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한반도’ 김여정 앞세운 김정은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22 10:26:38
  • 호수 1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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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프로젝트 시작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우리 정부를 향한 무력 도발로 읽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번 사태를 진두지휘했다. 김 부부장은 북한 권력서열 2인자를 넘어 초특급 실세로 거듭나고 있다. 일각에선 ‘최고지도자’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쾅! 지난 16일 오후 2시49분경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경기북부 최북단에 위치한 파주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집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을 느꼈으며, 개성공단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발표한 ‘판문점 선언’ 이후 세워진 연락사무소는 1년9개월 만에 폐허가 됐다.

전격폭파
무력도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연락사무소 폭파 등 일련의 사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를 통해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북한은 김 부부장의 제가에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김 부부장 담화 직후 폭약을 운반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연락사무소 일대로 이동했다. 연락사무소 내부에 폭약을 설치해 폭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국방부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김 부부장이 말한 다음날부터 (건물 1·2층서)불꽃이 관측됐다고 한다”며 “에이치빔(H빔)으로 세운 건물을 폭파할 때는 빔을 미리 절단해야 한다”며 불꽃이 관측된 이유가 폭파를 위한 사전작업일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는 김 부부장이 밝힌 대적사업의 일환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일, 김 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지시 내용이라며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이후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핫라인이 설치 2년 만에 끊겼다.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정부와의 채널을 모두 차단했다. 통일부는 지난 9일, 북한이 연락사무소 업무 개시 통화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국방부는 같은 날 남북 간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쾅! 연락사무소 폭파…폐허로
여동생 전면 부상 ‘진두지휘’  

북한의 조치는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은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특히 DMZ 내 GP 복구는 문재인정부의 성과 중 하나였던 9·19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의미한다. 향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측은 군사행동 계획들을 더욱 세부화해 빠른 시일 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변화는 김 부부장의 변신과 궤를 같이한다. 앞서 김 부부장은 ‘평화메신저’서 ‘독설가’로 변신했다. 지난 3월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자 김 부부장은 ‘저능하다’ ‘적반하장의 극치’ 등의 폭언을 했다. 이어 지난 4일 담화에선 ‘쓰레기’ ‘똥개’, 지난 13일에는 ‘남조선 것들’ ‘말귀가 무딘 것들’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 부부장의 이 같은 독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그는 우리 정부에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적대적인 담화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영상 메시지를 꼬투리 잡아 “자기 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며 “명색은 대통령의 연설이지만 나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원색 비난했다.

북한이 남북 갈등의 원인으로 규정한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김 부부장은 우리 정부가 묵인하고 있다고 봤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자의 이번 연설은 응당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다짐이 있어야 마땅했으나 변명과 술수로만 일관했다”고 재차 비난했다.

전면에서
진두지휘

그는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뿌리 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로 줄달음치고 있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 이상 북남관계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의 판단”이라며 우리 정부를 대화 상대서 제외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행사 참석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을 당시 예의를 차려 인사를 건넸던 과거의 김 부부장의 모습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통일의 새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북한의 거친 발언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인 김 부부장이 직접 선봉에 섰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씨 일가가 문정부를 얼마나 적대적으로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심각하게 대화 나누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 왼쪽)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

갑작스런 변신의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 업적’을 쌓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김 부부장은 ‘여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군에서 권력을 쌓을 수 있지만, 여동생인 김 부부장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수위 높은 담화를 발표, 선전선동부서 권력을 넓히려는 의도로 읽힌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 1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서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문 대통령과 과거의 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여지는 살려놓는 것”이라며 “김 부부장이 일종의 악역을 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인민군 신망
얻으려고?

김 위원장은 이번 사태서 한발 물러나 있다.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이후 열흘째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지난 18일 기준). 김창섭 전 국가보위성 정치국장 빈소에 조화를 보내는 등의 활동은 하지만 공개석상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사이 김 부부장은 대적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김 부부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지난 13일,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겠다고 예고한 담화서 이는 김 위원장과 당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임을 공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재가 아래 김 부부장이 지휘하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김 부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련의 과정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김 위원장이 건강이상 등의 이유로 김 부부장에게 최고지도자 승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눈에 띈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 내부서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중국·러시아 등 북한에 우호적이었던 국가들까지 강력한 대북제재에 참여하는가 하면, 코로나19 사태로 중국과의 교류마저 끊기면서 북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앞서 김 위원장이 정치국 회의에 참석해 평양시민 생활 향상 방안 등 민생 문제만을 집중 논의한 일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까지 더해지면서 북한 내부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 부부장의 위상을 부각시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벼랑 끝 몰리자 다시 발악
2인자 굳히기? 승계 일환?

북한서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인민군 총참모부는 최근 김 부부장의 지시에 따라 ‘당과 정부가 취하는 모든 대내외적 조치를 군사적으로 철저히 담보할 것’이라며 4개항의 군사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승계 작업과 관련해 흥미로운 전망을 내놨다.

지난 15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서 그는 “김 부부장은 혈통·인맥·정부 경험 등을 모두 갖췄고 김 위원장과도 가깝지만, 군사적 경험이 없다”며 “최근의 강경한 담화는 북한정권이 김 부부장에게 부족한 군사적 능력을 보충해주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부부장이 앞으로 오빠(김 위원장)처럼 군 직위를 맡는다면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볼 만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주영국 북한대사관 영사 출신인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북한 내부를 김 부부장 후계 체제로 결속시키려는 의도”라며 “북한 군부가 이렇게 순식간에 ‘계획 보고-승인-계획 이행-주민 공개’를 일사천리로 처리한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업무보고 중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 ⓒ문병희 기자

외신들도 김 부부장의 급부상은 김 위원장 건강 이상에 따른 승계 작업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6일(현지시각) 김 위원장이 아프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김 부부장의 급부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추측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깜짝 놀랄 만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려 한다는 추측도 내놨다.

<WP> 레이철 민영 리 전 미국 정부 북한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북한 관영매체가 김 부부장의 발언을 기사와 집회, 인민 반응의 기준점으로 내세우면서 이례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며 ‘이는 백두혈통이 아닌 다른 지도자에 비해 김 부부장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의도’라고 평가했다.

유사시
섭정체제

아시아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난 4월11일 이후 관영매체에 3차례만 등장한 사실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의 건강에 뭔가 문제가 있다. 그럴수록 대행이 중요하다. 누가 대행이 될 수 있겠나. 권력을 독점하지 않을 누군가 뿐”이고 했다. 이는 김씨 일가가 이미 보여왔던 모습이다. 지난 2008년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김 위원장으로 권력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약 3주 정도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아 위중설 및 사망설을 촉발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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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