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구라’ 전두환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5.04 13:57:53
  • 호수 12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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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데…입만 열면 거짓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전두환씨가 광주 법정에 섰다. 1년여 만에 법정에 다시 선 전씨는 1980년 광주 상공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 2018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 법원 나서는 전두환씨

광주지법 형사8단독은 지난달 27일 오후 2시, 201호 대법정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 재판을 속행했다. 검사는 “1980년 5월 광주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 전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

이어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용으로 회고록을 작성하면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검사의 공소사실을 낭독한 뒤 재판장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라고 전씨에게 질문했다. 전씨는 “내가 알기로는 당시 헬기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은 인정신문과 검사의 모두 진술 절차 진행 후 피고인과 변호인의 입장을 다시 청취하고 증거목록 등을 정리하는 순서로 이뤄졌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꼬박 200분이 걸렸다.

전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12시20분경 법원에 도착했다. 대기하던 취재진은 전씨에게 “죄를 저지르고도 왜 반성하지 않냐”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냐” “사죄하지 않으실 거냐”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씨의 도착 소식을 듣고 법정 출입구 쪽으로 모여든 5·18 유가족들은 그가 들어간 뒤에도 20여분간 ‘오월의 노래’를 부르며 항의했다.


1995년 12월,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가 전씨를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 통보했던 당시, 그는 측근들을 대동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취재진과 국민 앞에 섰다. 이어 준비해온 원고를 들고 기세등등하게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수사를 ‘정치보복적 행위’로 규정해 조사에 불응했다. 이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떠났다. 소환 불응에 검찰이 당일에 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 법원이 발부하면서 결국 이튿날 전씨는 구속됐다.

1997년 4월 법원은 전씨의 내란 및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에 더해 추징금 2205억원의 확정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추징금은 면제 받지 못했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씨는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추징금은)자네가 돈을 좀 내줘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1년 만에 다시 광주 법정 출석
 “헬기사격 없었다” 모르쇠 일관

2003년에도 전씨는 SBS와의 인터뷰서 5·18민주화운동을 ‘총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라고 표현했다. 누구보다도 5·18 당시 유혈진압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전씨 입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 광주 시민들은 물론 전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17년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서 ‘5·18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회고록서 ‘시종일관 5·18민주화운동’ 대신 ‘광주사태’ 또는 ‘5·18 사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전씨는 5·16쿠데타와 3·1운동을 예로 들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5·16 쿠데타는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을 내걸었고 그 약속은 실현됐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화를 통해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다는 목표도 성취했다’며 ‘5·16 쿠데타가 혁명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내용을 담아냈다.


이어 ‘맨손에 태극기를 들고 조선 독립만세를 외친 기미 독립선언을 3·1운동이라고 부른다’며 ‘빼앗은 장갑차를 끌고 와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 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고 주장했다.
 

또 ‘5·16을 쿠데타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로 논란을 벌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며 ‘마찬가지로 광주사태가 폭동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논란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부정·긍정의 구분을 하지 않듯이 폭동도 부정·긍정의 의미를 따질 필요 없이 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전씨는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원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검거를 꼽았다. 책의 내용에는 ‘10·26사태 이후 김대중씨는 불법적인 민중혁명을 기도했다’며 ‘당시 그의 위험한 정치행보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기록에 잘 정리됐다. 국기문란자로 사법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혀있다.

이어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호남인들은 김씨의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라며 ‘5·17 조치로 김씨가 체포되자 호남인들의 좌절과 분노가 깊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5·17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가 광주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광주에서만 반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김씨의 검거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묵묵부답
혐의 부인

한때 광주사태나 내란으로 불리던 5·18민주화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지위를 인정받은 점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전씨는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되더니 어느 순간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정치적으로는 신화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이라는 인식에 어긋나는 어떠한 이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사회 저변에는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그런 의문을 증폭시키는 새로운 진술과 정황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길은 봉쇄된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조사와 재평가를 요구했다.

또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며 ‘5·18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자칫 엄청난 국론의 분열과 국력 소모를 초래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여전히 5·18 광주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세력의 반국가적, 반역사적, 반민족적 책동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라고 적었다.
 

이어 ‘나에게는 더는 이 일들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나아가 그 성격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동력도, 시간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전국 대학생들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학살 책임자로 전씨를 지목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연대활동을 펼쳤다. 일부 대학생 단체가 중심이 돼 학생 단체인 ‘대학생당’ ‘청춘의 지성’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등은 전 전 대통령 고발인단에 참여할 대학생 518명을 모집했다. 

대학생 단체는 전씨가 법적 처벌과 역사적 단죄를 제대로 받지 않아 사실관계를 왜곡한 회고록을 펴내고, 희생자에게도 예우를 갖춰 사죄하지 않는다며 검찰 수사 의뢰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5월 당시 군 헬기 사격과 폭탄 장착 전투기 대기를 밝힌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결과를 토대로 1997년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문에 담지 못한 혐의를 전씨에게 적용할 방침이다.


회고록서
‘폭동’ 표현

온라인상에서도 전씨의 발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lock****’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전두환 회고록에는 분명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상에 따라 민주화운동일 수도 폭동일 수도 있다. 정권을 어떻게 잡았건, 정부를 상대로 총 쏘며 반정부 내전을 일으킨 건 분명 좋지 못한 행동이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다 해도 똑같이 잘못된 방법을 쓴 무장폭동이 합리화될수 없다”고 게시했다. 

‘kyg5****’은 “아무 이유 없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무력진압 한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 간부가 실제로 5·18민주화운동 중 선봉에 서서 운동했던 사진으로 나오고 있고, 실탄과 살인무기, 심지어 수류탄까지 만약에 전두환이 군사적으로 진압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요.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보면 증거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는 중립적으로 그 자료에 대한 반박을 하는 사람을 못 봐서 의심되는 건 사실”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전씨는 2018년 8월과 2019년 1월 두번의 재판에 알츠하이머병과 독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특히 8월 첫 재판을 하루 앞두고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최근 인지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이라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지방세 약 10억원을 체납한 전씨의 서울 연희동 가택수색을 시도했을 때 전씨 측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며 맞서기도 했다.  
 

▲ 수모 받는 전두환 동상

이날 전씨는 광주지법에 도착해 동행한 부인 이순자 여사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법정까지 이동했다. 걸음은 다소 느렸다.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는 취재진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역정을 냈다.

그는 재판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판사가 피고인 확인을 위해 “생년월일이 1931년 1월18일이 맞느냐”고 묻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어… 재판장 말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헤드폰을 낀 뒤에서야 답변을 이어갔다. 생년월일, 사는 곳과 등록기준지, 직업 등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간간이 부인과 대화를 나눌 때 외에 그는 재판 내내 눈을 감고 졸았다.

5·18 관련 과거 발언들 모아보니…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 후 골프도 

전문가들은 이날 드러난 모습으로는 알츠하이머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말하는 것만 봐서는 이상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하면 초기 알츠하이머를 의심할 수 있지만, 피로한 것만으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으로 진행되면 질문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문서답을 한다거나, 대답 자체를 제대로 못하게 된다. 스스로 걷기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 10.2%로부터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국내 환자는 72만4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좀 전에 생긴 일을 기억 못하는 인지 장애가 대표적 증상이다. 알츠하이머가 중증으로 진행하면 치매가 된다.

전씨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2013년 이후에도 공식석상에 자주 등장했다. 2015년 10월 모교인 대구공고 체육대회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환호에 화답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6월 경산서 열린 대구공고 동문 골프대회와 만찬에 참석했다. 이튿날엔 경주서 지인들과 골프도 쳤다. 

재판의 쟁점인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명령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내비치며 적극 해명했다. 2016년 5월 언론 인터뷰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라고 말한 바 있다. 2017년 초 지인들과 함께한 신년회에서는 그해 5월로 예정된 19대 대선을 거론하며 “이번 대통령은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나와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전씨가 재판을 피하기 위해 환자인 척 연기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근 언론을 통해 그는 부인 이순자 여사 등과 골프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점, 복잡한 골프 스코어 계산도 스스로 했다는 증언이 보도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아프다고?
외출 발각

임현국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의 핵심은 최근 기억력의 장애다. 옛 기억은 잘 하는데 방금 일어난 사건은 잃어버린다”며 “알츠하이머 환자라 해도 골프는 칠 수 있다. 과거에 몸으로 익혔던 기억이기 때문에 가장 오래 간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하지만 골프 스코어 계산은 단기 기억력의 영역이다. 만약 본인이 복잡한 암산을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인지장애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재산 29만원’ 전두환 추징금은?

전두환씨가 최근까지 추징금 2205억원 중 약 1000억원을 미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뉴시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는 지난 2월 기준 전씨의 추징금 약 1199억5000만원을 확보했다.

환수되지 못한 금액은 약 1005억5000만원이다.

검찰은 지난 1년간 약 25억3000만원을 추가로 추징했으며, 이 중에는 전씨의 장남인 재국씨가 운영한 출판사 시공사 등 관계사가 법원의 명령에 따라 납부하는 추징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내란 및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지난 1996년 8월 1심서 사형을 선고 받았고, 그 다음해 4월 대법원서 2심이 선고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받았다. 이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으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환수 절차가 진행됐다.

이후 2013년 추징금 집행 시효 만료를 앞두고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시효가 연장됐고, 검찰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을 구성해 전씨의 재산 환수에 나섰다.

전씨가 과거 골프 하러 가서 캐디에게 팁 1만원을 건네며 “이제 내 전 재산은 26만원이다”라는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씨의 재산 환수와 그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른바 ‘전두환 추격자’  정의당 임한솔 전 부대변인은 지난해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서 “현재까지 전두환씨 경호에 들어간 국민 세금이 100억원 가까이 된다”며 “내년도 예산서도 이미 수억원이 책정됐다”고 밝혔다.

전씨 경호에 들어간 세금은 최근 3년 동안 10억원이고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된 규모는 2억원대로 알려졌다.

전씨에 대한 경호는 현재 서울경찰청서 담당하고 있다.

전씨는 전직 대통령 예우 자격이 박탈돼 중단됐지만, 경찰은 필요한 경호 및 경비는 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에 따라 경호를 하고 있다.

이에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은 “경찰은 전두환 경호를 올해 안에 중지하라”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을 촉구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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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