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태극호 선장’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 정혜경 jhk@ilyosisa.co.kr
  • 등록 2012.03.06 15: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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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모래바람 잠재우고 월드컵으로 강슛~골인~!!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최강희호’가 중동의 모래바람을 잠재우고 첫 번째 임무를 완수했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지난달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 이로써 한국은 최종예선 티켓을 거머쥐게 됐다. 이번 승리의 주역은 지난해 12월 태극호의 키를 쥔 최강희 감독이다. 그는 장밋빛 미래가 보장돼 있었음에도 대표팀 감독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마신 인물이다. 대표팀 감독 자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는 최 감독.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소싯적 축구보다 노는 것 좋아해…술?담배도
외동딸 태어나면서 담배 끊고 축구에만 전념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28세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요즘 선수들이 일찌감치 A대표 선수가 되는 것과는 달리 늦게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최 감독은 축구 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일찍부터 술과 흡연을 했다. 축구하는 친구들과 운동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당구 치는 낙에 살았다. 그러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어렵게 한일은행에 입단했다.

대학 진학 실패
한일은행 입단

그후 아버지(2006년 작고)의 도움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충의(군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축구를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어렵게 선수의 길을 이어갔다. 이후 한일은행과 포항을 거쳐 1984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생기면서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최 감독은 이때까지도 담배를 피웠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현대 구단 감독으로 있었을 때 현대 주장이 됐다. 하루는 팀 동료들과 당구장에서 담배를 물고 당구를 치다 조 감독에게 현장에서 발각됐다. 당시 조 감독은 최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벌금을 물렸다가 시즌이 끝나고 돈을 돌려주는 일도 있었다.

최 감독이 담배를 끊고 축구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기 시작한 건 1987년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외동딸(혜린)이 태어나면서 축구에 몰두했다. 축구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잠자리에 들 때도 볼을 놓지 않았다. 열정과 황소고집으로 정도를 걸었다. 그 끝에 최 감독은 1985년, 86년, 88년 K-리그 베스트11 수비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최 감독은 담배를 끊은 지 1년 만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다부지게 볼을 찼다. 주로 풀백을 봤다. 정신을 차린 이후로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남달랐다. 그라운드에서 한 발 더 뛰기 위해 희생했다. 그러나 최 감독이 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최 감독은 1992년말 33세의 나이로 현대에서 은퇴했다. 당시 차범근 현대 감독과의 불화로 동계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991년 정점을 찍었던 경기력은 바로 다음해 급락, 선수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1991년말에는 연봉 협상 문제로 팀훈련 합류를 거부했다. 당시 김호 대표팀 감독은 계속 선수 생활을 하라고 당부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몸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고 결국 은퇴를 했다.

그런 최 감독이 다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은 10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수원 삼성 코치에서 물러나 쉬고 있었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대표팀 코치가 됐다. 이어 2003년 코엘류 A대표팀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발탁됐다. 당시 수석코치는 박성화, GK코치는 박영수였다.

최 감독은 대표팀 코치 시절 코엘류 감독에게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축구 사정을 잘 모르는 코엘류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식으로 조언을 많이 했다. 코엘류 감독은 최 감독이 해주는 얘기를 싫은 내색 않고 받아주었다. 조언을 전부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들어주었다. 그러나 코엘류 감독은 2004년 4월, 1년 2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그러면서 최 감독의 코치 생활도 단명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다시 7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해 12월 21일, 최 감독은 모든 축구 지도자들의 염원인 태극호의 선장이 됐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이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축구협회가 그해 12월 말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면서 제대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협회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성난 여론을 달랠 수 있는 카드는 전북에서 ‘닥공(닥치고 공격·셧업 앤 어택·Shut Up And Attack)’ 신드롬을 일으킨 최 감독뿐이었다. 축구 인들은 “최강희 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그가 수락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최 감독은 전북에서 장기계약 제안을 받으며 클럽 감독으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장밋빛 미래가 보장돼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국가대표팀 감독
독 든 성배 마셔


만일 쿠웨이트에 져서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하면 그것으로 축구 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최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마셨다. 감독 수락을 결정한 날, 그는 하얗게 밤을 샜다. ‘내가 왜 이걸 맡는다고 했을까’ 번민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최강희호는 지난달 18일 전남 영암에서 출항했다. 여유가 넘쳤다. 쿠웨이트를 충분히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 감독은 아시아 축구에 잔뼈가 굵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수차례 부딪혔다. 2006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비록 우승컵을 품에 안지 못했지만 더 큰 영광을 누렸다. 자신의 히트상품인 ‘닥공’이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된 것.

28살에 태극마크 달았지만 33살에 선수은퇴
결국 쿠웨이트 꺾고 최종 예선 티켓 거머쥐어

최 감독은 취임 이후 줄곧 쿠웨이트전 승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최 감독은 “대표팀의 색깔이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 당장은 쿠웨이트전만 생각하겠다”며 “쿠웨이트전을 잘 치르면 시간도 있고 선수들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큰 틀은 그 이후에 말씀드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벼랑 끝 승부’에 나선 최 감독은 경험 많은 베테랑과 그동안 대표팀 명단에서 소외됐던 K리거들을 불러 모아 결전을 준비했다. 백전노장 김상식(전북)을 비롯해 태극마크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이동국(전북)이 감독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김두현(경찰청)과 김치우(상무) 등 한동안 잊힌 이름들도 기회를 잡았다.

경기전 최 감독의 각오는 비장했다. 패하지만 않아도 최소 조 2위를 확보,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오를 수 있었음에도 비긴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연 결과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후반초까지 쿠웨이트가 한국을 압도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최 감독은 기성용을 투입했고 이후 한국은 조금씩 경기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후반 20분에는 한상운 대신 김신욱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후반 21분, 한국은 마침내 쿠웨이트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이동국이 오른쪽 측면으로 침투하는 이근호에게 공을 내줬고 2대1 패스를 받은 이동국은 바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 쿠웨이트의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 주도권을 가져온 한국은 이후 파상공세를 펼치며 5분 후에 추가 골을 얻어냈다. 후반 26분 박주영에게서 시작된 패스가 이근호까지 연결됐고 이근호가 페널티에어리어 내 오른쪽 지점에서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두 골을 허용한 쿠웨이트는 역습에 나섰지만 기세가 오른 한국의 수비벽을 뚫지 못하고 만회골을 만드는데 실패해 예선 탈락했다. 이에 따라 한국팀은 승점 13점(4승1무1패)을 올려 B조 1위로 오는 6월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최 감독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한 셈이었다.

경기를 마친 최 감독은 “경기 초반에 기싸움을 통해 주도권을 잡아가자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60분이 넘어 상대가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우리의 능력을 믿자고 했고 이후 득점이 이뤄져 승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앞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감독은 “많이 험난할 것 같다. 열흘이라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선수들이 훈련한대로, 의도한대로 플레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이번 경기의 경우 시즌을 시작하는 오픈경기라 어려움이 있었다. 시즌 중에 경기가 열리면 경기 감각이나 선수들을 살피고 뽑을 수 있다.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며칠 만에 전력을 극대화 시켜야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에 몰린 한국축구를 이끌고 첫 번째 고비를 넘긴 최 감독은 이제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두 번째 과제를 앞둔 그의 각오는 좀 더 결연하다. 최 감독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신이 이끌던 소속팀 전북을 떠나면서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을 맡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시한부 감독을 자청하며 사실상 최종예선에 ‘올인’한 셈이다.

최 감독은 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누구나 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문을 열어 놓고 앞으로 다양한 각도로 대표팀을 운영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마음의 부담을 덜고 본격적으로 대표팀에 자신의 축구 철학을 접목시킬 최 감독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다양한 각도로
대표팀 운영할 것”

한편,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다음달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조 추첨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한국을 비롯해 호주, 일본, 이라크 등 10개 나라가 아시아에 배정된 4.5장의 티켓을 놓고 2개조로 나눠 격돌한다. 각조 1,2위 팀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3위 팀끼리 맞대결을 펼쳐 이긴 팀이 남미 예선 5위와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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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