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확실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글로벌 프레지던트’…세계가 ‘반’하다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연임의지를 공식 발표했다. 세계의 뜨거운 지지 행렬이 이어졌다. 취임 초 들려오던 비판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격려와 찬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모두 반 총장의 리더십과 재임 중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다보니 이변이 없는 한 연임은 떼 놓은 당상이다. 대체 세계가 반한 반 총장의 매력은 무엇일까.

각국 뜨거운 지지 행렬에 반 총장 눈시울 붉어져
가난한 국가의 인도주의적 일에 양팔을 걷어붙여

지난 6일 유엔 본부가 술렁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식적으로 연임에 출사표를 던진 데 따른 것이다.

반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중적인 범세계적 위기 속에 유엔이 직면해 있는 여러 현안을 완수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지지해 준다면 영광된 마음으로 5년 더 이 위대한 기구를 이끌고 싶다”며 연임 출사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어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지난 4년 반을 돌이켜보면 유엔과 국제사회에 큰 도전의 시간이었으나 우리가 함께 이룬 성취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기후변화 의제 선도, 미얀마·아이티·파키스탄 위기에 대한 대처 등을 성과로 뽑았다.

“현안 완수 위해 5년 더 이끌겠다”

반 총장은 또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권과 국제 정의를 향상시키며, 기아와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며 “ 모든 국가와 유엔 가족들이 함께 일해야 유엔의 고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함께 일해야 세상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변화속의 통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아시아 주요국 등이 잇따라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반 총장의 연임 출마 발표를 환영한다”며 “미국은 그의 출마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리바오둥 유엔 주재 중국 대사도 반 총장의 재선 도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매우 환영할 만한 뉴스”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역시 반 총장에게 연임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오전 유엔본부에서 열린 아시아그룹 조찬회의에서도 53개 회원국 가운데 중국, 일본, 인도,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아프가니스탄 등 30여개국 대사들이 앞다퉈 발언하는 등 회원국들의 지지 의사 표시가 이어졌다.

심지어 북한도 반 총장의 연임을 적극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반 총장과 인사말을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는 총장님의 재선을 적극 지지합니다. 그러나 공개 지지 연설은 안 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지지 행렬에 반 총장은 눈시울까지 붉혔다는 후문이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반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리란 게 외교국의 공통된 견해다. 유엔사무총장 인선의 키를 쥐고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모두가 반 총장의 연임을 찬성하고 있는데다 다른 경쟁 후보도 없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투명성이 부족하고 책임감도 결여됐다”는 등의 비판에 시달리던 취임 초와는 180도 달려진 상황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인류의 미래 위협하는 기후변화에도 엄청난 집념
겸손함, 특유의 친화력으로 ‘적 없는 사람’ 통해

반 총장이 2007년 1월 1일 임기를 시작한 이래 2009년 6월 30일까지 2년6개월 간 출장을 다닌 거리는 무려 116만2635Km다. 지구를 30바퀴나 돈 셈이다. 이 기간 중 장관급 이상 회담이 880회, 이동거리가 45만Km, 각국 정상 및 총리를 포함한 장관급 이상 면담 350회, 정상과의 전화통화만 해도 400회다.

192개 회원국을 아우르는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자리다. 반 총장을 옆에서 지켜본 유엔 관계자들은 “지난 4년 동안 정말 꾹 참고 열심히 일했다”고 입을 모은다. 반 총장은 특히 가난한 국가의 인도주의적 일에 양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2008년 5월 서남아시아의 미얀마에 열대폭풍 나르기스가 덮쳤을 때의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나르기스는 14만50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미얀마의 군부는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도 가난한 독재국가의 재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 총장은 아시아 각국 대사들을 관저로 불러 미얀마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국민의 재난에 무심한 미얀마의 군부를 설득하기 군부 실세와 직접 만나 죽어가는 당신들의 국민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국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였다.

반 총장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엄청난 집념을 보였다. 2007년 발리 기후변화회의가 주요국의 이견으로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회의 일정을 미리 끝내고 동티모르에 가 있던 반 총장이 유엔의 털털거리는 프로펠러기를 타고 다시 회의장을 찾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 2009년에는 전 세계 150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적 기후변화 문제 대처에 따른 ‘제3세계 기후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 반 총장은 “기후변화는 폭넓은 경제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무공해 에너지 절약형 방안을 내놨다.

설득력 있는 반 총장의 설명에 이 자리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현재 각국은 ‘녹색성장’이란 국가적 슬로건 내걸고 공해 없는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등 ‘친환경 경제성장’의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1년에 지구 12바퀴
장관급 회담 880회

반 총장은 겸손함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적이 없는 사람’으로 통한다. 특히 그의 외모는 지극히 부드럽다. 미소 띤 얼굴과 신사다운 행동은 어린아이를 연상시킬 정도다. 하지만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뤄 내는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게 주변인들의 평가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겸비한 ‘외유내강형’ 인물인 것이다.

반 총장은 또 ‘일에 미친 사람’으로 통한다. 취미도 없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한다고 해서 내려진 평가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특별히 휴가를 가지도 않는다. 일요일 출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미국과 유럽?중동?아프리카 출장의 경우 시차를 감안, 이동하는 시간에 비행기에서 숙박하는 일정을 잡는 게 다반사다.

반 총장의 이런 기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실제, 반 총장은 “대학 시절 바둑에 취미를 가져보려 했지만 그보다는 학습에 시간을 더 집중하고 싶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대학 친구들은 그를 늘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기억할 정도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외교관의 길 때문이다.

반 총장은 어릴 적부터 외국어 실력이 남달랐다. ‘영어신동’으로 통할 정도였다. 그러던 지난 1962년 충주고 재학 시절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입상, 부상으로 미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리고 대회를 주최한 미국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서슴없이 자신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외교관의 꿈을 다졌다”고 말한다.

“평화·안정·개발·인권
위해 노력할 것”

이후 반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 1970년 5월 외무부에 들어와 40년 가까이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외교부내에서 그는 상하좌우의 모든 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러다보니 선배들은 의례 반 총장을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 관운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차관보, 차관과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꿰찰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가운데 반 총장의 능력이 빛나기 시작한 건 지난 2001년 당시 한승수 외교부 장관이 겸임했던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9·11 사태’로 유엔 차원의 테러방지에 적극적이던 때, 그는 각 국가 간 이견 조율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 명성을 쌓았다. 특히 장관답지 않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학자적 외모로 대중에게 탁월한 외교술을 선보였다. 지난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 피살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져 한때 입지가 흔들리긴 했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난 2006년말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이후 반 총장은 4년6개월간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지금 첫 임기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재임이 확정적이다.

두 번째 임기의 중점 과제에 대해 반 총장은 “국제 사회가 직면한 다중적인 도전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평화·안정·개발·인권을 위한 노력을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5년까지 계획돼 있는 새천년개발목표 달성을 위해 애쓰고 새천년개발목표를 넘어서는 포괄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 의제를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에 열릴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도 성공적인 결과가 도출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무엇보다 여성 지위 향상, 핵 없는 세상, 대규모 재난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엔의 인도적 지원 능력제고 등을 중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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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