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세대 대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떠난 ‘김 고문’ “강철 같은 의지는 영원히~”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지난해 12월30일 새벽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났다. 김 고문은 양지보다 음지에 머물며 투쟁하던 80년대 운동권 세대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대부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던 김 고문은 뇌정맥혈전증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다 입은 상처가 그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간 것. 투병 중에도 물밑에서는 야권통합에 힘을 실으며 한편으론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해 마지막 정치적 꿈을 펼치려 했던 그였기에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주춧돌을 견고히 다진 그의 굴곡진 인생사를 돌아봤다.

민청련 결성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당해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 민주운동 훈장


지난해 12월8일 한반도재단이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놨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해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지만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다는 것이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면회와 취재를 사양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투병사실 비밀로 하다
딸 결혼식 때문에 공개

김 고문의 입원 소식에 정치권은 술렁였다. 모두가 애써 말하지 않을 뿐 대개가 알고 있었던 그의 파킨슨병 투병설이 기정사실화 된 것이었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한다. 경직, 느림, 자세 불안정, 손떨림 등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증상이 서서히 악화하는데 개선되지는 않는다. 발병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심한 외상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알려졌다.

애초 김 고문 측은 입원을 언론에 알릴 계획이 없었다. 정치인에게 건강 악화는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김 고문이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건 지난해 12월10일 그의 딸인 병민씨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서였다. 아버지인 김 고문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온갖 억측과 구설이 난무할 게 분명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반도재단 측은 그의 입원을 어쩔 수 없이 언론에 알렸다.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그의 증상은 악화됐다. 11월25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이란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서 만들어진 덩어리다. 혈전용해제로 덩어리를 녹여 없애는 치료가 필요했다. 11월29일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 고문의 몸은 약물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2~3시간 동안 의식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고비를 넘겼다.

최상명 한반도재단 사무총장은 김 고문이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 사무총장은 “‘힘내라’는 말에는 ‘고맙다’는 말로 대답해주고, 웃어주는 등 짧지만 대화도 가능하고 인지도 한다. 현재 의료진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치료하는 동안 올 수 있는 폐렴 따위의 기관지·구강 감염이다.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경직된 근육을 키우기 위한 재활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적어도 12월 한 달 동안은 집중 치료를 받고, 향후 6개월간도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29일 비보가 날아들었다. 김 고문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처음 전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근태 선배님이 위독하다 하십니다”라며 “오늘이 고비일 듯하답니다. 슬프네요. 여러분도 같이 기도해주세요”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주변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다. 그러나 김 고문은 치료 도중 장기활동이 둔해지고 폐렴까지 앓는 등 2차 합병증이 겹쳐 상태가 악화됐고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김 고문의 사망은 사실상 고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고문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지난 1985년 구속됐다. 그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로부터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루 5~6시간에 달하는 고문을 견뎌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그는 고문당하는 내내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원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당시를 ‘짐승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전기, 물고문 거치면서
온몸이 만신창이

여덟 차례 전기고문과 두 차례 물고문을 거치는 동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부인 인재근씨가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독재정권의 악랄한 고문 사실을 녹음해 미국 언론에 전하자 이는 곧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의 ‘세계의 양심수’에도 선정됐다. 어눌한 말투, 떨리는 손,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고개를 몸과 함께 돌려야 하는 불편함 등 김 고문의 몸에 남은 고문 후유증을 두고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의 ‘훈장’이라고 칭송했다.

김 고문은 80년대 이후 민청련과 전민련 등 재야 민주화단체를 이끌면서 중견 민주화운동가로 각광받았다. 현실정치 참여를 미루던 그는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15대 총선부터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내리 세 차례 당선됐고 지난 2000년 8월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 되면서 당 지도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김 고문은 지난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 최하위로 쳐지자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당내 재야그룹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의 훈장으로 통하던 고문후유증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김 고문을 ‘저평가 우량주’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세계의 양심수’ 선정
총선 출마 꿈 좌절됐지만 “이제 편히 쉬소서”


참여정부 출범 이후 그는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과 운명을 함께 했다. 열린당 초대 원내대표와 당의장을 지냈다. 지난 2004년 7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이후 잇따른 재ㆍ보선 패배와 지난해 5ㆍ31지방선거 참패로 열린당 인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듬해 6월 당의장이 돼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지만 열린당은 분열로 치달았고, 그의 지지율 역시 1% 대에서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 고문은 최근까지 세상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지난 2008년 총선 때 자신을 버리고 뉴라이트인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을 택한 서울 도봉갑 유권자의 민심을 돌리려 발로 뛰었다.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고문은 올해 초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싶고,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를 이뤄 복지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 못 얻어
민주화 훈장 걸림돌

그러나 그는 지난해 10월18일 게시한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 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 한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졌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김 고문의 꿈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젊은 시절 독재정권과 맞서며 입은 상처 때문이다. 그렇게 김 고문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민주화의 고매한 의지만큼은 우리 곁에 남았다. 민주화를 위해 달려온 수십년, 이제 그 큰 짐을 내려놓고 독재도 고문도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게 영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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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