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여행지 ②마포 문화비축기지

석유비축기지에서 문화를 만나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시작된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산업 시설이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석유탱크 5기가 들어섰다. 당시 탱크는 매봉산 사면을 파서 만들었고, 숲으로 가려져 무슨 시설인지 몰랐다.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었다. 아파트 5층 높이로 둘레 15~38m나 되는 탱크 5기에 휘발유, 경유, 등유 등 6907만ℓ를 저장했다고 한다. 이는 서울 시민이 한 달간 사용할 양이자, 자동차 400만대가 주유할 양이라고 한다.

2000년 12월, 마포석유비축기지는 폐쇄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가 결정됨에 따라 서울월드컵경기장 500m 이내에 있는 위험 시설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폐쇄된 후에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베일에 싸인 이곳은 2013년, 서울시가 버려진 시설 부지를 활용하고자 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시설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자원 재활용 방식으로 2017년, 드디어 시민에게 선보였다. 도심 속 생태 문화 공간 ‘문화비축기지’다.

다양한 볼거리

입구 안내동에서 리플릿 하나 들고 여유롭게 둘러보자. 문화비축기지는 T0부터 T6까지 7개 공간으로 나뉜다. T0(문화마당) 오른쪽은 시설물에 각종 설비를 지원·관리하는 설비동이다. 석유를 탱크로 보내는 역할을 하던 가압펌프장과 화재에 대비해 만든 소화액저장실이 있다.


가압펌프장은 스티븐 퓨지 작가의 ‘용의 노래’ 벽화가 그려진 ‘아트 스페이스 용궁’이 됐고, 소화액저장실은 휴식 공간이자 탱크와 이어지는 통로다.

탱크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는 T5(이야기관)는 미디어 전시를 하는 영상미디어실과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역사를 담은 전시실로 나뉜다. 당시 직원들은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의 악취, 1급 보안 시설에 발화점이 높아 정전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휘발유 탱크 점검 등 최악의 환경에서 근무해야 했다. 탱크 안팎, 콘크리트 옹벽, 매봉산 암반과 절개지 등 마포석유비축기지의 환경과 구조도 T5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T4(복합문화공간)는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렸으며, 공연과 전시 등이 열린다. 철판으로 이어진 원형 탱크에는 무게를 분산하는 철제 기둥과 천장 중심에서 우산살처럼 뻗어 나간 소화액관이 인상적이다. 천장 한쪽에 구멍이 있는데, 여기로 유일하게 빛이 스며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량을 계측하는 구멍으로, 탱크 외벽을 따라 가파르게 이어진 철제 계단에 올라가 구멍에 줄자를 넣어 유량을 쟀다고 한다.

콘크리트 옹벽과 탱크 사이로 난 길을 한 바퀴 걸어볼 수도 있다. 콘크리트 옹벽 틈으로 자라는 오동나무가 신비롭다. 당시 탱크에 위해를 가할 수 있어 제거했을 테니, 석유비축기지가 폐쇄된 후 자란 게 아닌가 싶다. 탱크 외벽을 따라 이어진 빨간색 소화액관, 탱크에 오르는 철제 계단, 유량 계측기 등이 남아 있다.

비상사태 대비 위해 지은 산업 시설
도심 속 생태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

T3(탱크원형)는 석유비축기지 당시 탱크 원형을 보존한 곳으로, 탱크 시설에 오르는 언덕도 남았다. 탱크에 오르는 계단석은 다른 탱크 작업할 때 나온 암반을 가공해 만들었다. 녹슨 철판을 입은 탱크와 탱크 지붕에 오르는 철제 계단, 탱크를 둘러싸는 콘크리트 방유제까지 원래 모습 그대로다.


현재 일부만 볼 수 있어 아쉽다. 탱크 원형이 그대로 남은 T3를 비롯해 마포석유비축기지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고, 현재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T3가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면, T1(파빌리온)과 T2(공연장)는 새롭게 재탄생한 공간이다. T1은 탱크를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바꿨다. 매봉산 암반이 한눈에 들어오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내부 분위기가 바뀐다. T2는 야외무대와 공연장으로 쓰인다.

얕은 경사를 따라 오르면 탱크 상부 야외무대다. 공연하면 야외무대 앞뒤에 있는 매봉산 암벽과 콘크리트 방유제가 소리의 울림을 묵직하게 만든다. 탱크 하부에 실내 공연장도 마련했다.

T6(커뮤니티센터)는 문화비축기지 중심에 있고, 규모도 가장 크다. T1과 T2를 해체할 때 나온 철판으로 내·외부를 꾸몄다. T1의 철판은 내장재로, T2의 철판은 외관으로 쓰였다. 둥그스름한 경사로를 따라 2층에 오르면 동그란 하늘을 만나는 ‘옥상마루’, 조용히 책 읽기 좋은 생태 도서관 ‘에코라운지’가 있다.

1층은 다양한 음료를 내는 카페 ‘Tank6’로 운영 중이다. 문화비축기지 실내 공간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야외 공원은 상시 개방한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서울특별시산악문화체험센터는 실내·외 암벽 등반장, 카페, 히말라야 14좌 모형과 연대별 해외 등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는 상설 전시실,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의 유품을 보여주는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된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어드벤처 체험이 가장 인기다.

‘하늘 오르기’는 최대 7m까지 높아지는 11개 기둥을 차례로 오른 뒤 하강하는 체험이다. ‘이벤트 클라이밍’은 높이 12m에 난도가 다른 3개 코스(백두산, 한라산, 설악산) 가운데 선택해 오른 뒤 종을 치고 내려온다.

2016년에 조성된 경의선숲길은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이어지는 선형 공원으로, 마포구를 대표하는 걷기 길이다. 2009년 서울역-문산역 구간에 광역전철이 개통하면서 지상에 남은 철길 구간(6.3km)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중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연남동 구간과 와우교 구간(홍대 앞 와우교-서강대역)이 눈에 띈다. 와우교 구간에는 기차가 지날 때마다 건널목 차단기가 내는 소리에 따라 이름 붙인 ‘땡땡거리’, 다양한 책을 전시·판매하는 책방 부스가 이어지는 ‘경의선책거리’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경의선숲길

양화대교 인근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도 가볼 만하다. 조선 말 역사에 오르내리는 외국인들이 잠든 곳이다.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결핵 퇴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만든 셔우드 홀,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한 어니스트 베델, 한국의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에 앞장선 호머 헐버트 등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위해 의료와 교육에 헌신한 이들의 묘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경의선숲길→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문화비축기지→서울특별시산악문화체험센터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경의선숲길→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망원정→서울함공원
둘째 날: 문화비축기지→서울에너지드림센터→서울특별시산악문화체험센터→하늘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마포문화관광 www.mapo.go.kr/site/culture/home
- 문화비축기지 http://parks.seoul.go.kr/template/sub/culturetank.do
- 서울특별시산악문화체험센터 www.seoulmccenter.or.kr
- 경의선숲길 https://parks.seoul.go.kr/template/sub/gyeongui.do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www.yanghwajin.net/v2/index.html  

문의 전화
- 마포구청 관광기획팀 02)3153-8655
- 문화비축기지 02)376-8410
- 서울특별시산악문화체험센터 02)306-8848
- 경의선숲길(서울특별시서부공원녹지사업소 경의선숲길공원 커뮤니티센터) 02)719-8830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02)332-9174

대중교통
[지하철] 수도권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서 국도1호선(월드컵로) 따라 월드컵경기장교차로까지 직진, 교차로 건너 오른쪽 길 약 150m.
*문의: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자가운전
강변북로 방면: 강변북로 월드컵경기장교차로 방면 우측→월드컵경기장교차로 지나 약 300m→우측 도로→유턴, 약 300m→문화비축기지
올림픽대로 방면: 올림픽대로에서 월드컵대교 지나 월드컵경기장교차로 방면 직진→월드컵경기장교차로 지나 약 300m→우측 도로→유턴, 약 300m→문화비축기지

숙박 정보
- 스탠포드호텔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58길, 02)6016-0001, www.stanfordseoul.com/intro/hotel
- L7호텔 홍대: 마포구 양화로, 02)2289-1000, www.lottehotel.com/hongdae-l7/ko.html
- 아만티호텔 서울 : 마포구 월드컵북로, 02)334-3111, www.hotelamanti.com


식당 정보
- 외양간(갈비살): 마포구 성미산로, 02)334-7942
- 고래국수(멸치국수): 마포구 양화로18안길, 02)3144-3113
- 소금집델리 망원(잠봉뵈르샌드위치): 마포구 월드컵로19길, 02)336-2617

주변 볼거리
한국영상자료원, 난지한강공원, 홍대걷고싶은거리, 망리단길,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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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