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합법과 불법 경계’ 교도소 수발 브로커 정체

“범털, 개털…출소 빼고 다 해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도소 안의 소식은 좀처럼 바깥으로 나오는 법이 없다. 대중매체에서 그리는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담장을 경계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사회. 다른 세상처럼 여겨지는 교도소지만 그 안에도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pixabay

우리나라는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에 의거,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2019년 9월 <시사저널>이 ‘포스터데이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0.9%에 그쳤다. 국민 10명 중 7명은 ‘법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국민 70%
법 불공정

교도소는 그나마 평등의 원칙이 남아있다고 여길만한 최후의 보루였다. 범죄를 저지르면 누구나 법에 따라 선고된 형량만큼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 교도소 안에서는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재벌·정치인 등 특권층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구절이 있다. 교도소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다른 재소자보다 더욱 평등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도소에 수감돼있다가 얼마 전 출소한 A씨는 “교도소에 무슨 평등이 있느냐”며 “(돈)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그 어떤 곳보다도 큰 게 교도소다.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뚜렷하다”고 말했다. 

현재 뇌혈관 질환으로 고생 중인 A씨는 수감 당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보내달라고 했던 자신을 교도관들이 12시간 넘게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수감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치소에 있을 당시 외부 의료진의 진료를 받은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재소자들은 일반적으로 ‘범털’과 ‘개털’로 나뉜다. 범털은 이른바 교도소 내 금수저, 개털은 흙수저를 뜻한다. 재벌·정치인 등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자리했던 범털들은 교도소에서도 의·식·주 등 모든 부분에서 특혜를 누린다.

2014년 유영철 성인만화 반입
2015년 전후로 크게 늘어났다

죄수복일지라도 잘 다림질된 옷을 입고, 바깥에서 공수해온 음식을 먹으며 독방을 사용하는 식이다. 2015년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범털들을 위한 접견 도우미, 이른바 ‘집사 변호사’의 존재를 보도하면서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집사 변호사는 변호인의 피의자·피고인 접견 횟수에 제한이 없는 점을 이용해 교도소를 수시로 드나들며 의뢰인의 잔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범털들은 집사 변호사를 이용해 개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자유를 누렸다.

범털과 개털로 크게 구분됐던 교도소 내 계층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범털들이 돈뿐만 아니라 권력, 사회적 지위 등에서 개털들과 차이를 보였다면, 개털들 사이의 계층은 철저히 돈으로 나뉘었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 ‘재무지(제)표 보내줄 종목’으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재소자 편지 일부다.

재소자들은 영치금 범위 내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구매물 리스트’를 보고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물건 값은 영치금에서 나가는 구조다. 영치금은 액수와 관계없이 접수가 가능하지만 재소자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개인당 300만원으로 한정된다. 

재소자들은 영치금을 이용해 세면도구, 화장품, 옷, 세탁용품, 신발, 과일, 채소, 식료품, 스낵, 음료수 등을 살 수 있다. ‘2021년 구매물품 코드 및 가격표’ 기준으로 고무신 3220원, 폼클렌징 3260원, 항소 이유서 360원, 참기름 2800원, 여름 이불 1만9610원 등의 가격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교도소 안에서는 영치금이 많은 재소자가 ‘왕’이다. 하지만 구매물 리스트 속 물품들로만 형성됐던 교도소 내 시장은 ‘수발업체’라는 특정 업종이 활성화되면서 확장되기 시작했다. 재소자들에게 외부 물품을 전문적으로 공급해주는 업체가 생긴 것이다.

돈에 따라
계층 구분

2014년 21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교도관의 도움을 받아 반입금지 물품인 성인 화보와 소설 등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유영철이 요구한 물품을 교도관에게 공급한 게 바로 수발업체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던 유영철은 수발업체에 성인 화보와 일본 만화, 성인 소설을 주문하면서 특정 교도관 앞으로 보내야 한다는 주의사항까지 적었다. 당시 유영철 사건으로 수발업체의 존재도 같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발업체가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2014~2015년 사이에 크게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전직 수발업체 관계자 B씨는 “2015년을 전후해 수발업체가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수발업체와 재소자는 편지로 소통한다. 재소자가 신문 광고 등을 보고 편지를 보내면 수발업체는 카탈로그 등의 안내문을 보내준다. 안내문에는 수발업체에서 재소자 대신 해줄 수 있는 일과 가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재소자가 그중 요구사항을 편지에 적어 보내면 수발업체가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심부름센터와 영업방식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교도소는 제한된 공간에 사람은 많은 구조이기 때문에 소문이 빠르다. 수발업체 입장에서는 1~2명의 재소자만 단골(?)로 확보해도 추가 고객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영치금 등 재소자가 가진 돈에 따라 계층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돈이 있는 재소자는 범털 부럽지 않은 수감생활이 가능하다. 

B씨는 “출소 빼고 다 된다”고 말했다. 성인 만화책·잡지 등의 서적, 커피·술 등의 외부 식료품이나 담배 같은 반입금지 물품이 수발업체를 통해 교도소로 흘러 들어가는 건 예삿일이라고 덧붙였다. 

펜팔·접견
주식·토토


재소자에게 사람을 소개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펜팔 서비스는 상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재소자는 5~10만원, 일반인은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B씨에 따르면 편지는 3회까지 보장돼있고, 그 이후에는 재소자와 상대의 의사에 따라 펜팔을 이어갈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실제 접견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와달라는 요구도 따라붙는다.
 

▲ ▲▲ 교도소에서 화폐로 통용되는 우표

수발업체는 재소자가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외부에서의 일도 맡는다. 재산을 처분해 달라거나 체포 과정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물건을 없애 달라는 요구도 많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일 경우 합의 문제를 의뢰하기도 한다. 재소자의 가족을 만나 말을 전달하는 일은 수발업체에서 흔하게 처리하는 업무 중 하나다.

주식 투자 및 스포츠 토토 등의 요청도 많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재소자의 편지에서 몇몇 기업의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소자가 편지로 특정 기업에 얼마를 투자해 달라고 요구하면 수발업체에서 그대로 해주는 식이다. 스포츠 토토 역시 같은 구조로 진행된다. 

최근에 생긴 한 수발업체는 선물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재소자는 이 서비스를 통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꽃이나 가방 등의 선물을 보낼 수 있다. 해당 수발업체 관계자는 “(재소자들이) 어머니나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결제는 ‘우표’로 이뤄진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에서 현금이나 수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표를 통해 거래한다. 이른바 교도소 안의 화폐인 셈이다. 전직 수발업체 관계자 B씨에 따르면 우표는 교도소 안에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통용된다.


B씨는 “10명가량이 함께 지내는 방에서 방장 역할을 하는 재소자가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는 재소자에게 우표로 용돈을 준다. 소지(사동 도우미)에게도 일종의 팁 형식으로 우표를 주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표가 화폐로 통용
현금 깡 영치금으로

2021년 구매물품 코드 및 가격표에 따르면 재소자는 10원권, 100원권, 380원권, 2480원권, 2980원권, 항공서간(400원) 등의 우표를 살 수 있다. 이 중 수발업체와의 거래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게 2980원권. 교도소 밖에서는 ‘선납등기라벨’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7월 2680원에서 298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재소자는 요구사항과 함께 우표를 동봉해 수발업체로 보낸다. 일부 재소자는 우표로 현금 깡을 해 영치금으로 받기도 한다. 이때 현금 깡 시세는 원가의 약 55~60% 정도로 형성돼있다. 예를 들어 2980원권 100장(약 30만원)으로 현금 깡을 할 경우 약 18만원을 영치금 입금 방식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수발업체는 거래를 통해 모은 우표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작업을 거친다. B씨에 따르면 명동에 우표 매입 시장이 형성돼있고, 중고나라 등에서도 선납등기라벨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사례를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우표의 양이 많을수록 수수료는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최소 1000만원 정도 돼야 환전이 가능하다”며 “억대로 넘어가면 수수료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수발업체는 2019년 11월 교도소 도서 반입이 제한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교도소 등 교정시설 재소자가 외부로부터 도서를 반입할 때는 상담을 거쳐 허용하는 ‘수용자 우송·차입 도서 합리화 방안’을 시행했다. 그전까지는 재소자가 읽고자 하는 도서를 신청하면 우편을 통해 받거나 가족이나 지인이 교정시설에 넣어주는 차입 방식으로 책을 반입해왔다.

“재소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법무부는 “최근 5년간 금지 물품 반입 건수가 194건에 이르고, 수발업체가 부당하게 금지 물품을 보내준 사례로 고발된 건수도 8건이 되는 등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B씨는 “당시 도서 제한으로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많은 수발업체가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도서 반입
힘겨루기?

하지만 지난해 12월 법무부는 해당 지침을 철회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권고에 따른 조치다. 지난해 10월27일 인권위는 법무부의 지침을 두고 “수용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시행중지를 권고한 바 있다. 그 후로 지난해 12월7일부터 재소자 1인당 1일 5권에 한해 도서 반입이 허용됐다. 

도서 반입이 재개되면서도 문을 닫았던 수발업체들이 다시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다. B씨는 “당시 수발업체 관계자들이 법무부의 지침이 인권침해라는 내용의 민원을 인권위에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수발업체에서 늘 그랬듯 이번에도 또 다른 길을 찾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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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