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 무시' 막가는 KBO 막전막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26 13:39:40
  • 호수 1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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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타석 뒷짐 지고 있다 헛스윙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헛스윙만 하고 있다. 야구계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데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구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대로 가면 한국프로야구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프로야구가 위기를 맞았다. 지난 9일 NC 다이노스 1군 선수단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두산 베어스 1군 선수단 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3일 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프로야구리그(이하 프로야구) 중단을 선언했다. 

사상 초유
리그 중단

3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KBO는 코로나19 확산, 선수단 내 확진자 발생, 다수의 밀접 접촉자 지정 등으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KBO가 ‘호텔 술판’의 전모를 다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구단과 공모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리그 중단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KBO는 지난 3월24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1 KBO 리그 코로나19 매뉴얼’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엔트리 등록 미달 등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긴급 실행위원회 및 이사회 요청을 통해 프로야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KBO는 지난 12일, 리그 중단 발표를 앞두고 해당 매뉴얼에 ‘코치진을 제외한 1군 엔트리의 50% 이상이 이탈하는 경우 리그를 중단할 수 있다’는 새로운 규정을 추가했다. 이를 근거로 프로야구를 전격 중단을 발표했다.

KBO가 발표했던 기존 매뉴얼에 따르면 현재 상황에서 전체 리그를 중단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KBO는 2021시즌이 시작하기 전 이미 확정된 입장을 시즌 도중에 변경했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변경된 매뉴얼에 KBO가 리그 중단을 발표한 것이 과연 정당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야구팬이 많은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를 위해 리그 중단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혹이 난무했다. 주력 선수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전력 누수를 우려했다는 것이다. KBO의 이번 결정은 기존의 규정을 휴짓조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긴 두산 베어스 선수 2명에 엄중경고를 내리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두산 베어스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 2명이 발생해 선수 17명, 코치진 14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등 리그 중단에 일조한 구단이다. 

정지택 KBO 총재가 두산 출신이어서 KBO가 사실상 두산 봐주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 총재는 두산건설 사장,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등 두산 계열사 요직을 거친 경영 전문가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두산 구단주 대행을 지냈다.

NC·두산…선수 확진자 발생해 중단
‘호텔 술판’ 알면서 축소·은폐 의혹

KBO는 한국프로야구를 총괄 관리하는 단체다. 여러 가지 역할을 맡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안정적으로 프로야구리그를 관리하는 것이다. 야구계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KBO 결정에 잡음이 불거져 나왔다. 


야구 인기가 식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말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발표때 2021 프로야구 개막 직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한 결과 34.1%만 프로야구에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2014년만 해도 성인 둘 중 1명(48%)은 야구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올해 조사 대상자 78%는 선호하는 팀도 없다고 대답했다. 

청년층이라 불리는 18세부터 29세까지의 답변은 야구 관계자들에게 숙제를 안겼다. 4명 중 1명(26%)만이 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13년 조사에서는 전체 평균(44%)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17~2019년 30% 내외, 작년과 올해는 20% 중반에 머물렀다.

2013년 때 20대였던 그들이 현재 30대가 되었으니 10대 유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대 대상으로 좋아하는 야구선수에 대해 물어도 68%가 좋아하는 선수가 없거나 선수 이름 자체를 몰랐다. 

올해 초 한 구단 관계자는 “야구장에 팬들이 오지 않는 건 입장 비율 제한과 코로나19 상황을 탓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야구장에 오지 않는 팬들이 야구 경기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프로야구가 ‘핫이슈’로 작용하지 않는단 건 오랜 기간 쌓았던 프로야구 인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단 경고등”이라며 큰 우려를 내비쳤다. 

프로야구 인기가 떨어진 데는 최근에 불거진 사건사고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최근 10년간 선수들의 불법 원정도박, 심판 금전 요구와 구단의 접대, 승부조작, 이면계약, 성추문, 폭행, 구단 직원 횡령과 사설토토 베팅, 금지 약물 복용 등이 매년 반복됐다.

“야구선수? 
몰라요!”

연이은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데 KBO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O는 사건이 터지면 원인이 무엇이고, 향후 어떤 대책을 펼지 깊이 고민하기보다 사태를 일단락하는 데 급급했다. 

KBO는 인기 스타 선수에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해 5월 KBO는 강정호의 음주운전에 대해 1년 유기실격(자격정지)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KBO 규약 151조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3회 이상 적발되면 3년 이상 유기 실격 처분이 내려지게 돼있다.

강정호가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킨 때는 2016년 12월2일이고 개정으로 해당 조항이 생긴 시점은 2018년 9월11일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KBO는 음주운전 조항을 적용할 수 없어 품위손상행위 조항을 근거로 징계 수위를 정했다.

KBO가 음주운전으로 ‘삼진아웃’을 당한 선수에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겨가면서 내린 솜방망이 처벌로 사실상 한국 복귀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정호는 프로야구 최초로 40홈런을 친 유격수였다. 김재박-이종범-박진만 등 유격수 계보를 잇는 선수로 주목받았고 최초로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선수기도 했다. 리그 흥행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 그러나 팬들은 차가웠다.

강정호의 거듭된 사과와 “국내 복귀 시 연봉을 사회환원하는 데 쓰겠다”는 의지도 보였지만, 결국 여론의 반대에 막혀 복귀가 무산됐다. 


야구팬들은 아무리 스타라도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그가 뛰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KBO의 솜방망이 처벌에 질타할 뿐이었다. 팬들은 정정당당한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싫어한다. 선수가 능력을 보여주는 데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금지 약물이다.

2011년 김재환, 2015년 최진행과 최경철 등이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으로 적발됐다. 김재환의 경우 2011 야구월드컵 출전 과정에서 적발됐지만, 이미 KBO도 자체 금지 약물 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작 1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김재환의 사례를 기점으로 퓨처스(2군)에서도 금지 약물 검사가 시작됐다. 4년 뒤 최진행은 30경기 출전 정지를 받은 반면 최경철은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들의 차이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이하 KADA) 개입 여부다. KBO 도핑 검사 및 징계는 2016년 KADA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2016년 이전 KBO 규정상 가장 무거운 징계는 30경기 출전 정지였다. 이마저도 김재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KADA는 KBO와의 협의하에 적발 횟수에 따라 1차(72경기)-2차(144경기)-3차(퇴출)의 징계 수위 및 관련 규정을 확정지었다. 이후 적발과 징계는 KADA의 몫이고, KBO는 관련 정보를 전달받을 뿐 징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약물 전력
MVP의 과거


2012시즌을 앞두고 김재환은 공식 석상에서 “실력으로 속죄하겠다”고 말해 야구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4년 뒤 김재환은 엄청난 활약을 했다. 2015시즌 0.235였던 타율이 1년 만에 0.325로 급상승했다. 홈런도 37개로 리그 3위, 타점도 124개로 리그 3위를 기록했다. 2018년에도 44개 홈런을 치며 홈런왕까지 등극했다. 

결국 2018시즌 MVP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기자들이 좋아하는 홈런, 타점 1위에 등극했고 다른 타격 지표도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기자단 투표로 뽑게 되는 MVP는 기자 양심에 따라 충분히 주지 않을 여지도 많았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김재환을 선택했다.

야구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미국, 일본야구 리그와 비교하며 약물 전력이 있는 최초 MVP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예전부터 KBO는 프로야구 간판스타들에 대한 징계가 약했다. 지난 2019년 LG 트윈스 선수 3명(차우찬, 임찬규, 오지환)이 호주 전지훈련 중 카지노에 들렀다. KBO 상벌위워회(이하 상벌위)는 세 선수에게 엄중경고 처분을 내렸다.

심수창은 이들과 함께 카지노에 갔지만, 실제 베팅은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이어 LG 구단엔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야구팬 사이에서 “KBO가 또 ‘갓중 경고’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이때 등장한 접두사 ‘갓(god)’은 ‘최고’라는 뜻이 아닌 ‘불 보듯 뻔한 결론’이라는, 비꼬는 의미로 붙인 것이었다. 야구 팬 사이에서 KBO의 엄중 경고는 이미 놀림감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갓중 경고의 역사’라는 글과 함께 역대 엄중 경고를 받은 사례를 나열한 자료가 공유되기도 했다. 엄중 경고를 받은 사유로 판정항의, 몸싸움, 선수단 관리 책임 등이 있으며 2013년에는 심판위원의 규정 미숙지 등이 있었다.

프로야구리그 규정에 프로야구 구단, 감독, 코치, 심판 위원, 기타 관련 해당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되면 정 총재가 ‘벌칙 내규’에 따라 징계를 가할 수 있다. 실제 제재를 내릴 때는 정 총재가 혼자 결정하기보다 총재 자문기관인 상벌위를 열어 수위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벌칙 내규 23개 중 엄중 경고라는 수위는 없다. 

매뉴얼 안 지키고 그저 솜방망이 징계?
반복되는 사건사고…급한 불끄기 급급

경우에 따라 제재금과 출장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엄중 경고도 받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선수는 따로 제재금을 내거나 출장정지를 당하지 않는다. 엄중 경고는 그냥 경고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각에선 KBO가 외부 시선을 의식해 엄중 경고를 내렸다고 시선도 존재한다. 제재를 통해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기보다 ‘우리가 이렇게 신경쓰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이라는 의미다. 엄중 경고는 벌칙 내규보다 더 센 표현이다.

이처럼 KBO는 야구팬들은 물론 다른 종목 스포츠팬들에게까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2004년 병역비리 사건, 2012년과 2016년 승부조작 사건 등 팬들의 실망을 저버리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도 KBO는 미흡한 대처로 질타를 받았다. 

이순철 야구 해설위원은 “(이번 사태 관련해)KBO가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야구선수는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이다.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있고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되는데 윤리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하면 팬이 야구장을 떠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 팬을 다시 모으는 건 정말 어렵다. 한국프로야구에 속해 있는, 야구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오 각성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거 안 하면 프로야구 망하는 건 순간”이라고 조언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KBO 관계자는 “(리그 중단과 관련해)새로운 규정을 추가한 건 맞지만 프로야구를 중단한 이유는 아니다. 기존 매뉴얼에 따라 중단시킨 것이고 새로운 규정은 향후 비슷한 사례를 대비해 신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단과 공모했다는 의혹도 억울하다. 방역당국에서 해당 선수에게 통보했고 경찰서에서 확진자 발표가 난 뒤 대응했다. (KBO가 호텔 술판 의혹과 관련해)축소나 은폐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보여주기식
엄중 경고

아울러 “음주운전과 관련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강정호 선수의 세 번째 음주운전은 2016년이었고 삼진아웃 규정이 생긴 시점은 2018년이었다. 2016년 당시(강정호는) KBO리그 소속이 아닌 메이저리그 소속이었기 때문에 삼진아웃 제도를 적용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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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