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레이스 막전막후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6월에 있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권을 두고 중진 의원들은 연일 신경전인데, 초선들이 이를 견제하며 당권에 나섰다. 국민의당 합당을 두고 지분 싸움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4·7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국민의힘 내부가 연일 뒤숭숭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떠난 후 당권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다.

축제 분위기
승자의 저주?

오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 대표는 당의 대선 승리를 이끌 중차대한 임무를 맡는다. 당권에 공식적인 출마 의사를 밝힌 의원은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군예산군)과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시갑)이다(지난 16일 기준). 이외에도 조경태(부산 사하을)·주호영(대구 수성갑)·권영세(서울 용산)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력 주자로 예상됐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지난 16일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기치를 위해 물러서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야권 승리에 일조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원외에서는 김무성, 나경원 전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특히 나 전 의원의 경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직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이들이 저마다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을 두고 때 아닌 파장이 일기도 했다. 주 권한대행이 사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다. 그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을 결정하는 것은 “경기에 나설 선수가 룰을 정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던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미루는 주 권한대행의 ‘저의’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합당으로 성과를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논란에 주 권한대행은 “사익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맞섰다.

주 권한대행은 ‘선 통합론’에 힘을 싣었다. 합당 이후 지도체제를 또 논의하는 번거로움을 덜자는 심산으로 읽힌다. 당권 유력 주자로 꼽히는 중진들 역시 국민의당과 합당에는 전원 찬성했다.

축제 분위기도 잠시…자중지란
국민의당 합당은? 지분 문제도

정진석 의원은 “합당이 곧 자강”이라며 대통합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하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의 공식 결정기구인 비대위의 불만이 터졌다. 주 권한대행이 비대위와 논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비대위원은 “(합당 여부는)차기 지도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권한대행의 거취부터 결정하라”는 압박도 있었다고 한다.

신속한 화학적 결합을 강조했던 주 권한대행과 달리 국민의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제시한 ‘개별 입당’에는 선을 그었다. 정당 간의 가치 통합이 중요하다는 그간의 입장을 강조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야권 통합은 개개인의 의원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국민의당이 표방하고 있는 중도와 실용의 가치를 함께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시도당에 합당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또다시 ‘샅바 싸움’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설 합당이냐, 흡수 합당이냐 등 세부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신설 합당의 경우 당명, 로고, 정강정책 등을 바꾸기 위한 긴 진통이 필요하다. 지역위원장 등과 같이 지분 협상 문제도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2주 이내에 새 원내대표 선거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새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과 방식은 오는 26일 새 원내대표 선출에 따라 논의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호영 사퇴
포스트 김은?

현재까지는 권성동(4선‧강원강릉), 김기현(4선‧울산남구을), 김태흠(3선‧충남보령서천), 유의동 의원(3선‧경기 평택을) 등이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분리 선출로 규정을 바꾸면서 이번 경선은 러닝메이트 없이 원내대표 독자 경선으로 진행돼 초반부터 분위기가 치열하다.

일각에서는 당내 신인들이 당권에 나서야 한다는 ‘초선 역할론’이 제기된다. 보궐선거 승리의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서는 계파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 이탈한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극우와 손절하고, 중도층을 섭렵한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을 위해 새로운 인물이 나서야 승산이 있다는 논리다.

서병수 의원(부산 진구갑)은 당권 불출마 선언과 함께 “‘산업화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세대’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두 걸음 앞서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세대교체론에 가장 빠르게 화답한 이는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이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초선 의원총회에서 출마 의사를 타진,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당내 지역구 의원 중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로,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중진들에 대한 초선들의 견제라는 시선도 있다. 출마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중진의 무대로 여겨졌던 당 대표 선거에 초선이 도전장을 내민 것 자체가 사실상 파격이다.

반면 정치 경험이 부족한 초선이 당 대표가 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젊고 참신한 인물이 나서 개혁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게 초선 역할론의 명분이지만, 대선이 코앞이다. 그만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어느 때보다 조직력과 장악력이 필요할 때다.

하지만 56명의 초선들은 계파가 생기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조직력에서 벌써부터 밀리는 그림이다. 윤창현 의원은 “초선이라는 이유로 초선을 지지한다는 계파적 관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우리 입장은 계파를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내 기반의 약한 점도 치명적인 한계다. 이들이 당의 뼈대 깊은 중진들의 지원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현재 서병수, 정진석 의원을 제외하고는 ‘중진 불출마론’에 동조하는 움직임도 미미한 상황이다.

6월 전당대회
관전포인트는?

외곽에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이들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오히려 초선 의원이 차기 당 대표가 되는 것이 당을 위한 길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자강론’과도 맞닿아 있다. 실체가 없는 야권 대통합이 아닌 당의 쇄신과 개혁을 우선시하란 것이다. 사실상 보란 듯이 중진들을 ‘물 먹인’ 셈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서는 범야권 대통합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힘을 받고 있다. 주로 초선 의원들과 일부 비대위원들이다. 이들은 정권교체만을 위한 화학적 결합을 반대한다. 이에는 이재오·홍준표·김무성·김문수 등 기성 보수의 세력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숨어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에 대해 ‘아사리판’이라며 맹비난했다. 임기 내내 참아왔던 김 전 위원장이 분노가 터진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위원장은 당의 수장이지만, 외부자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부자들이 그의 정당성을 저격했다.

김 위원장은 단독 플레이어다. 당내 세력이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좌파 2중대’ 등의 날선 비판이 계속됐고, 보수 원로들이 나서 사퇴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 당권을 두고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중진들의 견제는 상당했다. 김 전 위원장 면전에서 ‘언제 나가냐’던 중진의 모욕적 일화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잘난 사람들이 많아 더 있을 수가 없었다”며 “당 대표하고 싶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당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폭탄 발언에 중진들은 당혹스럽다. 권영세 의원은 “마시던 물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은 훌륭한 분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다시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돕겠다는 의미다. 김 전 위원장은 의미 없는 만남에 시간을 투자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 출마한 초선
중진에 ‘견제구’

그렇게 해서 부상한 것이 ‘제3지대론’이다. 최근 금태섭 전 의원은 신당 창당을 구상 중에 있다.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이 합류한다면, 그야말로 ‘강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확실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 때 김 전 위원장이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제 3지대론은 없다”고 수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불안함이 감지된다.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윤 전 총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그토록 부정했던 제3지대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당을 흔들려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 권한대행은 김 전 위원장의 예측을 두고 “상황이 있고 복잡해 입당 여부를 미리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전당대회에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새 지도부 선출에 당심이 아닌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윤 전 장관, 안 대표 등의 영입과 외연 확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 대표 경선의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30%에서 50~100%로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당원·선거인단 비율은 현재의 70%에서 0~50%로 줄어들게 된다. 하태경 의원은 100% 국민 전당대회로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파격적 제의도 했다.

중진 용퇴론
초선 역할론

다만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의사가 중요한 만큼 여론조사 비중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당원의 의견을 최소화하자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사실상 조직력을 갖춘 영남권 중진에 대한 견제구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 100%로 하자는 것은 당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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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