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 K-콘텐츠의 내일

‘대작 예감’ 묵혀둔 작품들 대방출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2021년 K-콘텐츠는 유례없는 실적을 냈다.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인한 악전고투의 환경에서 일궈낸 의외의 쾌거다. 비록 영화계는 여전히 힘든 상황이지만, 드라마와 OTT는 특히 강세를 보였다. 특히 전 세계가 국내 콘텐츠를 주시하고 있다. 작품의 질과 무관하게 OTT에 공개되는 모든 작품이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2022년에도 K-콘텐츠의 미래는 밝다. 신선한 소재를 무기로 한 작품이 즐비하다. 

2021년은 한국 미디어 역사상 가장 빛나는 한 해로 기록될만하다. 과거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과 배우 윤여정이 나온 <미나리>가 전 세계에서 높은 관심을 받으며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도 물론 기념비적인 업적이지만, 2021년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일군 K-콘텐츠의 활약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190개국
멋진 신세계

한국어로 된 국내 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먼저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한국어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한 서구 열강의 언어와는 별개의 특성을 띤다. 우리나라 특유의 고유성이 짙고, 문법 패턴도 외국어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자막을 보는 것이 일상화됐지만, 해외에서는 자막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더빙으로 된 작품을 선호하는 국가도 많다. 우리나라만의 문화 특성 역시 유럽이나 북미권과는 차이가 크다. 이야기가 공감 가고 쉽게 이해되려면 각종 사물이나 풍경이 직감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한국 고유의 이야기가 해외에서 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 나라의 영화관을 통해 미디어를 수출하는 방식에서 국내 영화나 드라마는 해외시장의 빈틈을 노리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일일이 자막을 만들거나 더빙을 해야 하며, 다양한 홍보를 비롯한 마케팅 등을 해야 하는 수고가 뒤따른다.


그렇게 투자를 한다해도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비교적 손쉽게 해소해준 것이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의 나라에 망을 깔아 세계 각지의 회원이 플랫폼에 있는 한국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자막도 각 나라에 맞게 비교적 정확히 구현될 뿐 아니라 유명 작품은 더빙으로도 공개된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작품을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약 5년 만에 K-콘텐츠가 꽃을 피웠다. 특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한 성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밈이 지속해서 생겨났고, 관련 굿즈가 불티나게 팔렸다. <오징어 게임>을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물도 파생됐다.

늘 타 국가의 문화를 소비해왔던 것과 반대로 문화 강국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준 사례다. 

2021년 넷플릭스 역사에 남을 업적
2022년에도 세계적 흥행 이어갈까?

<오징어 게임>의 낙수효과는 이어졌다. <D.P.>와 <마이 네임>이 전 세계 TV 프로그램 부문 1위를 찍었고, <지옥>은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관심을 받았다. <지옥>은 북미권보다 유럽권에서 특히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군중의 변화를 담은 <지옥>이 던지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전 세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했다. 

최근 공개된 <고요의 바다>의 경우 앞선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TV 프로그램 부문 3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 시청자들 사이에서 국내 작품은 공개가 되면 일단은 보고 평가하는 문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tvN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을 강타하며 한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가운데 tvN <갯마을 차차차>, JTBC <구경이> 등 국내 방송사 드라마 중 일부도 상당한 사랑을 받았다. 남녀 간의 관계를 빠르게 형성시키는 서구의 스타일과 달리 촘촘하고 세밀하게 감정선을 그려내는 한국 드라마의 묘사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눈물을 자극하는 이른바 ‘K-신파’가 세계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 공개된 2022년 각종 영화와 드라마 라인업을 통해 K-콘텐츠의 강세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예상을 해본다. 국내에서 인정받는 창작자들과 훌륭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대거 참여할 뿐 아니라 소재나 장르도 다양하다.

참신한 상상을 바탕으로 공감 가는 인간의 보편성을 담아내면서 현실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즐비해서다. 

지난 한 해 K-콘텐츠로 1조원이 넘는 막대한 매출을 이룬 넷플릭스는 꾸준히 국내 이야기 시장에 투자 폭을 넓히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도 엄청난 가성비를 이끌어내는 한국 시장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다.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킬러 콘텐츠
전 세계 압도

K-콘텐츠는 이달부터 전 세계 시청자를 압도할 공산이 크다. 작금의 네이버 웹툰을 만든 킬러 콘텐츠인 동명 웹툰을 실사화한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MBC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완벽한 타인>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과 KBS2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평범하던 학교에 갑자기 좀비가 출연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학원 좀비물 장르인 이 드라마는 윤찬영과 박지후, 이유미, 조이현, 안승균 등 각종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예 배우가 대거 출연한다.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아직 미성숙한 고등학생들이 드러내는 인간성이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포인트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뒤를 이을 명작으로 이름을 떨칠 예정이다.

전 세계 팬을 들끓게 한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이 한국에서 재탄생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인질극이 담겼다. 유지태, 박해수, 전종서, 김윤진, 김성오, 박명훈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배우들이 나온다.

OCN 오리지널을 이끌며 공포 마니아로부터 극찬을 받은 <손 the Guest> 김홍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과 배우 하정우, 황정민이 뭉친 <수리남>은 2022년 최대 기대작 중 하나다. 남미의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한인 마약왕을 검거하기 위한 국정원의 비밀작전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민간인 사업가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조우진과 박해수, 유연석 등 라인업이 화려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물밀 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여성을 서울시장으로 만드는 정치 전략가의 이야기를 다룬 <퀸메이커> 역시 기대작이다. 배우 김희애와 문소리의 조합만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희애가 은성그룹 전략기획실장 황도희 역으로 타이틀롤을 맡았으며, 문소리가 노동인권변호사 오승숙으로 분해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2022년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도 다수 공개된다. 주로 시리즈화되는 드라마에 주력한 넷플릭스가 영화 부문에서도 킬러 콘텐츠를 내보일 전망이다.

기대작은 배우 유아인과 고경표, 박주현 등이 출연하는 <서울 대작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된 ‘상계동 슈프림팀’의 질주를 담은 카체이싱 액션 블록버스터다. 올림픽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를 틈타 비자금을 뒤쫓는 작전에 막강한 운전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들이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다.

개봉 라인업
반전 노린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다는 창작자 연상호 감독이 <지옥> 시즌2에 앞서 공개하는 작품은 SF 영화 <정이>다.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힘든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내전에서 승리를 거머쥘 키가 될 전설의 용병 ‘정이’의 뇌 복제 로봇을 성공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강수현, 김현주, 류경수 등이 출연한다.

올해 OTT가 약진하는 가운데 국내 방송사 드라마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다수의 채널 중 10% 시청률을 넘긴 작품이 손에 꼽는다. 대부분이 1~2% 시청률에서 허우적대는 가운데 사극만이 강세를 보였다. 지상파 방송사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2022년 반전을 노린다.

힘든 중에도 흥행 불패를 유지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는 웰메이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내세운다. 범죄 심리 수사극으로 김남길과 진선규가 주인공으로 나선다. 동기 없는 ‘묻지 마 살인’이 급증하던 시절 연쇄살인범들의 마음을 치열하게 들여다 본 최초의 프로파일러 이야기다. 오는 14일 첫 방송한다.

동명 웹툰을 실사화한 MBC <내일>은 김희선과 로운, 이수혁 등 스타가 대거 출연한다. 워낙 인기를 얻었던 웹툰인데다가 <신과함께> <도깨비> 등을 통해 꾸준히 인기를 모은 소재인 저승사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죽고 싶은 사람들을 살리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다.

손예진과 전미도, 김지현 등 국내 최고의 여배우들이 힘을 합친 JTBC <서른, 아홉>도 관심 받는 드라마다. 특히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한 전미도와 드라마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손예진의 조합이 눈길을 끈다. 마흔을 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로맨스 드라마다. 

<빈센조>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낸 배우 송중기는 JTBC <재벌집 막내아들>로 돌아온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인 윤현우가 재벌가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회귀해 인생 2회 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다. 이성민과 신현빈, 박지현 등이 나온다.

좀비·첩보·스릴러·SF 등 중무장
아기자기 이야기 반전 꾀하는 방송
‘막강 라인업’ 영화계 혹한기 넘나

SBS와 더불어 늘 기대되는 신작을 내놓는 tvN 역시 강력한 라인업으로 2022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연상호 감독과 배우 구교환, 신현빈의 <괴이>, 노희경 작가의 4년 만의 복귀작 <우리들의 블루스>, 배우 안보현이 타이틀롤을 맡은 <군검사 도베르만>, 김태리와 남주혁이 주연을 맡은 <스물다섯 스물하나>, 동명 영화를 드라마화한 <돼지의 왕> 등 다양한 장르와 색다른 소재의 작품이 시청자와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2000년도 초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멀티플렉스가 늘어나면서 한국 영화계는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신작이 나올 때마다 극장을 찾아 영화를 곱씹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불어닥친 한국 영화계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묵혀둔 영화가 넘친다. 국내 최고의 연출진과 스타들이 만든 작품을 내걸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영화계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창고 영화가 되고 있는 영화가 대거 방출되길 바라고 있다. 

워낙 힘든 시기지만 관객들과 만나는 작품이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남매로 연기했던 최우식과 박소담이 2022년 영화계의 포문을 연다. 최우식은 조진웅과 함께 출연한 <경관의 피>로 얼굴을 비추며, 박소담은 원톱 주연을 맡은 <특송>으로 관객과 만난다. 

최근 개봉을 미룬 영화 <비상선언>과 <킹메이커>도 곧 개봉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연출진과 배우진이 나온 작품이라 코로나 시국을 뚫는 기대작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영웅> <인생은 아름다워> <행복의 나라로> 등이 지난해 모든 촬영과 후반작업을 마치고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다. 해당 작품들은 관객의 관심을 뜨겁게 받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정을 조율 중이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강제규 감독의 <보스턴 1947>,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씨네필의 주목을 받는 작품 역시 기다리고 있다. 워낙 편집할 시간이 충분해 역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이외에도 <공조2:인터내셔널> <앵커> <마녀2> <정직한 후보2> <해적:도깨비 깃발> <범죄도시2> <한산:용의 출연> 등 인기 영화의 속편이 대거 개봉을 기다린다. 올해만큼 속편이 무더기로 개봉할 기회를 맞는 건 이례적이다.

역대급 영화들이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가 잠잠해져 해당 영화들이 스크린에 올리라길 기다리고 있다. 대다수 멀티플렉스가 전에 없던 혹한기를 맞는 터라 간절함이 크다. 

영화계 침체
거장의 귀환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계의 침체는 막바지로 몰리고 있다. 최근 <스파이더맨> 등 외화가 흥행을 한 점이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2022년은 훌륭한 한국 영화가 많아 그간의 고통을 날려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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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