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받는 통큰 기부 정몽준 의원

현대가 잔치에 장자·큰며느리 빠지니 ‘썰렁’

범현대가가 최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5000억원 규모의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주도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2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놨다.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지만 재계에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적통을 자임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참여하지 않아서다. 대체 이들의 불참 사유는 뭘까.

범현대가 오너들 5000억원 출연해 재단 설립
현대중공업 2380억원, 정몽준 의원 2000억원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범현대가 오너들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사재와 회삿돈 500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재단명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를 따서 ‘아산나눔재단’으로 정했다.

재단설립 준비위원회는 정진홍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고,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태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한정화 한양대학교 교수, 영화배우 안성기,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준비위원으로 선임됐다.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 위원장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서거 10주기를 맞아, 아산 정주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재단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정신 계승하기 위해

이어 정 위원장은 “아산은 복지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1977년에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소외된 지역에 병원들을 세우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회복지사업을 지원했다.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산 선생의 뜻이었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또 “정몽준 의원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기업인의 사명에 대해 고민해오다 이달 초 집안일로 만나 얘기하던 중 마침 내일(8월17일)이 정 의원 모친(고 변중석씨)의 기일이어서 이번 재단설립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나눔의 복지를 실현하고 청년들의 창업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아산 정주영의 정신을 계승한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정 의원의 대권행보를 위한 재단설립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정 의원이 상당한 출연을 한 것은 기업이 창조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돈을 내놓은 것”이라며 “특별히 어떤 시점을 의식하거나 어떤 목적, 다른 의도를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1982년 정 의원이 쓴 ‘기업경영이념’을 보면 정 의원이 오래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많이 고심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정부의 공생관계 발전 등 정책 기조에 맞춰서 갑자기 발표한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정 위원장은 또 “정 의원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만 출연했을 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고 못박았다. 향후 추가 출연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위원장은 “정 의원이 계속해서 기금을 출연해주리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추가 출연에 대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여운을 남겼다. 

정몽구 회장, 자체 진행 사회공헌활동 있어서
현정은 회장, 형편 어려워서?…경영권 분쟁?

아산나눔재단의 출범시기 등에 대해 정 위원장은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지 않았다”며 “올해가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이고, 내일이 정 의원의 모친인 변중석 여사의 기일이라는 점에서 (재단설립 발표를 한) 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설립기금은 현대중공업 계열 6개사가 2380억원, 정몽준 의원이 2000억원(현금 300억원, 주식1700억원)을 출연한다.

이밖에 KCC 150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 100억원, 현대백화점 50억원, 현대산업개발 50억원, 현대종합금속 30억원 등 총 380억원을 투입한다. 또 정상영, 정몽근, 정몽규, 정몽윤, 정몽석, 정몽진, 정몽익, 정지선 등 창업자 일가가 240억원을 투입했다. 범현대가 대부분이 출연에 참여했지만 정작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적통을 자임하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빠졌다. 이번 재단 설립 주체가 범현대가라고는 하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단 이사회에
참석 않을 것”

정 위원장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참여하지 않은 점에 대해 “범현대가 모두 제각기 특성이 있고, 나름대로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며, 형편의 차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도 “형님(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별도로 (재단을) 하니까 그렇고, 현대그룹은 여력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름대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 회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지난 2007년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정 회장은 사재 150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었다. 기존에 현대차그룹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이 있기 때문에 중복해서 재단을 설립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해비치재단이라는 공식 채널이 있는데 아산나눔재단에 별도로 출연하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정 회장이 현대가의 장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아산나눔재단 설립을 계기로 해비치재단에 추가로 출연해 기부 효과를 극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각 형편에 따라 참여를 결정한다는 것은 현재 경영여건이 좋지 않은 현정은 회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실패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불참과 관련해서는 현대가 경영권 분쟁의 후유증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대가에서 벌어진 경영권 다툼은 그야말로 ‘진흙탕’이었다. ‘왕자의 난’을 시작으로 ‘시숙의 난’과 ‘시동생의 난’에 이르기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숱한 경영권 분쟁
인해 마음에 앙금?

우선 ‘왕자의 난’은 정주영 창업주 타계 전인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제간 더 좋은 계열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 도화선이 됐다. 결국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차그룹으로 ‘파이’를 나누면서 분쟁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 마음속엔 앙금이 남았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서로 왕래가 뜸한 상태다.

남편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지난 2003년 경영권을 이어받은 현 회장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숙부의 난’이 불거진 것. 정 명예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입하면서 현대그룹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KCC와 현대그룹간의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간 지속되면서 현 회장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정 명예회장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 황급히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KCC는 아직 현대그룹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화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어 지난 2006년에는 정 의원과도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이른바 ‘시동생의 난’이다. 이 사태는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핵심인 현대상선의 지분 26.68%을 매입해 현대상선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촉발됐다.

현대중공업은 ‘백기사’를 자처하며 경영권 보호와 단순투자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현대그룹은 믿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이 6.26%의 지분을 보유한 KCC와 연합할 경우 지분율은 33%에 이르러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현 회장의 현대상선 지분은 35%로 2%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사태 역시 형님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에 정 의원이 한걸음 물러나면서 일단락됐다.

현 회장은 지난 2010년 말 현대건설 인수 문제로 정몽구 회장과도 맞섰다. 현 회장에게 현대건설은 절실했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현대상선은 현대중공업이 17.6%를,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7.9%를, KCC가 4.9%를 소유하고 있었다. 만약 범현대가가 현대건설을 삼킬 경우 현대그룹으로선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현정은 회장은 회심의 풀베팅을 했고, 현대건설을 거머쥐는 듯했다. 하지만 자금 출처 논란이 불거져 나오면서 판도변화가 생겼다. 그 틈을 노리고 현대차그룹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끝에 현대건설의 새 주인으로 현대차그룹이 결정됐다. 이처럼 불편한 관계로 인해 정 의원이 재단 설립 문제와 관련해 현 회장에 참여를 권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반대로 정 의원이 참여를 권했더라도 현 회장이 이를 받아들였을지는 미지수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프로필

■학력
~2011 강원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2011 전주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2002 한국체육대학교 명예박사 
~1993 존스홉킨스대학교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1980 매사추세츠공과대학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70~1975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67~1970 중앙고등학교 
1964~1967 중앙중학교 
1958~1964 장충초등학교  

■경력
2009.09~2010.06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8.05~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8.01~2009.09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7.06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2004~2008.05 제17대 국회의원
2002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
2001~아산재단 이사장
2000 제16대 국회의원
1997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1996 아산재단 이사
1996 제15대 국회의원
1994~2011.01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1993.01~2009.01 대한축구협회 회장
1992 제14대 국회의원
1991 현대중공업 고문
1988 제13대 국회의원
1987 현대중공업 회장
1983 울산대학교 이사장
1982 현대중공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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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