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5.29 09:55:20
  • 호수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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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부탁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는 고졸 출신으로 공무원 사회에 발을 들여 놓아 부총리 자리에 오르는 ‘고졸신화’의 주인공이 될 전망이다. 소신과 업무 수행 능력으로 정권이 세 번 바뀌었음에도 늘 중용된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또 첫 ‘예산통’ 출신의 경제 수장이라는 점에서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로 지난 21일 내정됐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후보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과 함께 우리 경제의 근본적 체질을 바꾸는 개혁에 앞장서게 된다. 

판자촌 출신 
고졸 신화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서 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김 총장은 저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며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의 인선에서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는) 기획예산처와 기재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에 대한 거시적 통찰력과 조정능력이 검증된 유능한 경제관료란 점에서 지금 이 시기에 경제부총리 적임자로 판단했다”며 “재계·학계·정계서 두루 인정받는 유능한 경제전문가인 만큼 위기의 한국경제를 도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 인선에는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과 양극화, 민생경제 위기 속에 출범했다. 빠른 시일 내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와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는 게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이 다른 부처 장관들보다 김 후보자의 인선에 속도를 낸 것은 미진한 민간소비 회복세, 사상 최악의 청년 고용 절벽 등 산적한 경제 난제를 해결하고,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시도 등 외부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선배가 버린 고시책으로 공부 
작년 연봉 절반 9000만원 기부 

특히 지난해부터 6개월 이상 이어져온 국정공백으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1957년 충북 음성 출신인 김 후보자는 전쟁 후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향한 부모를 따라 상경해 청계천 판자촌서 생활했다. 

196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11세에 졸지에 가장이 된 김 후보자는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등을 하며 가족 생계를 도왔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들 생계를 위해 당시 공부를 잘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던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김 후보자는 덕수상고 3학년 재학 중에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은행에 다니면서도 국제대(현 서경대) 야간대학서 공부를 이어가다가 은행 기숙사 옆방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책을 발견하고, 고시를 보면 이 어려운 생활을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시 공부에 몰두했다. 

총장 2년간 
급여 40% 쾌척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한 그는 경제기획원(현 기재부)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에도 공부에 손을 놓지 않아 서울대 행정대학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정책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졸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기재부 차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에 올랐고, 퇴임 후에는 아주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아주대 총장으로 근무하면서 어려운 학생들을 배려하자는 뜻을 담은 ‘애프터 유(After You·당신 먼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학교가 저소득 학생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관련 비용은 사회 성공 인사들의 기부금으로 마련했다. 

또 지난해 김 후보자가 아주대 총장 재직 당시 받은 연봉의 절반가량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지난해 아주대 총장으로 근무하면서 1억86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에 소득세 1650만원, 지방소득세 165만원을 냈으나, 연말정산 결과 소득세 2440만원, 지방소득세 244만원 등 모두 2700만원 가량을 돌려받았다.

김 후보자의 지난해 별정기부금 공제대상금액은 6086만원, 지정기부금 대상 금액은 2725만원이다. 세액공제액은 각각 1619만원과 730만원 등 2369만원에 달했다. 이는 김 후보가 지난해 연봉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대학과 복지재단, 종교단체 등에 기부했기 때문. 

기부금은 아주대학교(6085만원), 무지개빛청개구리지역아동센터(110만원), 서울영동교회(680만원) 등에 전달됐다. 

앞서 2015년에도 김 후보자는 45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한 바 있다. 공직을 떠나 아주대 총장 재직 과정서 공직에 있던 시절 받던 연봉 외에 추가 금액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부서 중용됐던 인사임에도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오른 것은 이러한 이력과 활동을 감안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 정책 주도?
정책 진행 조율?

특히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사람중심 성장경제’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도 김 후보자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저와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기재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분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경제부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향후 기재부는 문재인정부서 경제 정책을 주도하기보다 정책 진행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경제 정책 방향도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성장률, 대기업 위주 정책서 일자리와 복지, 중소기업 위주 정책으로 빠르게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경제부총리는 강만수·박재완·최경환·유일호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맡아서 힘을 가지고 성장률 중심의 경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반면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이 밝혔듯이 대통령과 연이 옅어 힘을 받기 어렵다. 김 후보자가 정책 기획보다는 예산과 정책 조정을 주로 맡아왔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김 후보자는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과 기획예산처 재정협력과장, 재정정책기획관, 기재부 예산실장, 2차관(예산담당)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거쳤다. 이에 따라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의 일자리와 복지 공약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내고, 부처 간 예산 분배와 정책 조정을 하는 데 적합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지난 24일 문 대통령이 제출한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접수했다. 김 후보자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차남 명의로 보유한 재산은 모두 21억5212만원이다.

소신과 업무 수행 능력 탁월  
예산과 정책 조정분야 전문가 

김 후보자는 기준시가 기준 5억8000만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도곡렉슬아파트 등 총 21억5212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중 본인 명의 재산은 13억3495만원이었다. 

부동산으로는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 전세금 5억5000만원, 서울 송파구 힐스테이트아파트 분양권 8000만원 등을 신고했다. 은행예금은 총 7억4467만원이었고 사인 간 채무 금액이 4000만원이었다.


부인 명의로는 도곡렉슬아파트와 962만원 상당의 2010년식 소나타 등 7억1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부인 명의 예금은 2억8924만원이었고 900만원 상당의 삼성SDI[006400] 주식도 있었다. 부인은 월세보증금 5000만원, 사인 간 채무 1억3000만원 등 총 1억8000만원의 채무를 함께 신고했다.

김 후보자의 어머니 재산은 김 후보자의 동생이 부양하고 있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 병역의 경우 김 후보자는 1978년 3월 육군에 입대해 1979년 5월 일병 복무만료로 전역했다. 차남은 2015년 9월 육군으로 입대해 다음 달 전역을 앞두고 있다.

장남은 2007년 12월 현역 판정 후 2011년 11월 백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지만 2013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청이 확인한 범죄경력 조회에는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됐다

고향 음성은 
축제 분위기 

그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금왕읍은 축제 분위기다. 최근 그의 인생 역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개천서 난 마지막 용’으로 불리며 덩달아 그의 고향인 금왕읍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런 김 후보자의 인생역정을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것에 대해 축하 현수막을 내걸고 기뻐하는 분위기다. 고향 마을인 금왕읍 무극리를 비롯해 경주김씨 금왕종친회, 각급 기관사회단체 등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거는 등 김 후보자를 축하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70년 유리천장 깬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는 누구?
문이 선택한 반 측근

10년 넘게 유엔서 일해온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25일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강 후보자는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해 청문회를 준비에 들어간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로 활동해 온 강 후보자를 외교부장관으로 지명했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70년 외교부 역사에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장관으로 지명된데다 강 후보자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강 후보자는 이화여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졸업 이후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일을 하다 국회의장 국제비서관, 세종대 조교수를 거쳐 지난 1999년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으로 특채됐다.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활동
비외무고시 출신…DJ 때 부상

1997년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역하면서 외교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강 후보자는 비외무고시 출신으로 2005년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올라 외교부서 두 번째 여성국장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6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시절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이 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시절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로 활동하는 등 반 전 총장과의 인연도 깊다. 2013년 4월에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보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반 전 총장의 후임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당시 당선인의 유엔 사무 인수팀장으로 활동했고 12월에는 정책특보로 임명되는 등 한국 여성으로서는 유엔 최고위직을 거친 입지전적의 인물로 알려진 바 있다. 아난 전 총장, 반 전 총장, 구테흐스 총장까지 3대 총장에 걸쳐 중용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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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