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뇌관 ‘라임 스캔들’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3.30 10:27:24
  • 호수 12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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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찍고 게이트로 불붙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 정도면 점입가경이다. 단순 금융권 사기로 보였던 사건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을 조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래통합당은 이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했다. ‘라임 사태’ 이야기다.
 

“권력형 게이트로 치닫고 있다. (중략)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 특별검사 도입, 혹은 국정조사에 착수하겠다.” 지난 25일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선거대책회의서 나온 발언이다. 앞서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친문라임게이트 조사특별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환매 중단 사태를 ‘친문 게이트’로 규정한 것이다. 

행정관은 
알고 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 소속 김모 전 행정관(현 금융감독원 팀장)이 라임 사태에 깊숙이 개입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전 행정관과 라임 사태 핵심 인물들 간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김 전 행정관과 라임 사태의 배후 전주(사업에 밑천을 대주는 사람) 김모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관계 규명이 핵심이다. 광주 출신인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라임과 청와대의 연결고리로 의심받고 있다. 또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이 투자자를 설득하는 과정서 ‘환매 연기된 라임의 부실 펀드를 사들여줄 회장님’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최근 검찰은 장 전 센터장이 한 라임 펀드 피해자와 나눈 대화의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해당 대화서 장 전 센터장은 라임 펀드 투자자였던 피해자에게 김 전 행정관의 명함을 보여주며 “이쪽(청와대)이 키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서 이쪽으로 간 것이다. 사실 라임은 이분이 다 막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센터장이 근무한 반포WM센터는 1조원 규모의 라임 펀드를 판매한 곳이다. 장 전 센터장은 반포WM센터서 펀드 판매를 위해 여러 차례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피해자모임은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피해자들은 장 전 센터장이 지난해 말 청와대 행정관의 명함을 내밀며 자신들을 안심시켰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친문라임게이트’로 규정
거미줄 같은 ‘라임 주범’ 인맥도

검찰은 지난달 27일, 장 전 센터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장 전 센터장의 자택과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청와대나 금융당국 인사들 중 혹여나 라임 사태에 연루된 사람이 더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함으로 읽힌다. 

또 김 전 행정관은 전주인 김모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룸살롱서 향응·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경제>는 두 사람이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유흥주점서 금융권 관계자 등을 접대했다고 한다. 김 전 행정관은 퇴근 후 유흥주점에 들러 참석자들에게 명함을 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이 유흥주점에 10억원을 선금으로 맡겨놨다는 참석자의 증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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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6일, 춘추관서 ‘김 전 행정관이 청와대 파견 당시 룸살롱 향응·접대를 받았다는 사안을 청와대서 인지하고 감찰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개별 감찰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고향 친구인 김 전 행정관에게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소개해줬다. 이 전 부사장은 라임 사태의 ‘키맨’이다. 그는 지난 2017년 당시 1조원 규모였던 라임 펀드를 지난해 7월 말 기준 5조7000억원 규모로 키운 장본인이다.

최근 이 전 부시장과 관련한 또 다른 정치권 연루 의혹이 불거졌다.

룸살롱서
향응·접대

그가 라임 환매 중단 사태 전 지인들에게 “국회의원이 3∼4번 은행 고위층에게 직접 가서 문건(만기 6개월짜리 라임 펀드의 재판매 요청서)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청와대 고위층에도 해당 문건이 올라갔다”고 말했다는 것. 다만 이 전 부시장은 지인들에게 해당 국회의원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은행 측은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내부 조사 결과, 문건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친노 인사가 김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조선일보>는 김 전 회장과 한때 사업파트너였던 한 금융권 종사자로부터 “김 전 회장이 ‘나와 막역한 친노 인사에게 정치자금 20억원을 제공했으며, 그를 통해 300억원을 책임지고 끌어오겠다’고 했다는 말을 김 전 회장과 사업파트너였던 투자증권 출신의 한 인사에게 들었다”고 했다. 

친노 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면,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김 전 회장이 지나가는 길에 사무실 구경도 하고 ‘차 한 잔 할 수 있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고, 투자 상담 얘기를 꺼내기에 담당 팀에 상담하라고 했다. 상담 후 조합 담당 팀장이 우리 조합서 취급하지 않는 상품이라고 보고해 다음에 다시 연락이 오면 정중히 그 내용을 전하라고 한 것이 전부’라며 ‘이 이상도 이하도 덧붙일 것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이어 ‘터무니없는 얘기고 변호사와 상의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공동취재단

통합당은 해당 의혹에 불을 지폈다. 통합당 이진복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 25일 국회서 열린 선거전략대책회의서 “(라임 사태는)고객 돈 횡령의혹에 정계로비설, 연루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금감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의 개입 의혹과 친노 인사에 대한 자금 제공 의혹에 연루된 불법 행위자들이 잠적했다. 관련자들의 지연·학연 등이 거론되고 있는 점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폴에
적색수배

라임 사태 핵심인사들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 전 부사장은 검찰이 지난해 11월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부산으로 도주했다. 김 전 회장 역시 도주해 잠적한 상태다. 그중 이 전 부사장은 이미 해외로 도주했다. 

지난 2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인터폴은 국내 사정기관의 요청에 따라 이 전 부사장에 대해 적색수배령을 내렸다. 부산에 머물다 인접 국가로 밀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 부사장을 추적해 온 사정당국은 그가 밀항한 국가를 특정하는 데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이다. 

인터폴 수배는 범죄자가 국외로 도피했을 시 사정당국의 요청에 의해 인터폴이 신병 확보에 나서는 ‘국제수배’다. 이번에 내려진 적색수배는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자나 5억원 이상 피해를 발생시킨 경제사범 등 중대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최고 수준의 수배 단계다.


적색수배가 내려진 라임 사태 핵심인사는 이 전 부사장을 포함해 3명이다. 부동산 사업 시행사인 ‘메트로폴리탄’의 김모 회장과 신원 불명의 1명이 포함됐다. 메트로폴리탄에는 라임이 조성한 펀드 자금 2500억원이 투자됐다. 김 전 회장은 이 중 2000억원 횡령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 분석은 마무리 단계지만, 핵심 인사들의 도주로 경영진의 횡령 등 본류 수사에는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 1차로 라임과 신한금융투자(이하 신한금투) 본사, 금감원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2차로 대신증권·우리은행·KB증권 등 판매사의 본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핵심인사들의 신변확보 실패에 ‘윗선’의 개입 여부는 답보상태다. 검찰은 지난 25일 신한금투 전 임원을 긴급체포, 라임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친노 인사에 20억원?
국회의원 연루설까지

이 때문에 검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금융당국을 핑계로 대면서 라임 사태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이 전 부사장이 부산으로 도주하자 책임론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검거에 나서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지난 2월 금감원 중간 검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야 압수수색에 들어가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이 전 부사장 등 핵심인사들이 잠적한 후였다. 
 

▲ 압수수색 중인 검찰

라임의 검찰 로비설까지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이 전 부사장에 대한 출국정지 조치를 일시 해제한 바 있다. 또 법무부는 지난 1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 의혹을 키웠다. 라임 사태는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서 수사 중이다. 

통합당 이진복 총괄선대본부장은 지난 25일 회의서 “법무부가 증권범죄수사부를 해체했다. (문재인)정권이 한통속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민 시선이 코로나19에 쏠려있는 틈을 탄 눈치 보기 대응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의심했다.

라임 사태는 21대 총선의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친문라임게이트 조사특위를 구성했다. 김용남 경기 수원병 후보를 특위 위원장으로, 주광덕·곽상도·정점식 의원, 임윤성 선거대책위원회 상근대변인을 위원으로 각각 임명했다.

김용남 위원장은 앞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조국 인사청문회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모펀드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윗선 수사
어디까지?

임윤선 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22일, 김 위원장 등의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서 “라임 사태 본질은 핵심 인사들이 피 같은 돈을 받아 기업을 난도질하고 본인들의 사치와 유흥자금으로 쓴 게 끝이 아니었다”며 “친문 인사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는 보도와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라임 사태란?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은 국내 1위의 헤지펀드회사다. 지난 2012년 투자자문사로 시작한 라임은 지난해 7월 기준 운용자산 규모만 6조원에 가깝게 급성장했다.

사모펀드 판매를 통해서다. 사모펀드는 소규모의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운용하는 펀드다.

자금 운용에 제약이 없고 금융당국의 규제도 적은 편이지만, 그만큼 높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라임의 이러한 고위험성 펀드를 금융사들은 원금 손실 위험이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홍보하며 판매하다 엄청난 피해액을 발생시켰다.

지금까지 드러난 손실액만 1조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등 경영진은 손실이 발생한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정직하게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신규 고객의 돈으로 펀드의 손실을 메우는 편법 돌려막기로 부실 규모를 키웠다.

이 과정서 김모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인맥이 이용됐다. 김 전 회장은 고향 친구인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이 전 부사장을 소개했다.

이 전 부사장과 대신증권 선후배 사이인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은 2000억원이 넘는 사모펀드를 판매해 라임 투자금을 모았다.

피해자들이 라임 펀드 판매 은행과 증권사에 분노를 쏟아내는 이유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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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