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다시 ‘왕좌’를 차지했다. 연임만 3번, 햇수로는 무려 14년째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금융권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는 아직 이르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 조직 통합에 난항 예상
김 회장 뒤 이을 후계자 양성도 시급한 과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삶은 하나금융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65년 한일은행에 입행하며 금융권에 첫 발을 내딛은 김 회장은 3년 후인 196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뒤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했다.
이후 증권부장, 영업부장 등을 거쳐 1980년 37세에 부사장에 오르는 등 초고속 승진을 했다. 1997년에는 불과 54세의 나이에 하나은행장에 취임했다. 이후 김 회장은 3번을 내리 연임하며 14년째 수장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금의 하나금융을 일궈낸 인물로 평가받는 김 회장이지만 연임과 관련해서는 뒷말이 많다. 연임을 둘러싸고 대형 인수·합병(M&A)이나 지주사 전환 등 굵직한 일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은행장 연임을 앞둔 1998년 10월에 충청은행을 인수했고, 이듬해 1월 보람은행을 거머쥐었다. 결국 2000년 초 하나은행은 은행 2곳을 잇따라 인수한 뒤라 안정적인 합병 후 통합(PMI) 작업이 필요했고, 행장이던 김 회장의 연임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이어 2002년 5월, 하나은행은 김 회장의 주도 아래 서울은행을 추가로 인수했다.
김 회장은 같은 해 12월 행장 연임에 성공했다. 2005년 3월에 행장에서 물러난 김 회장은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과 하나금융 상근이사를 거쳐 9개월 만에 하나금융지주의 초대 회장에 선임됐다. 이때도 김 회장이 행장 시절 추진했던 대한투자증권 인수가 당시 5월 마무리 된 데다 지주사 출범 직후라 변화보다는 경영의 연속성이 긴요하다는 이사회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회장은 지난해 말 외환은행 인수를 선언하면서 회장 연임에 안착했다. 김 회장의 연임 스토리는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절묘하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작업 마무리와 조직 안정화를 위해 김승유 회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해 추대했다”고 밝혔지만 뭔가 석연찮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암묵적으로 시사해왔던 우리금융 인수를 포기하고 외환은행 인수로 방향을 돌린 것에 대해 현실 가능한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을 뒤로하고 결국 김 회장은 금융권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축배를 올리기는 아직 이르다.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과제 #1 외한은행 인수 돌발 악재
김 회장은 그간 무려 3개의 은행 M&A를 성공시켰다. 그런 김 회장이 금융 인생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외환은행 인수 작업에 착수한 것. 작업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외환은행은 김 회장의 품에 안기는 듯 했다. 하지만 인수 승인이 임박한 시점에 돌발 악재가 터졌다. 대법원이 최근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했다고 사실상 판결한 것.
대법원은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합병할 때 ‘허위 감자설’을 유포해 외환카드를 싸게 인수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등으로 기소된 외환은행과 이 은행 대주주인 LSF-KEB홀딩스SCA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LSF-KEB홀딩스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다. 서울고법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김 회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데서 터져 나온 악재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지분 처분 명령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론스타가 이미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계약한 상태인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정서와 여론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팔고 차익을 챙겨가도록 지원·방조한다는 비판 여론에 금융당국이 승인을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 당국은 지난 16일 계획된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보류했다. 금융권에선 계약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외환은행 인수가 무산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론스타가 아닌 하나금융이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1조3400억원을 유상 증자했다. 증자의 목적이 외환은행 인수였기 때문에 만일 인수가 불발되면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입은 주주들이 하나금융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또 3월 말까지 인수 승인이 나지 않을 경우 하나금융은 론스타에 매월 330억원(1주당 100원)의 지연보상금을 내야 한다. 때문에 김 회장은 결국 외환 인수를 강행해야 하는 처지다. 이에 김 회장은 “대주주 적격성과 자회사 편입은 별개”라며 “인수가 무산되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인수 의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김 회장은 “승인이 빠를수록 좋다”며 3월 중 인수 승인을 희망하기도 했다.
과제 #2 인수 후 조직 통합
인수에 성공해도 문제다. 인수 발표 직후부터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빚어왔다는 점에서 조직 통합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란은 지난해 11월19일부터 고개를 들었다. 외환은행 노조가 일부 일간지에 ‘국익을 위해서도 금융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라는 광고를 통해 인수를 반대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당시 외환은행 노조는 ‘론스타 먹튀의 하수인’ ‘권력의 특혜’ 등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외환은행 노조는 또 여론을 증폭시키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인수 반대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려댔다. 장외투쟁도 불사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 본사는 물론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인수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1월10일 금융위와 금감원을 상대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매각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어 18일에는 국세청에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에 지급하는 주식매매대금 5조원 중 세금 부문에 대해 법적 보전조치(가압류)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하나금융 측 고위 관계자가 외환은행 관련자에게 “외환은행 노동조합 집행부는 물론 임원부터 지점장까지 투쟁에 적극 가담한 세력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갖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 등의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환은행 노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에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블랙리스트 즉각 공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성명을 통해 노조는 “하나금융은 제 입으로 밝힌 블랙리스트 실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총파업을 결의하기까지 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15일 부재자를 제외한 총조합원 4700명 중 4697명(99.9%)이 참여한 가운데, 4516명(96.2%)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달 17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의 시기와 방법을 집행부에 위임한 바 있다. 아울러 무기계약직 1200명도 최근 노조 가입과 투쟁기금 추가 모금을 완료한 상태다. 이를 지켜보는 하나금융의 표정에는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인수 실패의 대부분이 조직 통합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김 회장은 일단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하지 않고 ‘투뱅크 체제’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영원히 따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회장 역시 연임 기간 동안 통합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계획을 밝혔다. 그간 여러 차례 인수와 통합 작업을 이끌어온 만큼 이번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와의 골이 깊어 통합과정이 순탄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과제 #3 후계자 양성
김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김 회장은 연임을 앞두고 “적임자가 나타난다면 언제든 물러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김 회장은 자리를 지켰다. 적임자가 없단 얘기다. 하나금융 안팎에선 김 회장을 대신할 인물이 없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와 함께 ‘하나금융의 가장 큰 리스크는 차기 주자가 마땅치 않은 것’이라는 말도 내부적으로 회자돼 왔다.
이에 하나금융은 최근 ‘제너럴일렉트릭(GE)식 후계 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CEO 후보군을 육성ㆍ관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측 가능한 권력 승계 구도를 만들어 신한금융 사태와 같은 ‘CEO 리스크’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 지배구조 규준’을 제정했다. 하나금융은 이사회 산하 경영발전보상위원회(경발위)에서 CEO 인재풀을 구성, 미래 후계자들을 양성해나갈 방침이다. 경발위는 회장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차기 CEO 후보군을 정해 매년 검증 작업을 벌인다.
후보군에 포함됐더라도 실적이 나쁘거나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탈락하며, 유능한 후보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게 된다. 올해 만 67세의 김 회장은 나이 제한(만 70세)으로 2~3년 안에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간이 그리 충분치 않다. 그 안에 김 회장이 잡음 없이 후계자를 키워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