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누리 새 수장 이정현 대표

계륵의 부활…미운오리 날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새벽 토크, 자전거·배낭 유세 등 다가가는 스킨십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지난 9일,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례적인 호남출신 여당 당 대표로 선출된 자체가 새누리당의 혁신이라 불리고 있다. 지난 날 청와대의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입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박의 대표주자인 그는 청와대 언론 개입 등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계륵에서 당 대표까지 이른 이 대표의 행적을 살펴본다.

지난 9일 새누리당(이하 새누리) 전당대회서 사상 처음 호남출신 당 대표가 선출됐다. 주인공은 새누리 이정현 의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자신을 보은의 관계로 언급할 만큼 대표적인 친박계 인물인 이 대표는 이날 “친박 비박 그리고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다”고 '무계파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자칭 ‘무수저’
친박 외길 걸어

이 대표는 스스로를 ‘무수저’라고 칭한다. 그는 사회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에 포함된 수저도 없이 지금까지 왔다며 그 자체가 자신의 장점이자 경륜이라 말한다.

이 대표는 1958년 전라남도 곡성의 산골 출신으로 광주 살레시오고를 거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지난 1985년에 고 구용상 전 의원에게 ‘정치를 똑바로 하라’는 손편지를 보내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구 전 의원의 비서로 일하다 그가 낙선하자 민주정의당 특채로 입사해 최고 말단 당직자 간사병으로 당직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엔 민자당 후보로 광주시의원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영남 기반의 당에서 호남출신인 그는 인정을 받기 위해 15년간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 주말에도 평일 같이 일했다. 그러면서 정세분석, 대변인실, 여의도 연구소 기획팀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1997년 대선에선 당시 후보였던 새누리 이회창 의원에게 매일 3장짜리 정세 분석 및 전략기획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의 분석 자료를 지도부 인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보내달라고 했을 정도로 당의 고위직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2002년에는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 실무를 맡았고, 2003년 한나라당 정책기획 팀장을 지냈다.

이 대표가 친박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그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이 대표는 광주 서구을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다. 한나라당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호남에서의 패배는 불보듯 뻔했다.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광주 선거에 나선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고 격려했다. 이후 총선 낙선자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한나라당이 호남을 홀대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과 이 대표의 인연은 시작된다.
 

박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어쩜 그리 말을 잘하냐”며 그를 눈여겨보고 당 수석부대변인에 임명한다. 2007년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의 공보특보로 박 대통령과 함께 1년 이상 전국을 돌았다. 후보였던 박 대통령이 패하자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났지만 이 대표는 계파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지사 측으로부터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상 처음 호남출신 당대표 선출
어떤 계파도 없다? 대표적 친박계


이 대표는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출신지인 호남에서는 역적 취급을 받으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당과 출신지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계륵 취급 받던 그가 자신을 인정해준 박근혜 대통령의 편에 선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후 이명박정권 출범 첫해 치러진 18대 총선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받아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이 대표가 민정당 국회의원의 비서로 시작해 정계에 입문한지 23년, 공직선거에 출마한지 13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 평의원이던 박 대통령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서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 서구을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 다시 낙선했지만 2%도 채 못 채운 지난날과 달리 39%라는 고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새누리의 지역주의 타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새누리에게 열리지 않는 철옹성이 허물어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제18대 대통령에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 대표는 청와대 정무수석에 발탁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정권 시작과 동시에 핵심 가신임을 입증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 대표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3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에 이남기 전 홍보수석이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했고 이 전 홍보수석의 후임자 물색에 들어간다. 그러나 외부에서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내부의 이 대표를 정무수석에서 홍보수석으로 수평이동시킨다. 이 대표가 홍보수석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본격적인 ‘박 대통령의 입’의 역할이 시작된다.

손가락질 세례
외면도 많았다

이 대표는 당시 기자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아침 회의 전인 오전 7시 쯤 새벽 간이토크도 열었다. 그는 새벽 간이토크 외에도 “오전 청와대 회의 이후 한번, 오후 청와대 회의 이후 한번 기자실에 들려 언론의 관심사에 대해 백 브리핑 형식으로 알리겠다”며 언론과의 접촉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씻을 때, 회의할 때를 제외하고 언제든 전화를 받겠다. 만나야 할 때 만나고 연락해야 할 때 연락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가급적 내 이름이 기사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중심이 되면 안 된다. 나는 비서일 뿐이다. 공식 발표는 대변인을 통해 하고, 나는 배경 설명을 주로 하겠다”며 과도한 언론의 관심에 부담감도 드러냈다.

그는 정무수석 시절에도 목에 힘을 빼라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대표의 이 같은 소통에 대해 ‘신선한 시도’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야 양측에서도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당시 새누리당 유일호 전 대변인(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구두 논평서 “대선 기간에 공보단장을 역임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온 만큼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고 비록 언론인 출신은 아니지만 전문성에서 별로 시비를 걸 점이 없는 적임자”라고 했다.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선 소통에 기대를 걸었다. 민주당 김관영 전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심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서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개선되고 국정혼선을 줄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4년 6·4지방선거 이후 돌연 홍보수석 사의를 표명한다. 이를 두고 권력 암투설, 경질설 등 여러 의혹이 빗발쳤다. 하지만 의혹이 무색하게 이 대표는 당해 있던 7·30 선거에서 얼굴을 비춘다.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당시 이 대표는 선거 진행 중에 여당인 새누리에 대한 반감을 고려해 중앙당 차원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는 자전거로 시내를 누비는 등 소탈한 모습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국민에게 다가갔다. 이 대표의 경쟁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서갑원 후보였다. 투표결과는 놀라웠다. 야당텃밭이라 불리는 광주·전남서 첫 새누리 의원이 나온 것이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선 순천시 선거구에 당선돼 호남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
대변인 활약

이 대표가 호남에서 재선 성공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던 데에는 그의 감성정치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는 보궐 선거 당선 이래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설명회를 열었다.

동시에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접수하거나 수첩에 받아 적어 해결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마을회관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고 숙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다가가는 주민밀착 스킨십과 감성이 새누리에게 얼어붙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다. 성실하게 지역관리에 임한 모습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행보가 주민들의 흥미를 끌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출신지에 대한 애착이다. 이 대표는 수도권 출마를 일절 한 적이 없으며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항상 호남 출마를 고수했다. 호남지역 예산 지킴이를 자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2014년을 기점으로 호남에 퍼진 새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심에 영향을 줘 그의 재선이 가능했다는 주장도 있다.
 


새누리 내에선 이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대표적인 친박이자 새누리 유일의 호남 재선 의원이라는 상징성이 부각된 것이다.

비박과 친박의 계파갈등이 심화되어 비박계 인사들이 탈당을 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등 돌리고 총질을 해서는 안된다”며 “나 같으면 보스(박 대통령)를 설득해도 안 될 땐 판을 떠나던지 끝을 냈을 것”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등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후 이 대표는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주호영 비박계 단일 후보와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을 얻었지만, 4만4000여표로 주 후보와 1만3000여표차이를 벌리며 대표로 선출됐다. 이로써 이 대표는 보수정당 소속 최초의 호남 당선 국회의원, 보수정당 최초 호남 출신 대표, 마지막으로 당직병에서 당대표까지 올라온 최초의 당직자 출신 대표 등의 타이틀을 세 개나 획득하게 된다.

다가가는 스킨십으로 친숙한 이미지
세월호 보도 관련 구설수 오르기도

이 대표의 선출에는 그의 연설이 한 몫 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는 서러움을 강조하며 감성으로 호소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을 비엘리트, 무수저라는 표현을 써가며 정치 이력을 수저조차 얻지 못한 처지에 비유하거나, 지난 시간 호남과 새누리 속에서 얻어온 서러움을 부각시켰다.

당시 이 대표는 “잘 알다시피 고향에서는 새누리라고 눈치 보고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특히 호남 출신 의원, 당직자가 한 명도 없는 새누리 안에서 33년을 생활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 합동연설회서는 “호남 출신 최초로 보수정당 대표가 되면 새누리가 영남당이 아닌 전국당이 된다. 호남표를 끌어내 정권 재창출 보증수표가 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호남출신 새누리 자체가 혁신이라는 말도 해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민영삼 사회통합전략연구위원장은 이 대표의 연설을 듣고 현재 새누리당의 고문인 유준상 전 의원이 93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 경선에서 교통사고 직후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서 명연설을 해 갈채를 받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최고위원 경선에 나섰을 때도 감성 연설로 좌중을 흔들었다며 이 대표의 ‘연설의 힘’을 역설했다.

이 대표는 한때 자신이 비판했던 비박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지난 일을 털어버리고 함께 가자”며 “지금부터 새누리에는 친박 비박과 같은 계파도, 지역주의도 없음을 선언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방송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한 일이다. 당시 KBS 보도국장이던 김시곤 전 국장은 이 대표가 전화를 걸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박근혜정부 비판 보도에 항의했다며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지역주의 타파
혁신의 아이콘

당시 이 대표는 자신의 불찰이라고 인정했다. 청와대에서도 이 대표의 개인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선을 그었다. 이 뿐 아니라 여과되지 않은 언사로 비판을 받았다. 그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하거나 자신을 광주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정현의 포부 “답은 현장에서”

지난 9일 신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열린 전당대회에서 계파 패배주의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민생부터 챙기겠다. 민생문제 만큼은 야당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여당의 책임으로 이 일을 반드시 정책과 예산과 법안에 반영시키도록 하겠다”며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 청년문제 해결부터 시작하겠다. 모든 답은 현장에서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대표는 자신같은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지역 출신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라며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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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