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폭염’ 펄펄 끓는 전기요금 딜레마

이래서 올릴 수도…
저래서 내릴 수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전력 사용량도 점차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전력 사용량과 연료비가 동시에 정점을 찍을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한국전력공사를 살리려면 요금을 올려야 하고, 서민을 생각한다면 내려야 한다.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죽는 잔혹한 치킨게임 속, 둘 다 살릴 묘책은 정녕 없는 걸까.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최근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은 연료비 탓이다. 국제적인 고유가 현상으로 전력 생산원가가 급등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도매가는 지난해 4월 ㎾h당 76.35원에서 지난 1분기 200원 내외로 급등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생산원가가 약 150% 이상 올라간 셈이다.

반값 판매
역대급 적자

반면 ‘정가’인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고물가 때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서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정부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 1분기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정부의 결정 앞에서 지난해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무색해졌다.

그 결과 한전은 1분기 내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이 기간 동안 ㎾h당 110.4원 남짓으로 전력을 판매했다. 사실상 제값에 들여와서 반값에 파는 모양새다.

‘반값 판매’의 여파는 고스란히 역대급 적자로 이어졌다. 한전은 올해 1분기 7조7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전력 판매량이 늘면서 매출액이 1조3729억원 늘었지만,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 등으로 영업비용이 9조7254억원 증가한 결과다.


불과 한 분기 만에 지난해 적자 총액(5조8601억원)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올해 한전의 적자 총액이 20조원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대 30조원까지 불어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여차하면 자본잠식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에 한전은 비상경영 체제를 확대하면서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전은 결국 정부에 구조요청을 보냈다. 지난 18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전은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전기요금 결정 방식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판매 가격 조정에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잘 반영할 수 있게 할 목적이다.

구체적인 요구 조건으로는 연료비 연동제 조정폭 확대·전기요금 약관 일부 개정 및 삭제 등이 포함됐다. 연료비 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최소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도 한전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폭을 확대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합리적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전 동결했다 역대급 ‘빚잔치’
올리자니 서민·중소기업 직격탄

업계에서는 한전의 운영 정상화를 위해 ㎾h당 최소 33원 이상의 연료비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에는 정부가 요금 인상을 결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보조 대책을 내놔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요금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사태 수습이 어렵다”고 짚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요금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중소기업과 서민 고통이 더욱 심화된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전기요금 인상을 반대했던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전기요금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큰 부담”이라며 “코로나(유행) 기간에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경제·산업계가) 전기요금 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앞선 발언이 요금 인상을 막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유행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긴 어려운 지금, 요금을 올리면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이는 등 정치적 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활동 당시 요금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수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전했다. 말 그대로 원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얘기다. 

서민 이중고
정치적 부담

원활한 제도 정착을 위한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전문성 강화도 약속했다. 전기위윈회는 전기요금 조정 및 체제 개편 업무를 전담한다. 정부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의 연속이다. 국제적 추세에 따라 불어난 부담을 지울 이를 찾아야 하는데, 양쪽 모두 여건이 여의치 않다.

남은 시간이 많진 않지만, 일단 당장은 ‘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을 눈치다. 현재 정부는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간 발전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4일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전력시장에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를 신설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전력 도매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급등하면 시장에 임시적인 상한선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한전은 민간 발전사에 지금보다 20~30%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길이 열린다. 이를 통해 적자 폭을 일시적으로나마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한전의 손실이 줄어드는 만큼, 민간 발전사는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민간 발전사는 “반(反)시장적 ‘날벼락’”이라며 산업부 발표 이후 줄곧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이미 정부가 본 조치 나흘 전, 한 차례 시장에 개입했던 것도 반발을 키웠다.


정부는 지난 20일 전력거래소 규칙을 개정해 용량요금을 줄였다. 용량요금은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내는 일종의 고정비다. 물론 민간 발전사가 한전처럼 손실을 보는 일은 없다. 산업부는 발전사들의 원가가 상한가보다 높으면 차액을 전액 보상한다. 하지만 줄어든 이익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없다.

장기 대책
원전 확대

민간 발전사들은 “상한제는 한전 손실을 민간기업에 떠넘기는 편법”이라며 “유명무실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부활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백지화’ 시계는 이 사태와 맞물려 점차 빨리 돌아가고 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지난 1분기 원전 가동률이 다시 80%대에 들어섰다. 문재인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60~70% 수준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이 임기 말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팔부능선에 오른 것.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자 비용이 저렴한 원전 발전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원전 발전 비용은 LNG 복합 발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가동률은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이다. 한전이 원가절감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데다,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는 원전을 전력 해결을 위한 장기 대책으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원전 비중 상향을 주장해왔다.


그는 2050년 원전 발전 비중 35%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제적인 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더 나아가 새 정부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해당 정책에는 원전 생태계 복원과 원전 수출 등의 세부 과제가 포함됐다. 

단기 대책 부재…인상 불가피
취약층 어쩌나…열사병 우려 

국제적 협력도 구체화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21일 공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원전 수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보스포럼에 대통령 특사로 참가한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알 하마디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공사를 만나 양국의 원자력 발전 협력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면담에서는 한국형 원전 4기를 UAE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바라카 원전’ 사업을 포함해 원전 시장 공동진출과 연구·개발 등 양국 원자력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제행사로 대구 세계 가스 총회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개회식 축사에서 “우리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미래가 에너지 정책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천연가스를 합리적으로 ‘믹스’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저렴한 원전 비중을 계속 늘려나간다면, 한전의 체질 개선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큰 버팀목이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원전은 장기 대책으로는 제격이지만,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평가다. 시설 확충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한 탓이다.

이 가운데 다음 달 20일, 오는 3분기 전기요금이 결정된다. 지금까지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정부가 요금 인상을 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묘수 없나?
대응 안간힘

저소득 독거노인 등의 사회취약계층에게는 유독 무더운 여름이 될 전망이다. 이들은 냉방비를 부담할 능력도, 무더위를 견뎌낼 여력도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여름철 온열질환을 앓은 환자는 총 1376명. 그중 20명이 목숨을 잃으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모두 열사병이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기·수도 민영화 진실은? 

느닷없이 선거판에 들이닥친 민영화 논란. 정부와 민주당이 공공서비스 민영화 추진을 두고 연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진원지는 지난 17일 국회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40%를 민간에 팔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민주당은 이 발언을 기점으로 민영화 논란 대공세를 이어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기·수도·공항·철도 등 민영화 반대’라는 글을 게시했다. 같은 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민영화 반대 국민 저항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원회 의장은 “최근 유가와 석탄 가격 인상 탓에 한국전력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며 “문재인정부 들어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놨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자산 매각을 통해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자산 매각이 결국 민영화를 뜻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국민에 밀접한 시설에 대한 민영화를 방지하는 ‘민영화 방지법’을 만들어서 권력 사유화나 MB정부 실패를 거울삼아 윤석열정부가 민영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제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 같은 지적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민영화를 새 정부 들어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 지시를 내린 적도 없으며, 앞으로 당분간 검토할 생각이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힘은 법적 대응을 통해 엄호사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원회 공명선거본부는 지난 22일 이재명 위원장과 송영길 후보를 비롯해 비슷한 주장을 펼친 네티즌 34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로 고발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선대위 소속 신인규 변호사는 지난 24일 “추 부총리가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장을 밝히라는 것은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민주당의 지적은)의심을 넘어서 지금은 소설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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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