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 ②조직적인 은폐 의혹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김정수 기자 = 누군가에겐 공포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치 떨리는 기억의 현장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괴물 양산소’라 했다. 20여년 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그럼에도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 그들은 그곳을 ‘7사’라 부른다.
 

전주교도소가 현재의 자리, 평화동으로 이전한 시기는 1972년이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7사는 최소 20년 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여태껏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했다. 전주서 10년간 활동한 인권단체 관계자도 처음 듣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베일 속
최소 20년

7사는 전주교도소 일곱 번째 사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사동이 아닌 특별사동으로 분류된다. 7사에는 1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여러 개 있다고 전해진다. 운용 목적은 재소자 보호와 진정이다. 흥분 상태가 지속되거나 자해 우려가 있는 재소자들이 수용된다. 일반 재소자가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곳서 교도관들의 가혹행위가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주교도소를 거친 재소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7사를 알고 있었다. 20년 전 출소자부터 현재 수감 중인 재소자까지 예외는 없었다. 또 전주교도소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포착됐다.

<일요시사>가 접촉한 전주교도소 출신은 인천과 부산, 영월, 전주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고 수감 기간도 다르다. 하지만 7사에 대해서 만큼은 공통된 증언을 내놨다.


▲자해를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재소자를 끌고 간다 ▲빛이 없는 좁은 방에 가둔다 ▲수갑을 뒤로 채운다 ▲3종 세트(수갑, 족쇄, 헤드기어)를 착용시킨다 ▲곡소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식사 시간이나 용변이 급해도 풀어주지 않는다 등이다.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7사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는 ‘부류’가 따로 있다고 귀띔했다. 이른바 ‘법자’들이다. 법자는 교도소 은어다. ‘법무부 자식’의 준말로 가족이나 친지 없이 오로지 법무부와 관계가 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끌려가고 당하는 특정 부류 있다
완벽한 고립…법자와 지적장애인

증언을 종합해보면 법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외부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접견인이 없어 7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더라도 알릴 방법이 없다.

물론 교도소 내에서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필터링’에 가로막힌다는 게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공통된 말이다. 불리한 민원으로 판단되면 묵살하는 식이다. 면담조차 어려운 법자들에게 민원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국가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재소자가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확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산망’에 있다. 재소자들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기록돼있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얼마나 접견을 왔는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법자라는 이유만으로 7사에 수용되는 건 아니다. 저마다 사유가 있다. 하지만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사소한 이유를 걸고 넘어진다는 설명이다.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떠드는 것’이었다.

장애인도 
예외 없다

재소자끼리 다툼이 있어도 7사에 수용되는 몫은 법자가 짊어진다. 접견인이 있는 재소자가 7사에 수용되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고 한다. 외부로 알려질 수 있어서다.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법자 외에 지적장애가 있는 재소자들도 주요 대상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출소자는 이를 두고 ‘완벽한 고립’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018년 4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맞닿아 있는 청원이 게재됐다. ‘교도소 내에서 공무원의 장애인 폭행 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전주교도소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정신장애를 이유로 의무과 진료를 원했던 재소자가 교도관의 거절로 항의하다가 폭행을 당했다.
 

▲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유사한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상처가 생겼지만 (교도소 측은) 접견인이 알지 못하도록 접견을 제한했고, 보호장비를 연속 13일 이상 착용시켰다’ ‘장애인 수용자가 외부와의 접촉이 없어 고립된 상태인 것을 알고 있는 전주교도소서 수용자를 폭행해 상처가 생기고 이가 부러졌다’ 등이다.

청원인은 이 외에도 전주교도소 진정실, 보호실서 교도관들의 가혹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실과 보호실은 7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또 보호장비를 징벌의 용도로 사용하고, 3일 이상 착용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민원과 고소를 접수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교도소 측이 제출한 CCTV만 확인할 수 있었고, 증거를 수집할 수도 없었다.

<일요시사>는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청원인의 의혹을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

외부 발설
주의 지시

박성철은 지난 2017년 11월 전주교도소 교도관들과 맞고소전을 벌였다. 박성철과 교도관들은 서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박성철의 진술조서에는 교도관들의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박성철은 7사에 수용되면서 본격적인 폭행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진술 말미에는 ‘접견을 오지 않는 수형자들이 더 많은 폭행을 당하고 있어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성철은 법자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매주 접견을 오는 어머니가 있었고, 사선 변호인도 선임했다. 그래서였을까. 전주교도소는 박성철을 외부와 차단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외부 접촉에 빗장이 걸렸다. 어머니의 접견이 제한된 것이다. 결국 변호인이 접견을 신청해 어렵사리 박성철을 만날 수 있었다. 변호인은 당시 처참했던 박성철의 상태를 소상히 기록해 검찰에 제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변호인 의견서에 따르면 ▲머리에 보호 장비가 사흘 동안 채워져 코 주변에 하얀 곰팡이가 핀 점 ▲손가락과 손목이 수갑으로 꽉 조여진 탓에 피부가 벗겨지고, 빨간 자국 위에 고름이 드러난 점 ▲배에 선명한 멍자국 2개가 있는 점 ▲수술 부위에 고름이 찬 점 ▲17일 동안 손목이 묶여 있었고, 의무과에서 손이 다 썩는다며 수갑을 풀게 한 점 등 이다.

교도소 은폐 정황, 증언과 맞닿아 
사실무근이라지만…의혹 현재진행형

<일요시사>는 2018년 1월 작성된 ‘전주교도소 7사 근무일지’를 확보했다. 근무일지 내 ‘교육·지시사항’서 ‘특이수용자 관련 언행에 유의해 외부인이 아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포착됐다.

당시 7사 수용자는 박성철뿐이었다. 즉, 그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성철은 2017년 11월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달 말에는 검찰 조사도 받았다. 고소 사건은 2018년 1월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전주교도소는 7사에 수용 중이던 박성철에 대한 감시 수위를 높여 더 이상 내부 사정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교도소의 조직적 은폐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성철은 교도관을 폭행한 혐의와 관련, 추가로 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교도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그의 주장은 증거불충분으로 일단락됐다.

현재 박성철은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하지만 끝내 박성철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원주교도소 관계자는 박성철의 주장은 이미 사법 절차가 완료된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다. 원주교도소 측은 사법 판결을 내세워 사건의 종결을 주장했지만 7사와 관련된 의혹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타 의혹
법적 공방

지난 8월 전주교도소서 날아온 편지에는 7사서 일어난 교도관의 가혹행위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한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묶여 7사로 끌려갔다. 그러던 중 욕설을 내뱉었다. 7사 앞 꺾어지는 골목이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다. 그 재소자는 3종 세트에 묶여 대략 30대 넘게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다.’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름을 모두 가명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jsjang@ilyosisa.co.kr>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주교도소 입장은? “가혹행위 없었다”

-전주교도소 7사 수용동의 용도는 무엇인지.

▲보호실로 운영 중에 있다.
※ 관련 규정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5조(보호실 수용)
1. 자살 또는 자해의 우려가 있는 때
2.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인하여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때

-7사 수용동서 수용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는데.

▲7사 수용동서 수용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요시사>서 확보한 2018년 1월12일 전주교도소 7사 수용동 근무일지 ‘교육 지시사항’란에 ‘특이 수용자 관련 언행에 유의해 외부인이 아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문구가 확인되는데 어떤 의미인지. 또 재소자의 처우와 관련해 무언가를 은폐하려 한 것인지.

▲해당 수용자의 경우 정당한 직무를 수행 중인 직원을 폭행해 재판 및 조사 중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근무자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한 내용이다.

-<일요시사>서 확보한 자료와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7사 수용동서 가혹행위 후유증으로 사망한 재소자가 있다는 의혹이 나왔는데 사실인지.

▲가혹행위를 하거나 후유증으로 수용자가 사망한 사실이 없다.

-접견자가 없거나 접견 횟수가 적은 재소자들 또는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더 많은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는데 사실인지.

▲수용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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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