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시 꺼내진 홍범도

여의도에 어슬렁거리는 ‘백두산 호랑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독립유공자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가 시끄럽다. 갈등에 이어 역사 왜곡 논란으로 번졌다.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대통령실이 대못을 박았다. 사실상 ‘홍범도 지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답변 태도로 일관하던 전하규 대변인의 모습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삶은 부유하지 않았다. 1868년 평안남도 평양 서문에 위치한 무열사 앞마을의 양반집서 머슴살이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생지가 현재 기준 평안남도 양덕군, 자강도 자성군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홍 장군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머슴살이하던 아버지는 그가 9세 때 세상을 떠났다.

불우한 시절
혼자 성장해

혼자서 10대를 보내야 했던 홍 장군은 자신의 뿌리를 모른 채 다른 양반집에 머슴으로 보내졌다. 10대 중반이었던 1883년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에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상관을 살해하고 탈영했다.

이후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됐다. 신계사에서의 생활은 홍 장군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생 교육을 못 받았던 홍 장군은 신계사에서 글을 깨치고 처음으로 한국사를 접했다. 당시 홍 장군이 알았던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었다고 한다.

홍 장군이 출가할 때 상좌였던 승려 지담이 수원 사람으로 이순신 가문인 덕수 이씨였다. 환속 이후 신계사를 떠나 오갈 데가 없게 돼 처가가 있는 북청서 아내와 자식을 만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북청에서는 한동안 제지소서 일했으나 1886년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를 말다툼 끝에 살해하고 도주해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서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시기까지 10년 동안 평범한 사냥꾼으로 생활했다. 그는 총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일대 포수들에게 지지를 얻고 ‘포계(砲契)’라는 포수 권익단체를 만들어 대장까지 됐다.

1895년 을미의병 발생 직후 강원도 회양군서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다. 이유는 일제의 총포기화류 일제 단속법이 발령돼서였다. 사냥을 그만뒀을 때도 ‘이 총으로 짐승이 아닌 왜놈들을 사냥하겠다’는 다짐으로 구국운동을 하는 계기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수 시절에 갈고 닦은 사격술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된 것이다.

야사에 따르면 ‘수십명을 쏴 죽이고 돌아왔다’는 말도 있다. 북상하던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계해 일본군과 3차례 전투에 들어갔으나 1896년 이후 을미의병의 기세가 사그라들자 홍 장군 역시 의병을 해체하고 귀향해 다시 산에서 포수 생활을 시작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을사늑약 체결 시점에는 의병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전후한 시기에 정미의병이 시작되고 일제가 국내 포수들을 대상으로 총포 및 화약류 단속령에 따라 강제 총기 수거령으로 생계까지 막막해지자 함경남도 갑산 일대의 포수들을 모아 다시 궐기했다.

홍 장군은 최대 600~700명으로 생각되는 의병대를 이끌고(대대장) 주로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를 무대로 하는 유격전을 벌였다. 이 시기 일본 헌병대 및 일본 육군 정규부대를 상대로 크고 작은 37회의 전투를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1908년 4월 일제에 붙잡힌 아내가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다. 홍 장군의 장남 홍양순도 6월의 함경남도 정평배기 전투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홍양순은 원래 어머니와 함께 일제의 회유 협박의 대상이었다. 홍양순이 홍 장군에게 “이제 그만 투항하시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홍범도는 그 자리서 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면서 “네가 지금 왜놈들 앞잡이가 돼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러 왔느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평양 양반집 머슴살이…불우하게 태어나
절서 한국사 공부 마치고 나와 독립운동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의병 항쟁 여건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이 시기 국내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의 일반적인 조류에 따라 홍 장군 역시 1911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하는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해서 수시로 월경해 접경지대의 친일파 및 일본 군경을 괴롭히는 유격전을 수행했다.

홍 장군이 훗날 공산주의 독립운동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블라디보스토크였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혁명의 저지하기 위해 국제 간섭군이 러시아에 진주(시베리아 내전)할 때 일본군이 연해주에 진주했다. 일본군은 이 기회를 틈타 홍 장군을 포함한 연해주 소재 조선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소탕하려 했다.

이후 함경북도로 진출해 1919년 10월 함경남도 혜산진 일대서의 유격전 성과로 지명도를 높인 그는 1920년 봉오동 일대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결성한 대한북로군독부 예하 북로 제1군 사령부장(부사령관)으로 선출됐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치르고 그로부터 4개월 뒤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활약했다. 청산리 전투의 주도적인 인물로는 김좌진 장군이 있다. 계속된 일본군의 토벌전 및 만주 군벌과의 충돌로 홍 장군을 포함한 독립군 세력은 소련 영내로 탈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서 제국주의에 탄압받던 소수민족과 연대하던 소련의 방침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곧 홍 장군은 레닌, 트로츠키와 독대해 마우저 권총을 선물받을 정도로 소련 한국계의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자유시 참변은 소련 측의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하자는 홍 장군의 방침을 반대한 사람들의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 가담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1921년 연해주 및 시베리아로 후퇴한 독립군은 결국 소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유시로 이동했으며 이 시기 홍 장군은 그간의 무훈으로 새로 창설된 대한독립군단 부총재가 돼있었다. 하지만 곧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대한의용군 측 독립군 일부가 목숨을 잃었다.

다만 홍 장군 측 부대는 이미 자유시서 무장해제한 상태였기에 사상자는 없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관한 군사재판서 그는 고려혁명군사법원 재판관의 위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가 지지한 것은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이 아니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이 조직한 고려혁명군정의회 주도의 독립군 통합이었다.

자유시 참변서 무장해제당한 쪽도 같은 사회주의 계열의 상해파 고려공산당이었고 오히려 상해파가 러시아공산당 극동국의 후원을 받았던 단체다. 애초 1921년 당시 소련은 수립되지도 않았다. 이르쿠츠크파가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후원을 받은 것을 두고 소련공산당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중 모스크바와 가까웠던 것은 상해파였다.

제2의 무대
러시아 진출

홍 장군만 이르쿠츠쿠파로 이동한 것도 아니다. 간도서 같이 온 지청천, 안무, 최진동 장군 등도 모두 상해파에 있다가 이르쿠츠쿠파로 이동했다. 이들 모두 독립군 통합의 필요성과 이르쿠츠크파가 보유한 명분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2년 일본의 연해주 간섭군 철수를 조건으로 일본이 요구한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해산이 이뤄지고 나서, 결국 홍 장군 이하 공산당 측 독립군은 무장을 해제했다. 다른 동료들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돌아갈 곳도 가족도 없던 홍 장군은 결국 러시아에 남아 제2의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1923년 8월 하바롭스크서 홍 장군은 사할린부대 출신 독립운동가 김창수와 김오남에게 자유시 참변으로 동료들을 죽게 한 배신자라는 이유로 불시에 공격을 당해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홍 장군은 레닌으로부터 받은 권총으로 이들을 사살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레닌의 증명서 덕에 석방됐다고 한다.

홍 장군은 그간의 무훈으로 얻은 인망에 힘입어 1923년 연해주 남부서 한인 콜호즈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됐고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이후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중 1명으로서 지속적으로 활동했으나,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지시한 고려인 강제 이주로 당시 소련 영토였던 카자흐스탄 SSR로 이주했다.

1962년 10월25일 대한민국 정부는 홍 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했는데, 현재의 건국훈장 대통령장이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구소련서 독립한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해 송환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당시 남북한 대사관 간에 외교전이 거세게 일어났다고 한다.

홍 장군의 유해 송환을 남한보다도 북한이 앞서서 추진했다. 이미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홍 장군의 유해를 북한으로 송환하겠다고 했지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나서서 나서서 이를 거부했다.

전 주영북한공사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뒤 북한은 카자흐스탄에 학교도 세우고 교사들도 파견하며 고려인 예술단도 평양에 초청했으나 전반적인 고려인 사회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 일부는 광복 이후 소련군이 주둔한 북한 지역으로 귀환했고 6·25 전쟁에도 조선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이후 김일성의 독재 권력 구축 과정서 숙청돼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오게 된 이도 적지 않았다.

두 번째 훈장
타당성 검토

앞서 2021년 8월12일 청와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 토카예프의 방한과 연계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돼있는 홍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해 봉환을 위해 국가보훈처장 황기철을 특사로 하는 특사단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했다.

이 특사단에는 배우 조진웅도 동행했다. 조진웅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그동안 영화 <암살>과 <대장 김창수> 등에 출연하면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숭고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홍 장군의 유해를 송환하는 특사단에 끼게 된 것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이자 특사단의 일원이던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제안에 따른 것인데 우 의원이 그를 추천했다.

윤석열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논란이 일게 됐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은 이전을 강행하되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건드리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흉상 이전 문제는 국방부와 육사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인 대통령실서도 훈장과 관련한 내부 검토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개입돼 중복 서훈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두 번째 받은 훈장(대한민국장)에 대해서는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홍 장군과 여운형 선생이 받은 중복 서훈의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홍 장군과 여 선생을 ‘유이한’ 중복 서훈 사례라고 밝혔지만, 보훈부 독립유공자 현황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장을 포함해 두 차례 서훈이 이뤄진 사례는 유관순 열사까지 3명이다.

홍 장군은 1962년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장(건국훈장 2등급)을 받았고, 2021년에는 국민통합과 고려인 민족 정체성 형성을 이유로 대한민국장(건국훈장 1등급)을 받았다. 여 선생은 2005년 독립운동으로 대통령장을, 2008년 해방 후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레닌에게 인정받은 고려인 지도자 ‘공산당 가입’
정권 바뀌자 뒤집힌 평가 국방부 사실관계도 몰라

“동일 공적에 대해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는 상훈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이에 견줘 유 열사는 독립운동 공적으로 1962년 독립장(건국훈장 3등급)을 받은 뒤 ‘활동에 비해 서훈의 격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동일 사유로 2019년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정작 상훈법의 중복 서훈 잣대에 해당하는 인물은 유 열사지만 이념적 색채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당초 지난달 25일 무렵까지만 해도 육사에 있는 홍 장군 흉상만 이전하고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그대로 두는 쪽으로 대략적인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주말 동안 기류가 바뀌면서 같은 달 28일에는 국방부 앞 흉상에 대해서도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또다시 존치하는 방향으로 유턴을 한 셈이다.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 문제 역시 졸속으로 내놨다가 혼선만 노출한 끝에 사실상 백지화되는 분위기다. 박종선 육군사관학교(육사) 총동창회장은 홍 장군이 회개하지 않았다며 종교를 언급했다. 그는 “회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또 나라에 끼친 공적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사 49대 교장을 지낸 박 총동창회장은 지난달 31일 MBC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육사 교정에 설치했던 홍 장군 흉상 철거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찬반 논란이 가열되자 지난달 29일, 육사 총동창회는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 참전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철거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박 총동창회장은 홍범도 장군이 소련군 활동에도 불구하고 과거 박정희정부와 박근혜정부서 훈장을 추서하고, 해군 잠수함 이름에 홍범도함이라는 이름도 붙였다고 보는 이유에 관해 “박정희정부 때는 소련과 수교 전이었기에 공산주의 전력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각서 제기된 백선엽 흉상 설치 주장에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박 동창회장은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회개하면 봐주지 않느냐”며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은 했지만, 소련군에 입적해 연금을 받다 돌아가신 분이고 전향도 안 했다. 백선엽 장군은 일본군 장군은 했지만, 광복 이후엔 대한민국을 위해 백살 넘도록 헌신하다 돌아가셨다”고 비교했다.

정부 바뀌자
달라진 대우

2018년 홍 장군 흉상 설치 당시엔 총동문회가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를 두고 “흉상이 건립될 때엔 동문들이나 총동창회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독립기념관에 갔으면 더 좋겠고, 육사에 두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며 “(대체할 흉상으로는)역사적으로 이견이 없는 사람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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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