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시 꺼내진 홍범도

여의도에 어슬렁거리는 ‘백두산 호랑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독립유공자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가 시끄럽다. 갈등에 이어 역사 왜곡 논란으로 번졌다.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대통령실이 대못을 박았다. 사실상 ‘홍범도 지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답변 태도로 일관하던 전하규 대변인의 모습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삶은 부유하지 않았다. 1868년 평안남도 평양 서문에 위치한 무열사 앞마을의 양반집서 머슴살이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생지가 현재 기준 평안남도 양덕군, 자강도 자성군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홍 장군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머슴살이하던 아버지는 그가 9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불우한 시절
혼자 성장해

혼자서 10대를 보내야 했던 홍 장군은 자신의 뿌리를 모른 채 다른 양반집에 머슴으로 보내졌다. 10대 중반이었던 1883년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에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상관을 살해하고 탈영했다.

이후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됐다. 신계사에서의 생활은 홍 장군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생 교육을 못 받았던 홍 장군은 신계사에서 글을 깨치고 처음으로 한국사를 접했다. 당시 홍 장군이 알았던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었다고 한다.

홍 장군이 출가할 때 상좌였던 승려 지담이 수원 사람으로 이순신 가문인 덕수 이씨였다. 환속 이후 신계사를 떠나 오갈 데가 없게 돼 처가가 있는 북청서 아내와 자식을 만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북청에서는 한동안 제지소서 일했으나 1886년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를 말다툼 끝에 살해하고 도주해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서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시기까지 10년 동안 평범한 사냥꾼으로 생활했다. 그는 총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일대 포수들에게 지지를 얻고 ‘포계(砲契)’라는 포수 권익단체를 만들어 대장까지 됐다.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직후 강원도 회양군서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다. 이유는 일제의 총포기화류 일제 단속법이 발령돼서였다. 사냥을 그만뒀을 때도 ‘이 총으로 짐승이 아닌 왜놈들을 사냥하겠다’는 다짐으로 구국운동을 하는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수 시절에 갈고 닦은 사격술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된 것이다.

야사에 따르면 ‘수십명을 쏴 죽이고 돌아왔다’는 말도 있다. 북상하던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계해 일본군과 3차례 전투에 들어갔으나 1896년 이후 을미의병의 기세가 사그라들자 홍 장군 역시 의병을 해체하고 귀향해 다시 산에서 포수 생활을 시작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을사늑약 체결 시점에는 의병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전후한 시기에 정미의병이 시작되고 일제가 국내 포수들을 대상으로 총포 및 화약류 단속령에 따라 강제 총기 수거령으로 생계까지 막막해지자 함경남도 갑산 일대의 포수들을 모아 다시 궐기했다.

홍 장군은 최대 600~700명으로 생각되는 의병대를 이끌고(대대장) 주로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를 무대로 하는 유격전을 벌였다. 이 시기 일본 헌병대 및 일본 육군 정규부대를 상대로 크고 작은 37회의 전투를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1908년 4월 일제에 붙잡힌 아내가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다. 홍 장군의 장남 홍양순도 6월의 함경남도 정평배기 전투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홍양순은 원래 어머니와 함께 일제의 회유 협박의 대상이었다. 홍양순이 홍 장군에게 “이제 그만 투항하시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홍범도는 그 자리서 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면서 “네가 지금 왜놈들 앞잡이가 돼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러 왔느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평양 양반집 머슴살이…불우하게 태어나
절서 한국사 공부 마치고 나와 독립운동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의병 항쟁 여건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이 시기 국내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의 일반적인 조류에 따라 홍 장군 역시 1911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하는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해서 수시로 월경해 접경지대의 친일파 및 일본 군경을 괴롭히는 유격전을 수행했다.

홍 장군이 훗날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블라디보스토크였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혁명의 저지하기 위해 국제 간섭군이 러시아에 진주(시베리아 내전)할 때 일본군이 연해주에 진주했다. 일본군은 이 기회를 틈타 홍 장군을 포함한 연해주 소재 조선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소탕하려 했다.

이후 함경북도로 진출해 1919년 10월 함경남도 혜산진 일대서의 유격전 성과로 지명도를 높인 그는 1920년 봉오동 일대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결성한 대한북로군독부 예하 북로 제1군 사령부장(부사령관)으로 선출됐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치르고 그로부터 4개월 뒤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활약했다. 청산리 전투의 주도적인 인물로는 김좌진 장군이 있다. 계속된 일본군의 토벌전 및 만주 군벌과의 충돌로 홍 장군을 포함한 독립군 세력은 소련 영내로 탈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서 제국주의에 탄압받던 소수민족과 연대하던 소련의 방침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곧 홍 장군은 레닌, 트로츠키와 독대해 마우저 권총을 선물받을 정도로 소련 한국계의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자유시 참변은 소련 측의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하자는 홍 장군의 방침을 반대한 사람들의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 가담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1921년 연해주 및 시베리아로 후퇴한 독립군은 결국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유시로 이동했으며 이 시기 홍 장군은 그간의 무훈으로 새로 창설된 대한독립군단 부총재가 돼있었다. 하지만 곧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대한의용군 측 독립군 일부가 목숨을 잃었다.

다만 홍 장군 측 부대는 이미 자유시서 무장해제한 상태였기에 사상자는 없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관한 군사재판서 그는 고려혁명군사법원 재판관의 위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가 지지한 것은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이 아니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이 조직한 고려혁명군정의회 주도의 독립군 통합이었다.

자유시 참변서 무장해제당한 쪽도 같은 사회주의 계열의 상해파 고려공산당이었고 오히려 상해파가 러시아공산당 극동국의 후원을 받았던 단체다. 애초 1921년 당시 소련은 수립되지도 않았다. 이르쿠츠크파가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후원을 받은 것을 두고 소련공산당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중 모스크바와 가까웠던 것은 상해파였다.

제2의 무대
러시아 진출

홍 장군만 이르쿠츠쿠파로 이동한 것도 아니다. 간도서 같이 온 지청천, 안무, 최진동 장군 등도 모두 상해파에 있다가 이르쿠츠쿠파로 이동했다. 이들 모두 독립군 통합의 필요성과 이르쿠츠크파가 보유한 명분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2년 일본의 연해주 간섭군 철수를 조건으로 일본이 요구한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해산이 이뤄지고 나서, 결국 홍 장군 이하 공산당 측 독립군은 무장을 해제했다. 다른 동료들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돌아갈 곳도 가족도 없던 홍 장군은 결국 러시아에 남아 제2의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1923년 8월 하바롭스크서 홍 장군은 사할린부대 출신 독립운동가 김창수와 김오남에게 자유시 참변으로 동료들을 죽게 한 배신자라는 이유로 불시에 공격을 당해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홍 장군은 레닌으로부터 받은 권총으로 이들을 사살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레닌의 증명서 덕에 석방됐다고 한다.

홍 장군은 그간의 무훈으로 얻은 인망에 힘입어 1923년 연해주 남부서 한인 콜호즈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됐고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이후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중 1명으로서 지속적으로 활동했으나,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지시한 고려인 강제 이주로 당시 소련 영토였던 카자흐스탄 SSR로 이주했다.

1962년 10월25일 대한민국 정부는 홍 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했는데, 현재의 건국훈장 대통령장이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구소련서 독립한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해 송환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당시 남북한 대사관 간에 외교전이 거세게 일어났다고 한다.

홍 장군의 유해 송환을 남한보다도 북한이 앞서서 추진했다. 이미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홍 장군의 유해를 북한으로 송환하겠다고 했지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나서서 나서서 이를 거부했다.

전 주영북한공사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뒤 북한은 카자흐스탄에 학교도 세우고 교사들도 파견하며 고려인 예술단도 평양에 초청했으나 전반적인 고려인 사회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일부는 광복 이후 소련군이 주둔한 북한 지역으로 귀환했고 6·25 전쟁에도 조선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이후 김일성의 독재 권력 구축 과정서 숙청돼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오게 된 이도 적지 않았다.

두 번째 훈장
타당성 검토

앞서 2021년 8월12일 청와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 토카예프의 방한과 연계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돼있는 홍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해 봉환을 위해 국가보훈처장 황기철을 특사로 하는 특사단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했다.

이 특사단에는 배우 조진웅도 동행했다. 조진웅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그동안 영화 <암살>과 <대장 김창수> 등에 출연하면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숭고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홍 장군의 유해를 송환하는 특사단에 끼게 된 것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이자 특사단의 일원이던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제안에 따른 것인데 우 의원이 그를 추천했다.

윤석열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논란이 일게 됐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은 이전을 강행하되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건드리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흉상 이전 문제는 국방부와 육사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인 대통령실서도 훈장과 관련한 내부 검토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개입돼 중복 서훈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두 번째 받은 훈장(대한민국장)에 대해서는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홍 장군과 여운형 선생이 받은 중복 서훈의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홍 장군과 여 선생을 ‘유이한’ 중복 서훈 사례라고 밝혔지만, 보훈부 독립유공자 현황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장을 포함해 두 차례 서훈이 이뤄진 사례는 유관순 열사까지 3명이다.

홍 장군은 1962년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장(건국훈장 2등급)을 받았고, 2021년에는 국민통합과 고려인 민족 정체성 형성을 이유로 대한민국장(건국훈장 1등급)을 받았다. 여 선생은 2005년 독립운동으로 대통령장을, 2008년 해방 후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레닌에게 인정받은 고려인 지도자 ‘공산당 가입’
정권 바뀌자 뒤집힌 평가 국방부 사실관계도 몰라

“동일 공적에 대해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는 상훈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이에 견줘 유 열사는 독립운동 공적으로 1962년 독립장(건국훈장 3등급)을 받은 뒤 ‘활동에 비해 서훈의 격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동일 사유로 2019년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정작 상훈법의 중복 서훈 잣대에 해당하는 인물은 유 열사지만 이념적 색채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무렵까지만 해도 육사에 있는 홍 장군 흉상만 이전하고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그대로 두는 쪽으로 대략적인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주말 동안 기류가 바뀌면서 같은 달 28일에는 국방부 앞 흉상에 대해서도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또다시 존치하는 방향으로 유턴을 한 셈이다.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 문제 역시 졸속으로 내놨다가 혼선만 노출한 끝에 사실상 백지화되는 분위기다. 박종선 육군사관학교(육사) 총동창회장은 홍 장군이 회개하지 않았다며 종교를 언급했다. 그는 “회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또 나라에 끼친 공적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사 49대 교장을 지낸 박 총동창회장은 지난달 31일 MBC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육사 교정에 설치했던 홍 장군 흉상 철거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찬반 논란이 가열되자 지난달 29일, 육사 총동창회는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 참전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철거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박 총동창회장은 홍범도 장군이 소련군 활동에도 불구하고 과거 박정희정부와 박근혜정부서 훈장을 추서하고, 해군 잠수함 이름에 홍범도함이라는 이름도 붙였다고 보는 이유에 관해 “박정희정부 때는 소련과 수교 전이었기에 공산주의 전력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각서 제기된 백선엽 흉상 설치 주장에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박 동창회장은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회개하면 봐주지 않느냐”며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은 했지만, 소련군에 입적해 연금을 받다 돌아가신 분이고 전향도 안 했다. 백선엽 장군은 일본군 장군은 했지만, 광복 이후엔 대한민국을 위해 백살 넘도록 헌신하다 돌아가셨다”고 비교했다.

정부 바뀌자
달라진 대우

2018년 홍 장군 흉상 설치 당시엔 총동문회가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를 두고 “흉상이 건립될 때엔 동문들이나 총동창회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독립기념관에 갔으면 더 좋겠고, 육사에 두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며 “(대체할 흉상으로는)역사적으로 이견이 없는 사람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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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