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갤러리이배에서 박효진과 배상순의 ‘예술의 품격(The Dignity of Art)’ 전시를 준비했다. 두 작가는 영국(박효진)과 일본(배상순)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술에서 품격은 작품의 진정한 가치나 그 작품이 지니는 위엄을 뜻한다. 미술작품이 품격을 갖춘다는 것은 공감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고무시키는 데 있다.
매개체
이런 점에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로 얼룩진 박효진의 조각은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동시에 삶의 방향성에 대해 우아하게 설득하는 매우 품위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배상순의 벨벳회화는 흑백의 단색과 무수한 선으로 구성된다. 시간의 축적과 함께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파장과 깊이를 표현한다. 이는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간 내면의 성찰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미술작품은 형태, 색채, 재료, 기술 등에 의해 만들어진 작가의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산물이다. 인간으로서 작가의 영혼이 스며든 미술작품은 품격을 지닌다. 작가는 창작한 작품에 품격을 부여하고 관람객은 그 품격을 공유한다.
인간의 욕망
공허의 역설
작품을 구성하는 색과 이미지 등 물리적인 요소는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를 매개로 관람객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관람객의 자유롭고 섬세한 영혼은 미술작품과 교감해 작품이 드러내는 품격을 받아들여 인간으로서 더 성숙된 삶을 살아가게 한다.
박효진은 서양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과 고차원의 문화적 산물인 동양의 도자기 등 위엄, 신성함, 기품, 아름다움을 함축한 오브제를 조각의 하단에 차용한다. 그리고 상단은 기성품인 갖가지 조화에 색색의 안료를 혼합한 레진을 끼얹어 마치 피나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화려한 꽃다발로 장식한다.
완벽한 오브제의 조합으로 이상적이고 화려한 낙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작품에 내재된 공허함과 쓸쓸함, 그리고 슬픔은 감출 수 없다. 개화한 이후 마치 시들듯이 흘러내리는 꽃은 허상을 좇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삶의 덧없음을 메타언어로 잘 표현하고 있다.
완벽한 인간으로 대변되는 신과 정신문화의 정점에 이른 고상한 도자기는 화려한 삶의 무상함을 힘겹게 지지함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진행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매우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화에 바탕
무한한 심연
배상순의 벨벳 회화는 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에 가까운 검정 벨벳 위에 흰색 젯소(석교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를 희석한 물감으로 수없이 많은 선을 반복 및 중첩시켜 희미한 음영이 나타나는 화면을 구성한다. 시간의 축적과 함께 안팎으로 뒤섞이는 선은 인간관계의 깊이와 파장을 표현한다.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해석과 일념을 담고 있다.
벨벳 회화는 묵언과 집중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흰색의 선이 하나의 면을 이루고,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검정 여백에 무한한 심연을 펼치면서 회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배상순은 반사를 최소화하고 완벽에 가깝게 빛을 흡수하는 최선의 소재로서 캔버스 대신 벨벳을 선택했다. 극도로 흐린 흰색이지만 견고함과 구조를 지닌 물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화 물감 대신 젯소로 무한의 원을 그려 나간다.
벨벳 회화
갤러리이배 관계자는 “박효진과 배상순의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품격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다음 달 23일까지.
[박효진·배상순은?]
▲박효진= 1974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2003년 첫 개인전 이후 한국, 영국,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2014년 영국 <Aesthetica Magazine>의 100 Contemporary Artist로 선정됐다.
2019년 런던 사치갤러리 특별전시회에 초대돼 세계적인 디자이너 롤랑 뮤레(Roland Mouret)와의 협업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현재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배상순= 1971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원과 교토시립예술대학원, 그리고 영국 Royal College of Art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2005년과 2008년 일본 모리미술관 ‘현대미술의 전망-새로운 평면의 작가들’에 선정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런던·홍콩·마이애미·바젤·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교토를 거점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