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레이스 막전막후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6월에 있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권을 두고 중진 의원들은 연일 신경전인데, 초선들이 이를 견제하며 당권에 나섰다. 국민의당 합당을 두고 지분 싸움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4·7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국민의힘 내부가 연일 뒤숭숭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떠난 후 당권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다.

축제 분위기
승자의 저주?

오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 대표는 당의 대선 승리를 이끌 중차대한 임무를 맡는다. 당권에 공식적인 출마 의사를 밝힌 의원은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군예산군)과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시갑)이다(지난 16일 기준). 이외에도 조경태(부산 사하을)·주호영(대구 수성갑)·권영세(서울 용산)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력 주자로 예상됐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지난 16일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치를 위해 물러서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야권 승리에 일조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원외에서는 김무성, 나경원 전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특히 나 전 의원의 경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직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이들이 저마다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을 두고 때 아닌 파장이 일기도 했다. 주 권한대행이 사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다. 그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을 결정하는 것은 “경기에 나설 선수가 룰을 정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던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미루는 주 권한대행의 ‘저의’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합당으로 성과를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논란에 주 권한대행은 “사익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맞섰다.

주 권한대행은 ‘선 통합론’에 힘을 싣었다. 합당 이후 지도체제를 또 논의하는 번거로움을 덜자는 심산으로 읽힌다. 당권 유력 주자로 꼽히는 중진들 역시 국민의당과 합당에는 전원 찬성했다.

축제 분위기도 잠시…자중지란
국민의당 합당은? 지분 문제도

정진석 의원은 “합당이 곧 자강”이라며 대통합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하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의 공식 결정기구인 비대위의 불만이 터졌다. 주 권한대행이 비대위와 논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비대위원은 “(합당 여부는)차기 지도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권한대행의 거취부터 결정하라”는 압박도 있었다고 한다.

신속한 화학적 결합을 강조했던 주 권한대행과 달리 국민의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제시한 ‘개별 입당’에는 선을 그었다. 정당 간의 가치 통합이 중요하다는 그간의 입장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야권 통합은 개개인의 의원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국민의당이 표방하고 있는 중도와 실용의 가치를 함께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시도당에 합당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또다시 ‘샅바 싸움’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설 합당이냐, 흡수 합당이냐 등 세부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신설 합당의 경우 당명, 로고, 정강정책 등을 바꾸기 위한 긴 진통이 필요하다. 지역위원장 등과 같이 지분 협상 문제도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2주 이내에 새 원내대표 선거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새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과 방식은 오는 26일 새 원내대표 선출에 따라 논의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호영 사퇴
포스트 김은?

현재까지는 권성동(4선‧강원강릉), 김기현(4선‧울산남구을), 김태흠(3선‧충남보령서천), 유의동 의원(3선‧경기 평택을) 등이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분리 선출로 규정을 바꾸면서 이번 경선은 러닝메이트 없이 원내대표 독자 경선으로 진행돼 초반부터 분위기가 치열하다.

일각에서는 당내 신인들이 당권에 나서야 한다는 ‘초선 역할론’이 제기된다. 보궐선거 승리의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서는 계파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 이탈한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극우와 손절하고, 중도층을 섭렵한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을 위해 새로운 인물이 나서야 승산이 있다는 논리다.

서병수 의원(부산 진구갑)은 당권 불출마 선언과 함께 “‘산업화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세대’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두 걸음 앞서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세대교체론에 가장 빠르게 화답한 이는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이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초선 의원총회에서 출마 의사를 타진,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당내 지역구 의원 중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로,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중진들에 대한 초선들의 견제라는 시선도 있다. 출마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중진의 무대로 여겨졌던 당 대표 선거에 초선이 도전장을 내민 것 자체가 사실상 파격이다.

반면 정치 경험이 부족한 초선이 당 대표가 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젊고 참신한 인물이 나서 개혁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게 초선 역할론의 명분이지만, 대선이 코앞이다. 그만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어느 때보다 조직력과 장악력이 필요할 때다.

하지만 56명의 초선들은 계파가 생기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조직력에서 벌써부터 밀리는 그림이다. 윤창현 의원은 “초선이라는 이유로 초선을 지지한다는 계파적 관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우리 입장은 계파를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내 기반의 약한 점도 치명적인 한계다. 이들이 당의 뼈대 깊은 중진들의 지원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현재 서병수, 정진석 의원을 제외하고는 ‘중진 불출마론’에 동조하는 움직임도 미미한 상황이다.

6월 전당대회
관전포인트는?

외곽에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이들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오히려 초선 의원이 차기 당 대표가 되는 것이 당을 위한 길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자강론’과도 맞닿아 있다. 실체가 없는 야권 대통합이 아닌 당의 쇄신과 개혁을 우선시하란 것이다. 사실상 보란 듯이 중진들을 ‘물 먹인’ 셈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는 범야권 대통합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힘을 받고 있다. 주로 초선 의원들과 일부 비대위원들이다. 이들은 정권교체만을 위한 화학적 결합을 반대한다. 이에는 이재오·홍준표·김무성·김문수 등 기성 보수의 세력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숨어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에 대해 ‘아사리판’이라며 맹비난했다. 임기 내내 참아왔던 김 전 위원장이 분노가 터진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위원장은 당의 수장이지만, 외부자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부자들이 그의 정당성을 저격했다.

김 위원장은 단독 플레이어다. 당내 세력이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좌파 2중대’ 등의 날선 비판이 계속됐고, 보수 원로들이 나서 사퇴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 당권을 두고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중진들의 견제는 상당했다. 김 전 위원장 면전에서 ‘언제 나가냐’던 중진의 모욕적 일화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잘난 사람들이 많아 더 있을 수가 없었다”며 “당 대표하고 싶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당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폭탄 발언에 중진들은 당혹스럽다. 권영세 의원은 “마시던 물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은 훌륭한 분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다시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돕겠다는 의미다. 김 전 위원장은 의미 없는 만남에 시간을 투자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 출마한 초선
중진에 ‘견제구’

그렇게 해서 부상한 것이 ‘제3지대론’이다. 최근 금태섭 전 의원은 신당 창당을 구상 중에 있다.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이 합류한다면, 그야말로 ‘강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확실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 때 김 전 위원장이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제 3지대론은 없다”고 수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불안함이 감지된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윤 전 총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그토록 부정했던 제3지대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당을 흔들려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의 예측을 두고 “상황이 있고 복잡해 입당 여부를 미리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전당대회에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새 지도부 선출에 당심이 아닌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윤 전 장관, 안 대표 등의 영입과 외연 확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 대표 경선의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30%에서 50~100%로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당원·선거인단 비율은 현재의 70%에서 0~50%로 줄어들게 된다. 하태경 의원은 100% 국민 전당대회로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파격적 제의도 했다.

중진 용퇴론
초선 역할론

다만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의사가 중요한 만큼 여론조사 비중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당원의 의견을 최소화하자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사실상 조직력을 갖춘 영남권 중진에 대한 견제구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 100%로 하자는 것은 당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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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