역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대통령까지 관련 발언을 통해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 방안’을 보고받고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관련 부처인 교육부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2022 개정 교육 과정’ 시안에는 문해력 교육 보충안이 대거 포함됐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국어 수업시간이 지금보다 34시간 늘어날 예정이다. 고등학교에선 미디어 문해력을 높일 목적으로 ‘매체 의사소통’ 과목을 신설한다.

‘독서와 작문’ ‘독서 토론과 글쓰기’도 선택과목으로 도입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방침이다.
새 교육과정은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 2025년 중·고교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교육부가 즉각 행동에 나선 배경은 이미 문해력 저하 현상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력조사 결과를 통해 문해력 저하 현상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것.

지난해 교육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고교 2학년의 국어과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64.3%에 그쳤다. 2019년 77.5%였던 게 2년 만에 13.2%포인트 하락했다. 중학교 3학년 역시 같은 기간 82.9%에서 74.4%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새 교육과정은 취학 초기부터 기초 문해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교육부는 개정 국어과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의 글, 작품, 복합 매체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한다”고 명시했다.

가르치면
달라질까

일부에서는 언어 교체 속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한자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보수적인 접근”이라며 “이보다 어려운 한자어로 된 개념어 학습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관련 주장을 일축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해력 논란 타고…관련 도서 열풍

최근 불거진 ‘심심한 사과’ 논란에 서점가가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어휘력·문해력 도서를 찾는 이가 부쩍 늘어나면서 해당 분야 출간‧판매가 활발하다.

지난 1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어휘력·문해력 관련 도서 출간이 최근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교재류를 제외한 어휘력·문해력·글쓰기·맞춤법 관련 인문서 출간 종수를 집계한 결과, 116종으로 확인됐다.

전년 동기 대비 43.21% 증가한 수치다.

일찍이 자녀의 기초 어휘력과 문해력을 길러 주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코로나19 유행의 여파로 학습 격차가 벌어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어린이 대상 관련 도서는 2020년 5종에서 지난해 33종으로 늘었으며 올해도 전년 동기 대비 276.34% 판매 성장률을 보인다.

다만 이 같은 독서 열풍이 세대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작 문해력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 Z세대의 참여가 비교적 저조한 탓이다. 

예스24 관계자에 따르면 관련 도서 구입 연령대는 40대(33.82%) 30대(25.98%) 50대(17.39%) 20대(16.34%) 순이다.

구입 연령대만 놓고 보면 문해력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장년층의 도서 구매 비율이 청년세대 몫을 웃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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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