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터넷 게시판 <광고 속 전지현 ‘그녀의 하루’> 인기 자신이 가진 이미지 광고에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모델 전지현. ‘춤 좀 추는 몸매 좋은 CF모델’은 <엽기적인 그녀>를 거치며 흔들림 없는 신세대의 아이콘이 됐고, ‘마틸다’를 닮았던 단발머리 꼬마애는 이제 연간 50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 됐다. ‘전지현’은 한 명의 배우나 모델이기 이전에 하나의 현상이다. 172㎝, 48㎏의 늘씬한 체형. 언제나 윤기나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종횡무진하는 그는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CF업계에서 전지현의 파워는 막강하다. ‘전지현이 뜨면 제품도 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몇 해 전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전지현이 출연한 CF들로 전지현의 하루 일과를 엮은 <광고 속 전지현 ‘그녀의 하루’>라는 제목의 글이 퍼지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뜬 전지현,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 타고난 뽀얀 피부를 지키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정성들여 바르고 외출준비를 한다.(
2009년 전지현은 다사다난한 해를 보냈다. 휴대폰 불법복제사건에 휘말리기도 했고 화교설이 다시 제기되기도 했다. 이제 전지현은 모든 악재를 딛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할리우드 진출작 <블러드>를 통해서다. 전지현은 이번 영화를 통해 그동안 ‘스타 전지현’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길 원하며 그동안 알려졌던 CF스타,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자 한다. 20대의 마지막을 할리우드 진출로 시작한 그녀를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눠보았다. 2008년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흥행 실패 이후 할리우드 진출 계획으로 한동안 국내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전지현은 영화 <블러드>로 오랜만에 국내 관객에게 연기를 선보인다. 전지현은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블러드>에서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헌터 사야 역을 맡았다. 미국, 유럽까지 활동영역 넓힐 예정 <블러드>는 홍콩의 거물 프로듀서 빌콩,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 나흔 감독 등이 어우러진 다국적 프로젝트로 3500만 달러(약 5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판타지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조선족에게 고리의 도박자금을 빌려준 뒤 협박을 일삼은 조선족 폭력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도박자금으로 고리의 자금을 빌려준 뒤 이자 명목으로 이득을 챙긴 혐의(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조선족 폭력조직인 ‘흑룡강파’의 두목 남모(43)씨를 구속하고 조직원 김모(43)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마작 전문 도박장을 개장해 입장료 등의 수익을 챙긴 혐의(도박개장)로 업주 이모(49·여·조선족)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도박을 한 김모(41·조선족)씨 등 4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무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한 남씨 등은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대림동 이씨의 도박장에서 김씨 등 30명에게 연이율 289∼579%로 도박자금을 빌려준 뒤 이자 등으로 1억5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남씨 등은 3년 전부터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도박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줬으며,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에겐 ‘가족을 가만 두지 않
총수들은 각자 망중한을 즐기는 ‘아지트’가 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별장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별장은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있다. 별장이라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깨끗한 농가 수준이라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전언. ‘퇴촌 별장’엔 소나무가 많고 꽃과 새를 키울 수 있는 온실도 있다. 정 회장은 이곳에서 주로 산책을 즐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출장이 없는 주말이면 퇴촌으로 가 혼자서 몇 시간이고 산책을 하며 경영 구상을 한다. 고 정주영 창업주의 옛 별장도 명소 중 하나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남한강가에 있는 정 회장의 양평 별장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팔당댐과 양수대교 사이에 있다. 정 창업주는 골치가 아플 때마다 이 별장을 자주 애용했다고 한다. 2001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정주영 별장’을 매입했다. 홍 회장은 지인으로부터 매입을 권유받고 한번 둘러본 뒤 너무 마음에 들어 곧바로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아지트는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롯데별장’이다. 신 회장은 롯데별장에 대한 각별한
재벌가 로열패밀리의 행보는 언제 어디서나 관심의 대상이다. 은밀한 사생활은 특히 더하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일반인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고 여겨지는 탓에 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좀처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최측근이 아닌 이상 동선을 파악하는 내부 임직원도 드물다. 숨기면 숨길수록 궁금증은 더 커지기 마련. 지령 700호를 맞아 대중의 의구심을 달래기(?) 위해 재벌가 사람들이 자주 출입하는 음식점, 요정, 룸살롱 등 베일에 가려진 ‘아지트’들을 꼽아봤다. 음식점, 요정, 룸살롱 등 자주 출입 업소 ‘베일’ 주로 상류층만의 ‘철옹성’서 은밀히 하루 보내 재벌그룹 총수의 스케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루 24시간이 그렇다. 오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이들은 없다. 그룹 내부에선 오너의 일거수일투족이 ‘1급 기밀’이다. 최측근 수행비서도 공식적인 외출만 꿰고 있을 뿐이다. ‘삼청…선운…대원…청운…’ 정통 요정문화 시대 마감 ‘오전 5
“퇴근 후 맥주 한잔 어때?” 피곤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언제부터 유행했을까. 정답은 ‘샐러리맨들의 등장과 함께’일 것이다. 시대에 따라, 유흥문화의 변화에 따라 다르지만 샐러리맨들이 있는 곳엔 퇴근 후 밤문화도 늘 존재했다. 직장인들을 잡기 위한 업주들의 노력도 끝없이 진화했다.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서비스로 이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유흥업소의 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직장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직장인들의 밤문화를 돌아봤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는 직장인들의 밤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도시에 일자리가 늘어나 샐러리맨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밤도 변화를 맞이했다. 샐러리맨들의 지친 하루 맥주 한잔으로 모두 잊어 그 시절 직장인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는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였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된 노동에 지친 샐러리맨들은 소주 한잔에 싸구려 안주 한 접시로 시름을 달랬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광목으로 바람만 겨우 가린 채 잔소주를 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민주당이 참여정부 계승과 친노계 인사들의 복당에 공을 들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장관을 지냈던 이용섭 의원은 성명을 내고 “지금은 친노 비노, 성골 진골, 계파 등을 따지지 말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 민주당이 이질적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친노계의 복당을 촉구했다. 그러나 ‘복당’이 거론된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별반 관심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연구단체 ‘광장’이라는 독자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당 문제에 대해 “복당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은 “이 전 총리는 복당하지는 않겠지만 외부 강연 활동과 계간지인 <광장>과 정책연구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유 전 의원 측 역시 복당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해보지 않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당 안팎에서 활동하는 친노 진영의 움직임이 변하지 않을 것으
대권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2년차를 맞은 시점이라 이르기는 하지만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은 차기 대권주자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야를 떠나 박근혜 전 대표가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여권에서는 정몽준 최고위원과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이 뒤를 잇고 있다. 또한 야권에서는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 유시민 전 장관 등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잠룡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대권으로 가는 가시밭길에서 ‘발병’이 날 ‘상처’가 있다. 여야 잠룡 박근혜 정몽준 이재오 김문수 정동영 손학규 문국현 박근혜 1인자보다 센 2인자의 딜레마, 비주류 한계가 발목잡아 중도 걷는 정몽준, 주류 지원 받으면서 MB와 차별화 이중고 정동영 ‘개인정치’ 논란…당 밖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 대선을 3년여나 남겨두고 있음에도 벌써부터 잠룡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및 정당지지 지지율과 함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성매매업소를 찾는 이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30~40대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개월간 경찰에 단속된 1만여 명의 성매수 남성을 분석한 결과, 30~40대 기혼자로 회사원인 남성들이 가장 많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난 것. 이 밖에 자영업자, 전문직, 학생,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이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월6일부터 5월31일까지 2개월간 기획수사 등을 통해 성매매업소 특별단속 결과 총 1만5044명을 검거했으며 이 중 9317명이 성매수 혐의로 적발했다.적발된 성매수자의 연령별 분석을 보면 기혼자로 30대가 4241명, 40대가 2286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뒤이어 20대가 2088명(22.4%), 50대가 612명(6.5%) 순으로 나타났다. 직업별로는 회사원이 4645명으로 전체의 49.9 %로 절대다수로 나타났고, 자영업 1566명(16.8 %)이 뒤를 이었다. 직업이 없는 학생(2.9%)과 무직자(10.4%)도 성매매에 예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밖에 전문직(1.3%), 공무원(0.4%), 기타(18.3%) 순으로 조사됐다.
해방이전 우리나라에 최초로 유입되어 남용된 마약류는 아편으로서 그 사용이 시작된 시기는 구한말로 추정되며 당시 중국인 ‘양대인’이라는 자가 아편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점령기 세계대전으로 아편가격이 급등하자 함경도 등 산간지역에서 양귀비 비밀재배가 시작됐었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1912~1914년에 걸쳐 아편 단속법령을 공포해 아편재배 및 사용자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해방이후~1950년대 1945년 해방과 함께 귀환한 동포 중 아편에 중독된 자가 많았다. 또 농촌지역에서 양귀비 밀경작이 확산되어 아편중독자가 대폭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1957년 4·23 마약법을 제정해 양귀비 재배자 및 아편 사용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1960년대 5·16군사정부는 마약사범 근절을 위해 1961년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임시법에 마약사범에 대한 가중처벌을 두어 강력한 단속을 실시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63년부터는 합성 마약인 메사돈으로 인해 마약중독자수는 오히려 늘었고 1965년부터 대대적으로 마약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시작해 1967년에 이르러서야 마약사범이 감소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 백색가루의 유혹에 빠졌다. 범죄자 등 특정인들이나 손을 대던 마약은 어느 순간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회지도층, 주부, 학생 등 평범한 이들도 환각의 늪에서 허우적댈 정도다. 마약중독자도 하루하루 늘어가는 실정이다. 금단증상과 부작용이 두려워 악마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도 환각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요시사>에선 700호를 맞아 마약중독에 빠져 고통 받는 이들을 만나 마약공화국의 실태를 조명했다. 예전보다 구하기도 쉽고 종류도 늘어나 중독자 양산해 우연한 기회에 접했다가 금단증상에 시달려 다시 손대 마약 끊으려다 알콜 중독에 빠져 고통받기도…또 다른 중독 양산 마약성분 함유된 줄 모르고 먹은 약 중독되어 금단증상에 ‘몸부림’ 3년여 전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 우연히 필로폰에 손을 댔다는 A(42)씨는 지금도 마약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니던 직장에서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받고 난 뒤 하루하루를 술에 의지해 살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해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는 A씨. 그런 그에게 흰색 가루의 유혹이 찾아왔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난 것이 화근
산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바보 노무현’으로 불릴 만큼 깨끗한 정치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저 뒷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까지 역임하는 등 나름의 인생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 갔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 인권변호사 활동에 나섰다. 1988년에는 지역주의를 허물겠다는 의지로 제13대 총선에서 부산지역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의 시작이었다. 정계에 입성한 그가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청문회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다. 그는 그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정계의 판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2002년 ‘노풍’을 일으키며 제16대 대통령 당선이라는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당선만으로 세상이 바뀔 리 만무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lsqu
원칙·신뢰 소신으로 정경유착 단절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 최대업적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정부의 이름답게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이루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출범 당시 ‘개혁과 통합’이라는 국정목표를 제시, 참여정부 시대의 막을 올렸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을 중시한 노 전 대통령은 임기 기간 동안 정경유착 단절을 목표로 불법 선거자금의 고리를 끊었고, 과거 정부들이 무시했던 ‘평등’의 문제와 ‘청산’의 문제를 제도권 정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여성부의 등장으로 양성평등에 관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냈고, 친일파 명단 공개, 과거사 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민주화 이후 덮어 두기 급급했던 과거문제를 청산하기에 애썼다. 또 노무현 정권은 IMF에서 완전히 벗어나 안정적인 경제 관리로 재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힘을 쏟았다. 국내 외환보유액을 286억 달러 상승시켰고, 성장우선주의 정책으로 연간 4∼5%의 성장을 이루는 업적을 달성했다. 더불어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통해 한국이 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국민과의 의사소통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선창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과 ‘소신’이 그의 무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뚜렷하고 과감한 자신만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평생 과업도 못다 피우게 됐다. 그가 이루지 못한 세 가지 ‘꿈’을 조명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깨끗한 이미지’를 표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초기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며 “부패 사례가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그는 집권 5년 동안 내내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했고, 퇴임 후에도 ‘도덕성’이 참여정부의 핵심 기반이었다고 누차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늘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사망함으로써 검찰 수사 중 자살하거나 수사 직후 숨진 저명인사로 기록되게 됐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중 자살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 인물은 고 정몽헌 회장이다. 정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던 지난 2003년 8월4일 집무실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이어 2004년에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회장 등 다섯 명의 피의자가 잇따라 자살했다. 2004년 2월3일 운수업체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부산국세청 공무원 J씨도 승용차에서 분신해 숨졌고 다음 날 같은 운수업체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 전 시장이 구치소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2004년 3월11일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던 남 전 사장이 한강에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어 같은 해 4월29일 건강보험공단 재직 시절 납품비리 등 의혹을 받아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던 박태영 전남지사가 역시 한강에 몸을 던져 사망했다. 또 같은 해 6월4일에는 전문대 설립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 당사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검찰수사가 사실상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지난 5월23일 성명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이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다른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김경한 법무부장관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 종료될 것” 불법자금 수수의혹·세무조사 무마로비 의혹 수사는 계속 “무리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자살로 내몰았다”는 지적도 검찰 조직 신뢰 떨어지고 전체 큰 위기 닥쳐올 수도 있어 지난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을 소환했던 검찰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건넨 돈의 용처를 밝히는 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한 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게 애초 수사 일정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40만 달러를 받아 미국 뉴저지주 주택 마련을 위한 계약금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괴롭힌 사건은 이번 ‘박연차 게이트’사건뿐만 아니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각종 의혹과 추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취임 직후부터 구설수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인 2003년 5월 자신이 소유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위장 매각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어 ▲대선 자금 수사 ▲불법 정치자금 모금 의혹 ▲나라종금 뇌물수수 사건 ▲SK·썬앤문 불법자금 의혹 ▲대우건설 인사청탁 사건 ▲바다이야기 사건 ▲JU그룹 로비 사건 등에 친인척과 최측근들이 연루되면서 해명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또 각종 ‘게이트’와 ‘리스트’가 터질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지난 23일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겼다”고 말했다. 유서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은 하나… 화장해달라… 동네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서가 일부만 공개되면서 나머지 부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10여 줄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론 더 많은 분량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극히 평범한 유서를 남겼다고 보는 시각이 적다.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성격상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빙빙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보는 스타일로, 말솜씨가 좋은 달변가로 유명했다. 또 핵심이 명확하고 과격한 글로도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