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나훈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36:57
  • 호수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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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다시 마이크 잡은 ‘가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동안 세 차례의 이혼과 야쿠자에 의한 신체훼손설, 투병설 등 온갖 루머가 잇따르자 ‘마이크 잡기가 힘들다’며 11년간 칩거했다. 그런 그가 침묵을 깨고 신곡을 발표, 복귀의 신호탄을 쐈다. 
 

11년 동안 논란과 의문 속에 칩거 생활을 해왔던 가수 나훈아가 컴백한다. 그가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할 대표곡은 ‘남자의 인생’이다. 나훈아의 소속사 나예소리는 나훈아가 지난 17일 정오 음원 사이트서 새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발표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2500여곡 취입
200여개 앨범

공연계에 따르면 나훈아는 11월3일부터 5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24∼2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12월15∼17일 대구 엑스코 컨벤션홀 등 3개 지역 공연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언론과 방송활동은 일절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앨범에는 7곡이 수록되며 온라인서도 들을 수 있다. ‘남자의 인생’은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소속사는 “나훈아가 11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저런 가슴 아픈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꿈을 가슴에 차곡차곡 품고 돌아왔다”며 “나훈아는 떠날 때도 아무 말 없이 떠났듯이 돌아올 때도 그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애타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준 음악 친구들과 혼신을 다해 준비했다”라고 덧붙였다.


나훈아는 지난 6월부터 복귀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서 원로 작곡가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서 노래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나씨가 1960∼1970년대 오아시스레코드 시절 함께 곡을 만들었던 이들로, 나훈아가 10년 동안 칩거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년 한 번씩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은둔 접고 컴백…드디어 신곡 발표
<드림 어게인> 전국 순회공연 기획

나훈아 콘서트는 유일하게 공짜표가 없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11년 만에 재개되는 나훈아의 콘서트는 티켓이 최하 10만원서 최고 15만∼16만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계에선 티켓 평균단가 13만∼14만원일 경우 3개 도시서 펼쳐질 공연(총 9회) 수익만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훈아의 컴백으로 그의 인생사에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훈아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947년 부산 동구 초량동서 무역상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서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나훈아는 1965년 서울로 상경,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그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1년 후 당시 19세였던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천리길’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공식 데뷔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하며 인기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뤘고,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했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간드러진 꺾기
아직 살아있나

1972년에는 ‘고향역’과 ‘머나먼 고향’을 내놓으면서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선배 가수 남진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양대산맥으로 떠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했지만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에 서울시민회관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됐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했다.

1976년 전역한 뒤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가 됐다. 

나훈아는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 신탄진동서 신혼집을 마련해 거주했다. 나훈아는 1981년에 ‘대동강 편지’ 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했다.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에 ‘울긴 왜 울어’를 발표해 다시금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가요계 복귀로 인해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지며 1982년에 김지미와 이혼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라 평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다.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건네줬는데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엔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나훈아의 대인배적 면모가 보이는 일화다. 

한편으로 김지미와 나훈아의 결혼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으며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결혼이 좀 후회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며 싶었지만 나훈아가 다시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김지미가 “호텔을 다 준다고 해도 무대에 세울 수 없다”며 나훈아의 가요계 복귀를 반대했다.

이후 나훈아는 1년 만에 “아빠가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나훈아의 아이를 낳은 주인공은 가수 출신 정수경이다. 

정수경은 1976년 음반 ‘여군 일등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2년 뒤인 1978년 음반 ‘이름 모를 그 사람’을 발매한 14세 연하의 후배 여가수였다. 이들은 슬하엔 1남1녀를 두고 있다. 1984년에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 데이지쿠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93년 나훈아는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들을 내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나훈아는 간헐적인 콘서트(나훈아 빅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전국 순회 공연) 등 꾸준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순회 콘서트가 예정된 2007년 3월 공연 취소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2007년 2월에 예정됐던 세종문화회관 콘서트를 돌연 취소하며 잠적했던 나훈아는 2008년 1월 모 스포츠지 기자가 블로그에 ‘중견가수가 가슴 큰 젊은 여배우 K와 스캔들이 나서 야쿠자에게 보복당했다’라는 글의 주인공으로 의심받으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소식은 여배우 K가 김혜수·김선아이며 나훈아가 야쿠자에게 폭행을 당해 신체 중요 부위가 절단됐다는 괴소문으로 번졌고, 결국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해명에 나서야 했다.

피습 사건,
루머와 이혼

당시 그는 야쿠자로 인한 신체 중요 부위 훼손설을 해명하고자 기자회견 중 “5분을 보여주면 되겠느냐” 말과 함께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으려는 행동을 보여 엄청난 화제가 됐다. 

자신과 연루된 김혜수·김선아에 대해서는 “의지 약한 성격이라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갔을 것이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연예인에게 관심이 많다. 진실에 가까운 걸 말해야지 애매모호하게 글래머 배우 K라고 하니까 김혜수, 김선아 둘 중에서 차라리 이름을 댔으면 그래도 한 사람만 당혹하고 힘들고 한 사람이라도 산다”고 후배 연예인을 감싸줬다.

거침없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한 덕에 스캔들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 기자회견 이후 잠정 은퇴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활동 중단을 시사했다. 

지난 2011년 데뷔 45주년을 기념한 콘서트를 열자는 주변의 제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나훈아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120평 규모의 대지 면적에 연건평 300평에 이르는 2층 건물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조심스럽게 컴백을 준비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또 당시 지인의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컴백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쉬면서 곡 많이 썼다
노래 다시 하고 싶다”

하지만 2011년 8월 세 번째 부인 정수경과 이혼 및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이 제기되면서 컴백셜은 사그라졌다. 2013년 9월 대법원서 정수경의 소가 기각됐다. 그 이후 나훈아는 가평 자택에 칩거하는 중 결국 2016년 10월31일 법원은 이혼과 함께 12억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는 5년 동안 진행한 이혼소송서 패소했다. 

나훈아는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서 나훈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공연에 관객을 몰려들게 했고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다. 

또한 주로 슬프면서 서정적인 본인의 자작곡들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가 대표적이다.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에 발표한 ‘땡벌’ 은 발표 당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에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서 이 곡을 불러 화제가 됐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서 이승기가 극 중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는 곡으로 ‘땡벌’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며 인지도가 상승했다. 2007년 9월 21일에 방송된 KBS <뮤직뱅크>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된 지 20년 후에야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파란만장 인생
이젠 꽃길만

나훈아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대를 달리하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더불어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약 800여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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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