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특집> ①공천 핫 키워드11

선혈이 낭자한 공천레이스 ‘막바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여야는 본선에 올릴 선수 선발을 마무리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셀프 자랑에 여념이 없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들은 당내 파열음을 만들어 내는 모습. 숨 가빴던 공천 레이스를 <일요시사>가 핵심 키워드별로 정리해봤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두 수권정당의 공천 작업이 끝나자 4·13 총선의 윤곽이 드러났다. 총 300석 중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본 게임이 막을 올렸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선별된 자들인지는 미지수다. 어김없이 정치권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논란으로 시끄러웠기 때문. 예비후보자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난해 12월15일부터 지금까지, 약 90일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고질 [청와대 개입설]

본인들은 아니라고 발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누리당 내에서는 공천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간에 청와대와 친박계의 입김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지난 9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 위원장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비밀회동을 했다는 주장이 한 언론사를 통해 제기됐다. 지난 11일 이 위원장은 당사 출근길에서 어떤 한 사람과 통화를 하며 “저 남구(지역)에 그러면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기준 말씀하시는 거죠?”라며 “그래요. 예. 실망 안 시킬 테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입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의 공천 결정에 대해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몰락 [흔들리는 친이계]

친이계는 부활을 꿈꿨다.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이 세를 과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17일 이 전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 참석한 총선 출마자들에게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들 옆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결과론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바람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재오·주호영·전해진 등 친이계 현역은 물론 김두우·임태희·강승규 등 전 의원 또는 핵심 참모들이 연이어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와 관련, 이 전 대통령은 “이번 공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혜 [줄 잡은 친무계]

지난 15일 저녁에 있었던 7차 공천심사 결과 브리핑에서 친김무성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살아남아 뒷말이 무성하다. 정가에서는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친김무성계 내에서도 그간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라 예상된 인사들이 많았지만, 결국 화살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김 대표의 핵심 측근이라 불리는 김성태·김학용 의원이 공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강석호·김종훈·박민식·심윤조 등은 경선 기회를 얻었다(지난 18일 기준). 다른 비박계 의원들이 날아가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특히 과거 K·Y라인으로 불렸던 친유승민계 인사들의 처지와는 정반대였다.

‘박심’건드린 비박들 대거 공천 탈락
더민주 새로운 권력지형 “친문 뜬다”

숙청 [벼랑 끝 친유계]

친유승민계 인사들은 대거 공천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경선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지난 15일 이종훈·조해진·김희국·류성걸 의원 등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친한 것으로 알려진 현역 의원들은 공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앞서 새누리당 공관위가 권은희 의원을 배제하면서 여권 내에서는 대구 물갈이 신호탄을 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다. 이로써 친유승민계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수추천을 받은 김세연 의원 뿐이다(경선을 치렀던 민현주 의원은 지난 19일 공천에서 탈락했다). 떨어진 이들 대부분이 경쟁자였던 소위 진박 후보들과의 여론조사 대결에서 박빙 또는 약간의 우세를 보였던 만큼,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의혹 [윤상현 음모설]

배제된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윤상현 의원 또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할지 백의종군에 임할지 결정해야 한다. 지역구 지지자들은 “무소속으로라도 출마를 해야 한다”며 당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며, 윤 의원 또한 이와 관련해 당직자들과 대책회의를 가져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윤 의원의 욕설 파문은 결국 그의 공천 배제로까지 이어졌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친박계 논개 작전의 한 부분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비박계를 대거 날리는 과정에 잡음을 없애기 위해 윤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는 것. 무소속 출마 후 새누리당 복귀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증명 [살아있는 박심]

이번 총선에서도 박심은 여전했다. 윤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심 친박계는 어렵지 않게 공천을 받았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전적이 있는 인사들은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했다.

대표적으로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은 지역을 바꿔 공천을 받게 됐다. 황 전 장관은 인천 연수갑이 아닌 인천 서을에 나선다. 발표 직후 황 의원은 “인천 서을은 가장 험지 중 하나지만, 당의 명령을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반면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끝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그가 복지부장관 시절 기초연금 도입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장관직을 던지고 나온 게 발목을 잡게 됐다고 보고 있다. 진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에 입당해 용산에 출마한다.

청산 [사라진 친노주의]

여권이 비박계 공천 탈락으로 시끄러웠다면, 야권은 친노무현계 지우기에 몸살을 앓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환부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잡음이라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독재적 리더십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과 ‘당대포’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였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정무적 판단’이라고 말했지만, 논란은 가중됐다. 당사자 중 한 명인 이 의원은 “내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친노 세력의 제일 선배라 공천에서 배제함으로써 친노 세력 척결의 상징적 의미로 본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정 의원은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정 의원은 지난 16일 “우리 당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며 “당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재편 [부상하는 친문계]

아이러니하게도 친노무현계의 세가 약해졌다면, 친문재인계는 강해졌다. 국민의당 정동영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14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더민주가 친문재인 정당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공천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배제됐다면 진정성을 인정받았겠지만, (문 전 대표와) 껄끄러운 사람들이 탈락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즉, 배제 당한 사람들은 친노무현계 중 문 전 대표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잘라냄으로써 문 전 대표가 자기 세력을 공고히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정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3철’로 불렸던 문 전 대표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과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홍영표 의원에게는 공천 칼바람이 비켜간 점을 내세웠다. 또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인 표창원·김병관 등이 대거 전략 공천됐다고 주장했다.

내홍 국민의당…오리알 김한길
길 잃은 연대, 결국 일여다야?

구설 [말 많은 인재영입]

첫 스타트부터 남달랐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시사예능 프로그램 <썰전>에서 얼굴을 알린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입지전적인 인물인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등 면면이 화려했다.


그러나 잡음도 만만치 않았다. 표 전 교수의 경우 김종인 예비후보와 ‘경선 수용’ 논란에 휩싸였으며, 이 소장은 정청래 의원 컷오프에 입김을 발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모두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영입한 인재를 ‘토사구팽’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디자이너 출신의 김빈 예비후보는 지난 14일 더민주 청년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면접 평가에서 탈락했다.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내가 컷오프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면접시간 5분도 이해하기 힘든데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온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실패 [붕 뜬 야권연대]

일여다야(一與多野). 전반적인 총선 구도가 그렇다(일부 지역은 ‘다여다야’가 예상된다). 이는 야권의 표 분산을 의미한다. 아무리 공천 학살에 몸살을 앓아도 전체 판세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김종인 대표는 지난 3일 야권통합을 공식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정의당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마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 더민주-정의당 간 연대 또한 점점 어렵게 흘러가는 중이다. 지난 14일 더민주 정장선 총선기획단장과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가 가진 첫 실무 회동에서 서로에 대한 인식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연대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민의당과의 연대는 안철수 대표의 극적인 입장 전환이 없는 이상 힘든 상황이다. 김종인 대표의 제안에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던 안 대표는 김한길·천정배의 권유에도 끝내 연대를 거부했다.


잡음 [길 잃은 국민의당]

야권 연대를 두고 입장차를 보였던 안철수·천정배·김한길은 끝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갈등은 김한길 의원의 돌연 공동선거대책위원장직 사퇴로 이어졌다. 김 의원은 책임을 통감,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당내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고 내다본다. 김 의원과 함께 수도권 야권 연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천정배 공동대표가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 그간 당무를 거부해왔던 천 대표는 지난 15일 복귀를 공식화한 뒤 “여건상 당 차원의 수도권 연대는 여의치 않다”며 “이 상태에서 더욱 열심히 대표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당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당분간 잡음이 계속될 것이라고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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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