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밀리는 BH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7.13 10:45:35
  • 호수 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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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려다 큰집 떠나게 생겼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힘의 추가 기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청와대의 태도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부동산 정책을 당 차원에서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균형을 이루던 힘의 추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 노영민 청와대비서실장

“이런 식으로 하면 각 상임위서 당정협의를 받아주지 말라.” <이해찬 대표,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청주 집 처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낙연 의원, 7일 당대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국민 눈높이서 보면 여러 비판 받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태년 원내대표, 5일 SBS 인터뷰 중>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보인다.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김남국 의원, 7일 MBC라디오 인터뷰 중>

똘똘한 한 채
비판 쏟아져


최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뭇매를 맡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서도 쓴소리가 여과 없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 등을 결정하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한 뒤 당정협의에 나선 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 실장은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강남의 반포아파트와 고향인 청주아파트가 그것이다. 청와대는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참모들에게 한 채를 제외하고 모두 팔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노 실장이 반포아파트와 청주아파트 중 반포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급매물로 내놨다고 전했다. 그러나 약 40여분 뒤 청와대는 노 실장이 반포가 아닌 청주아파트를 팔기로 해 전날 매물로 내놨다고 정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똘똘한 한 채’ 논란을 불러왔다. 3선을 한 지역구의 청주아파트는 매물로 내놓고, 강남의 반포아파트는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달 내 서울(반포) 소재 아파트도 처분하겠다’며 ‘서울 소재 아파트에는 가족이 실거주하고 있는 점, 청주 소재 아파트는 주중대사,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수년간 비워져 있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노영민 비서실장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반포 소재 아파트

이어 “의도와 다르게 서울의 아파트를 남겨둔 채 청주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 서울의 아파트를 지키려는 모습으로 비쳐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강남 불패’ 신화만 재확인시킨 꼴이 됐다는 비판이다. 반포아파트는 13평 남짓한 방 2칸짜리 낡은 아파트다. 집값 상승 이외에는 반포아파트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이낙연·김남국 의원 입에서 노 실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내부서도 노영민 비판
김현미와 동반 사퇴론에 ‘흔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6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다가 안정세를 찾았다. 지난 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7월2주차(6∼8일) 주중 집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0.0%가 문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혹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50.0%가 무너지며 위기를 맞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3월3주차 조사(47.9%) 이후 15주 만이었다. 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 발표로 불거진 청와대 참모진 다주택 보유 논란이 하락세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 실장은 사퇴론에 휩싸여 있다. 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상황 악화 여부에 따라 외부로 분출될 수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이다. 여당 내부서도 노 실장 스스로 사의를 표해 문 대통령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은 당청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앞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의 행동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 3일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서 그는 “청와대와 정부가 이미 결정된 내용을 갖고 보도자료 내기 몇 시간 전에 당에 당정협의 계획을 통보해오는 것은 당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불만을 드러냈다. 
 

▲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앞서 정부는 6·17 부동산 대책 등을 비롯해 주요 정책을 이미 결정,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한 후에야 당정협의 형식을 빌려 마치 민주당과 논의해 결정한 것처럼 보이게 발표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 당시 이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하면 각 상임위서 당정협의를 받아주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를 향한 강한 경고성 발언이다. 

싸늘한 여론
어떡하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상 빈소를 찾은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의 발언을 빌려 “정부가 미리 보도자료 배포를 언론에 한 다음에 당정협의를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당정협의라고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 보도자료를 뿌려놓고 당과 논의하는 형식적인 당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 총선을 통해 176석의 거대 여당이 됐음에도 민주당이 의사결정 과정서 배제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으로 읽힌다. 또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데 대해 이 대표가 직접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불만을 표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는 지난 3일 열렸다. 하루 전인 지난 2일에는 노 실장이 청주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는 청와대의 발표가 있었다. 민주당은 당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서 노 실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시점상 노 실장 문제로 참고 있던 이 대표의 불만이 폭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우회적으로 이 대표에게 사과했다. 지난 7일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일보>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당의 입장은 생각을 통보하듯 (당정협의를) 운영하지 말고, 충분히 대화하고 협의하자는 것 아니냐”며 “대화하는 상황서 한쪽이 대화가 부족하다고 하니, 우리는 앞으로 충분히 대화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정부는 이 대표의 분노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국회를 찾아 이 대표에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보고했다. 

정부는 이번 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앞서 현재 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에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구한 것이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 부총리는 이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 앞에서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 관계 부처 간 협의는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보완을 위해 이 대표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다만 참석자들 모두 그 자리서 부동산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홍 부총리는 “잘 안 믿겠지만, 정말로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 역시 “오늘 부동산 정책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부동산 정책을 당 차원에서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서 “당 주도의 부동산 대책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아파트 투기 근절, 서민들이 손쉽게 내 집을 마련하는 사회적 기반이 정착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대노
청 흔들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서 “각종 공제 축소 등 종부세(종합부동산세)의 실효세율을 높이기 위한 추가 조치를 국회 논의 과정서 확실하게 검토하겠다”며 당이 부동산 정책 추진에 주도권을 쥐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정책위원회서 부동산 정책을 주도할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관료적 마인드로는 창의적 발상이 나올 수 없으니, 당 차원서 해법을 찾아 부동산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문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 앞에서 “국토교통부나 정부서 나올 안들은 이제 다 나온 것 아니냐. 이제 당에서 끌고 가야 한다”며 “원내대표와 정책위가 중심이 돼 부동산 대책을 보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한 경질론까지 수면 위로 올랐다. 

이낙연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서 김 장관 경질론과 관련해 “인사는 대통령의 일이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직전 총리로서 적절하지 않지만, 정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대화 나누는 노영민 청와대비서실장(사진 오른쪽)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민주당 홍익표 의원 역시 김 장관 교체론에 대해 “여당 의원으로서 참 난감하긴 한데, 정책 변화나 국면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그런 부분도 고려해야 할 타이밍이 아니냐”라고 우회적으로 교체론을 언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의 균형은 점차 민주당 쪽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이하 전대)가 오는 8월로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둘 중 당권을 잡는 사람이 유력 대권주자로 올라설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 5월10일을 기점으로 집권 4년 차에 돌입했다. 청와대 권력누수가 생길 수 있는 시점이다. 

부동산발 청 개편론
이낙연 “성공 못해”

당권주자들은 부동산 정책을 언급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지난 9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땜질식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의원과 당권 경쟁 중인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같은 날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여의도 민주당 당사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한 6·17 부동산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과 노 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의 주택 보유와 관련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서 내놓은 공약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전 의원은 기자회견장서 “문재인정부는 2018년 ‘9·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부동산 투기 차단과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보유세 비율은 0.87%로 OECD 평균 1.06%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딜레마에 빠졌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권력누수를 최소한으로 막아야 하는 중책을 안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민주당 일각에서는 ‘부동산발 청와대 개편론’이 제기됐다. 노 실장이 논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 청와대

그러나 부동산발 청와대 개편론은 청와대 입장서 위험 부담이 크다. 만약 노 실장이 사퇴한다면, 비서실장 자리와 반포아파트 중 반포아파트를 선택했다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6·17 부동산 대책이 희화화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서울 흑석동 상가 매입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한 6·17 부동산 대책이 불신은 물론이고 희화화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흑석 김의겸’ ‘방배 조국’ ’과천 김수현’ ‘반포 갭영민’ 등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을 희화화하는 별칭이 공유되고 있다. 갭영민은 노 실장이 결국 ‘강남 갭투자’를 위해 반포아파트를 보유한 것 아니냐는 데서 유래됐다. 

시간은
민주당 편

노 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참모 중 다주택 보유자에게 두 번째 매각 권고를 내렸다. 한 달 내로 매각하라는 권고다. 만약 권고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인사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주택 보유자 중 퇴직을 선택하는 참모가 나온다면 야권의 조롱을 받을 공산이 크다. 한 달 내 매각하지 않고 버티는 참모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청와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영민이 쏘아올린 ‘다주택 강제처분법’은?

청와대 참모·국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다주택 강제처분법’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심 대표는 지난 7일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나 집권여당의 정책추진 의사보다 ‘똘똘한 한 채’를 챙기겠다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처신을 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고위 인사들이 거주 이외의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강제처분토록 하는 법안을 여야에 제안했다.

청와대 참모와 국회의원, 장차관은 물론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이 대상이다.

심 대표는 이 같은 제안을 발표하며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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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