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코너 몰린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2.05 10:58:14
  • 호수 1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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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살았다 간증 ‘사실일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깨끗하게 살았다.” 안태근 전 검사가 교회 간증서 이같이 밝혔다. 그런데 현직 여검사가 8년 전 안 전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스스로 고백 한대로 그의 인생은 정말 깨끗했을까.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A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옆자리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 시간 동안 했다.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지현 폭로에 
검 내부 발칵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8년 전 법무부 간부 A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A검사는 바로 안태근 전 검사다.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서 검사는 이 이 사건 이후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서 검사가 안 전 검사의 사과를 소속 검찰청 간부를 통해 받는 선에서 정리됐다. 하지만 안 전 검사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2014년 사무감사서 검찰총장 경고를 받은 뒤 2015년 원치 않는 지방 발령을 받았다. 이 인사 발령 배후에 안 전 검사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 검사는 지난 1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서 대부분 성폭력 피해자들은 혹시나 피해가 자신 탓은 아닌지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한다. ‘자신이 근무했던 조직,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 더욱 그렇다. 

서 검사 역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서 검사가 8년이나 지난 일을 폭로한 까닭은 뭘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그는 우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고 했다. 또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의 ‘위선’도 폭로에 이르게 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안 전 검사는 최근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0월29일 온누리교회서 간증(신앙고백)을 했다. 안 전 검사는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이 종교에 귀의한 배경에 대해 털어놨다. 

안 전 검사는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며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됐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줬다”고 밝혔다.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옷을 벗게 된 일을 언급한 것(관련 사건은 뒤에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당시 안 전 검사는 신앙고백 중 북받침을 참지 못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 검사 폭로로 검찰이 대규모 진상 조사단을 꾸리고 의혹 규명과 제도 개선에 나섰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31일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구성해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이라는 두 갈래로 활동한다. 

한 장례식장서 강제추행 폭로
허리 감싸고 엉덩이 쓰다듬어

조사단은 우선 진상규명을 하고 향후 제도 개선에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대검 측은 설명했다. 활동 기한은 따로 두지 않고 근절될 때까지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단장으로 하고 여성 부장검사를 부단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조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각종 ‘여성 1호’ 기록을 세웠다. 2013년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차관급)이 됐다.

여성 성폭력 사건 수사에서 전문성을 쌓은 여성 검사 및 수사관 등이 조사단에 합류한다고 대검 측은 소개했다. 사무실은 서울동부지검에 두기로 했다. 

조사단은 서 검사가 폭로한 안 전  국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중심으로 검찰 내에서 발생한 각종 성범죄 사건을 조사하며 필요한 경우 수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 검사와 안 전 검사의 경우 조사단 구성이 완료되면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들을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안 전 검사장이 비록 현직 검사 신분은 아니지만, 강제조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안 전 검사 의혹 사건 외에도 서 검사가 추가로 폭로한 성추행 의혹도 조사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또 전직 여성 검사들이 폭로한 성추행 의혹 사건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억울하다 
 기억 없어”  

하지만 안 전 검사에 대한 처벌이나 검찰 징계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2010년 10월 성추행죄 관련 규정 때문이다. 

당시에는 성추행죄가 친고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했다. 이 규정은 2013년 1월 폐지됐지만, 행위 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안 전 검사 사건에는 소급적용될 수 없다. 

또 안 전 국장은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감찰 대상도 아니다. 공무원법상 징계 시효 3년이 이미 지나 징계처분 가능성도 없다. 

다만 업무 실적 등에 근거하지 않은 부당한 인사가 확인될 경우 관련자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죄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처벌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안 전 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안 전 검사는 “보도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됐다”며 “오래 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여서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도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미투(Me too)운동을 지지한다’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 검찰 내 성범죄 특별수사팀을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투 운동’은 온라인에 ‘나도 피해자(me too)’라며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고백하고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지난해부터 미국 할리우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서 벌어지고 있다. 

서 검사는 인터뷰서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미투 운동에 영향을 받아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열고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법조계 내 #미투(Me too) 운동을 지지한다“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검찰을 향해 검찰 내에 성범죄 특별수사팀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정춘숙·권미혁·남인순·박경미·송옥주·유승희·유은혜·이재정·진선미 의원 등은 “용기 있는 서 검사의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를 응원하며 용기 있는 피해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이들 의원들은 서 검사의 이번 폭로에 대해 “법조계 #미투 캠페인의 시작”이라며 “소위 말하는 전문직, 가장 폐쇄적 집단인 법조계 내에서의 성 범죄 피해자의 고백은 집단으로부터 외면당하기 부지기수였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역시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국민의당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조용범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단순한 양성평등을 넘어 폭넓은 젠더 감수성 논의가 요구되고 있는 현 시점서 이번 서 검사의 결단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떳떳한 자발적 폭로를 의미하는 ‘미투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당은 양성 평등을 넘어서 보다 근원적인 젠더의 문제에 좀 더 성찰적으로 깊이 있게 다가설 것이며, 이를 실천하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서 “법무부와 검찰은 서 검사 관련 사건과 함께 추가 의혹이 제기된 검찰 내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와 함께 가해자들에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당은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갑질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원내대변인은 “갑질 성범죄는 피해자가 승진, 인사 등 각종 불이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점이 악용된다”며 “조직 내 강압과 쉬쉬하는 분위기에 피해자가 참아야만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으로 안 전 검사의 이력도 주목 받고 있다. 

1966년 출생해 영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나와(서울법대 85학번)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됐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국 과장,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 등 검찰 내 핵심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우병우 봐주기
돈봉투 만찬도

안 전 검사는 검찰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검사’였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처음 법조계에 발을 들인 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검 정책기획단당·서울서부지검 차장·법무부 인권국장 등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만을 두루 거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꼽혔다. 

안 전 검사는 퇴임 전 법무부 검찰국장까지 올랐다. 이 자리는 고검장 승진 1순위인 자리일 뿐 아니라, 장차 법무부 차관을 바라볼 수 있는 요직이다. 안 전 검사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국회 법사위 답변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2016년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안 전 검사는 법무부장관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왔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당시 ‘부산 엘시티 비리 관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보고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농단 수사에 몰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부산 엘시티 비리의혹 사건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노 의원에게 질문을 받은 안 전 검사는 “기억에 없습니다” “보고를 안 했을 수도 있고요” “모르겠습니다” 등의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해 도마에 올랐다. 이에 노 의원이 “막장입니다. 막장이에요”라고 질타로 질의를 마쳤다.

안 전 검사가 의원 앞에서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그의 뒷배가 박근혜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됐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에 실패해 검사복을 벗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청와대’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인사 불이익 “사건 더 있다”
부랴부랴 진상조사단 꾸리고 조사

돌아온 우 전 수석은 검찰·국가정보원에 ‘우병우 라인’을 대거 포진시키며 사정기관을 장악했다. 우 수석은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 역시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안 전 검사다. 안 전 검사는 우 전 수석의 핵심 측근이었다.

검찰 주요 요직에 우 전 수석의 측근들이 포진하다 보니 당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거듭된 구속영장 기각에 압수수색 등 수사 정보가 새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특검은 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가 수사 받을 당시, 안 전 검사와 4개월 동안 1000여차례나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안 전 검사가 우 전 수석과 수사와 관련해 통화해 관련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 전 검사는 “우 수석과 업무상 통화했다”고 했지만 하루 평균 8통 이상(4개월간 1000여차례)의 통화는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 전 검사는 지난해 4월, 우병우 전 수석이 불구속 기소된 뒤 나흘 만에 해당 수사팀 간부 6명을 데리고 저녁 식사를 했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불구속 기소를 해 ‘부실 수사’ 여론이 일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자리에선 위로·격려의 말과 함께 술잔이 돌았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안 전 검사가 먼저 수사팀 간부들 개개인에게 50만∼100만원이 들어있는 금일봉을 건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다. 

‘부실 수사’
다시 수면 위로 

당시 사건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안 전 검사 등에 대한 감찰을 법무부와 검찰청에 지시했고 안 전 검사는 곧장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감찰 중이라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이후 지난해 6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안 전 검사에게 면직 처분을 내렸다. 면직이 되면 2년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똥 튄 최교일, 왜?

2010년 벌어진 현직 여검사 성추행 사건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며 이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상조사단이 만들어진 만큼 모든 것이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건의 경위를 떠나 검찰국장 재직 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데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며 저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최근의 사건과 관련해 저는 서지현 검사를 추행한 사실도 없고, 성추행 의혹사건 현장에 참석한 사실이 없지만 당시 검찰국장으로 근무한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서지현 검사는 서울북부지검서 근무했고, 저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서지현 검사와 통화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연락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검사 인사 때 통상 검찰국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위는 잘 모르지만 저의 검찰국장 재직 시 인사에도 특별한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가 최근 검찰국장 재직 시 같이 근무했던 부속실 직원 및 검사 여러 명에게 이 사건에 관하여 물어봤으나 전부 당시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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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