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변신과 변심 사이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2.27 12:56:49
  • 호수 1355호
  • 댓글 0개

“자기가 침 뱉은 자리에 앉다니…”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인생에서 기회는 꼭 세 번은 오기 마련이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에게 국민의힘 합류는 기회일지 모른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지원군으로 나선 신 대표는 김한길 새시대준비 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움직였다고 밝혔다.

결국 자신이 침 뱉은 자리에 앉은 꼴이 됐다. 여성인권에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냈던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국민의힘에 합류했다. 여성인권, 성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신 대표가 영입되자 당내 분열까지 일어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전격 합류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불리는 신 대표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직속 새시대준비위원회에 합류했다. 신 대표는 “새 시대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데 동참하고자 마음먹었다”고 합류 이유를 밝혔다.

신 대표는 이번 영입 제안을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윤 후보는 강력하게 법치를 준수하는 분인 만큼 국민을 위한 행복 추구 의지가 보였다”며 “국민의힘에 몸담지는 않더라도 시민으로서, 새시대준비위 부위원장으로서 윤 후보를 밀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합류 배경에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신 대표를 영입한 것은 2030세대 표심이 이번 대선의 캐스팅 보트로 떠오른 상황에서 2030 여성 표심을 공략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신 대표의 영입이 당내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신 대표는 그동안 국민의힘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달 24일 트위터를 통해 “국힘은 페미니스트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5월 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젠더 갈등’을 주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영입이 발표된 지난 20일, 신 대표 영입에 대해 이 대표는 “의사를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이수정 교수 (영입)때와 마찬가지로 당의 기본적인 방침에 위배되는 발언을 하면 제지와 교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영입에 대해 노골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국민의힘 핵심지지 기반은 60대 이상 고령층과 함께 2030세대 남성층, 이른바 ‘이대남’이다. 이대남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 대표는 이 대표가 작은 정부론 등을 설파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자 지난 7월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 공약으로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정치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반페미니즘’ 최전선에 섰던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신 대표 영입에 공개 반대를 표명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신 대표 영입을 두고 “페미니즘을 추가하면 젠더 갈등은 해소되고 청년 지지층이 더 오를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생각일 것”이라며 “심각성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지적했다. 

“윤석열과 새 시대 만든다”
갑자기 돌아선 그녀는 왜?


이어 “젠더 갈등은 촛불이 아니라 산불이다. 산불에 바람을 불어넣었으니 갈등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를 것”이라며 “젠더 갈등을 가볍게 보는 국민의힘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의 시선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신 대표의 국민의힘 영입 소식이 전해지자 직접적인 논평은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신 대표의 영입에 대해 반대와 비판이 나오는 상황을 일단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민주당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가 의미하는 새시대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 하나, 요술에 넘어간 자기 부정의 극치를 보여준 젊은 정치인 하나, 국힘의 주류도 아닌 곁가지에 붙들려 결국 쓸려갈 미래 하나”라고 글을 올렸다.

신 대표가 국민의힘에 영입된 것이 자기부정이며 향후 신 대표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용만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민주당 다이너마이트 청년선대위는 ‘조폭과 양아치 중에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10월7일)’ ‘거대 양당 간의 권력 돌려 먹기로부터 이번 선거를 지킬 수 있게 담대한 대화의 장을 엽시다(11월4일)’ 등 신 대표의 SNS 글을 언급하며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라고 논평했다. 

신 대표가 페미니즘과 소수자 인권,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해 밝혀왔던 가치 지향과 정반대 기조의 정당을 택했다는 의견이다.

정의당도 신 대표에 대해 “변절”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강민진 정의당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씨가 국민의힘으로 가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며 “신씨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며 윤석열 후보를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나, 국민의힘 정권이나 다를 게 있느냐”고 지적했다.

진보 정당과 여성계에서도 신 대표에 행보에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페미니즘당 이가현 창당모임 공동대표는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마음이 급했던 게 아닐까. 매번 선거에서 질 때마다 ‘지는 선거를 계속한다’는 패배감이 그만큼 컸던 걸까”라며 “그럼에도 결국 '대국민 사기극'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신 대표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충돌과 대립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풍경은 느티나무도 있고, 작은 꽃도 있는 다양하지만 공정할 수 있는 정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후보도 아침 회의 때 ‘다른 얘기라도 조율하고 협의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며 “협력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30 여성 
표심 잡기

신 대표가 대중에게 각인된 건 2018년이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신 대표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초록색 배경에 포스터로 유권자에게 눈길을 끌었다. 

5월 당시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자 선거 벽보가 게시됐다. 강남구 21개, 동대문구 1개, 노원구 1개, 구로구 1개, 영등포구 1개, 서대문구 1개, 강동구 1개 등 총 27개 선거 벽보가 훼손됐다.


선거벽보 훼손은 도난부터 날카로운 물건으로 얼굴 특정 부위에 흠집을 내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행위까지 다양했다. 온라인상에서도 벽보에 있는 포스터에 신 대표 눈빛이나 표정 등을 두고 저급한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혼자서 28개나 되는 벽보를 훼손한 30대가 검거됐다. 전부 신 대표의 벽보를 훼손한 것은 아니고 인지연 후보의 것도 훼손했다고 밝혔다. 여성인권이 신장되면 자신의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당시 신 대표 선거 결과는 8만2874표를 받아 안철수 바로 다음인 4위에 올랐으며, 전체 표 중 1.7%를 득표했다. 이는 원내 정당인 정의당, 민중당, 대한애국당 후보를 모두 제친 성적이다. 정의당 소속 김종민 후보(8만1664표, 1.6%)를 약 1200표라는 간소한 차이로 이겼다.

신 대표는 여성이슈 등 현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신 대표는 “한 달만 더 있었다면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자도 이겼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선거 다음 날 언론사 인터뷰만 11개를 진행했다고 한다. 신 대표는 선거 종료와 함께 6600여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신 대표의 추진력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1990년 6월20일 인천시 강화군에서 태어난 신 대표는 중학교 시절 ‘한국청소년모임’ 대표로 두발 자유 운동을 한 적 있다. 


2000년대에도 두발 규제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교육부가 각 학교에 두발 자율화를 권고한 적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세 주체가 함께 논의해서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교칙을 정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교사나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규정을 아주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두발 제한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귀도 뚫을 수 있고 파마도 자유롭게 했다. 중학생이 되니까 머리를 귀밑 4㎝로 자르라 했다. 제가 다니던 여중에서는 심지어 양말도 몇 번을 접어라, 속옷도 베이지색이나 하얀색만 입어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용돈 모아서 배지 만들고 학교에서 팔았다”고 말했다. 

두발 자유화 배지를 학우들에게 100원에 팔기도 한 신 대표는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가기도 한 일화가 있다. 이후 연세대학교 산하 서울시립 청소년미래진로센터라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통해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학사를 졸업했다.

2011년 민주노동당에 잠시 입당한 뒤 출당을 했고 이듬해 3월 녹색당 입당해 정계 입문했다. 2013년에는 오늘공작소라는 청년기업을 차리기도 했다.

2015년 신 대표는 녹색당 비례대표 5번 후보로 나선다. 사회적기업 ‘이야기꾼의 책공연’에서도 재직한 신 대표는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으로도 활동했으며, ‘사회적경제’ ‘풀뿌리운동’ ‘청소년인권’ ‘주거권’ 등의 실현을 주장했다.

기회 잡은 
페미니스트

다음 해 제20대 비례대표 방송토론회에 출연한 신 대표는 “우리 사회에 혐오가 너무 만연하다. 지금 이 토론회에도 인권의식 없이 차별적 정책을 내놓는 정당들이 자리해 있다”며 “기득권 정당들도 소수자를 위한 발언과 정책을 말하지 않는다. 녹색당은 불평등 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라고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녀평등을 위한 사회를 넘어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동안 무시당했던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인터섹스, 트렌스젠더를 위한 정책과 동성결혼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등의 단어를 방송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 대표를 비롯해 녹색당 비례대표 5명 모두 낙선했다. 신 대표는 같은 해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녹색당 서울시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6개월 뒤부터는 서울특별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 등을 2년간 역임했다. 

지난해 3월 신 대표는 녹색당을 탈당했다. 탈당 이유로는 당직자에게 성폭력을 겪었다고 밝혔다. 부산성폭력상담소와 부산여성단체연합 등은 신 대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에 대한 재판부의 엄벌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결국 해당 당직자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되고 법정 구속됐다. 

또 더불어시민당 구성 과정의 갈등도 있었다. 녹색당은 당원 투표를 거친 뒤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녹색당이 제시한 김기홍 후보에게 비례 공천을 주는 것을 꺼리면서 결국 녹색당을 패싱했다. 이와 관련해 신 대표는 참여 결정 자체부터가 잘못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서울 서대문갑 무소속후보로 등록하고 21대 총선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송은 래퍼 최삼이 제작에 참여했다. 특이하게 선거 당시 본인의 테마 색을 홀로그램 색으로 뽑았고 이때 ‘(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 달 신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다소 선전해 전·현직 국회의원인 우상호(민주당), 이성헌(국민의힘)과 함께 선관위 주관 서대문구 갑 토론회에 참석했다. 원내정당인 민중당과 우리공화당 후보는 여론조사 득표 미달로 참석하지 못했다. 

2018년 서울시장 4위 기록  
출마 때마다 선거벽보 훼손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벽보가 또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이번에도 다른 후보자 벽보는 멀쩡했으며, 유독 신 대표 벽보만 온전치 않았다. 후보자의 두 눈 부분이 불로 지져진 상태로 발견됐다.

해당 사건은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것이나, 서대문경찰서는 인근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활용해 용의자를 특정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당시 신 대표는 여성을 불안하게 만드는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일로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무렵 다른 젊은 페미니스트 후보자들에게도 유사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서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의 벽보가 훼손된 사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에서 여성의당 유세를 돕던 자원봉사자가 돌을 맞은 사건 등이 있다.

신 대표는 서울 서대문갑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3위(3.2%)의 성적을 거뒀다.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가 거둔 기록보다 높다.

지난 2월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철수와 금태섭에게 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2021년 4월7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신 대표는 거대 정당에서는 뒤로 밀려나는 여성 의제를 강조했다. 

신 후보는 출마 선언식에서 “한국 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재보궐선거를 치르고 있다.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력으로 재보선을 치르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는 눈부시게 평등한 대한민국을 여는 신호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시민에게 ▲성폭력과 혐오 범죄에 무관용 원칙 ▲서울시민인권헌장 발표 및 동반자 등록 조례 제정 ▲서울시 임금격차해소 및 여남동수제 도입 등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선거 당일 개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신 대표는 후원을 지지자들에게 요청했다. 부시장 후보들과 선거캠프 인사들이 출연해 정책, 선거 정국에 대한 방송을 했다. 당초 선거 빚이 6300만원 발생할 뻔 했지만 방송 덕분에 5000만원을 모아 만회했다.

결국 신 대표는 1만8039표를 받으며 득표율 0.37%를 받고 낙선했다. 여담이지만 허경영 후보에게는 지지 않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으나 득표 수도 허 후보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모를 당했다. 

당 안팎
손가락질

신 대표는 “유권자를 만나보면 신지예 개인에게 기대고 싶어 하더라.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고, 거기에 평생을 바칠 생각을 하고 있지만 특정 인물이 세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집단이 정치를 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좋은 정책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 한 인물이 정치를 오래하면 부패하게 된다.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을 오래하면 기득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9d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