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폭염’ 펄펄 끓는 전기요금 딜레마

이래서 올릴 수도…
저래서 내릴 수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전력 사용량도 점차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전력 사용량과 연료비가 동시에 정점을 찍을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한국전력공사를 살리려면 요금을 올려야 하고, 서민을 생각한다면 내려야 한다.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죽는 잔혹한 치킨게임 속, 둘 다 살릴 묘책은 정녕 없는 걸까.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최근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은 연료비 탓이다. 국제적인 고유가 현상으로 전력 생산원가가 급등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도매가는 지난해 4월 ㎾h당 76.35원에서 지난 1분기 200원 내외로 급등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생산원가가 약 150% 이상 올라간 셈이다.

반값 판매
역대급 적자

반면 ‘정가’인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고물가 때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서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정부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 1분기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정부의 결정 앞에서 지난해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무색해졌다.

그 결과 한전은 1분기 내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이 기간 동안 ㎾h당 110.4원 남짓으로 전력을 판매했다. 사실상 제값에 들여와서 반값에 파는 모양새다.

‘반값 판매’의 여파는 고스란히 역대급 적자로 이어졌다. 한전은 올해 1분기 7조7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전력 판매량이 늘면서 매출액이 1조3729억원 늘었지만,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 등으로 영업비용이 9조7254억원 증가한 결과다.


불과 한 분기 만에 지난해 적자 총액(5조8601억원)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올해 한전의 적자 총액이 20조원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대 30조원까지 불어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여차하면 자본잠식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한전은 비상경영 체제를 확대하면서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전은 결국 정부에 구조요청을 보냈다. 지난 18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전은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전기요금 결정 방식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판매 가격 조정에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잘 반영할 수 있게 할 목적이다.

구체적인 요구 조건으로는 연료비 연동제 조정폭 확대·전기요금 약관 일부 개정 및 삭제 등이 포함됐다. 연료비 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최소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도 한전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폭을 확대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합리적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전 동결했다 역대급 ‘빚잔치’
올리자니 서민·중소기업 직격탄

업계에서는 한전의 운영 정상화를 위해 ㎾h당 최소 33원 이상의 연료비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에는 정부가 요금 인상을 결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보조 대책을 내놔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요금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사태 수습이 어렵다”고 짚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요금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중소기업과 서민 고통이 더욱 심화된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전기요금 인상을 반대했던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전기요금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큰 부담”이라며 “코로나(유행) 기간에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경제·산업계가) 전기요금 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앞선 발언이 요금 인상을 막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유행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긴 어려운 지금, 요금을 올리면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이는 등 정치적 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활동 당시 요금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수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전했다. 말 그대로 원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얘기다. 

서민 이중고
정치적 부담

원활한 제도 정착을 위한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전문성 강화도 약속했다. 전기위윈회는 전기요금 조정 및 체제 개편 업무를 전담한다. 정부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의 연속이다. 국제적 추세에 따라 불어난 부담을 지울 이를 찾아야 하는데, 양쪽 모두 여건이 여의치 않다.

남은 시간이 많진 않지만, 일단 당장은 ‘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을 눈치다. 현재 정부는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간 발전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4일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전력시장에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를 신설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전력 도매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급등하면 시장에 임시적인 상한선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한전은 민간 발전사에 지금보다 20~30%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길이 열린다. 이를 통해 적자 폭을 일시적으로나마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한전의 손실이 줄어드는 만큼, 민간 발전사는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민간 발전사는 “반(反)시장적 ‘날벼락’”이라며 산업부 발표 이후 줄곧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이미 정부가 본 조치 나흘 전, 한 차례 시장에 개입했던 것도 반발을 키웠다.


정부는 지난 20일 전력거래소 규칙을 개정해 용량요금을 줄였다. 용량요금은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내는 일종의 고정비다. 물론 민간 발전사가 한전처럼 손실을 보는 일은 없다. 산업부는 발전사들의 원가가 상한가보다 높으면 차액을 전액 보상한다. 하지만 줄어든 이익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없다.

장기 대책
원전 확대

민간 발전사들은 “상한제는 한전 손실을 민간기업에 떠넘기는 편법”이라며 “유명무실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부활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백지화’ 시계는 이 사태와 맞물려 점차 빨리 돌아가고 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지난 1분기 원전 가동률이 다시 80%대에 들어섰다. 문재인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60~70% 수준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이 임기 말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팔부능선에 오른 것.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자 비용이 저렴한 원전 발전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원전 발전 비용은 LNG 복합 발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가동률은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이다. 한전이 원가절감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데다,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는 원전을 전력 해결을 위한 장기 대책으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원전 비중 상향을 주장해왔다.


그는 2050년 원전 발전 비중 35%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제적인 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더 나아가 새 정부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해당 정책에는 원전 생태계 복원과 원전 수출 등의 세부 과제가 포함됐다. 

단기 대책 부재…인상 불가피
취약층 어쩌나…열사병 우려 

국제적 협력도 구체화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21일 공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원전 수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보스포럼에 대통령 특사로 참가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알 하마디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공사를 만나 양국의 원자력 발전 협력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면담에서는 한국형 원전 4기를 UAE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바라카 원전’ 사업을 포함해 원전 시장 공동진출과 연구·개발 등 양국 원자력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제행사로 대구 세계 가스 총회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개회식 축사에서 “우리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미래가 에너지 정책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천연가스를 합리적으로 ‘믹스’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저렴한 원전 비중을 계속 늘려나간다면, 한전의 체질 개선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큰 버팀목이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원전은 장기 대책으로는 제격이지만,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평가다. 시설 확충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한 탓이다.

이 가운데 다음 달 20일, 오는 3분기 전기요금이 결정된다. 지금까지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정부가 요금 인상을 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묘수 없나?
대응 안간힘

저소득 독거노인 등의 사회취약계층에게는 유독 무더운 여름이 될 전망이다. 이들은 냉방비를 부담할 능력도, 무더위를 견뎌낼 여력도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여름철 온열질환을 앓은 환자는 총 1376명. 그중 20명이 목숨을 잃으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모두 열사병이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기·수도 민영화 진실은? 

느닷없이 선거판에 들이닥친 민영화 논란. 정부와 민주당이 공공서비스 민영화 추진을 두고 연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진원지는 지난 17일 국회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40%를 민간에 팔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민주당은 이 발언을 기점으로 민영화 논란 대공세를 이어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기·수도·공항·철도 등 민영화 반대’라는 글을 게시했다. 같은 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민영화 반대 국민 저항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 유가와 석탄 가격 인상 탓에 한국전력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며 “문재인정부 들어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놨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자산 매각을 통해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자산 매각이 결국 민영화를 뜻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국민에 밀접한 시설에 대한 민영화를 방지하는 ‘민영화 방지법’을 만들어서 권력 사유화나 MB정부 실패를 거울삼아 윤석열정부가 민영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제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 같은 지적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민영화를 새 정부 들어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 지시를 내린 적도 없으며, 앞으로 당분간 검토할 생각이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힘은 법적 대응을 통해 엄호사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원회 공명선거본부는 지난 22일 이재명 위원장과 송영길 후보를 비롯해 비슷한 주장을 펼친 네티즌 34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로 고발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선대위 소속 신인규 변호사는 지난 24일 “추 부총리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장을 밝히라는 것은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민주당의 지적은)의심을 넘어서 지금은 소설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