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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26일 00시01분

<창간 24주년 특집④> 김정은 밑으로 집합! 북한 권력서열 TO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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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위중설 김 다음 누구?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다. 확인 결과 사실 무근이었다. ‘김정은 건강이상설’  ‘99% 사망설’을 제기한 이들은 모두 탈북자 출신 통합당 인사들로 밝혀졌다. 현재 북한서 김정은 다음으로 권력을 잡고 있는 실세 7명을 뽑아봤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될 때마다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오곤 했다. 김 국무위원장을 제외한 북한 내 권력 서열을 정리했다.

2인자
최룡해

최룡해는 지난달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과 함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에 올랐다. 북한서 국무위원회는 김 국무위원장이 직접 담당하는 핵심 국정기구다. 

특히 최룡해가 이번에 맡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그동안 북한 직제상 없던 직위였다. 기존 국무위원회 편제에서는 최룡해와 박봉주 전 내각총리가 함께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서 북한이 헌법을 ‘수정보충’하면서 새로 만든 자리로 보인다. 최 제1부위원장이 노동당에 이어 국가기구서도 김 국무위원장의 다음 인물로 공식화된 것이다.

그동안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최 제1부위원장이 맡게 됐다. 올해 91세인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김 전 상임위원장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은 지 21년 만에 자리서 물러났다.

북한 ‘빨치산 혈통’의 대표 인물로 알려진 최룡해는 2017년 노동당 제7기 제2차 전원회의 이후 노동당 간부·당원을 포함해 전 주민에 대한 장악·통제와 인사권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아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최 제1부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 2선으로 물러났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김영남은 유명무실했다. 김영남은 북한 정권의 ‘얼굴마담’일 뿐이었다. 

하지만 최 제1부위원장이 김영남과 달리 많은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모 책임연구원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서 “최룡해가 2인자냐 3인자냐를 떠나서 김 국무위원장 유일통치 구조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고, 가장 필요한 조연”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최 제1부위원장은 최근 ‘깜깜이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달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한 것이 그의 마지막 공개 활동이다. 19일 기준, 34일째 북한 관영 매체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 제1부위원장의 이 같은 잠행은 그와 함께 ‘북한 핵심 3인방’으로 평가되는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의 활발한 활동과 대비되며 주목받고 있다.

3인자
김여정

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정치적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을 뒤에서 보좌하던 역할서 벗어나 북한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을 경우 여타 인물이나 집단에 비해 여러 측면서 후계자 후보로서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활동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그동안 김여정은 ‘김정은 문고리 비서’ 역할만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을 계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사진 앞줄 왼쪽부터)김재룡 내각총리,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리만건 노동당 부위원장

이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행사 준비를 주관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정상 회동서 김 국무위원장을 공식 수행하는 한편, 같은 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때 환담을 하는 등 외교무대에 공식 등장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공식 직책인 1부부장 명의로 대남·대미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룡해, 없던 자리 만들어 임명
김여정, 외교안보 총괄 역할 부여

이로써 김여정이 북한 내 최고 핵심부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어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이 지난 2월말 당 정치국 확대회의서 부정부패 등의 이유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서 해임됨에 따라, 김여정이 제1부부장으로서 사실상 조직지도부장을 대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북한의 군사 훈련에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를 강하게 비난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국무위원장에 보낸 친서를 평가하는 내용의 두 차례의 담화를 내놓기도 했다. 그가 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함으로써 자신을 한미 정상급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수령의 유일영도체계 실현을 보장하는 당 조직지도부는 통상적으로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대한 담화를 내지는 않는다. 이는 선전선동부도 마찬가지다. 결국 두 차례의 담화는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역할도 부여됐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라고 하는 김여정의 소속과 직책, 역할에 대해서는 현재 정보당국도 특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인자
박봉주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이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 다음으로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꼽힌다. 그는 최근 평양 방직공장과 백화점 시찰 등 공개활동에 나선 바 있다.

김 국무위원장뿐만 아니라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여정 제1부부장 등 북한 수뇌부의 공개 활동 보도가 좀처럼 없는 상황서 북한의 대표적 경제 관료인 박봉주 부위원장의 공개  활동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 당 당중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동지가 김정숙 평양방직공장, 평양 제1백화점과 광복지구 상업중심 등 평양시 안의 상업봉사 단위들을 현지 요해(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박봉주 부위원장은 ‘염색종합직장, 직포종합직장을 비롯한 생산현장들을 돌아보면서 인민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색깔의 천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과 함께, 정화시설을 보다 현대화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무적인 대책들을 강구했다’고 한다.

또 ‘평양 제1백화점과 광복지구 상업 중심서 일꾼들과 종업원들이 상품보장 사업을 실속 있게 짜고 들고 봉사방법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면 인민의 참된 봉사자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 나가는 데 대하여 언급했다’고 전했다.

5인자
김재룡

북한서 김재룡은 경제 수장으로 불린다. 중국과 인접한 변방인 자강도를 맡고 있던 김재룡은 지난해 최고인민회의서 북한의 ‘경제사령탑’인 내각 총리로 깜짝 발탁됐다. 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 북한 경제 회생과 기업소·농업 부문 경제자율권 확대, 시장화를 이끌었던 전임 박봉주 총리는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북한매체는 ‘지난 20일 김재룡 내각총리가 함경남도 단천항과 단천제련소 등을 살펴봤다’고 보도했다. 김 국무위원장이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이후 19일째 잠행에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 총리는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재룡 동지는 단천항과 단천제련소, 흥남비료연합기업소, 고원탄광, 수동탄광을 돌아보면서 현행 생산을 늘리고 철길공사, 능력 확장 공사를 비롯한 여러 대상 건설을 다그치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협의·대책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20일에는 김 총리가 함경남도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서 요해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김 총리가 용성기계연합기업소, 2·8비날론연합기업소,  흥남전극공장 등에서 ‘대중의 정신력과 생산 잠재력을 최대로 분출시켜 대상 설비, 제품의 질과 량을 철저히 보장할 데 대해 강조했다’고도 했다.

신문은 ‘국가과학원 함흥분원과 흥남제약공장 등을 둘러보며 과학연구사업에 계속 힘을 넣으며 의약품 생산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더욱 완비할 데 대해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밀 작황을 마련하고 있는 고원군 상산협동농장 일꾼들과 근로자들의 투쟁을 고무해줬다’고 선전했다.

신문은 ‘현지서 진행된 협의회들에서는 수령의 유훈 관철전, 당정책 옹위전의 불길 드높이 생산과 건설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하며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하고 연관단위들에서 석탄과 설비, 자재 등을 책임적으로 생산·보장하기 위한 대책적 문제들이 강구됐다’고 덧붙였다.

북한 매체 보도 기준, 김 총리는 이달 들어 총 네 차례(5월 4일, 9일 10일, 20일)의 공개 행보를 가졌다. 이번 함경남도 시찰 전 그는 지난 10일 모내기철을 맞아 황해남도 물길 여러 곳을 둘러봤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경제사령탑으로 평가받는 김 총리의 공개 행보가 늘어난 것은 북한 역시 코로나19 국면이라는 점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지도자의 공개 활동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김 총리의 경제 행보 등이 자연스레 늘어났다는 얘기다.


6인자
리설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예전부터 리설주는 평양제약공장 시찰, 신형 무궤도전차 시승식에 김 국무위원장과 동행하면서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한때 제기됐던 김정은-리설주 부부의 불화설은 사그라졌다.

도리어 리설주는 이전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와 다르게 공개석상에 모습을 자주 나타내며 ‘힘’을 과시했다. 특히 리설주는 모란봉악단 결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최고 인기그룹으로, 김 국무위원장의 칭찬이 자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정치 감각보다는 패션 감각이 두드러졌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프라다, 레드 발렌티노 등 해외 명품을 좋아해 해당 브랜드의 의상을 입거나 핸드백을 든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북한 여성들 사이에선 리설주가 패션 리더로 꼽힌다.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이 유행하고, ‘짝퉁 열풍’이 불게 된 것도 바로 리설주 때문이라는 평가다.

7인자
김평해

북한서 권력자를 찾으려면 인사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김평해는 노동당 내각, 보위성, 보안성, 중앙재판소, 검찰소, 무력성,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책임 일꾼, 즉 중앙당 정치국에 비준하는 가장 높은 레벨의 간부 임명을 맡고 있다. 

김평해 부위원장 밑의 부부장, 과장들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중앙당 비서국 비준 대상 간부 임명을 담당한다. 김 부위원장은 모든 고위급 간부들의 해임, 임명, 조동 등을 김 국무위원장에게 건의하고 또 지시를 받는다.

김 부위원장은 당정군의 모든 고위간부들의 재임 기간, 미배치 간부 등을 꿰고 있다가 김정은의 히스테릭한 인사 조치에 맞게 적합한 인물을 선발해 건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자랑했다.

김평해, 인사권 쥐고 있는 인물
현송월, 인물정보에 이름 등재

중앙당서 오래 일한 사람을 지방에 파견하거나 그 반대의 순환 경력을 갖게 한다거나 또는 보안, 보위, 군의 당 사업 경력이 없는 간부들이 해당 경력을 갖추게 할 시점을 정한다거나 하는 등의 ‘경력과정안’도 그가 정한다. 간부 스펙 관리까지 하는 셈이다.

김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서 전격 해임됐다. 후로 올해 초부터 ‘김평해 일당’ 숙청작업이 시작됐다. 김정은 시대에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에 이어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대숙청이 시작된 것.

올해 2월 말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서 리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농업담당 부위원장이 해임된 사실은 국내 언론서 크게 다뤘지만, 김 부위원장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알고 보면 리만건과 박태덕 모두 김 부위원장이 키운 사람들이다.
 

▲ (사진 왼쪽부터)최룡해, 박봉주, 김재용

김평해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평안북도 도당 조직비서, 책임비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도당 책임비서는 노동당 비서와 동급의 고위직이다. 도당 책임비서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평안북도다.

도 소재지인 신의주에 북한의 각 중앙기관 산하의 무역회사들이 밀집돼있기 때문에 큰 명절 때마다 최소 수십만달러를 뇌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김 부위원장이 평안북도를 쥐고 있던 시기엔 폐철, 폐알루미늄, 구리, 철광석, 산림자원 등이 중국에 대거 팔려 나갈 때였다. 북한 무역일꾼들은 1995∼2005년을 외화벌이 황금기로 평가한다. 이런 시기에 ‘황금의 자리’서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지만 김평해는 20년을 장기 집권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처세술이 비상한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김 부위원장은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 그러나 김정일이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조용한 감사 인사까지 전한 것을 보면 혼자 챙기는 것보다 많은 액수를 상납했을 것으로 보인다.

8인자
현송월

현송월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올해 처음 ‘북한인물정보’에 이름을 올리며 여성 고위급 인사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인물정보에 따르면 1·2차 북미정상회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북 행사 등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밀착 보좌해 ‘김정은의 그림자’라고 불려온 현 부부장은 1977년 평양 출생으로 파악됐다.

현재 당 부부장·당 중앙위원회 위원·모란봉악단장·삼지연관현악단장을 맡고 있다. 다만 소속은 ‘선전선동부 추정’으로 표기됐다. 현 부부장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예술단 공연 사전점검 차 방남할 때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2019년 4월 당 전원회의를 통해 당 중앙위 위원에 올랐고, 올해엔 지난 3월 김 국무위원장의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 참관, 4월 당 정치국 회의 동행 등의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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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줄 타는 안철수 사생결단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권교체에 대한 여론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여론보다 높다. 그러나, 여당의 이재명 대선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고 있진 않은 모양새다. 야권 대선후보가 여러 명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야권 대선후보를 하나로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선후보들은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 단일화는 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화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대선후보들은 그동안 후보 단일화를 첫 번째 승리 조건으로 여기곤 했다. 2022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식 대선후보 등록이 시작도 되기 전에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단일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의 내홍 논란을 딛고 약진을 이어간 후부터다. 좁혀진 차이 자존심 싸움 합친다고 무조건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야권 대선후보들은 단일화에 유독 집착한다. 1987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난 탓이다. 1987년에 제6차 국민투표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확정된 후, ‘양김’의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여권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이기려면 야권 대선후보가 한 명이어야만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후보는 본인의 승리를 장담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열망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보들은 그 표가 다 본인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김대중 후보는 ‘사자필승론’을 주장하며 다자구도가 오히려 본인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대중 후보는 지역 표심을 중심으로 대선판을 그렸다. 그는 노태우·김영삼이 영남 표를 나눠 받고, 김종필이 충청 표를, 그리고 본인이 호남 표를 독식해 당선된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는 실패했고, 최종 대선에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모든 후보가 출마했다. 김 후보가 그렸던 대선 판세와는 달리, 실제 대선에선 지역색보다는 정치색이 후보들의 희비를 갈랐다. 보수 지지자들의 표는 한 명의 여당 후보에게 결집된 반면, 진보 지지자들의 표가 두 명의 야당 후보에게 분열된 것이다. 결국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최종 당선됐다. 이때의 이변을 대한민국 역대 대선후보들은 잊지 않았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의 역사가 이후로 끊임없이 쓰여졌다. 1997년엔 김대중·김종필 후보가, 2002년엔 노무현·정몽준 후보가(정 후보 후에 지지 철회), 2012년에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 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2012년 문재인 후보는 낙선했다. 사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입장에서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썩 반가운 주제는 아니다. 단일화설이 나온다는 의미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좁혀졌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추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만해도 윤 후보는 야권의 압도적인 차기 대통령 감이었다. 지난해 5, 6월에 실시된 대통령 적합도 관련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지금의 대선후보들을 크게 따돌리며 단독 질주했다. 지지율 급상승…선두권 합류 한계 ‘혼자는 어려워’ 어느 쪽 선택할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리 의혹이 있는 정치계 인물 모두를 기소하는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던 윤 후보는 국민들에게 ‘공정과 정의’라는 기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검찰총장 임기 시절 막바지에는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인기는 배가 됐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청와대 인사인 조국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조사하는 모양새는 윤 후보에게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주는 동시에 야권의 정치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수개월간 이어진 ‘조국 수사 논란’은 윤 후보를 자연스레 야권의 잠룡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든 것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부터다. 공직자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한 번에 바꾼 윤 후보에게 정치인의 언행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선거운동을 이어갈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고,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대중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나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발언 ‘개사과 논란’ 등 윤 후보는 정치인으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하며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지지율 2%였던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게 경선 막판까지 쫓기는 초접전 양상을 허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선 때의 실책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에도 이어졌다. “노동자 사망은 노동자 탓”이나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전두환을 지지하는 호남 사람들도 많다” 등의 실언을 쏟아내며 당 안팎에서 윤 후보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지지율 하락세로 이어졌다. 특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극심한 마찰을 겪을 당시에는 지지층인 ‘이대남’을 안 후보에게 내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몇 주간 지지율 1위 자리를 허용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60%에 육박하는데도 여당의 후보에게 진다는 것은 윤 후보에게 매우 뼈아픈 지점이었다. 이는 “정권교체는 원하지만 윤 후보는 싫다”는 뜻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고, 이때 안 후보와의 격차는 많이 좁혀졌다. “안 후보와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크게 대두된 것도 이때다. 국민의힘? 국민의당? 요즘 야권 대선 레이스 양상은 홍 의원과의 경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야권 후보 중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윤 후보가 미미했던 지지율의 안 후보에게 추격 받고 있는 중이다. 경선 레이스와 대선 레이스의 한 가지 다른 점은 안 후보를 이긴다 해도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지율을 안 후보에게 빼앗겨 야권 표가 분열되면 이 후보에게 대권을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달갑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숙제로 다가온다.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인정하고, 승리를 위해서 야권의 선택지를 하나로 줄여야 하는 과정이다. 지난해만 해도, 윤 후보는 단일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일절 없다”고 일관해왔다. ‘국힘 원팀’을 만드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국민의당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견에 늘 난색을 표해온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11일 “단일화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입장을 미온적으로 바꾸었다. 시험이 다가오자 숙제를 끝내는 학생처럼, 윤 후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안 후보 측의 입장은 아직도 강경하다. 본인으로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 단일화를 경험한 안 후보는 그때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쌓았다. 안 후보는 나름 큰 희생을 감수했는데, 그만한 결과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단일화의 기억을 회상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그랬고,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안 좋은 기억 속에서 그는 항상 “안철수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16일 안 후보는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라는 말이 시중에 떠돈다고 하더라”며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이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한 후보인지, 더 확장성 있는 후보인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내가 야권의 대표선수로 나가야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고,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에게는 ‘중도 확장성’이라는 주요한 무기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안 후보는 보수색보다는 중도 색이 강한 후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늘 대립각을 세워왔다. 따라서 안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정권교체를 한다는 명분도 서고, 보수당을 찍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도 된다. 안 후보는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지지율이 윤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지만, 야권 단일화 적합도에서는 윤 후보보다 10%포인트 넘게 웃돈다. 안 후보가 말했듯이, 야권 대선후보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또 양보? 당선 포기? 반면, 윤 후보에게는 조직력이 있다. 비례대표 3석이 전부인 국민의당과는 달리 국민의힘은 국회 106석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에 지역구가 있으며 선거운동을 할 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대선에서 ‘이겨왔던’ 전례가 많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한 경험이 있다. 민주당과 대립하며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지, 전략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 또, 지지율 측면에서도 윤 후보가 안 후보보다 많이 앞서 있다.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로 올라온 안 후보지만, 국민의힘이 내홍을 끝내면서 윤 후보가 지지율을 거의 다 회복하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이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총회 자리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며 원팀 의지를 굳건히 했다. 이후 홍보전에 이 대표가 큰 힘을 실어주며 하락세를 그리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순항이 이어지는 윤석열표 대선호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은 여러 모로 명분에 맞지 않는 상황이다. 정계 전문가들은 ‘윤일화’도, ‘안일화’도 아닌 ‘무일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양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단일화를 하려면 여러 이해관계들이 맞아야 하고, 희생정신도 강해야 한다.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 때처럼 말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야권의 1위 대권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1997년 9월 <조선일보>가 공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후보는 30%에 육박하는 지지율 받았고, 김종필 후보는 약 3%의 지지율을 받았다. 단순 수치만 봐도 10배가량 차이나는 것이었다. 단일화 없이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김대중 후보였지만, 그는 김종필 후보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하며 연합을 이뤄냈다.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후보 자택에 직접 찾아가 연합할 것을 제안하면서다. 현재의 안 후보처럼 아쉬울 게 없다며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김종필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만난 후, 연합에 동의하며 김대중정부에 들어가 일할 것을 약속했다. ‘실리냐 고집이냐’ 딜레마 완주하고 지방선거 출마? 김종필 후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양보’ 덕분이었다. 이날 DJP연합 논의에서 김종필 후보는 내각제 개헌과 경제 부처 인사권이 보장된 ‘실세형 총리’의 자리를 약속받았다. 후에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국민의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실제로 김종필 후보가 지명한 인사로 채워졌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윤 후보가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안 후보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단일화를 제안해야 한다. 김대중 후보가 그랬듯, 차기 정부 인사들의 일부 인사권을 넘겨주고 힘 있는 자리를 약속하지 못한다면, ‘윤일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후보만큼 윤 후보가 당내의 권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본인의 권력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윤 후보 혼자 당내의 반대를 무릅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 후보 측 또한 김종필 후보처럼 윤 후보의 제안을 선뜻 수락하지는 않을 모양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선에 참여했다’는 기존 입장이 여전히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단일화를 하고 대선을 완주한 경험과 하지 않고 완주한 경험 모두 갖고 있다. 낙선을 하더라도 끝까지 대선을 완주해 이름값을 높인 뒤, 곧 있을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에 나가는 것도 그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1997년 당시의 김종필 후보와는 달리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많은 것을 양보해서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연합을 하는 ‘DJP연합’의 그림은 지금의 윤 후보와 안 후보가 ‘그려야 할’ 그림과 많이 닮아있지만, 맞지 않는 이해관계와 양보 의지가 없는 양 후보에게 ‘그릴 수 없는’ 그림이 돼있다. 국민의힘 이 대표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의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이전돼 수치가 상승한 것에 너무 고무돼 안일화 이런 말도 만드셨더라”며 “인터넷 가 보면 안일화보다는 간일화(간 보는 단일화)라는 단어가 더 뜬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다르다” 자신만만한 국민의힘 측의 입장과 안 후보에 대한 조롱이 섞인 발언이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이 대표는 내가 무서운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아무런 신경 쓸 게 없으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위협이 될 때만 발언한다”며 맞받았다. 양측은 현재 단일화는커녕 갈등 양상으로 가기 직전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권 단일화는? 야권이 만일 단일화에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면 여권도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선거에서는 같은 색의 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진보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 또한 여권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 “중요한 분기점인 내년 대선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기 때문에 개혁 진영이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며 “여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 심 후보 본인은 완주 의지를 표명하는데,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가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국민이 제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빙의 상황 속에서 상대가 단일화한다면, 개혁 진영도 뭉쳐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의견이다. 그러나, 심 후보는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많은 국민이 ‘이런 대선은 본 적이 없다’며 혀를 차고 있다”며 “34년 양당 정치가 보여준 민낯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고들 하신다. 그럼에도 염치없는 양당정치는 또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려고 단일화에 대한 미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율 정체에 따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해산과 며칠간의 칩거 후, 심 후보의 입장도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심 후보가 대선을 끝까지 완주해서 얻는 정치적 자산보다 단일화로 얻는 정치적 자산이 더욱 크다면, 여권의 단일화도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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