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거론은 시기상조…정계개편 후 고민할 것”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⑧> 이인제 의원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와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여덟 번째로 5선의 무소속 이인제 의원을 만나봤다.

"정치자금법 개정안 시기와 방법에 문제 있어 난관"
"과학벨트 문제는 대통령이 정도로 풀어 나가야"

무소속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 금산 계룡)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3차례 정도 지역 민심을 살피러 ‘지역구 탐방’에 나선다. 이 의원은 그동안 중앙 정치에 몰두해 지역 일에 약간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라며 “지역민들께 송구스럽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3번의 대권 도전에 실패하고 무소속으로 남아 고뇌에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이 의원. “무소속이 오히려 의정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편하다”는 그는 차기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정계 개편에 참여한 뒤…”라는 답변으로 슬쩍 비켜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정치자금법 개정을 둘러싼 최근의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 내용의 정당성은 미뤄놓고 국회가 갑자기 개정안을 들고 나오니 기소돼 있는 동료 의원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얘기가 나와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국민이 의심하는 상황이고 그런 민감한 이야기일수록 공청회 등을 통해 내용의 정당성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측면이 있는데, 무모했다. 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본다.

- 개헌 얘기가 많은데 추진 가능하다고 보는가.
▲ 개헌을 하기는 꼭 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항쟁으로 권위주의 세력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직선제 개헌 헌법이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전부 임기 1~2년 앞두고 식물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국가의 실패로 직결된다. 경제 헌법도 손질하고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도 보충할 필요가 있고 남북 관계도 질적인 변화가 있으니 통일을 대비해 일부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 초기 국민을 상대로 개헌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정파 간 이해를 구하며 추진했으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대통령도 앞장서지 않고 여당도 단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도 정략적이라고 의심하니 개헌 동력이 떨어져 힘들다.

- 충청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으로서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 게 맞다고 보는지.
▲ 세종시법 수정안이 처리가 됐으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됐을 텐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다른 지역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통령도 이상한 이야기를 해 충청권이 분노하고 상황이 점차 악화돼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정도(正道)로 풀면 된다. 대통령이 표만 얻으려 공약을 한 게 아니라 전문가의 견해를 얻어 충청권이 적지(適地)라 공약을 한 거다. 더욱이 세종시는 24조원을 들여 건설하고 있다. 과학벨트는 첨단 과학 도시가 필요한데 충청권이 아닌 곳에 벨트를 유치한다면 또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과학 도시를 건설해야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현재 세종시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데 정부 부처 일부만 이전하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세종시가 과학벨트의 거점 도시가 되면 성공할 수 있고 이것이 곧 국익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본다.


- 북핵으로 국민이 불안해 한다.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하나.
▲ 북은 지금 핵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북이) 완성된 핵무기가 있느냐, 또는 핵무기를 운반할 수단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에 내 개인적 판단은 ‘완성은 안 됐다’이다. 지금이라도 북한 핵 포기를 위해 우리가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된다. 북이 저러고 있으니 우리도 보유해야 된다는 얘기는 말은 쉽지만 좋은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시켜 줄 위험이 있다. 한반도는 비핵화로 가는 게 옳다. 남과 북이 핵 무장을 하면 통일은 요원해진다.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만 우리가 핵을 갖는다 해도 북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와 협력해 최후 순간까지 북핵 저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핵 보유는 하책이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 얼마 전 재벌 총수가 ‘낙제점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던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실업난과 빈부 격차다. 중산층 붕괴로 인한 빈부 격차는 이 정권 들어 완화됐다고 볼 수 없다. 사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너무 나쁘게만 이명박 정부를 평가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게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긍정적 평가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세론이 돌고 있는데.
▲ 현재 국민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민들은 지금 선택의 시간(대선)이 가깝지 않기에 편한 마음으로 이미지에 의존해 과거 지식을 기반으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단지 반응에 불과하다. 선거가 가까워오면 후보가 결정되고 이슈도 폭발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 이미지를 떠나 내용을 보며 (결정)할 것이다. 그에 따라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 무소속으로 정치하기 힘들지 않나.
▲ 무소속이 너무 편하다. 소속된 정당이 없다보니 편하게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목표로 중앙 정치에 몰두해 지역 주민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는데 지역 정치도 열심히 했다. 무소속은 예산안 등에서도 정파적 오해를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오로지 주민 입장만 반영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당에 있을 때보다 편했고 더 유리했다.

- 그럼 다음 선거도 무소속으로 나갈 건가. 자유선진당 입당 얘기도 돌던데.
▲ 다음 선거는 무소속으로 할 수 없고 올해 말에 상당한 정계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때는 중앙 정치 무대로 복귀할 것이다. 어떤 내용으로 정계 개편이 일어날지 아직 모르니 마음을 비워놓고 있다. 마음은 88년 초선 당시 그대로지만 정치의 마무리를 해야 되는 시점이라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한다. 선진당 입당 얘기는 전혀 들은 바 없다. 의원들 개인 차원에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선진당 차원에서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 세 차례의 대권 도전 실패로 고충과 아쉬움이 적잖았을 텐데.
▲ 개인적으로는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너무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좌절·실패를 겪으며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정치권 내부도 비교적 균형있는 시각을 견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빈부 격차나 실업난 등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을 돌파해야 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치 리더십이 부족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치적 리더십을 높이는 부분에서 내 역할이 있기를 소망한다.



- 정치권에서 보수다 진보다 말들이 많은데 이 의원께선 보수인가 진보인가.

▲ 나는 중도 우파에 속하는 사람이다. 시대 변화에 뒤지지 않는 개혁, 자유에 대한 믿음, 통일 지향 등의 나의 정체성이다. 현재 진보를 내세우는 야권의 중심은 너무 좌편향이고 통일에 대한 비전도 비현실적이다. 반면 보수를 내세우는 우파의 중심은 과거 냉전 의식이나 권위주의로부터 실용주의, 개혁주의로 많이 이동한 상태다. 차기 대선의 아젠다는 통일이다. 다음 정권 기간 동안 결정적인 통일의 기회가 올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좌편향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그 기회를 그냥 흘러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다음 정권만은 건강한 우파세력이 결집돼 정권을 잡고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과거 ‘3김 시대’에서 정·관계를 두루 섭렵하셨는데 회고 부탁드린다.
▲ 3김 시대에는 경제적으로 산업화가 시작·성숙됐으며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로 이끌었고 김종필 전 총재는 산업화의 주역이면서 평화적인 민주화 이양에 상당한 협력과 기여를 한 지도자다.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큰 것처럼 양면성이 있지만 그 분들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 분 지도자를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세 분 모두의 인간적 면모를 볼 기회가 있었기에 행복하게 생각한다. 세 분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충청권 유력주자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이제껏 지역 맹주를 꿈꿔 본 일이 없다. 87년에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지역 맹주를 꿈꿨으면 오히려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에 갔을 것이다. 대학 때부터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 양김 분열 전 민주당에 발을 들여놨다. 출마도 경기도 안양에서 했고 도지사도 경기도에서 했다. 지역 맹주나 파벌 정치와는 거리를 두면서 정치를 해왔다. 지역 맹주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체질에 안 맞는 이야기다.
정치를 직업으로 지분을 가지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체질에 안 맞는다. 파벌이나 지역이 맹렬하게 힘을 쓰다보니 내가 좌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중앙 정치를 시작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 어느덧 5선 국회의원이신데 다음 총선과 대선에 출마할 의향은 있는지.
▲ 정치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다. 좀 더 크고 많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 지역민들께 송구스럽고 부끄럽다. 6선 의원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나라를 통일시키고 실업자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헌신할 생각이다. 다선이 없어지는 이유는 공천제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국회는 다양한 선수가 섞여 있어야 좋다. 아울러 차기 대권 도전 여부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고민할 부분이다. 정계개편 이후에나 어떤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아직은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 지역구(논산·계룡·금산) 사랑이 대단하다는 평이 있던데.
▲ 다른 지역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지역은 정말 자랑스러운 지역이다. 논산은 농업이 강하고 유교 문화 유산이 풍부하다. 딸기 등 첨단 과학적 농업이 발달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조선 500년은 유교가 국교였다. 논산시 연산면에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본산인 돈암서원(遯巖書院)이 위치해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유교 문화가 산재해 있다. 또 육군훈련소가 위치하는 등 군사 도시이기도 하다. 계룡시는 원래 논산시 부마면에서 3군 본부가 들어오면서 시로 승격됐다. 3군 본부가 있는 군사특별시로서 첨단국방과학교육도시의 비전을 키워나가는 신생 도시다. 세계 군 문화 축제 등의 행사도 잘 추진되고 있다. 중앙에서 예산도 지원됐으며 최우수 문화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금산은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인삼 약초의 메카로 건강·바이오·환경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 인삼 엑스포도 많이 열리고 있다. 생약을 이용한 바이오를 선보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 2011년 국회의원 이인제의 개인적 목표는.
▲ 우선 올해 안에 정계 개편이 이뤄지면 좋은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중앙 정치 무대에 복귀하는 게 소망이다. 내년에는 일단 총선에서 당선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내가 속한 정파 세력이 승리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차기 대선에서는 다음 정권의 가장 큰 아젠다가 통일이기 때문에 통일을 멋지게 이뤄내고 통일 이후 국민적 통합을 슬기롭게 추진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강력한 에너지로 경제성장을 이끌고 고용도 창출하고 실업자 없는, 그래서 무너져가는 중산층을 보강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 끝으로 지금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이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위로의 메시지를 남긴다면.
▲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게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아픔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평소 일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은 모두 잊어야 된다. 우리도 언제 그러한 자연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일본이 결국 다시 일어선다고 확신한다. 일본 국민들은 시련을 잘 견디며 세계 일류 국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극복할거라 본다. 또한 일본이 빨리 일어서는 게 우리에게도 유리하다. 우리는 일본과 가장 밀접한 국가다. 경제 교역량으로도 두 번째다. 또한 상호의존적이다. 일본이 빨리 재건돼야 우리 국익에 유리하다. 앞으로 동북아는 급속하게 협력 관계로 바뀌어 갈 것으로 본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한·중·일보다 자기들끼리 전쟁도 많이 하고 적대적 관계였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살기 위해 통합을 했다. 통합된 화폐, 의회와 대통령을 만들었다. 동북아시아도 살기 위해 어쩔 도리가 없다. 통일된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은 그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뜨거운 인류에로 함께 하면 더 가까운 이웃이 되고 신뢰도 커지게 된다. 아마도 미래의 초석을 놓는 다리가 될 것이다.


<정리 = 백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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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