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포박’ 친박계 포석

수장 남기고 수족은 자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유승민 압박이 도를 넘었다. ‘복당 금지’ ‘존영 회수’에 이어 관련자는 ‘징계’를 받게 될 것이란 엄포성 공문까지 내려 보낸 상황. 일각에서는 고사작전 이전에 선제적 ‘괴롭히기’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요시사>는 친박계의 유승민 압박 작업을 분석해봤다.

유승민 의원과 친유승민계(이하 친유계) 인사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후, 친박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과거의 동지에게 서슴없이 비수를 꽂는 모습. 친박계 좌장으로 떠오른 최경환 의원은 ‘당선되면 돌아간다’는 유 의원을 향해 “무소속을 찍으면 야당을 찍는 것과 같다”며 절대 불가를 외쳤다. 중앙당은 물론 각지의 시·도당 또한 친박계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다. 친유계 입장에서 우려할 만한 시그널들이 곳곳에서 잡힌다.

[복당 금지]
배신자 낙인

친박계는 탈당한 인사들에 대해 서둘러 ‘낙인찍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소속으로 당선되신 분들이 복당해서 새누리당에 온다는 것은 안 된다”며 “당헌·당규가 그렇게 돼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친박계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무소속 연대가 대구 정서와 맞는지, 과연 명분이 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며 “탈당한 무소속 출마자들을 복당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친박계가 유 의원을 포함해 친유계 인사들의 복당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여론몰이라고 본다. 연이어 복당 금지 이슈를 띄우는 이유가 앞서 유 의원이 한 “제가 이 동지들(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서 보수개혁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린다”는 말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금지 명단에 윤상현 의원까지 포함한 이유도 결국 유 의원의 복당 길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복당과 관련해서는 계파 간 해석이 분분하다. 강력하게 금지를 주장하는 조 부대표는 유 의원에 대해 “모든 일에 안다리를 건 사람”이라며 “총선 이후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책임론을 제시했다. 경북도당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한 최경환 의원은 “무소속을 찍는 것은 야당을 찍는 것과 같다”며 “대구·경북에서 (친박계) 24명을 전원 당선시켜야 박근혜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존영 반납]
사진 불가?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를 향해서도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조 부대표는 “무소속 후보의 복당 문제에 대해 (김 대표가) 어정쩡한 입장을 갖고 오면 대구시민들은 화가 더 날 것”이라며 “오늘(지난달 30일) 김 대표가 대구에 내려오면 분명히 나한테 (무소속 후보 복당 문제 등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김 대표가 분명히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그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대구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린 사람”이라고 김 대표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복당 금지에 대한 사전 작업이라고 해석한다. 당 대표이자 비박계 수장인 김 대표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란 관측이다.
 

원 원내대표와 조 부대표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최근 그들의 당내 위상 때문이다. 한 비박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대화에서 “최근 당내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을 뽑아보라면 원유철·조원진 의원”이라며 “요즘 모습을 보면 골수 친박계 인사들보다 더 적극적이다”고 평한 바 있다.

탈당한 의원들은 친박계의 복당 불가에 반발한다. 지금까지 당을 떠난 현역 의원은 유승민·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강길부·권은희·김태환·류성걸·안상수·윤상현·조해진·주호영·진영 의원. 그중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진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이들은 “당선돼서 반드시 복당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비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당이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탈당을 안 할 수 없게 만들지 않았느냐”며 “탈당을 안 하면 출마를 못하는 마지막 시간까지 몰고 갔으니 어쩔 수 없이 잠시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 또한 자신의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국회의원이 돼서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누리당 당규 제5조 ‘제명·탈당자의 재입당’의 ②를 보면 ‘탈당한 자 중 탈당 후 다른 정당 후보 또는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및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경우 등 해당행위의 정도가 심한 자가 입당 신청을 한 경우에 시·도당은 최고위원회의(이하 최고위)의 승인을 얻어 입당을 허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즉, 복당을 위해서는 2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시·도당의 ‘허가’와 최고위의 ‘승인’이다.

복당 놓고 충돌…친박 '반' 비박 '찬'
“존영, 돌려 달라” 과잉충성 논란

복당 잡음에 김 대표는 유보적인 태도, 최경환 의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구 선대위 첫 회의를 마친 후 김 대표는 “우리 당의 당헌·당규에 탈당했다가 입당하는 절차는 시·도당에서 하게 돼 있다”며 선을 그었고, 같은 자리에 대구·경북선대위원장으로 참석한 최 의원은 “시당은 탈당 후 2년 안에는 복당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실제 복당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선례를 본다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당 구성을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비박계 및 탈당 의원들은 과거 ‘친박 무소속 연대’의 한나라당 복당을 내세운다. 현재 최고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당시 복당된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소속 후보들에게 명분상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선거 전에는 다 그런 소리를 한다. 한두 번이냐”고 되물었다. 유 의원은 발대식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과거의 전례로 보나 우리 당헌·당규를 보나 최고위 의결만 있으면 복당이 가능하다”며 “선거가 끝나고 바로 추진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문 발송]
내부자 차단

그러나 최고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난항이 예상된다. 친박계가 최고위를 꽉 잡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알려진 것처럼 서청원·김태호·이인제·이정현 최고위원은 모두 친박계로 통한다. 안대희 최고위원은 아직 뚜렷한 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김을동 최고위원은 최근 김 대표와 의견을 함께하는 모습이지만, 친박계와도 교감이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 원유철 원내대표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고 있다. 협응을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하는 탈당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모습이 아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최경환 의원이 차기 당 대표로 나올 것이란 소식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비박계에선 대항마로 정병국, 정두언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여러 면에서 밀린다는 게 중론이다.

탈당 의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비박계 다수가 지도부에 입성하는 것이다. 현실이 되면 유 의원 복당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면, 복당 불발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해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 복당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존영’ 논란과 내부 단속 소식은 탈당 의원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앞서 대구시당은 유승민·권은희·류성걸·주호영 의원 등의 선거사무실에 공문을 보냈는데, 내용에는 “대통령 존영을 3월29일까지 반납하라”고 적시돼 있었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대통령 사진을 반납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에 진행된 조치였다.

존영 사태는 두 가지 점에서 논란이 됐다. 먼저 ‘존영’이라는 말 자체가 과거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에서 지도자의 사진을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라는 얘기가 전해지면서다. 조국·진중권 등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북한 정권’에 비유했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사진을 마치 북한의 그 분 사진처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반납’에 대한 부분이다. 대구시당 측은 사진이 걸린 액자가 법적으로 시당 비품에 해당한다며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 의원 측은 “‘당선된 후 복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현재로선 반납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또한 “비품이라면 회계보고가 들어갔어야 했다”며 “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선관위 측에서 관여할 만 한 건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징계 공문 발송, 모습만 보여도?
유·권·류 공동출정 “친박 심판”

일련의 사태에 비박계는 친박계가 무소속 후보들에 대해 ‘과잉 반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대위 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는 권성동 의원은 선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존영 논란은) 좀 그렇다”라며 “개인적으로 존경해서 사진을 붙여놓은 것을 떼라 붙여라 하는 대구(시당)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그동안 머리 아픈 일이 많이 있었는데 아주 좋은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존영 사태를 꼬집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새누리당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당은 또 다른 공문을 보냈다. 이번에는 징계에 관한 건이었다. 탈당한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엄포였다.

전국 17개 시·도당에 내려온 공문에는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시·군·구 의원 및 주요 당직자가 4·13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탈당한 무소속 후보의 유세 현장에 모습을 보이거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면 징계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은 ‘경고’와 같은 가벼운 징계는 물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 등 중징계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누리당의 황규필 조직국장은 <중앙일보>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당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사전에 막기 위해 중앙당의 확실한 뜻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징계 압박]
수족도 컷오프?

유 의원과 친유계는 ‘친박계 심판론’으로 응수했다. 권은희·류성걸 의원과 공동 출정식을 가진 유 의원은 “권력이 저희들을 찍어 내리고 아무리 핍박해도 저희 3명(유승민·권은희·류성걸)은 절대 굴하지 않고 당당히 대구 시민의 선택을 받아 국회로 돌아가, 무너져 내리는 새누리당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명분은 유 의원에게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상향식 공천을 하자는 원칙을 깼다는 것이다. 특히 대구 공천 과정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여당 내부 관계자들이 얘기한다.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이 위원장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당내에) 많다”며 “중진의 노련함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